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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글날을 기억하시나요? ( ..)a
시작해보죠
"칙령 제1호, 내가 재가한 공문식제(公文式制)를 반포하게 하고 종전의 공문 반포 규례는 오늘부터 폐지하며 승선원 공사청도 아울러 없애도록 한다."
"공문식 제 14조,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漢文)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國漢文)을 혼동한다."
1894년 갑오년 11월 21일 고종의 칙령
+) 생각해보니 이전 글이 딱 갑오개혁에서 끝났군요 - -a
갑오개혁의 요점은 청으로부터의 독립과 근대화였죠.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문자였습니다. 일단 중국 거에서 벗어나 우리 걸 내세워야 했죠. 마침 우리 게 있었습니다. 그것도 언문일치에 배우기도 쉬운, 신분제 철폐 등 근대에 딱 맞는 문자 말이죠. 이렇게 훈민정음, 언문은 451년만에 국문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개화파가 얼마나 밀고 싶었던 거였겠습니까. 헌데 그게 일본의 압박 속에 이루어졌으니 입맛이 -_-;
위에서만 하면 재미가 있나요. 밑에서도 치고 올라와야죠.
문신닙독 ( - -)a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됩니다. 순한글이었죠. 상하귀천이 다 함께 읽을 수 있는 조선의 글로 한글 전용을 주장합니다. 우리 글이고 한문보다 배우기 쉬우며, 한문만 잘 아는 것보다 한글 알고 세상물정과 학문을 잘 아는 게 더 잘났다는 등의 근거를 들었죠.
+) 중간에 보면 "병신"이라는 욕이 그대로 나옵니다. (...); 공문서를 한문으로만 하니 모르는 사람은 그저 병신이 된다고;
이 얘기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띄어쓰기겠구요. 저 논설에서부터 띄어쓰기를 강조하고 있구요.
독립신문을 필두로 순한글이나 국한문혼용체를 쓴 신문들이 나옵니다. 이전에 나온 한성순보도 국한문혼용으로 바뀌었구요. 신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잡지와 신소설들이 나타났죠. 근대적인 학교에서도 한글 교육을 시작했죠.
나라가 망해가는 동안에도 -_-; 한글은 널리 퍼져 갔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문제가 생겼죠. 공식적인 맞춤법이 없었거든요. 일단 표기법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로 (다른 설도 있지만 일단은 -_-a) 음운 변화가 많았지만 반영되지 않았고, 후기로 갈수록 엉망이 돼 갔죠. 한글로 쓴 게 후기로 갈수록 많아졌으니 당연한 거겠습니다만, 그걸 정리하는 노력은 없었죠. 기준이 된 건 1527년에 나온 훈몽자회 정도? (...)
이제 언문은 국문이 됐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공식 문서는 물론 민간에서도 국문이 널리 퍼지고 있구요. 혼란은 당연한 것이고, 그 혼란을 잡아줄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의학교장 지석영의 상소문에 비답을 내린 것을 보니 진술한 말이 진실로 백성들을 교육하고 구제하는 요점인 만큼 상소문 내용을 학부에게 자세히 의논하고 확정하도록 하여 시행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신의 부에서 정리하고 고찰하여 저술한 책은 고금을 참작하여 현실에 맞추었습니다. 새로 고친 해당 국문 실시안을 삼가 자세히 적어 올려서 폐하의 재가를 바랍니다.” - 1905년(을사년-_-') 7월 19일
시작은 지석영이었습니다. 종두법으로 유명한 그 지석영입니다. 그가 위와 같은 상소로 맞춤법 통일안을 올리니 바로 "신정국문(新訂國文)"입니다. 어려운 부분은 넘기고 ^^; 쉽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초중종성에 쓰이는 글자들입니다.
그느드르므브스으(옛이응) -> 초성과 종성에 다 쓰임
지치키티피히 -> 초성에만 쓰임 (△과 O 제외)
모음에선 아래아가 없어지고 =(뭐라고 읽는건지 --a)가 들어옵니다.
받침에 쓰이는 글자들을 봅시다. 지금은 발음만 7개로 하지 온갖 글자가 다 받침에 와도 되지만, 성종대부터는 받침은 저 글자들만 썼었죠. 지석영 역시 그걸 땄구요. 뭐 편하기는 저게 편할 것 같습니다만 - -a 저기에 큰 불만을 품은 이가 있었죠.
이 신정국문은 시행하려고 한 것 같은데 잘 되진 않았나 봅니다. 당시 학자들마다 견해가 달랐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노력은 계속돼 1907년에 국문연구소가 설치됩니다. 나라가 망할 때까지 23차례에 걸쳐 맞춤법통일을 위한 회의를 열었고, 결과물을 제출했죠. 하지만 공중에 붕 떴고, 기록이 남은 것도 1, 2회의 기록만이라 하는군요.
한편 유길준은 최초의 문법책인 "조선문전"을 짓습니다. 이후 8차에 걸쳐 개고했다 합니다만, 4차판밖에 찾을 수 없다 하네요. 가장 최근 것은 최광옥의 "대한문전" 뿐입니다.
+) 그래서 대한문전을 최광옥이 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유길준 설로 바뀌어가고 있죠.
여기서 명사, 대명사, 동사 등의 8품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일본문법(이것도 라틴문법의 영향을 받았지만)을 모방했겠지만 한국어에 맞춘 특징도 있다 하는군요.
나라가 망하는 동안에도 한글은 널리 퍼졌고, 그에 대한 연구도 계속됐습니다. 나라가 망하고도 끝나지 않았죠. 아니 나라 잃은 한과 우리 글에 대한 열정은 더 커져갔을 겁니다. 그 암흑기 동안 우리 글을 다듬고 현대 한글의 기초를 닦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한글"을 만든 한글의 아버지 주시경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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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길게 길게는 못 쓰는지라 짧게 짧게 씁니다. -_-a 한글날까지 달려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