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5편까지 갑니다..
5. [그리움의 시작과 강원도 여행 1]
손에 든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는데,
진동을 느끼자마자 반사적으로 폰을 꺼내어 확인합니다.
바로 20m도 못가 집에 도착하는대도
그 핸드폰을 꺼냄과 동시에 그 자리에 멈추어 누군지 확인했습니다.
예상대로, 민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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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추워서얼어죽는줄
알았어요 오빠가아까문자
확인해서 다른거입고나오
랬으면 긴거입고나갔을텐데
오빠대체뭐에요 나한테
왜그랬어요 나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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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장난이죠??
요즘 고딩은 이런걸로 낚는건지, 정말 황당한 문자가 와 있었죠.
근데 얼굴에 끊이지 않는 이 미소는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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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인줄몰랐냐 다음부터
그렇게입고나오면 다시
집으로보내버릴거니까
그렇게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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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거리를 두는 척 문자를 보냈습니다..
근데 거리 두는 것 맞나요..?
오늘 민선이와 본격적으로 연락을 하기 시작 한 후로,
마음이 원하는 것과 그 때 그 때 머리에서 반응하는 것엔
약간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 엄청 자상하고 잘해주고 상냥하고 친절하게만 해주고 싶긴 한데,
뭔가 쉽게 이 마음을 들키거나, 혹시 얘가 이 마음을 알고 더 경계하게 될까봐,
스스로 불안한 감정이 같이 들게 되더라구요..
마음은 쿨하게 생각하고 언제든 보낼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은연중에 지키고 싶은(혹은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도 같이 들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할 때는,
장난이라는 그런 뉘앙스를 표정과 억양에서 알아차리도록 반응하고,
텍스트로 대화를 전달할 때는 약간 3자 입장에서 보내는 듯한 문자를 쓰게끔 됩니다..
이게 이 아이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제가 생각하는 감정조절의 시작인겁니다.
혹시..정말 내일당장 민선이로부터 '미안해요, 이제 연락 안할께요'라는 통보를 받는다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제 자신에게 부여한 시간인거죠..
내가 원했던 시작도 아니었고,
단지 내게 우연찮게 주어진 시작이었으며,
이 시작이 서로에게 무르익어 자리를 차지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아마 저도 민선이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아까 문자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 서서 저도 답장을 보내고..
바로 집으로 들어와, 헐크를 벗고 반바지로 갈아입고...
침대위에 던져둔 폰을 다시 확인하니,
문자가 두 개 더 와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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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메롱~
리얼초컬릿은잘마셨어요
나그거완전좋아해요
근데너무비싸서 자주
못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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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오빠
저랑문자하고카톡도해줘서
너무고마워요 저는아직
아무것도모르는애여서
오빠한테방해만될줄알았는데
그래도제얘기잘들어줘서
고마워요 음료수도너무
죄송하고 아까초코도
너무고마워요 다음엔제가
오빠사줄게요 진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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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앉아..
두번째 문자를 정말 한 5번은 읽었습니다..
얘가.. 고딩3년인 얘가..
누가봐도 귀엽고, 이쁘고, 활발하고, 통통한 볼살을 가진 이 착한 여고딩이
33살 아저씨인 저보고 자기와 연락을 시작해줘서 고맙다는 문자의 진의를....
도저히 2-3번 읽어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5번을 읽어도 알 수는 없었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죠.
그리고 짐작과 함께,
저의 감정도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내가 얘에게 상처를 주진 말아야겠다는 확신부터...
저는 답문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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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카톡으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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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지 않습니까?
이 아이가 제게 고마워하는 부분에 대해 저는 감사를 받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거기에 대한 반응은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 마지막 문자 이후로 현재까지 민선이와의 모든 텍스트 대화는 카톡으로 바뀝니다..
알고보니,
얘는 제가 첨에 카톡하지말고 직접 말로하라고 한 부분을 보고,
제 나이대 사람들은 카톡을 잘 안하는 줄 알고 문자를 이렇게 보내었던겁니다..
(여러분, 요즘 여고딩은 30대 남자들은 카톡 안하는 줄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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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헐크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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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땐 삼촌, 어떨 땐 오빠.. 아주 자기 마음대로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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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얘와 잠들기 전까지 카톡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얘는 늘.. 졸리다고 톡을 보내면서 저에게 아무거나 하나 묻습니다..
그리곤 제가 답을 하면 그 때부터 이 1자가 지워지지 않고,
잠들어 버립니다...
뭐 이렇더라구요..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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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니 그건 오빠 별로 안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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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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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그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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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자라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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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침 7시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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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잤어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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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패턴....;
..........
그 날 밤..
그 애는 지금 자고 있습니다.
저는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내일 출근을 위해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야함에도 새벽 2시가 들도록 머리가 맑은 느낌입니다..
침대에 누워서 카톡 대화창을 보니,
볼링치자는 친구녀석들 그룹창, 회사 여직원에게 실적 묻는 창,
회사 선배와의 대화창, 친형 대화창, 엄마 대화창 등등...
여전히 저는 누군가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누구보다도 오늘 새로생긴 이 대화창처럼
폰의 오류로라도
혹시 지워질까봐 조마조마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작년, 2012년 봄..
이런 감정의 마지막이었던 그 때.
이후로 약 8개월동안 제 마음속에 사라졌었던, 또 어디 있는지조차 잃어버렸던..
하지만 아직은 남아있었던 이 감정들을 일깨워 준 고딩.
최대한 공부에 방해되지 않고,
최대한 공부를 지원해 주고 싶은,
착한 오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리움이 있는 밤이었습니다..
그리곤 시간이 흘러, 금요일 오전.
갑자기 강원도 거래처를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 잡혔고,
이 일정이 오늘 업무의 끝이라 현지에서 퇴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업무는 원본 서류만 오늘까지 전달해주면 되는 초간단 업무!
이 얘기를 카톡으로 이 아이에게 했더니,
"오빠!! 저도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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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다시 뵐께요~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