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닐에 삼국시대의 대표 산성(?)격인 보은의 삼년산성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대표적인 전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던 삼국시대의 산성들은 답사를 주관하신 임용한 교수님의 말씀대로 일상생활은 포기하고 오직 방어력의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압도적인 높이와 경악스러울 정도로 험난한 위치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산성들은 붕괴를 막기 위해 바깥쪽에만 돌을 쌓아올리고, 안쪽은 흙으로 쌓아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그런거 없습니다. 거의 십미터에 육박하는 높은 성벽은 두께도 오미터가 넘어보였습니다.
경치가 좋고, 성벽을 따라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있어서 힘든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성벽은 깨끗하게 복원된 곳과 복원을 준비중인 곳, 그리고 원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과 무너져서 간신히 흔적만 남은 곳들이 보였습니다. 비교적 접근이 용이했던 북쪽 성벽이 제일 높았고, 안쪽에 이중성벽이 존재했던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현장에서 북문을 발굴하셨던 분과 만나서 배수구를 발견했던 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답사를 하면서 어떤 복원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저는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옛날 방식대로 그대로 쌓는 '완벽한'복원 이라는 것은 결국 욕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 복원하거나 옛 형태로 남아있거나 혹은 이렇게 붕괴가 진행중인 곳 모두 '역사'입니다. 이걸 잘 꾸면서 관광지로 만들까보다는 어떻게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지 고민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징그러울 정도로 깨끗하게 복원된 성벽과 힘 없이 허물어져가는 성벽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약 세시간에 걸친 답사를 마치고 청주 시내로 돌아가서 옛 읍성자리를 둘러봤습니다. 청주성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모두 허물어졌고, 그 자리는 길로 변해버렸습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도시였던 청주성은 성벽을 잃고 대신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그 길의 곳곳에는 마치 '다빈치코드'처럼 그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있었습니다. 길로 변해버린 청주성 답사를 마치고 포스가 넘치는 '복성루'라는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화교부부께서 30년 동안 영업을 하셨다는데 건물 자체도 굉장히 오래되었더군요. 식사를 마치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버스에서 전쟁이 일상사처럼 느껴지던 시기에 세워진 삼년산성과 평화로운 시기 쌓았던 조선시대의 청주성을 보면서 전쟁이 역사에 미치는 극적인 영향력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루동안 '과거'와의 만남은 끝이 났습니다.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높았던 삼년산성의 성벽과 길로 변해버린 청주성을 걸으면서 제가 마주쳤던 역사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깊은 고민과 상상을 하게 만들어줬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김헌창의 난때 함락되었던 것 같은데 기록에는 좀 애매하게 나와 있습니다. 직접 가보니까 그럴만 하더군요. 높지는 않지만 산 자체가 험난해서 공성무기를 접근시킬 수 없었고, 성문들도 사다리로 오르내리거나 이중성벽 형태로 되어 있어서 약점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연못이 있어서 식수도 풍부한 편이었죠. 성벽은 뭐, 실제로보면 기가 죽을 정도로 높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