드디어 32편입니다. 그 동안 쓰고 지웠다 반복하면서 어떻게 전개해야 더 재밌을지 엄청 고민했습니다.
결정을 내리고 오늘에서야 연재분을 올리는 점 사과드립니다.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분들 매번 감사하고 이번 편도 부디 예쁘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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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음 주부터 시험이라니!”
연주의 쉬는 시간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은성이가 죽겠다는 듯이 책상으로 엎어졌다. 힘없이 축 늘어진 게 미역 줄거리 같았다.
“야! 다음 주도 아니야.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이제 내일이면 시험이라고!”
은성이의 말을 듣고 있던 현중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에? 어째서? 사흘 뒤가 아니라 내일이라고?”
은성이가 의아하다는 듯이 눈을 끔뻑거렸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도 모르냐. 주말은 평일보다도 눈 깜작할 새라고.”
“으아앙.”
현중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은성이를 따라 축 늘어졌다. 나름 그럴싸한 현중이의 주장(?)에 은성이는 반박할 여지조차 찾을 수 없었는지 양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우는 시늉을 했다.
“괜찮아 은성아. 주말에는 공부 안 할 거야? 현중이 너는 은성이한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고 도움 되는 얘기 좀 해.”
연주는 잔득 울상지은 은성이를 달래며, 현중이를 쏘아봤다.
“내가 뭘.”
째릿.
“흠흠. 그래. 우리 주말에도 밝은 학점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자고!”
키득키득.
현중이의 반응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주는 그런 현중이의 모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요?”
“뭐가?”
“주말에 공부할거죠?”
아니. 데이트 할 거야.
“그래야겠지?”
공부하긴 개뿔. 지금은 온통 그녀를 만날 생각뿐이다.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선배!”
“응?” “또 멍 때려요? 몇 번을 불렀는데.”
잠시 딴 생각을 너무 깊게 했나보다. 크흠.
“미안. 머리도 환기시킬 겸 음료수나 먹고 와야겠다.”
행여나 달나라로 벌써 떠나가 있는 내 생각을 연주에게 굳이 들킬 필요는 없겠지. 연주는 간혹 독심술을 배운 것은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내 표정만보고도 생각을 읽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경우에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저도 같이 가요.”
지갑을 챙겨 일어나려는데 연주가 따라 나섰다. 젠장, 잠깐 딴 생각한 사이에 그걸 눈치 챈 건가. 나는 설마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바람 좋다.”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 두 개를 뽑아 밖으로 나오자마자 연주가 기지개를 폈다. 기지개 한 번도 참 똑 부러지게 편다. 보는 내가 다 시원하네.
“그래도 연주 네 덕분에 공부 하나는 안 미루고 한 것 같다?”
“어이구. 정말요?”
확실히 그렇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잡아줬으니까.
“응.”
“그거 칭찬이죠? 헤헤. 어쨌든 기분은 좋네요.”
연주가 싱글벙글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맺혔다. 생각해보면 연주가 이렇게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자주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일까.
“확실히 봄은 봄인가봐. 이제 저녁인데도 안 쌀쌀하네.”
“그러네요.”
볼에 살랑살랑 부딪히는 저녁 봄바람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연주도 그랬는지 우리는 잠시 말없이 바람과 함께 학교의 야경을 감상했다.
“선배.”
움찔. 설마 얘가 정말 뭘 눈치 챈 걸까. 나지막이 깔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응?”
“선배는 안 궁금해요?”
“뭐가?”
“음. 그러니까.”
연주는 말할지 말지 고민이 되는 듯 끝말을 흐리며 우물거렸다.
“혜성이요.”
“아.”
연주의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혜성이. 유혜성. 저번에 소희가 학교에 왔을 때도 예상치 못하게 그 이름을 들었지.
“글쎄?”
나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아주 조금 궁금하긴 했다. 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연락받지도 하지도 못했으니까.
밝은 피부 톤처럼 항상 생글생글 웃고 다니던 얼굴. 말끝마다 붙여주던 ‘오빠. 현우오빠.’. 조금 장난치면 금세 토라져버려서 잔뜩 부풀어 오르던 볼. 문득 한창 서로 좋아할 때 혜성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내 기억 끝에 남아있는 혜성이는 놀랍도록 차갑고 얼어붙은 표정으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을 뿐이었다. 어째서? 왜? 라는 말은 하지도 못했다. 직감적으로 느꼈으니까. 어떻게 잡아도 혜성이는 떠나갈 거라고.
“솔직히 궁금하죠?”
“응.”
살랑살랑 따뜻하게 느껴지는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눈앞에 비치는 예쁜 학교의 야경 때문인지 솔직한 심정이 잠깐의 지체도 없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 아직 남아있어서 궁금한 건 아니야.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잘 지내고는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지.
“피. 거봐요. 궁금해 할 줄 알았어요.”
연주의 말에 피식 웃을 뿐이다. 하긴 ‘글쎄?’라고 대답했을 때부터 연주는 이미 내 대답을 ‘응’이라고 들었겠지. 옛날부터 연주를 속이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혜성이와 이따금씩 살짝 다툰 것도 보자마자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곤 했었다.
“근데 갑자기 혜성이 얘기는 왜 하는 거야?”
내가 헤어진 후로 한 번도 혜성이 얘기는 안 했었는데.
“음. 그냥요. 그냥. 이제 선배도 괜찮아 진 것 같으니까? 어쩌면 금방 혜성이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 몰라요.”
“무슨 소리야?”
“글쎄요? 때가 되면 알겠죠? 커피 잘 마셨어요. 전 먼저 들어갈래요.”
연주는 다 마신 커피 캔을 벤치 옆에 놓여 진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리고는 뒤돌아섰다.
캉캉.
마치 농구공이 림에 꽂히듯 깔끔하게 쓰레기통으로 골인한 빈 깡통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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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실 연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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