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호빗: An Unexpected Journey"가 오는 12월에 개봉한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집필한 톨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하는 것인데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호빗족들은 키가 인간의 절반 정도이고 손등과 발등에 털이 났으며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본의 아니게 중간계에 커다란 전쟁의 암운을 몰고오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호빗족들이 예전에 살고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오늘은 실제로 존재했던 호빗족, 유골 발굴이 발표되자마자 고생물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호모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4년 고고학자 마이크 모어우드가 이끄는 호주의 유물 발굴팀이 놀라운 발표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바섬에서 동쪽으로 약 5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섬의 리앙부아(Liang Bua) 동굴에서 아주 특이한 고대 인류의 유골과 뼈들을 발굴했다고 발표를 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 유골이 분명히 다 자란 성인인 것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키가 약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뇌의 용적도 약 400cc 정도로 침팬지와 유사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들의 유골과 함께 석기가 발견되었으며 지금은 멸종되어 존재하지 않은 조랑말 정도 크기의 코끼리의 일종인 스테고돈의 뼈들도 같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석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고 사냥도 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불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발견된 유골에 대해서 연대를 측정해 본 결과 그 유골은 약 18,000년 정도 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플로레스 섬의 사람"이라는 뜻인 호모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라는 학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호모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은 고생물학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약 3만 년 전에 멸종한 유럽의 네안데르탈인들이 현생인류를 제외하고 가장 최근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원시 인류라고 믿고 있었는데 만약 호모플로레시엔시스에 대한 연대 측정이 정확한 값이라면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하고 난 이후로도 약 만 년 정도 더 호모사피엔스를 제외한 또 다른 원시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각 이들의 발견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호모플로레시엔시스에 대한 연대 측정이 잘못되었고 이들은 실제로 또 다른 인류의 종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호모사피엔스들이며 단지 크기가 작은 집단일 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들이 이토록 눈에 띄는 기형적인 해부학적 모양을 갖추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소두증(microcephaly)이나 크레틴병(cretinism) 또는 라론 증후군(Laron syndrome)과 같은 질병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발굴된 유골이나 뼈조각 등에서 이러한 병들의 징후를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들은 설득력이 약했습니다.
호모플로레시엔시스를 발굴한 발굴팀의 리더인 마이크 모어우드는 이와는 다른 가설을 펼쳤습니다. 그는 이들이 약 100 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와서 서아시아를 거쳐 이곳까지 진출한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의 후손들일 것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아마도 보트를 타고 플로레스섬으로 이주해 온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 드렸던 다지역기원설 기억나시나요? ^^)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펼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플로레스섬의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석기들 가운데 약 80십 만 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발굴팀은 80만 년 전이라면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오기 시작한 때 보다 한참 전이므로 이러한 석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존재는 호모에렉투스였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이들이 이렇게 크기가 작아진 이유는 "섬 왜소증(island dwarfing)"이라고 불리는 진화의 한 특징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여기서 섬 왜소증이라고 하는 현상은 진화의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로 작은 섬과 같은 고립된 지역에 살게되는 종들은 육지에 있는 같은 종들에 비해 개체의 크기가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마이크 모어우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바로 항해의 기술이 호모에렉투스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이러한 배를 이용한 항해술은 우리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러서야 체득하게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또 다른 설명으로 그들이 보트를 타고 플로레스섬으로 건너왔다기 보다는 아마도 우연히 표류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섬에 정착하게 됐을 거라는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2004년 동남아시아 쓰나미 사태때 몇몇 사람들이 부러진 나무 둥치에 메달려서 육지에서 150km 넘께 표류하다가 구출된 사실이 있다는 점을 본다면 아주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호모플로레시엔시스에 대해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주장은 이들이 호모사피엔스도 호모에렉투스의 후손들도 아니고 바로 그보다 더 전에 아프리카에 존재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마지막 시기의 한 종의 후손이라는 가설이었습니다. 이 가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호모플로레시엔시스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신체상의 특징들은 이들이 나중에 나타난 원시 인류들 보다는 초기의 원시 인류들과 더 닮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일례로 이들은 신장에 비해서 발이 유독 컸는데 이러한 것은 전형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고생물학 교과서를 통째로 다시 기술해야 할 만큼의 파격적인 주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다지역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나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나 너너 할 것 없이) 우리의 원시 인류 가운데 최초로 아프리카 밖으로 나온 인류는 호모에렉투스라고 하는 점에서는 거의 의견을 일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 속한 종들은 직립보행을 했고 아주 간단한 형태의 석기를 만들어 썼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침팬지나 고릴라와 같은 영장류와 별반 다를 바 없었으며 먼 거리를 여행할 만한 지적 능력도 갖추지 못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는데 만약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정말로 이러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 가운데 이 지역까지 진출한 개체들의 후손이라고 한다면 위에 서술한 학자들의 인류에 대한 가설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는 충격적인 결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기원은 물론이고 어떻게 이들이 멸종하고 말았는지도 또한 관심거리입니다. 이들은 약 17000년을 전후로 해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이는데 네안데르탈인들 보다도 더 질긴 생존 능력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왜 갑자기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여기에도 대략 2 가지 가설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우선 17000년 전쯤에 대규모 화산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호모플로레시엔시스의 생활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게 되었고 (예를 들어 화산재가 하늘을 덮어서 일조량이 부족하게 되어 기후가 변한다든가 하는 현상으로 인해) 이 때문에 이들이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고 또 다른 의견으로는 우리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들이 플로레스섬에 상륙하게 되어 이들을 직접 죽였거나 아니면 한정된 섬의 자원을 놓고 우리 현생인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어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호모플로레시엔시스. 정말 이들은 누구의 후손들이었을까요? 그리고 우리 호모사피엔스들이 이들을 멸종에 이르게 했을까요? 지금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실한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께름칙한 사실은 우리 호모사피엔스들이 가는 길목에는 항상 원시 인류들이 사라지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이 그랬고 호모에렉투스들이 그랬으며 호모플로레시엔시스들이 그랬습니다. 정말 호모사피엔스들은 자신들과 다른 모습의 인류의 존재를 참을 수 없어했던 난폭한 폭군들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가 다른 인류 종의 멸종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 걸까요? 우리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플로레스섬의 위치. 오른쪽은 서티모르. 왼쪽은 숨바섬
호모플로레시엔시스와 호모사피엔스의 두개골 크기 비교
유골을 바탕으로 복원해 본 호모플로레시엔시스의 모습. 가능하면 안 만나고 싶고 꼭 만나야만 한다면 벌건 대낮에 만나고 싶고 한밤중에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모습...
우리와 호모플로레시엔시스와의 신장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