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노먼 에인절(Norman Angell)이라는 영국인이 어떤 책을 하나 썼습니다. 제목은 “Europe’s Optical Illusion” 즉 유럽의 시각적 착시였습니다. 에인절이 보기에 유럽인들은 하나의 거대한 착시현상 속에 갇혀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한번 따라가 봅시다. 서구의 19세기는 그야말로 황금기였습니다. 매일 아침에 자고 일어나는 유럽인 주변에는 새로운 종류의 발명과 풍요가 넘쳤습니다. 각국의 외교관, 발명가, 사업가들은 유럽 본토뿐만이 아니라 중동, 미대륙, 아프리카, 아시아 전부를 종횡무진하면서 모든 것을 분배하고 가공하여 풍요를 창출하고 있었습니다. 아샨티, 잔지바르, 콩고, 줄루의 카리스마 넘치는 부족장들도, 인도의 라자들과 이란의 샤와 청의 천자마저도 이들이 이루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만 했습니다. 유럽이 지구 전체를 호령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만 전능한 유럽인들에게도 한 가지 사소한 문제점이 남았습니다. 수단을 점령하고 있었던 영국 총독 허버트 키치너의 군대를 메시아를 자칭하던 마흐디(Mahdi)의 군대로부터 보호해주었던 것은 미국인 발명가 하이럼 맥심의 기관총이었습니다. 1898년 옴두르만(Omdurman)에서 일어났던 두 세력 간의 전투는 유럽인들의 학살로 끝났으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유럽인들의 이 전지전능한 힘으로부터 유럽인들을 보호해줄까요? 에인절이 보기에 유럽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큰 문제였지요.
유럽 대륙은 현대 이전의 대륙들이 다 그렇듯이 전쟁들 사이의 짧은 비정상적인 기간이 평화라고 불리던 대륙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특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두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었던 보불전쟁이 1년 만에 끝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세련된 일이었습니다. 두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두 나라 사이를 갈라놓았음에도 한동안 연속된 전투로 이어지지 않고 1년 만에 끝나다니요! 보불전쟁은 ‘전쟁기술’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무기와 전술로 한정해도 근대 전쟁과 현대 전쟁사이의 과도기에 있었던 전쟁이었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의미의 ‘전쟁기술’로도 현대 전쟁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던 전쟁이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매우 제한적이고도 확고한 정치적인 목표를 가지고 독일을 통일시켰습니다. 30년 전쟁은 독일을 수십 년간 불태웠지만, 독일이 통일될 때는 프랑스가 수십 년 불타는 일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진전이었습니다. 평화의 길이가 전쟁의 길이를 압도하는 분기점이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었습니다.
체임벌린은 언제까지 의문의 패배를 당해야할까요?
노먼 에인절은 이것을 보고 유럽 대륙에서 이제 전쟁은 일어나기 힘든 일이 되었다고 평했습니다. 물론 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옆 국가가 이상한 마음을 먹고 쳐들어올 수 있으니 더 많은 사단, 더 많은 야포와 기관총, 더 많은 군수품 창고와 사관학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걸 보고 유럽에서 전쟁이 자신의 왕좌에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각적 착시에 불과했습니다. 에인절은 산업화로 인한 세계시장이 전쟁을 막아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제군주들의 중상주의는 이미 자본주의자들의 세계적인 자유주의적 경제로 바뀐 지 오래됐습니다. 군주들은 자신의 내탕금으로 무기고를 세워 자신의 나라에서 철광과 노동자들을 수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입헌군주와 의회로 이루어진 정치집단들은 사업가들의 입찰을 통해서 무기고를 세웠고 모든 종류의 자본은 세계시장의 보이지 않은 손으로 조달했습니다. 그러니 전쟁을 평화 시기에 준비하는 법은 전쟁 시기에 있어 전쟁을 준비하는 법과 크게 달라졌고 전쟁은 영 못마땅한 장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에인절이 이런 논리를 꺼낸 것에는 전쟁에 길들여져 있던 당시 세계의 분위기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식민지를 뜯어내는 재미가 참 쏠쏠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다툼이 이미 베를린 회의에서 전체적으로 큰 그림이 외교적으로 합의된 다음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망각하는 국민과 정치인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에인절은 유럽 본 대륙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프랑스가 불탄다면 독일 무역업자, 금융업자, 군납업자들을 누가 먹여살려준답니까?
다행이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인간의 좁은 시야를 구제할 것이었습니다.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욕심이 많고 감정적이겠지만 집단지성인 시장은 그들의 경제를 망가트리고 지지율을 떨어트려 전쟁을 최대한 매력적이지 못한 정치 선택지로 만들어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시대의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었죠.
전쟁 안 난다면서요!
이미 책이 출판된 년도를 보고 에인절이 참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싶으셨을 것입니다. 책이 출판된 지 딱 5년 후인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은 분명 크리스마스 전에 끝났어야했던 전쟁이었죠. 모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독일 청년들은 분명 보불전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 년 만에 평화조약은 서명될 것이고 다시 좋아하는 프랑스산 제품들로 가득한 집으로 모두 돌아와 화톳불 옆에서 아들딸들에게 전쟁터의 추억을 읊어줄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제 관료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럴 줄 알고 최소한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프랑스산 철강을 비축해두자고 주장해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시장에 더 많은 프랑스산 기관총, 기차, 선박을 팔기 위해서는 독일산 철을 수입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뭐 그래봤자 이번 전쟁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이탈리아 정부는 전쟁에서 승리할지라도 자신에게 줄 땅조차 없는 답답한 게르만족 친구들을 떠나서 영국과 프랑스의 편에 서기로 했습니다. 이존초(Isonzo) 강을 따라서 공세를 시작해 오스트리아가 파렴치하게 뺏어난 베네치아를 돌려받을 생각이었습니다. 운이 좋다면 오스트리아의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트리에스테와 달마치아까지 거대한 영토를 얻어낼 수도 있겠지요. 이탈리아 왕국의 땅인 적은 없었지만 이탈리아인들이 살고 있으니까 정말 좋은 생각이었지요. 작전을 검토해봤는데 아무래도 몇 달이면 충분했습니다.
1914년 9월 10일 마른 강에서의 첫 번째 전투가 끝났습니다. 독일군은 파리에 도착하기 직전 아주 예상치 못한 불쾌한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1915년 7월 7일에 이존초에서의 첫 번째 전투도 끝이 났습니다. 왕국의 건국 이래 가장 준비되고 열성적이었던 이탈리아군은 오합지졸인줄 알았던 오스트리아군의 방어선을 조금도 헤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전선의 병사들이 이미 막연하게 느꼈겠지만, 이미 군부와 정치권은 명확한 보고를 받은 상태였고 이내 스스로도 깨달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전쟁은 길고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미 시작된 전쟁을 끝낼 수 없었습니다. 마른에서의 두 번째 전투는 1918년 7월. 앞으로 카포레토 전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질 이존초 강의 12번째 전투는 1918년 10월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대체 운 좋게 다리만 하나가 날아갔다거나, 아니면 더 치명적인 신체부위가 날아가 땅 속에 묻히지도 못한 병사들에게, 그리고 그 부모님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전쟁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발달된 형태의 현대전이라 조약과 함께 깨끗하게 휴전될 것이고 앞으로 당분간은 평화의 시기가 계속될 것이며 당신들이 얼마나 적국을 혐오하던지 간에 원하는 무역을 재개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 위로가 되겠습니까? 사실 에인절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비교하고 있었던 것은 돈이 모자라면 적국의 곳간을 불태우고 예산안에 약탈품을 반영하던 근대의 군주들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그가 원하던 우리 시대의 평화가 오는 것에는 더 많은 시간과 피가 필요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미 만족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복합적이 되는 이유는 거대한 두 개의 전쟁이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인절은 틀렸을까요? 옳았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에인절은 단순히 수학공식 하나를 증명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여러분도 한번 저와 같이 함께 생각해주실래요?
하지만 다행이도 에인절은 그보다 위대한 수많은 선각자들도 누리지 못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한참 뒤 1967년에 죽을 운명이었던 에인절은 남은 일생을 자신의 저서를 옹호하는 데 바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남아있는 글이 다행이도 꽤나 많습니다. 일단 그에 대한 주된 옹호중 하나는 에인절의 책은 조금 이르게 나온 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21세기 현재에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전쟁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클라우제비츠의 해묵은 전쟁론의 전쟁의 3대 본질 중 하나인 비이성적인 불확실성의 공격을 받고 물러나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어떤 정치주체도 전쟁이라는 남지 못하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도 하나의 분명한 동기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전쟁이 돈이 되는가’ 라는 질문은 자본주의 집단이 정치권력을 잡기 전부터 존재했던 참 유례 깊고 불완전한 질문입니다. 분명 문화나 국가주의 같은 요소도 정치무대에서 자신만의 배역이 있으니까요. 애석하게도 인간의 이성적인 면모와 반대되는 비이성을 주목하려면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어야 했으니 에인절의 책에는 이 부분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큰 그림에서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