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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9/10 09:53:41
Name 王天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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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나에게서 온 편지 보고 왔습니다.(스포 있습니다)


아이들의 미소는 동글동글합니다. 깎이고 각진 어른들의 웃음과는 달리 아직 원래의 무언가를 가지고서 어디 놔둬도 데굴데굴 잘 굴러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흠과 결이 덜할 뿐,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미 그들은 그들만의 자갈밭과 진흙탕을 건너왔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사주지 않았던 장난감일수도, 숙제를 못해 들어야 했던 꾸지람일수도 있겠지요. 그들은 마냥 행복하고 항상 들떠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느끼는 희노애락이 조금 더 압축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똑같은 사람이죠.

아이들의 웃음에는 탄력이 가득합니다. 그것은 조그마한 걸림돌에도 부딪히더라도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높이 튀어오르게 마련입니다. 어딘가에 부딪혔을 때 굴러가는 것을 멈추거나 다른 방향으로 길을 향하는 어른들의 웃음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때로는 잔인하리만치 짖궂습니다. 어지간해서는 한번 튀어오른 그들의 웃음은 멈출 줄 모르거든요. 여기에 어른들은 순수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아무튼’ 이나 ‘어쨋든’ 이라는 식으로 말을 흐리며 “안돼” 라는 결론을 강요할 뿐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비춰지든, 어른의 눈에 그들은 ‘무지한 존재’입니다. 아직 세상을 모르니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마냥 행복하거나 남을 상처입히면서까지 키득거릴 수 있다는 게 어른들의 고매한 판단이죠. 여기에 우리 다 큰 어른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들을 이해하는 대신 ‘꼬맹이’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다 해도 이제는 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평생 풀지 못할 이 숙제를 보다 일찍 접하게 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이 영화는 엉뚱한 친구 덕분에 조금 빨리 세상에 눈을 뜬, 라셸이라는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의례 그렇듯, 소녀 시절의 순수함과 아련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소녀의 소녀답지 않음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의 조숙함을 관통하는 것은 아이의 세계와 가장 걸맞지 않은 성性과 죽음이라는 소재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처럼 현실세계의 욕망을 거세한 순정만화 같진 않습니다. 오히려 발칙한 구석이 있죠.

라셸이 혼자서 저 발칙하고 음험해보이는 세계에 발을 들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소심한 그녀를 아이들만의 세계 너머로 고개를 내밀게 한 최초이자 유일했던 친구, 발레리가 그녀의 곁에 있었죠. 그녀 덕분에 라셸은 담임 선생님의 혼외정사를 목격하고, 험하다 싶은 단어들도 배웁니다. 라셸은 발레리의 오빠를 보고 첫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발레리의 어머니가 라셸의 생일 파티에 오면서 라셸의 부모님 사이에 묘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탈선이라기에는 앙증맞고, 놔두기에는 곤란한 말썽을 피우는 발레리 덕분에 라셸은 하루하루가 심심할 틈이 없죠. 바비인형을 가지고 이쁜 척 하는 대신 적나라한 배드씬을 연출하며 놀게 되긴 하지만.

만일 이 성적 요소들이 라셸과 발레리의 일탈을 위한 소재로만 쓰였다면, 이 영화는 어른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아이들의 순수’라는 편견으로 왜곡된 소재거나 단순한 소비적 코메디 요소에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는 라셸이 없는 어른들끼리의 관계에서도 성을 계속해서 언급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육체적, 정신적 행위이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상대방과 나누는 일종의 대화로서,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에 따라 관계가 냉랭해지기도, 끈끈해지기도 하는 것이죠.  또한 직간접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라셸과 발레리가 그렇고, 라셸네 가족과 발레리네 가족이 그렇고, 라셸과 담임 선생님이 또 그렇듯이요.

“저처럼 어린 아이도 죽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발레리가 라셸에게 가르쳐준 세상의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죽음일 것입니다. 이전까지 라셸은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 많은 자유’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같은 방을 쓰는 할머니 때문에 죽음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져버리기도 했구요. 그러나 발레리의 죽음을 통해 라셸은 죽음이 얼마나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지, 왜 누군가의 죽음이 슬픈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영원한 이별’입니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슬픈 거죠. 여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웃어왔던 사람과 다시는 그럴 수 없다니, 이 얼마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겠어요

이 두가지 소재를 이용한 영화의 흐름은 갈등과 화해가 나름 고전적이어서 그 예측이 크게 어렵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또 잔잔하고 소박하게 다가오죠. 꽤나 자극적인 소재들임에도  과장없이 일상에 녹여낸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성과 죽음이 얼마나 일상적인 것인지, 그것이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늦건 빠르건, 그런 갈등과 아픔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고, 이를 통해 어른이 되고, 세상을 보다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일테니까요. 라셸은 이제 어떤 이야기든 스스럼없이 부모님에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가족은 화목해진 가정만큼이나 화사해진 부엌에서 식사를 하며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라셸은 가장 발레리와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잊을까봐 두려워하며 상담선생님에게 편지를 씁니다. 발레리가 수술을 끝마치면 갖고 싶어했던 신형 타자기로요. 그러나 제가 볼 때 그 추억은 오래오래 남아 라셸의 가슴 한 구석을 채울 것 같습니다. 그 둘이 함께 나누고 발견했던 것은 어른이 되면 더 많이 인생을 스쳐갈 것들이고, 슬퍼죽겠는 그 순간에도 발레리의 흔적을 붙잡고 타자기를 치고 있으니까요.


전 이 장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프레임 세로로 까뜨린느 부인은 전신이 나오지만 미셸은 단지 하반신만이 걸쳐있을 뿐이죠. 이 남자의 음험한 꿍꿍이와 성적 긴장감이 물씬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 본 돈 큐레(스펠링 모릅니다) 라는 욕이 나왔을 때 반갑더군요. 제가 프랑스 친구한테 처음으로 배운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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