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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1/05 17:34:11
Name 잠잘까
Subject [일반] [영화] 사울의 아들

안녕하세요. 잠잘까입니다.


보통 4~5년 지난 영화들만 보는 저는 이번 연말 평론가들이 '최고의 영화'라며 뽑는 영화를 보며 좀 놀랐는데요, 거의 대부분이 비슷하더라고요. 그만큼 작년에는 좋은 영화가 많았나봐요. 그래서 저도 거기에 합류(?)하고자 지난 2주동안 빠르게 한 6~7편 정도를 봤는데요, PGR에 검색해보니 '사울의 아들'이 따로 없더군요. 그래서 좋은 리뷰는 다른데서 보시고(...) 기억나는 딱 한 장면을 소개할까 합니다.


http://movie.phinf.naver.net/20160203_108/1454463439470hHT2s_JPEG/movie_image.jpg


당연하겠지만, 이 영화는 오락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재미나게 보진 못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고를때 가볍게 소비되기 쉬운 오락성을 중시합니다. 양들의 침묵의 잔혹성, 곡성의 긴박감, 혹은 스포트라이트의 담백함 같은 부분이요. 그리고 저의 영화 선택 1순위는 언제나 도시와 지구를 박살내는 쿵쾅쿵쾅입니다. 그런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 왜 이런 영화의 리뷰를 왜 쓰느냐? 라면, 영화 '사울의 아들'이 아우슈비크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꽤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보자마자 꽤 짜증냈습니다.

요즘과는 너무 동떨어진 4:3(?) 비율의 화면. 심지어 자연스러운게 아닌 인위적인 티가 너무 납니다.(감독이 의도함) 불편도 이리 불편할 수 없어요. 아웃포커싱?으로 처리한 화면은 정말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주인공의 등을 화면 70%정도로 잡아서 안그래도 좁은 화면이 더 비좁아졌어요. 거기에 그 뒤는 뿌옇게 날려놨네요? 그래도 전 초반부를 장면을 보고선 '사울(주인공)이 아들 찾는 영화'가 아니라 '사울이 바라본 참상'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구나 했더니, 주인공 뿐 아니라 조연들도 얼굴이 제대로 잡히지도 않고 옆모습으로 찍혀요. 으아아아. 유대인들이 끌려가는 모습은 사울을 중심으로만 찍다보니까 너무나도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가스실 등장.



주인공 사울은 존 더 코만도라는 시체 청소부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으면 그 시체를 처리하는 역할이지요. 초반에 많은 유대인들이 옷을 발개 벗고 샤워하라는 미명하에 가스실에 넣어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죽음의 절규와 함께 찰나의 시간이 흐르면, 사울은 그들의 피를 닦습니다. 카메라는 사울만을 따라 이동하고, 독일군의 명령에 따라 무표정으로 바닥을 신속, 정확하게 닦습니다. 주위엔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고요. 

감독이 의도한지는 모르겠어요. 발개벗은 시체가 널부러져 있으니 거기에 눈이 가더군요. 너무 당연할 수 밖에 없는게 참혹하니까요. 그리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 장면을 보고 끔찍함과 숙연함을 느껴야겠죠. 근데 상황이 좀 그랬던 건...너무 당연하게도 렌즈는 주인공인 사울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배경은, 정확히는 시체가 쌓여진 가스실은 아웃포커싱으로 날려버리더군요. 한마디로 '이거 굳이 볼 필요 있어?' 뭐 이런 거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뿌연화면 속에서 그 잔혹스런 시신을 '먼저' 찾는 저를 보면서 아... 뭐랄까.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제가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얼마나 감동적일까'라는 궁금증과 동시에 '얼마나 끔찍할까'였습니다. (예고편도 안봤거든요) 부끄럽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류(세계 2차대전, 수용소)의 영화를 통해 잔혹성을 즐기는 제 자신을 종종 발견합니다. 다양한 장르에서 말이죠. '얼마나 끔찍할까'도 아닌 것 같아요. 얼마나 '참신하게' 끔찍한가... 이런 것을 찾는 것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 저에게 각각의 작품에서 기억나는 한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쉰들러리스트'는 독일군 장교의 절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시체가 쌓여있는 걸 그림자로 표현한 장면,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수용소를 발견한 직후 처음 화면에 등장한 앙상한 유태인입니다. 모두가 끔찍, 잔혹, 비극적인 모습들이죠.

그 뿌연 화면속에 있는, 잘 보이지도 않는 유태인 시신들을 보면서 감독은 저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았어요. 

'넌 그동안 아우슈비츠를 어떻게 소비했느냐'라고. 










쓰라면 더 쓰겠지만, 이미 좋은 리뷰들이 워낙 많은터라 영화를 보고 참고해 보시면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동진씨와 정성일씨 리뷰가 마음에 와닿더군요. 


http://blog.naver.com/jeongjs114/220643524637

https://www.facebook.com/notes/%EC%98%81%ED%99%94%EC%82%AC-%EB%B9%84%ED%8A%B8%EC%9C%88-%EC%97%90%ED%94%84%EC%95%A4%EC%95%84%EC%9D%B4/%EC%82%AC%EC%9A%B8%EC%9D%98-%EC%95%84%EB%93%A4-%EC%A0%95%EC%84%B1%EC%9D%BC-%EC%94%A8%EB%84%A4%ED%86%A0%ED%81%AC/1675919676003841 <정성일 씨네토크>


이 영화 리뷰를 참 많이 봤어요. 이동진, 정성일씨, 수많은 블로거들. 삭제한 문장 중 '저 같은 놈들 보라고 만든 영화'라고 쓴게 있는데,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서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영화 첫 장면, 결말. 그리고 중간에 사울과 아들의 만남, 혼란스러운 동선, 주인공의 이상한 행위 등등. 이런 부분에서 (뭔지 모르지만) 감독이 일부로 만들어낸 묘한 느낌을 받는데, 저 두 평론가가 잘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어요. 

이렇게 곱씹고 즐길 수 있으면서도 역시 저에겐 어려운 영화입니다. 흐흐. 아마 이 영화는 시간 지나면 기억 못할 것 같아요.
다만, 뿌옇게 흐려진 시신을 바라본 제 감정은 꽤 오래갈 것 같네요. 부끄러운? 쪽팔린? 뭐라 형용하기 힘든...뭐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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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5 17:56
수정 아이콘
작년 마지막날 가슴아픈 가족영화인줄 알고 보았습니다.
보는 내내 저도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했습니다.
마스터충달
17/01/05 18:00
수정 아이콘
제가 꼽은 올해의 영화에서 짧게나마 다뤘습니다. 정말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사울의 아들>에 관한 코멘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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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아웃포커싱*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사울의 아들>은 내가 망상처럼 되뇌던 생각을 스크린에 그려 놓았다. 아우슈비츠 학살이 초점 잃은 뿌연 화면에 담겼다. 보이지 않지만, 그 끔찍함을 짐작할 수 있다. 짐작토록 유도한다. 나는 그 세련됨에 감탄했다. 라즐로 네메스 감독은 이미 숱하게 다뤄온 역사의 비극을 전혀 새롭게 부활시켰다.

<사울의 아들>을 보며 <귀향>을 떠올렸다. 이번에야말로 수준 차이다. 어째서 <귀향>은 그리도 촌스러웠단 말인가! 우리도 숱하게 다뤄야 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훌륭한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 언젠가 우리의 역사도 <사울의 아들>처럼 위대한 예술로 승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웃포커싱 : 사진을 촬영할 때 심도를 얕게 하여 초점을 맞춘 피사체를 제외한 배경을 흐리게 뭉개는 기법. 아웃포커싱이란 말은 콩글리시로, 영어권에서는 shallow depth of field(얕은 피사계 심도), out of focus(초점 이탈)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잠잘까
17/01/05 18:06
수정 아이콘
아 지금 보니 언급하신게 있었군요. 그 글을 봤다면 이런 망글은 안썼을텐데 말이죠. 흐흐.

아웃포커싱이 콩...글리쉬였군요. ㅠㅠ
마스터충달
17/01/05 18:10
수정 아이콘
콩글리시긴 한데 다들 흔하게 쓰는 말이니 그냥 우리말이라 치고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니면 좋은 대체어를 만들어도 좋고요.
마스터충달
17/01/05 18:11
수정 아이콘
그리고 망글 아님요 흐흐
해가지는아침
17/01/05 18:01
수정 아이콘
저도 친구의 꼭 보라는 추천에 아무 정보없이 보러 갔습니다. 포스터의 두건 쓴 등장인물의 눈빛을 보고 뭔가 사연이 있구나 하고 봤습니다.
쉰들러리스트,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홀로코스터와 관련된 영화는 봐왔지만 영화를 본 후론 잠잘까님과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울의 뒷편으로 뿌옇지만 뚜렷히 보이던 그 많은 모습들..을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동원사랑
17/01/05 18:34
수정 아이콘
메시아가 도래하면 유대인 1인당 2만8천명의 비유대인 노예를 갖게 된다.

이런 것은 유대인들의 잡다한 하나님나라 해석의 여럿중 하나에 불과하나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은 자신들이 이방인을 다스리는 시점이 언제 도래하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신학적 용어로는 제사장나라라고 합니다.

세계인구 60억잡고 1인당 2.8만이면
214,286명의 유대인만 존재해야죠.

홀로코스트는 아우슈비츠이전에도 수없이 있었고 지금도 벌어집니다. 자본이 있는 누구는 관심받고 자본이 없는 누구는 못받을 뿐.
자본으로서의 홀로코스트 영화는 홀로코스트 자체보다 우리 삶에 대한 지배력이 더 큽니다.
킹이바
17/01/05 19:49
수정 아이콘
사울의 아들 좋은 영화죠. 당시 사울의 아들을 보고 남긴 후기로 댓글을 대신합니다. (블로그에 남긴 걸 그대로 퍼와서 어색한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
이동진 평론가도 언급했듯 듯, <사울의 아들>의 가장 큰 특징인 4:3 화면비와 극단적인 촬영 방식은 분명 기존의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들이 홀로코스트와 그 희생자들을 다루면서 간과했던 존중과 위령에 대한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배경과 전경을 생략한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사울의 아들>도 결국 그 사건에 대한 영화라기보단 더 이상 희망따윈 없는 지옥에서 한 순간이나마 찾아낸(혹은 만들어낸) 인간의 존엄성과 그로 인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한 인간의 발악에 더 관심이 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라즐로 네메스에겐 그를 위한 지옥이 필요했고, 그 지옥으로 택한 것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였을지도 모르죠.(유럽인으로서 그에 대해 너무나 많은 자료를 구할 수도 있고, 심지어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그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최적의 장소였을겁니다.) 따라서 사울을 둘러싼 그 곳이 지옥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 지옥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4. 결국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드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 그 소년은 정말 사울의 아들인가. 둘째. 마지막 씬에 등장했던 그 소년은 누구란 말인가. 첫번째 질문에 대핸 제 생각부터 말하자면 '아들이 아니다.' 입니다. 사울이 아들이 아닐지 모른다는 방증은 영화에서 사울과 동료의 대사를 통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럼 사울은 왜 친 아들도 아닌 소년을 위해 목숨을 걸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 소년이 이미 진작에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살아있으나 죽은 존재였던 사울에게 잠시나마 작은 기적(이동진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채 지옥에 내던져졌던 사울은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죽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낸 생명을 목격합니다.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만, 꺾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을 눈 앞에서 체험한 셈이죠. 이는 곧 사울의 실존이유가 되버립니다. 그 소년이 존재한(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의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요. 인간다움이 제거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토막으로 대우받는 이 지옥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인간다운 죽음을 맞게 하고 싶다는 욕구가 사울에겐 생겼을테죠. 그게 새로운 삶의 이유일테고.

5. 이동진 평론가가 설명한 것처럼 '아들'이라고 다른 이에게 설명한 것도 결국 자신이 끝까지 자연스럽게 책임지기 위해 붙인 장치라 생각합니다. 역시 이 경우에도 실제 아들이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이는 랍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목숨걸고 빼낸 랍비가 사실은 랍비가 아니라는 것을 사울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 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론 이미 빼와서 자신의 거주지로 데리고 왔을 때, 눈치채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의 재촉과 주변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아무런 입도 떼지 않을 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았던 것은 결국 중요한 건 진짜 랍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들(소년)의 장을 제대로 치러줄 수 없느냐니까요. 마지막 신에서 탈출한 뒤에 제대로 주문도 외지 못하는 랍비를 보고 허탈해한다거나 화를 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6.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울은 실패합니다. 지옥에서 찾아낸 기적이 잠시나마 살아났지만, 결국은 꺼졌던 것처럼 사울은 아들의 장을 치러주려고 노력했지만 다 수포로 돌아가고 심지어 시신도 잃어버립니다. 사울은 살아났지만(탈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소년을 책임지지 못한 죄의식까지 추가된 셈이죠. 그런 사울의 눈에 소년이 발견됩니다. 사실 소년은 (아마도) 독일군이 탈출한 존더코만도들을 제압하기 위해 보낸 정찰병이겠죠. 소년이 오두막에서 나와서 돌아갈 때 독일군이 소년을 잡는 장면이 정확히 표현된 것으로 보아 실체없는 혼이라거나 사울의 환상 따윈 아닙니다. 소년의 정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울에겐 또 하나의 구원이 내려온 셈입니다. 그 정체가 무엇이든간에 사울의 눈에는 자신이 지켜내려 했던 소년(그 상이 다를지라도 이미 제 정신이 아닐 사울에게 그게 눈에 들어오진 않겠죠)이 또 다시 기적처럼 살아나있습니다. 자신이 지키려했던 인간의 실존이 또 형상화된 셈이죠. 동시에 실패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안식을 찾습니다. 사울은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습니다.

7. 뭐 주저리주저리 떠들다보니가 좀 길어졌네요. 사실 이동진 평론가는 내용과 형식의 일치,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바와 완벽히 부합하는 형식을 강조하며 칭찬했는데 이에 대해선 공감했지만 그것에 대한 평가까지 같다고는 못하겠네요. 개인적으론 별 네 개에서 ±반 개정도 왔다갔다 하지 않나 싶습니다. 스토리상으론 처음부터 비슷한 내용으로 달리는 지라 부족한 점이 조금 보입니다. 설명도 불충분한 영화라 받아들이기 어려울 관객도 있을테고요. 개인적으론 아마추어 연기자를 쓴만큼 '날 것' 그대로의 연기가 살아있긴 했습니다만 동시에 연기적인 부분에서 물음표를 자아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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