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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29 17:03
그런 가운데서도 일본 육군은 과달카날을 포기하지 않아 남방을 맡는 17군에서 병력을 떼 과달카날만 전담하는 18군을 만듭니다. 그래봐야 과달카날의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라바울에 아무리 많은 물자를 쌓아 놔도 과달카날로 전달되지 않으면 끝이었죠. 해군은 계속 발을 빼고 싶어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어서 수송 작전을 계속했는데, 구축함의 피해가 늘어나자 아예 잠수함으로 바꿉니다. 하지만 잠수함이 수송할 수 있는 건 더 적었고, 양륙을 위해 부상하는 틈을 타 미군의 어뢰정이 달려들었죠. 나중에는 어뢰에 폭탄 대신 보급품을 넣어서 발사하는 형식이었지만 달라질 건 없었습니다.
42년이 끝나면서 미군의 승리는 뚜렷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미군은 대규모 공세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고생한 해병 1사단을 후방으로 보내고 병력을 교체하려 했죠. 12월까지 1사단은 전사 및 실종 681명, 부상 1278명 등 총 1959명의 사상자를 기록합니다. 철수 당시에도 말리라아 감염율은 무려 75%였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었습니다. "먹을 게 좋아졌으니 우리는 쫓겨나겠구만" - 과달카날 다이어리 어려운 상륙전을 도맡아 하고 보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싸워야 하는 해병대에게는 보급이 좋아진 건 곧 자기들은 다른 데로 간다는 걸 뜻 했죠. (...) 이렇게 헨더슨 비행장을 끝까지 사수하며 큰 공을 세운 해병 1사단은 호주로 떠납니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고 훈련과 실전으로 상륙전의 최고 정예가 된 그들이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을 이끈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명예훈장을 받았고, 해병 1사단은 미군 사단 중 처음으로 사단 고유의 표식을 달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과달카날 해전이 벌어졌던 42년 11월은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이었습니다. 맥아더는 뉴기니아에서 공세를 시작했고, 북아프리카에서도 미군이 상륙했으며,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소련군의 반격이 시작됐을 때였죠. 처칠은 그 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작의 끝(the end of the begining)" 다음 편으로 과달카날 해전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12/04/29 21:38
진짜 일본도 대단하긴 하네요 ㅡㅡ; 돌격 안했다고 공적을 깎는 엉망진창인 수뇌부를 갖고서 근대화 수십년만에 세계최강이랑 맞짱을 떴으니
12/04/30 00:27
정말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태평양전쟁은 우리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쟁임에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느낌인데 눈시님 덕분에 알게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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