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들어와서 묘하게 불러주는 사람 하나 없어, 퇴근하고 방에 박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연휴도 끼어 있던 덕에 9월 한 달 동안 여러 편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어요. 2011~2013년 정도를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평이 괜찮은 작품 중심으로 봤는데, 확실히 평판이 좋은 작품 + 소재를 보니 취향에 어느 정도 맞을 거 같다 싶은 작품으로 골라 보니 지뢰를 밟을 확률이 꽤 줄더라고요.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시청하는 중에 오늘 새벽을 기점으로 진격의 거인도 마지막 화까지 시청하게 되었죠. (물론 2기가 나와야 떡밥이 제대로 회수 가능한 형태로 끝났긴 했지만) 초전자포 S도 이번 주에 끝났고 해서 본 작품도 꽤 쌓였기에, 올해 8~9월에 본 작품을 PGR에도 소개할까 해서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개별 작품 소개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 취향 이야기를 잠깐 하고 지나갈게요. 전 진흙탕을 좋아해요. 주인공이 진창을 뒹굴뒹굴 구르며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걸 보는 게 즐거워요. (새..새디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건 그렇게 뒹굴고 있는 질척질척한 진흙탕 속에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물방울을 머금으며 피어나는 모습이지요.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 그런 걸 노래하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보통 일상물이라 불리는 쪽에는 발을 잘 안 디디는 편이지요.
그리고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릿지, ef 시리즈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샤프트의 연출, 작화를 사랑하는 쪽이고. 참신한 전개라면 대개 환영하는 편이에요. 기존 전대물에 대한 패러디로서 미츠도모에 증량중 1화나 비공인전대 아키바레인저 같은 것을 즐겁게 보는 편이죠. 하지만 진부한 전개가 나타나면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우사미 눈이 되어서 바라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마 취향, 쪽으로 가면 저는 소수자에 가까울 거예요. 애니메이션이건 영화건, 드라마건 취향이 너무 확고해서 친구가 저에게 '너랑 뭐 같이 공유하는 사람 찾기 참 힘들겠다'는 투의 말을 한 적도 있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좋아하는 걸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런고로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애니메이션의 추천 우선순위 및 평은 저만의 애정과 취향이 묻어 있는 거라는 걸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랑 취향이 정반대인 분이라면 추천순위 같은 걸 거꾸로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머리말이 길었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각 작품별 소개에 들어가 볼게요.
일단 동영상 하나 투척하고...
각 작품별 소개 제목에 대한 구성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추천순위(1~17). 애니메이션 제목. (방영연도, BD&DVD 판매량)
17.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2010, 5,665권, 2010년 판매량 25위)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후회라는 것을 합니다. 거기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그날 친구와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녀와 약속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면. 내가 하고 있는 장난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런 고민과 고통 끝에 우리는 '선택을 다시 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지요.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런 '새로운 선택'의 결과의 나열입니다. 대학에 막 입학한 '나'는 어떤 서클을 선택하게 되고, 그에 따라 2년의 생활이 정해집니다. 각 화가 끝날 때마다 '나'는 그때 그 서클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후회하며 다음 화에 들어가 새로운 서클을 선택하게 되지요. 그런 선택의 반복 끝에 '나'는 마침내 어떤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11화 완결인 이 작품은 자신의 루프를 돌아보게 되는 10화부터 본편이라고 할 정도로 10화~11화의 아우라가 대단한 작품입니다. 다만, 1~9화는 병렬식 구성으로 되어 있어,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기에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그 지루함을 진하게 느낀 편이라 추천순위로서는 그다지 높은 순위를 주지 못했네요.
16. 취성의 가르간티아 (2013, 9,307권, 2013년 판매량 12위)
이 애니메이션은 기획 단계부터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연령층, 즉 앞으로 사회에 진출, 혹은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메시지를 포함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러한 의식 하에 구성한 스토리는 과거의 제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입니다. 취업빙하기 등으로 불리는 살기 힘든 세상, 힘든 싸움을 강요당하는 그들의 가슴에 이 작품이 응원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우로부치 겐
저 인터뷰가 나간 뒤 '어디서 약을 팔아'라는 반응도 많았지만, 작품이 종영된 이후 저 말이 진짜였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취성의 가르간티아는 어두운 분위기가 팍팍 풍기는 여타 우로부치 작품과는 다르게 군대 전역자의 사회 적응기 정도로 볼 수 있는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입니다. 우주에서 싸우는 것밖에 모르던 소년병 레도가 문명 대부분을 잃은 지구에 도착해서 평온한 일상에 익숙해져가는 것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젊은이'에 대한 응원으로서는 멋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우로부치 겐 최고의 장점은 어떤 캐릭터를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죽여야 가장 시청자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까를 잘 알고 있다는 점으로 꼽는 저로서는 죽음이 밋밋한 가르간티아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15. 타이거 앤 버니 (2011, 30,347권, 2011년 판매량 7위)
나의 얼음은 조금 Cold, 당신의 악행은 완전 Hold♩ / 블루로즈
와일드하게 짖어 보자고. / 타이거
서양에 마블 히어로즈가 있다면 일본에는 타이거 앤 버니가 있다! 타이거 앤 버니는 스파이더맨, 슈퍼맨, 배트맨 같은 히어로들이 서양의 전유물이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와일드 타이거, 블루로즈, 버나비, 스카이 하이, 파이어 엠블렘 등 다양한 히어로들은 각자만의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체능력이 100배로 늘어난다거나, 얼음을 다룬다거나, 바람을 다룬다거나, 불을 다룬다거나 등등. 그런 특수능력을 이용해서 범죄자를 체포하는 히어로들의 이야기가 타이거 앤 버니입니다.
소재 자체는 굉장히 참신하다는 평이 많은 작품이지만, 스토리는 상당히 진부한 작품입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과 이야기의 나열이라고 할까요. 퇴물에 가까운 아저씨 히어로와 새로이 히어로가 된 건방진 청년이 파트너가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는 질문이 있을 때 이런 류의 작품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상상 가능한 답변 범위 내에서 이야기가 딱 진행됩니다.
여담이지만, 덜떨어진 수염달린 중년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이거 팔릴까? 라는 걱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상업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요. 그것도 원래 예상했었던 30대 남성 계층이 아닌 여성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다는 게 아이러니.
14. 학생회 임원들 (2010, 6,318권, 2010년 판매량 21위)
츠다: 텐트를 치면 되는 거군요.
시노: (테..텐트를 친다?)
아리아: 자신만만이네.
츠다: 네, 익숙하니까요.
시노: (이...익숙하다고?)
츠다: 가족과 자주 캠프를 가서 그 때마다 항상 텐트를 치니까요.
시노: (가...가족의 앞에서 언제나?)
시노: 츠다 군은 그렇게 언제나 텐트를 치고 있는 건가!?
츠다: 아니.. 그러니까 가족과 캠프를 할 때...
아리아: 어쩔 수 없어. 남자 아이니까.
츠다: 마지막까지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최근 케이블에서 하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지요. 성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방송 금지 수위를 넘지 않을 정도로 잘 조절하며 신동엽을 위시한 출연자의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인데요. 이 마녀사냥을 4컷 만화로 바꾸어 애니메이션화한다면 학생회 임원들이 되지 않을까 싶은 작품입니다. 게다가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하는 것은 여고생들!
기본적으로 개그 애니메이션입니다만, 수위가 높은 농담으로 웃음을 유도하기 때문에, 때로는 웃기기보다는 그냥 수위가 높구나 싶은 대사도 많이 있다는 게 흠인 작품입니다. 뭐, 킬링타임 용으로는 이만한 작품도 없겠지만요. 성적인 농담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죠.
아이돌 마스터와 투 톱을 달리고 있다고 하는 학교 아이돌을 다룬 작품 러브라이브입니다. 다음 해부터 신입생이 적으면 폐교를 하기로 결정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스쿨 아이돌로서 활동을 하게 되는 9명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은 1쿨로 끝났기에, 각 캐릭터를 소개한다 정도의 느낌입니다. 덕분에 캐릭터들의 매력이나 특징은 잘 어필하고 있고, 그들이 모여 일상잡담을 하는 풍경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후반부의 갈등-해결 구조가 답답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쉬운 점입니다. 2기 혹은 관련 음반이나 드라마 등을 기대할 만큼 캐릭터의 매력은 잘 드러냈지만, 애니메이션 단일 개체로 보기에는 2% 부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2. 엘펜리트 (2004, 1,794권)
보다보니 트라우마가 생겨 버렸습니다. / 엘펜리트를 본 한 일본인
시체가 붕붕 날아다니는 고어 애니메이션입니다. 덕분에 추천을 받은 사람은 '낚였다!!!!'고 절규하고, 추천을 한 사람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추천해줬는데...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인간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는 신인류 디클로니우스가 나타난 세계에서, 디클로니우스인 루시와 인간인 코우타,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복선 회수도 깔끔한 편이고, 나름대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역시 팔 다리가 잘려서 붕붕 날아다니는 건 조금 보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11. 무한의 리바이어스 (1999, 11,062권)
살고 싶어. 살아남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웃고 싶어. 슬퍼하고 싶지 않아. / 네야
애니메이션 판 파리대왕이라고 불리는 작품이지요. 혹은 그냥 '우울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우주선 리바이어스 속에 갇혀 광활한 우주 속을 방랑하게 된 수백 명의 아이들. 그들을 통제할 정부도, 경찰도, 어른도 없는 이곳에서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나가게 될까?
다양한 인간 군상이 통제가 상실된 자연상태에 떨어졌을 때 보여주는 갈등과 아픔, 상처, 혼란 등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인물의 갈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초반부의 몰입감은 어느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들지요. 다만 '적'과의 전투가 개시되고, 유사한 갈등 관계가 반복되는 중후반부의 전개는 초반부의 몰입감과 비교해서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작품은 철저하게 개인의 내면이나 품고 있는 아픔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중후반부에 들어서도 각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 힘들다는 점이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파이나를 주인공으로 한 편 따로 만들어 달라는!)
10. 진격의 거인 (2013, 65,777권, 2013년 판매량 1위)
트로스트 구 출신 쟝 키르슈타인입니쟝! / 쟝
나는...!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알겠어! 그리고 그게 우리들이 선택한 일이야! / 쟝
2013년 가장 화제가 되었던, 아마 그리고 2013년이 저물어도 가장 화제로 남아 있을 진격의 거인입니다. 이건 너무 유명해서 소개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작품이기도 하지요.
소개보다는 조금 아쉬운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마 작화병단의 피로감으로 인해) 초중반부의 전개가 느릿느릿하다는 거나, 굳이 매 화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소개를 넣는다거나 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또 에렌-미카사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엿볼 수 없었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이건 2기가 나오면 해결되겠죠.
하지만 여성형 거인이 출현한 이후의 화는 '왜 이 작품이 올해 최고의 화제작인가'를 명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작화병단을 갈아서 만든) 액션신 하나만큼은 역대 어느 애니메이션과 붙여 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멋있었습니다. 특히 입체기동장치를 이용할 때의 그 속도감이란!
9. 토끼 드롭스 (2011, 4,055권)
그 웃는 얼굴이 그대로 내 기쁨이 되는 것 같은, 그런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 다이키치
시청하기 전: 기껏해야 가족 놀이 애니메이션이겠지.
시청한 후: 딸을... 딸을 키우고 싶어...
미혼이라면, 아니 기혼이라도 자식이 없다면 자식을 낳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과연 내가 누구를 책임질 수 있을까. 자식을 놓는다면 내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힘들기만 하고 보람 없는 일이 아닐까.
뭐 그런 고민들을 조금은 날려버릴 수 있는 작품이 토끼 드롭스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행복감, 따스함, 안온함, 포근함이 가슴속 깊은 곳에 전해지며, 얼음 같은 마음도 녹여버리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지요.
8. 엑셀월드 (2012, 8,749권, 2012년 판매량 17위)
저 말도 안 되는 스코어를 낸 게 그대인가. 더욱 앞으로, 가속하고 싶지는 않은가, 소년? / 흑설공주
소드 아트 온라인(SAO)과 같은 작가가 원작자인 작품 엑셀월드입니다. 역시나 가상현실 게임을 중심소재로 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가상현실 설정이 너무나 부러워요! 설정상 현실세계에서 1초가 게임세계 속에서는 1000초예요. 현실에서 1분이면 반나절 넘는 시간을 게임 세계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 안에서 마음껏 독서를 한다거나 연구를 한다거나 하면!!! (물론 뇌가 버틸 것 같지 않지만.)
이 세계의 게임은 기본적으로 격투 게임입니다. 우리가 지금 즐기는 철권이나 킹 오브 파이터 같은 걸 가상현실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서 플레이한다고 보면 되지요. 다만 1:1로 끝나는 게 아닌, 여럿 vs 여럿, 혹은 게임 내 국가 단위의 전투도 벌어지는 스케일이 방대한 게임입니다.
SAO와 비교를 좀 해보면, SAO의 키리토가 완성된 형태에 가까운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엑셀월드의 주인공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콩벌레 수준의 주인공입니다. 자존감이 지하로 꺼져서 중반부까지 그 답답함에 차마 다음 화를 보기가 힘든 지경에 이를 정도지요. 하지만 그런 만큼 그가 성장한 모습을 본다는 것이 더욱 큰 희열로 다가오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답답함을 보상해주는 후반부의 전개는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주지요. 앞으로의 기대감이 별로 없는 키리토와 비교했을 때, 계속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는 것이 엑셀월드 주인공 하루유키의 매력이지요.
그리고 같은 작가라 그런지, SAO와 마찬가지로 2쿨 보스는 품위가 너무 없어요...
7. 천체전사 선레드 (2008, 3,429권)
올해야말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기를. / 뱀프 장군
아! 틀림없이 방에서 뒹굴뒹굴 하느라 바쁘신 거죠! 레드 씨!! / 뱀프 장군
레드 씨 죄송해요... 너무 화내지 말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 뱀프 장군
우리들도 골든위크에는 쉬고 싶다고요~ / 뱀프 장군
올리브 오일은 비싼 편이 맛있는 경우가 많아요. / 뱀프 장군
PGR에서 추천을 받아서 보게 된 작품입니다. 장르는 동네 히어로물(...) 동네의 평화를 지키는 히어로 선레드와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지닌 괴인의 관리자 뱀프 장군의 피 튀기는 대결!!! 같은 느낌을 예상했다면 패배하신 겁니다. 물론 두 사람이 각자 저 명분을 걸고 싸우는 건 맞지만, 작품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들의 일상 생활 쪽입니다. 기둥서방으로 맨날 담배를 뻑뻑 피우며 파칭코에 출석하는 선레드와 괴인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친절한 뱀프 장군의 대조적 생활을 보다모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게 됩니다.
무엇보다 뱀프 장군이 괴인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지는, 묘한 치유물이기도 한 작품이지요.
6. 신세계에서 (2012, 587권)
울 것 같은 푸른 사과를 끌어안고 있는 가슴 속
넘어지고 상처 입어도 강한 척하며 답답한 하늘을 노려 봐 / 신세계에서 ED곡, 쪼개진 사과
울 것 같은 판매량!!! 최악의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는 신세계에서입니다. 무대는 인간이 '주력'이라는 초능력을 지니게 된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력을 지닌 인간 3,000명 정도가 모여사는 한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는 다섯 아이들이 겪게 되는 사건이 이 작품의 큰 줄기를 관통하고 있지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찝찝함입니다. 중반부부터 정말 '신세계'를 보여주는 쉴틈없는 전개는 그 찝찝함으로 인해 매력이 더해갑니다. 다음 화가 되어도 이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찝찝한 채로 시청을 하게 만드는 기묘한 애니메이션이지요. 심지어 마지막 화가 끝나고 일단 갈등이 해결되었음에도 그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찝찝함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소개를 하려고 해도 조금만 뭘 이야기하면 네타바레, 스포일러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작품인지라, 자세한 내용 이야기는 피하겠습니다.
5.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2012, 5,093권, 2012년 판매량 32위)
인간님, 인간님, 바나나 좋아해요?
맛이... 필요해요? ... 다음번에는 맛을 넣을 거예요~ / 요정
인류는 오늘도 절찬 쇠퇴 중! /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12화
보통 인류가 쇠퇴했다고 하면 핵전쟁이나 기아, 자연재해 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회색빛 세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인류는 동화 같은 세계 속에서 조용히 절멸을 기다리는 노을처럼 유유자적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동화풍의 세계가 이 작품의 첫 번째 매력이지요. 그 동화 속 세계에서 '나'가 이야기하는 독설이나 블랙유머가 두 번째 매력입니다. 세 번째 매력으로는 요정의 귀여운 목소리를 들 수 있겠네요. 듣기만 해도 녹아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그들이 '마약을 만들어 보았어요' 같은 걸 이야기하는 걸 보면 자신도 모르게 먹고 있던 걸 뿜어버리게 되지요.
4. GOSICK (2011, 2,521권)
혼돈의 조각은 모두 모였다.
혼돈의 조각을 재구성해주지. / 빅토리카
빅토리카~~~~~~ / 쿠죠
홈즈와 왓슨의 구도를 그대로 따 와 빅토리카와 쿠죠라는 구도를 만들어낸 추리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추리가 영... 시덥지 않다는 게 문제이지요. 덕분에 일반적인 평은 그냥 빅토리카 모에물 아냐?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건,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작품과 연계시키려고 했던 시도가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서입니다. (물론 깔끔해서 연결시켰다고 보기는 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작품이 경성스캔들이나 한성별곡, 추노 같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갔는가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람의 검심 -추억편-도 꽤나 좋아하고요. 마찬가지 이유로 이런 작품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품고 GOSICK을 좋아하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뭐가 되진 않겠지만...)
3. 타리타리 (2012, 8,389권, 2012년 판매량 19위)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간신히 이곳까지 이르렀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어.
가족과 친구, 꿈과 긍지.
그리고 사랑하는 고향마저도.
어둠으로 뒤덮인 세상에 홀로
길은 보이지 않아.
걱정할 것 없어.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가면 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노래를 부르도록 하죠.
서로간의 자그마한 길잡이로서
비록 기적은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단지 잠시 동안의 휴식을 위해
각자의 마음을 노래에 실어
지금, 우리는 다시 걸어나갈 거야! / 타리타리 13화
'꽃이 피는 이로하'와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되는 작품이 '타리타리'입니다. 이 작품은 고등학교 졸업반인 다섯 사람이 합창부를 결성하게 되고, 각자의 상처를 이겨내며 성장하게 되는 성장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혹은 게임에서 성장을 한다는 것은 장대한 일입니다. 세계를 구한다든지, 마을을 구한다든지, 가족의 목숨을 구해낸다든지, 아무튼 갈등의 뿌리까지 죄다 뽑아 버리는 게 주인공의 성장이지요.
하지만 타리타리에서 그리는 성장은 그리 엄청난 게 아닙니다. '비록 기족은 일으키지 못하더라도'라는 구절에서 살필 수 있듯, 그들의 성장은 자그마한 개인으로서의 성장, 기껏해야 어제보다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고,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실은 대단한 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간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것. 그런 위로에 가까운 울림이 가슴에 와 닿았던 작품입니다.
2. Another (2012, 2,157권)
존재하지 않는 자를 상대하는 건 그만둬!! / 테시카와라 나오야
근래 들어 보기 힘든 장르인 호러 / 스릴러 / 추리를 표방하고 나온 작품이 Another입니다. 과거의 작품으로는 쓰르라미 울 적에와 비교해 볼 만하겠네요. 장르가 장르인 만큼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3화에서 나오는 우산 씬은 위기탈출 넘버원에 나와도 괜찮은 수준(...)
초중반부의 몰입감만큼은 대작이었던 코드기어스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작품 전체를 보면 쓸데없는 죽음이 참 많다는 게 이 작품의 아쉬움이지요. 특히 마지막화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보기 드문 호러 / 스릴러 장르로 이만큼 흡인력을 지닌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1. 돌아가는 펭귄드럼 (2011, 4,722권)
생존전략! 분명 무엇도 되지 못할 너희들에게 고한다. / 크리스탈 공주
난 모두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하늘도 새도 벌레도 개구리도 하늘도 자갈도... 이 세계는 신께서 만든 거라고 해. 그렇다면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 있을까? / 오기노메 모모카
칸트에 따르면 ‘미’란 인식 대상과 인식 주관의 조화에 그 본질이 있다. 우리의 파악 능력에 적합하게 생긴 대상이나 형태는 아름답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식에 적합하지가 않다. 그 앞에서 우리는 미적 쾌감은커녕 외려 당혹감만 느낄 뿐이다. 우리 눈은 부지런히 저 안에서 인식 대상을 찾아 헤매나, 불행히도 작품은 대상의 형체로 분절되어 있지 않다. 그저 커다란 색면 덩어리로 눈앞에 육박할 뿐이다. 게다가 저 덩어리들은 굳이 저 크기에서 멈출 필연적 이유가 없다.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도 무방하다. 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지각은 좌절하고, 인식은 한계에 부딪친다. /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랴」에 대한 설명 中
소녀혁명 우테나의 감독이 다시 작품을 만들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 돌아가는 펭귄드럼입니다.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의 연발 속에 느껴지는 감동!
저는 보통 애니메이션은 1번 보고 치워버리는 편입니다. 아니,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라도 비슷하겠네요. 가끔 2번 이상을 보게 되는 작품, 혹은 2번 이상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 있다면, 정말 마음에 들었던 작품인 게지요. 펭귄드럼은 그런 점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한번 더 봐도 질리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더 보면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우러나올 것만 같아! 뭐, 그런 느낌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은 마사토끼 님의 감상만화(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saruchi&logNo=110161648594)가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지요.
번외.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S
예전에 쓴 글에서 초전자포를 한 번 소개한 적이 있기에 순위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을 요약하면, 16화까지는 신! 그 이후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16화까지는 소위 '시스터즈'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연기, 스토리, 작화, 연출 무엇 하나 최고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함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페브리(즈)' 편에서는... 원래 원작이 있는데, 애니메이션만의 오리지널 설정을 넣으면 원작 팬에게 욕을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편은 원작을 보지도 않은 저조차 한숨만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개그애니지 이거!? 라고 생각하게 할 정도로... 화려한 연출과 작화가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렸어 라는 안타까움이 남는 후반부였지요. 초전자포S는 16화까지만 있는 거로...
저는 작년과 올해는 야구 보기도 바빠서(...) 많이 챙겨보지는 못했고, 곧 시즌이 끝나니 비시즌 기간 중에 챙겨볼 심산입니다. 저는 평범한 일상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조금 지루하긴 해도 피 튀기고 배드엔딩 뜨고 그러는 일이 거의 없어서... 배드엔딩을 정말 싫어하는데다가 진격의 거인 같은 것도 잘 못 봅니다.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은 삭제 1순위. 그러다 보니 바시소나 토라도라, IS(이쪽은 메카닉 전투씬은 최대한 간단하게 핵심 장면만 보고 스킵했습니다), 케이온, 아즈망가 대왕 뭐 이런 걸 주로 봤네요. 유일하게 피가 튀기는데 제대로 각 잡고 봤던 애니는 바케모노가타리였구요. 아, 학생회의 일존도 꽤나 재밌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