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취업 성공수기들을 보고 저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기를 여러 번인데, 여러가지 일도 있었고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도 느끼고 해서 이제야 써봅니다. 어쩌다 보니 2010년 가입한 이래 (질문글 빼고) 첫 글이 되었군요.
결론적으로 모 메이저 공기업에 합격한 것 같습니다(?). 일단 정량적인 스펙은 중경외시 어문계열, 학점 3.0/4.5, 토익 950이상, 토스 6, HSK 6, 한국사 1급, KBS한국어 2+급, 컴활 1급 정도입니다. 그 외에 학교 다니면서 CS관련 업무로 2년 정도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저는 4학년이 되기 전까지 취업에 대한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생활하기도 벅찼거든요. 처음에는 대학원 갈 생각을 했기도 하고요. 물론 대학공부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금방 마음을 접었습니다. 17년 초에 하던 일을 관두고 학교생활 및 취업준비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9월 초 즈음에는 어학점수나 자격증 등 기본적인 스펙은 완성이 됐습니다. 마지막 4학년 2학기 학점 꽉 채워 들으면서 졸업준비도 하고 취업준비도 하려니 생각 이상으로 쉽지가 않더군요. 취업준비를 처음 시작하면서는 하반기는 어느정도만 하고 상반기를 노리자는 생각이었습니다만, 하다보니 절로 치열해집니다. 매일 아침 (문자 그대로) 코피를 쏟으며 학교 수업 듣고, 과제하고, 자소서 쓰고, 가끔 시험 보고 면접 보러 다녔습니다. 물론 저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 입장에서는 우스울 수 있겠습니다만, 나름 힘들었던 기억입니다. 구직 활동을 하며 저는 다른 문과생들 하듯이 원서를 많이 쓰지는 않았습니다. 총 13군데 지원했는데 주로 제 경력과 연관된 백화점/홈쇼핑 업체 다수와 메이저 공기업 몇 곳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주제에 우습습니다만, ‘누울 자리를 보고 눕자’고 생각해서 삼성이니 현대차니 LG니 하는 탑급 대기업은 쓰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제 약점은 상경, 공학 계열이 아닌 제 전공 자체와, 낮은 학점, 그리고 해외경험이나 인턴, 대외활동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제 경력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니며 주5일씩, 같은 곳에서 오래 일했다는 것이 끈기를 갖추고 있고 인생을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식으로 포장이 된 것 같습니다. 낮은 학점에 대한 핑계도 되었겠습니다만 면접을 보면서 학점 이야기가 나온 적은 의외로 없습니다. 공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학점이나 어학점수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공기업은 이제 대부분 블라인드 채용이기 때문에 필기 점수와 면접이 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소서는 저는 최대한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흔히 취업전문가들이 말하는 원칙들을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습니다. 요약식으로 소제목 붙이고 두괄식으로 쓰라는 것 정도를 참고했네요. 그 마저도 꼭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면접에서도 자기소개 등을 할 때 담백하게 했습니다. 무엇을 해 보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겠다 식으로 말이죠. 수사적인 말을 꾸미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필기는 많이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수능류의 객관식 시험이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틈틈이 대기업 인적성과 NCS 문제집을 풀었습니다만, 제가 푼 것을 다 합쳐도 반 권 분량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최종합격한 기업의 경우에는 시험 전날 봉투모의고사 2회째 절반쯤 풀다가 너무 어려워서 내팽겨쳤습니다. 총 50문제(몇 문제인지 기억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 마킹했고 4문제정도는 찍었습니다. 찍은 것도 번호만 보고 찍지는 않았고 문제 한번 읽고 직관으로 찍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처음부터 신중하게 천천히 풀고 애초에 문제를 다 풀지 못할 것을 전제로 하시는데, 저는 푸는데 오래 걸릴 것 같은 문제(특히 수치자료 종류)는 대충 직관으로 풀고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40문제 풀고도 합격한 사람도 많더라고요. 자소서/면접/필기의 방식은 순전히 제 취향이고 또 제가 승률이 높지도 않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거리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원한 13개의 기업 중 서류를 통과한 곳은 5개, 그 중 필기를 통과한 곳은 2개였습니다. 필기 없이 바로 면접을 보는 곳도 2개 있었는데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필기 통과한 2개 중 한 기업인 모 메이저 공기업의 면접 두 번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합격하고 나니 그리 기쁘지도 않더군요. 제가 원서 쓴 곳 중에서 일반적인 기준에서 가장 좋은 직장으로 취급되는 곳이었는데 말이죠. 그저 X될 뻔 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약간의 저축과 퇴직금, 장학재단 생활비대출로 생활하고 있었거든요. 17년도 하반기에 취업을 못하면 일단 생활이 곤란하고, 다른 일 하면서 다시 취업준비 하기도 힘들고, 이미 꽤 지쳐서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정말 다행이었죠.
그런데 왜 글 제목이 취업에 실패할 뻔한 이야기이냐 하면은요,
채용신체검사에서 결핵이 발견됩니다(!)
난 완전 멀쩡한데 무슨 결핵인가 하고 정말 황당했습니다만. 원래 결핵이 그런 병이라고 하더군요. 몇 년간 아무 증상없이 폐에서만 퍼지고 있었나 봅니다. 아무튼 결핵이 확진된 일자로부터 일주일 후면 연수 시작이었는데, 법정 최소 격리기간이 2주입니다. 그리고 활동성 결핵은 입사취소 사유가 충분히 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고생 좀 덜하고 내 인생을 살아보나 하고 조금이나마 신났었는데, 참 내 인생은 쉽게 풀리는 법이 없구나 하고 황망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불행 중 천만 다행으로, 입사가 취소되지는 않았고 18년 상반기에 다시 신체검사 받고 이상 없을 시 입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경험이 있다보니 정말 입사해서 첫 월급 받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은 서울생활 반년 더 보너스로 한다고 생각하고, 여름까지 일할 일자리를 찾고, 외국어 공부 더 하고, 회계관련 자격증을 취득해볼 생각입니다.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두서 없는데, 그래서 결론은, 혹시나 취업이나 기타 관련해서 신체검사 앞두고 계신 분들은 저처럼 황당한 일을 겪지 않으시도록, 보건소에 가서 결핵검사 받아보시기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공짜니까요. 한국인의 1/3이 결핵 보균자고, 한 해 발병하는 인원이 3만명이 넘는답니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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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자금대출도 있고 당장 생활비도 여유가 없어서 당장 돈을 버는게 심적으로도 편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위에 체리과즙상나연찡님도 그렇고 페르마타님도 그렇고 말씀하시는걸 들어보니 고민이 되는군요. 일단 세달정도 일하고 나머지는 놀러다니는 쪽으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모두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