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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02 07:25:30
Name OrBef
Subject [일반] 덱스터 워너비를 만났습니다.
교통 법규 위반으로 벌점을 받았는데, 미국은 벌점 관해서 '내가 앞으로 90일 동안 운전 잘 할 테니까 벌점 취소해주세요. 대신 90일 내로 또 걸리면 몇 배로 혼날게요' 라는 식으로 수습 기간을 신청해서 벌점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유료입니다. 역시 돈의 왕국). 이걸 신청하러 텍사스 시골의 어떤 지방 법원에 갔지요. 지방 법원이라고 해봤자 진짜 중범죄를 (felony) 재판하는 곳이 아니라 경범죄만 (misdemeanor) 재판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 같은 신청인이 한두 명이 아니다 보니 법원에서 방 하나를 아예 저 같은 사람들 전용으로 마련해두었더군요. 방청석을 대기석으로 쓰라는 식으로 마련해두고 저를 비롯해 수십 명의 신청인들이 방청석에 앉아있으면 앞의 판사 (사람 참 좋아 보이는 나이 많은 영감님) 님이 한 명씩 부르고, 나가서 1 분 정도 '벌점 받기 vs 고자 되기' 를 결정하고 돌아가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뭐 대부분 과속, 신호 위반 등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아, 어여쁜 처자 두 명은 술 마시고 고성방가하다가 걸려서 온 것 같더군요. 왠지 사람 사는 것 같아서 훈훈했습니다) 사람이 워낙 많았던지라 반쯤 졸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가 앞으로 나가면서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척 보기에도 아주머니는 이미 굽신모드인 것에 반해 아들은 꽤나 불량한 포즈로 나가더군요. 그리고 판사와 대화를 하는데, 판사는 마이크가 앞에 있으니 잘 들렸지만 피고 쪽은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 추측을 곁들여서 정리해보면

영감님 - 음 그래 친구를 때렸구만. 이런 경우에는 자원봉사를 일정 시간 하면 됩니다
아주머니 - 굽신굽신 네네
영감님 - 그래서 젊은이 자네는 자원봉사를 어떤 걸 할 텐가?
아들 - 나 그런 거 안 할 건데?
영감님 - ??? 뭐라고 (여기까지는 부드러움)??
아들 - 난 자원봉사 같은 거 안 한다고.
아주머니 - 아니 얘가 그런 게 아니고요
영감님 - 아주머니는 가만히 계세요. 이봐 젊은이, 자원봉사 안 하면 소년원 (헉 이 친구 미성년자더군요) 가야 하는 거 알잖아?
아들 - 응 소년원 갈 거야
영감님 - (여기서부터 조금씩 흥분하심) 후회할 텐데?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징징이 십대 어린이구만...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들 - 난 후회 같은 거 안해. 난 감정이 없거든
영감님 - ??? 감정이 없다는 게 뭔 뜻이니?
아들 - 난 동정심도 없고 공포도 몰라
영감님 - (이때부터 급흥분) 동정심도 없고 공포도 못 느낀다고?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어달라는 거니?
아주머니 - 아니 그게 아니라
영감님 - 아드님한테 얘기하는 중입니다. 그런 게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넌 자원봉사 안 하면 감옥 간다고!

이 시점에 판사님한테 다음 신청인들 관련한 서류 뭉치 주려고 들어오셨던 경찰관 (이 분도 준 영감님. 시골이라구요 크크크) 한 분이 분위기 싸하다고 생각했는지 안 나가고 옆에서 지켜보심. 뭐 판사님이 슬쩍 불렀을 수도 있고요.

아들 - 글쎄 감옥 가겠다고!
영감님 - 이봐... 너 미성년이라고 막 지르는데, 난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거든. 난 니가 17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주 제대로 감옥에 보낼 수도 있어 (뭔가 법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 같지만 시골 법원은 대충 이렇게 말해도 되나 봅니다. 글로 쓰니까 느낌이 잘 안 사는데, 영감님은 어디까지나 어린 친구 하나 교화시켜 보려고 열심히 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들 - [여긴 전혀 안 들림]
영감님 - 그리고 자원봉사라는 게 꼭 감옥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냐. 거기 가서 불쌍한 사람들 돕다 보면 너도 뭔가 느끼는 게 있을 수도 있잖아.
아들 - [안 들림]
아주머니 - 굽신굽신
영감님 - 이봐 젊은이.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하루 시간을 줄게.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자원봉사 옵션들을 최대한 찾아봐. 그러고 나서 니가 정말로 그런 거 대신 소년원에 가고 싶은지 아주 아주 진지하게,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 그리고 내일 다시 와. 어때?
아주머니 - 아이쿠 감사합니다
영감님 - 아 글쎄 아주머니는 가만 계세요. 젊은이, 대답은?
아들 - (막 걸어나감)
영감님 - 이봐! 대답을 하라고!
아들 - (아주 작게 뭐라고 웅얼웅얼)
영감님 - 안 들려!
아들 - 알았다고.
영감님 - 그래 그럼 내일 보자.

그리고 가족이 퇴장하더군요. 아들을 보니까 딱하니 떡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근성이 강해 보이지도 않고 비실비실한, 그야말로 흔한 십 대 남자아이던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지 좀 딱하기도 하고, 저런 친구들은 정말로 조금만 더 잘못되면 사람 죽일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심경 복잡하더군요.

그리고 전 나가서 '90일 내로 잡히면 고자되기'를 약속하고 벌점을 취소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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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위키
13/11/02 07:42
수정 아이콘
가정에 불만이 있거나 중2병 증상을 가진게 아니었을까요? 흐..
13/11/02 07:44
수정 아이콘
예 뭐 저도 그 정도로 생각하긴 하는데, 미쿡이 워낙에 증오범죄가 흔한 곳이다보니 중2병 환자들을 한국에서처럼 가볍게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요... 지난 한 달동안 벌어진 학교 캠퍼스 총기사고만도 세 번은 되는 듯...
엔하위키
13/11/02 07:54
수정 아이콘
총기 생각을 전혀 못했네요; 사소한 증상이나 문제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하겠네요...
XellOsisM
13/11/02 08:36
수정 아이콘
저도 오랫동안 나와 살다보니 아무리 학생처럼 보이더라도 방심을 할수 없더라구요.
학생처럼 보이는 애들 말싸움이 총싸움으로 변하는 과정을 2번 목격하다보니 나름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할까요.
그중 한번은 주말 대낮에 몰에서 일어나서.. 총 꺼내고 쏘는 순간 상점안으로 무작정 뛰어들어갔는데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영화에서는 같은 상황이면 비명소리가 난무했을텐데 실제론 사람 북적북적한 몰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이고 총소리만 들리는 상황은 진짜..
나중에 뉴스를 보니 둘다 10대에 그냥 말싸움이 그렇게 번진건데 한명은 죽었더라구요.
사람 사는데가 비슷비슷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가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져서 참 무서워요.
히히멘붕이삼
13/11/02 08:41
수정 아이콘
으악 글만 읽어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저같으면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을 것 같아요
레지엔
13/11/02 08:43
수정 아이콘
저 아는 사람도 미국가서 애인하고 싸우다가 총맞은 적이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폭력에 접근가능하다는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다시 생각하게 됐네요.
카레맛동산
13/11/02 08:43
수정 아이콘
뜨헉. 그런 일을 정말로 겪으셨다니..무섭네요..다 사람사는 곳인데.. 사소한 다툼이 인명살상으로 연결될수 있다니..
13/11/02 09:06
수정 아이콘
그러게 말입니다. 총기 단속을 하긴 해야하는데, 미국인들이 총기 = 자유 라고 인식을 하는 이 현실이 바뀌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영원한초보
13/11/02 10:06
수정 아이콘
상상만 해도 무섭네요.
레지엔
13/11/02 08:42
수정 아이콘
저 동네는 진짜 저러고 하는 사람들로 인명사전을 만들어도 텍스트북 두께가 나올 수 있는 곳이라(..) 근데 여기서 중요한건 OrBef님이 범법자라는거 아닙니까?!
13/11/02 09:05
수정 아이콘
다음 아이디 변경 기간에 범법자OrBef 로 바꿀까요? 흐흐
jjohny=쿠마
13/11/02 20:35
수정 아이콘
OrBumBuf
덱스터모건
13/11/02 09:15
수정 아이콘
정신나간 놈이네요.. . 만나서 아주 그냥 혼구녕을. . .
13/11/02 09:20
수정 아이콘
님이 타이르면 잘 알아들을 지도... 으흐흐
Neandertal
13/11/02 09:19
수정 아이콘
미국 개봉 시 설국열차 교실신은 얄짤없이 잘리겠네요...
13/11/02 09:21
수정 아이콘
짤리고 PG13 안짤리고 R 중에서 선택해야죠... 저도 궁금합니다.
노틸러스
13/11/02 09:25
수정 아이콘
Orbef 님 아이디 보고 (덱스터가 바로 생각 안날정도로 잘 모름) "덱스터 워너비"를 만나셨다길래
저의 무지를 탓하면서 덱스터 워너비는 얼마나 대단한 물리학자같은 사람이길래 만났다고 자랑하시나~ 한번 볼까? 이러면서 들어왔네요 크크크크크
그나저나 지금 LA에서 총기사고 난 거 같은데 이래저래 미국은 골때리네요 ;;
13/11/02 09:28
수정 아이콘
저 사는 텍사스에서만도 지난 한달 동안 두 번입니다요. 한 번은 왕따당하던 애가 복수.... 이런 건 그나마 좀 덜 흉악하다고 해야하나..?? 하여튼 깝깝한 나라에요.
노틸러스
13/11/02 09:29
수정 아이콘
참.....총기문제는 너무 어렵네요. 저는 제가 우리나라 살고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선에서 그쳐야 할 거 같습니다.
몸조심하세요 ㅠㅠ
13/11/02 09:36
수정 아이콘
뭐 인구가 3억이니 일단 뉴스에 나오는 걸 1/6 정도로, 즉 한국 스케일에 맞춰서 인식하려고 노력중입니다. 6번 총 쏘면 '아 이제 한 번 쐈군' 이런 식으로요 흐
13/11/02 10:09
수정 아이콘
말그대로 사이코성향이 있거나 아니면 10대의 영웅, 반항심리, 이런거 같네요.
오베프님의 늘 깊이있는 글만 봐왔는데 이런 에피소드 상당히 재미있게 잘 쓰십니다?
막 장면이 연상되면서 한줄한줄 푹 빠져서 읽었네요.
13/11/03 07:54
수정 아이콘
헐 감사합니다. 전 사실 피지알에서만 진지한 얘기 하지 페북이나 오프라인에서는 그냥 실없는 동네 아저씨랍니다 :)
photonics
13/11/02 10:24
수정 아이콘
미국애들이나 한국애들이나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감옥이 어떤곳인지 잘 모르는듯하네요 흐흐.. 당장 경찰에 체포되어서 구금될때 빨가벗고 bend over자세로 깊숙한곳까지 수색을 당해보면 생각이 바뀔아이같네요 흐흐
13/11/03 07:53
수정 아이콘
그런 철부지들도 많긴 하죠. 근데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한국처럼 또래끼리 놀면서 웬만하면 좋게 좋게 크는 문화가 없다 보니 (한국도 예전에 비하면 그런 문화가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미국에 비하면 멀었습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정말 이상한 놈으로 크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저 날 본 놈은 그런 뽀스가 좀 느껴지더라구요
13/11/02 18:09
수정 아이콘
PGR 운영자분이 국제 범법자라니...
애패는 엄마
13/11/02 20:01
수정 아이콘
운영진! 운영진!
jjohny=쿠마
13/11/02 20:36
수정 아이콘
전 운영자... 미래를 내다보시고 미리(?) 사임하셨습니다. 어헣
13/11/03 07:52
수정 아이콘
원래 국제 범법자 정도는 될 만큼 더러워야 피지알 운영자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겨우 반 년 운영진에 있었던 제가 이정도니 10년째 운영하시는 항즐이님은 어느정도겠습니까?
13/11/03 02:37
수정 아이콘
피지알에 벌점받기 vs 고자되기 를 도입하면...
아마 다 고자 신세를 면할 수 없겠죠
13/11/03 07:51
수정 아이콘
남자라면 설령 무엇이 비교대상이더라도 고자되기를 선택해야죠!
현실의 현실
13/11/03 23:31
수정 아이콘
결론은 orbef 님은 예비고자이신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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