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축구팬으로써, 과거 축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때, 종종 제기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과거를 탐구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축구, 그리고 이에 포함되는 과거 축구에 대한 탐색 역시 모두 유희이므로, 이에 대한 답변을 함에 있어 어떤 도덕관이나 형이상학, 또는 초월적인 당위성을 가정할 이유가 없으며, 인간의 자기 인식과 같은 것을 상정할 필요도 없다. 호기심은 본능이며, 과거를 알려는 욕망은 역시 호기심의 일부이고, 본능을 충족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간단히 “나는 당신이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이나 한니발의 대로마전 전술 전략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이를 통해 유희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것처럼 스테파노, 푸스카스, 펠레 등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그 때문에 이를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라고 답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매듭지어야 할 것이 있는데, 위의 질문은 단순한 의문의 표현 이상이며, 과거 축구를 탐구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회의론은 동시대에 직접적으로 얻은 지식이 아닌 것은 불완전한 것이므로, 과거에 살았던 것이 아닌 이상, 과거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거의 축구는 우리가 논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하여 관찰 방법에 대한 문제가 등장한다. 요컨대, 직접적이지 못한, 간접적인 수단에 의한 관찰이 얼마나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1.
분명, 과거에 대한 인식은 필연적으로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50년 브라질의 히로시마를 탐구한 칼럼니스트 중, 50년 월드컵을 직접 목격한 이는 없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프리덴라이히에 대한 저술을 기록한 이들이, 프리덴라이히를 직접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 기록과 증언, 가끔 운이 좋으면 부분적으로 남은 경기 영상과 같은 것을 참고할 수 있을 뿐이고, 이렇게 간접 관찰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과거의 축구를 탐색하는 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한계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에 대한 인식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접 관찰이라고 명명하는 수많은 행위들은 역시, 간접 관찰과 결합되어 있기도 하며, 직접 관찰을 통해 얻은 인지 역시 항상 명료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천 상륙 작전 당시 특정 분대의 분대장이었던 이를 생각해보자. 인천 상륙 작전을 직접 겪은 이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여 전황을 목격했을 것이며, 이를 직접 겪지 않은 이들에게 구전적인 정보를 생생하게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인천 상륙 작전의 전황에 대해, 인천 상륙 작전을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에 비해 해당 전투의 경과와 진행, 거시적인 전황의 전모, 이후의 전쟁의 흐름에 있어 전투가 가지는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폭 넓고 객관적인 이해를 하고 있다고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아마 잘 모르는 부분도 종종 나올 것이고, 착각하고 있는 부분도 드러날 것이며, 시야의 협소함을 드러낼 공산도 크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이도 사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직접 관찰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가 삼지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인천 상륙 작전 당시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파악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가 전황에서 정말 중요했던 일보다는, 자신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사태를 서술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각각의 사건들을 중요성에 따라 재배치하여 청자로 하여금 보다 핵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당시 전황에 대해 보다 정밀한 주장을 취하기 위해서는, 전투의 직접 관찰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간접 관찰의 결과로 얻어진 자료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측면에 있어서 직접 관찰을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축구로 눈을 돌려보자. 커뮤니티에는 종종 자신이 케이블 방송을 통해서, 혹은 피시통신을 통해서 브라질 국적의 호나우두가 96-98 즈음에 바르셀로나나 인테르 밀란에서 신격화된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당시 한국에 케이블 보급률이 어느 정도였으며, 피시통신을 통해 경기를 다운 받는다는 것에 기술적인 난점이 따른다는 것과 같은 일련의 쟁점들은 논의의 목적을 위해 일단 생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차후 이에 대해 다시 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인식에도 몇 가지 굴절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면, 호나우두 외에는 당대 축구에 대한 정보에 무지했던 그 시절에 호나우두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했는지 여부일 것이다. 선수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란, 단순히 해당 선수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존재했던 구단과 선수들에 대한 평판이라든가, 당시의 이슈거리라든가, 상대팀들의 전술적인 조치라든가, 경기 내내 맞상대 하는 상대 선수들, 같은 팀 내에서 발을 맞추는 동료들 등의 요소를 폭넓게 알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시에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근거에 의해 증언을 해나갈 수 없다면,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호나우두가 어땠는지에 대한 판단은 별도의 검증 과정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기억의 쇠퇴나 망각 등에 의해서 당대의 정확한 실태를 회상하지 못하고 착오나 과장을 하게 되는 경우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실제보다 호나우두에 대해서 과도한 이상화를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당시 그들이 본 경기에서 호나우두가 상대팀에 대해서 어떤 활약을 보여줬는지를 물을 때, 이들이 어떤 간접 관찰의 결과물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신의 기억만으로 얼마큼 정교한 서술이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이들이 회의감을 표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일정한 대상을 인식하는 모든 경우, 대상의 본질의 대부분을 언제나 타인의 증언 등의 간접 관찰 결과물로 부터 얻게 된다. 이 점에서 볼 때, 과거에 대한 인식이 현재에 대한 인식보다 간접적이기에 신뢰하기 어렵다고 반드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먼 과거에 대한 연구는, 수사적인 의미에서 <현재>라고 불리우는 가까운 과거들에 대한 연구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며,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나온 말은 아니나,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들리야르의 선언은 고민해봄직한 것이다.
2.
또한, 오히려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편견 없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항상 그러하듯, 다소 시일이 흐르고 평가 대상과 거리가 확보된 뒤에야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 상태에서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보다 명확해 지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산적해 있다. 가령,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일보다, 그 이전 시대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논란과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로우며, 합의된 사실로부터 출발하기가 용이하다. 신천군 학살 사건에 대해 다루는 것보다는, 조선 초의 왕자의 난에 대해 다루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질 수도 있듯이 말이다. 이는 축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현재의 바르셀로나나 메시가 어느 정도의 위대함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일 것이며, 다비드 실바와 외질 중 어느 선수가 더 나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난해한 일이지만, 그에 비해 크루이프가 히벨리뇨보다 훌륭하다고 하는 데에는 그리 지난한 논쟁을 요하지 않는다.
3.
결정적으로, 과거에 대한 인식이 항상 간접적인 것만은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다른 수많은 과거의 흔적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축구의 경우에는 사정이 훨씬 좋은 편으로, 우리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편집된 컴필레이션은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과거 경기의 풀매치 영상이 남아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그 외에 리그 테이블이라든가 득점 자료, 출전 기록 등의 각각의 팀이나 선수의 경기 기록, 그리고 목격자들의 증언 등, 자료가 꽤나 풍성한 편이다. 또한, 시기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및 정세 등에 대한 파악도 용이한 편이다.
특히, 세월의 풍화 속에서 유실되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영상들은, 대개의 경우 경기의 비중이 높든지, 특정 선수가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 시기의 일반적인 양태를 관찰할 수 있는 대표성이 있는 경기이다. 그렇게 때문에, 몇 경기 정도만 감상하더라도 <표본으로서의 신뢰도>는 충분히 쌓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선수의 기량을 파악하는 문제에 있어서 더욱 그러한데, 우리는 작위적으로 경기를 선택한다거나, 시기적으로 동떨어진 경기들만을 관찰한 경우가 아닌 이상, 처음 몇 경기를 볼 때의 인상과 이후 수십 경기를 볼 때의 인상이 다른 선수는 거의 없음을 알고 있다. 가령, 제라드를 5경기 보았을 때와, 20경기를 보았을 때와, 100경기를 보았을 때의 인상이란,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리 극과 극으로 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실, 유벤투스 시절의 지단이나, 96-98 즈음의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나 인테르 밀란에서 뛴 경기를 라이브 중계를 통해서든, 시일이 지난 뒤에 영상을 획득해서든지, 어떤 경로로든 이러한 것들을 직접 본 이는 극히 드물 것이며, 많은 경기를 본 이라고 하더라도 10경기 내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벤투스 시절의 지단이나 부상 이전의 호나우두를 평가할 수 없다고 할 수야 없을 것이다. 또한, 현역 선수라고 해서, 해당 선수의 경기를 다 보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몇몇 선수에게 한정되기 마련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꾸준히 보는 레알 팬들, 그리고 소수의 열성 축구팬들을 제외하면, 카카가 선발 출장한 경기를 올 시즌에 5개 이상 본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카카의 현재 기량을 평가하는 것은 소수의 매니아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선수와 팀의 활약을 정리한 데이터나 트로피에 대한 정리한 수량적인 자료들도 당대의 정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많은 보탬이 된다. 해당 시즌에 어떤 대회가 있었는지, 대회의 진행 양상은 어땠는지, 우승은 누가 했으며 득점왕은 누구였는지, 특정 시기에 어떤 팀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지, 승률과 승점의 분포는 어떠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정보들은, 마치 일제 강점기의 경제 성장 지표와 같이, 비록 눈으로 관찰된 것은 아닐지언정 객관적인 사실을 - 물론 이것이 실재적인 진실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약점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나 - 가감 없이 드러낸다. 크루이프의 아약스의 위대함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직접적인 목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그들이 유러피언컵을 3연패 했으며, 특정 한 시즌에는 자신들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을 알기만 하더라도 제한적으로나마 충분한 것이다. 또한, 푸스카스가 부다페스트가 한 시즌 동안 82골을 넣으면 4위를 했을 때, 혼자서 50골을 넣었다는 사실만 알면, 최소한의 지성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압도적인 스코어러였는지를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목격자의 증언 - 불과 수십 년 전의 과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목격자들은 살아있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 등의 질적인 자료들도 과거 선수들을 판단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이러한 증언의 한계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논한 바이나, 이것은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지 무용함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며, 그러한 것이 가능하지 않음은 명백한 것이다.
물론 데이터 등의 양적 자료, 증언 등의 질적인 자료, 경기 영상만으로 판단하는 것, 각자는 꽤 위험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매사 그렇듯, 이 모든 것을 종합하고 누적시켜 총체적인 판단을 취하게 되면, 오류의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물론 이것으로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긴 하나, 기실 여타 역사 연구에서 이 이상의 단서를 얻어낼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겨우 과거 경기 영상 수백 수 천 개에, 이런저런 기록, 증언과 같은 것들이 전부이기 때문에, 고작 수십 년 전의 과거 선수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한다면, 고조선과 같이 고증할 수 있는 영역이 지극히 제한적인 수천 여 년 전의 고대사에 대해 이리저리 논하는 것은 더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삼국시대에 대해서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이가 합리적인 발화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인간은 과거를 완벽히 인지할 수 없으므로, 모든 과거에 대한 연구는 헛된 것이라는 식의 무모한 관점을 견지할 것이 아니라면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축구에 대해 논하는 것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로 여겨져야 마땅하다. 이순신의 삼포해전 동영상을 구할 수 없는 것에 비하면, 과거의 축구를 탐구하는 일은 축복받았다고 하더라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4.
다음으로, 서술의 대상을 한정지을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기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연구자가 모든 과거의 사실을 기술할 방법이 없다는 수단의 측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연구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과거의 사실들은 기술 될 이유가 없다는 목적의 측면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가령, 특정한 연구자가 한국 전쟁의 전개 과정을 탐구한다고 할 때,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50년대 한국의 대학 교육 과정과 같은 것을 굳이 살펴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절대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안은 없는 법이며, 독립적으로 보이는 복수의 대상 간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관련성이 실은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경우 이는 분명 또다른 연구 주제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명증한 의의를 가지기 전에는, 혹은 명증한 의의를 띨 수 없음이 자명할 때에는, 이를 무시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리하여 본문에서는, 비록 그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며, 보다 포괄적인 논의를 다루게 되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축구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헤게모니를 두고 누가 쟁탈을 벌여왔는지를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여기서 헤게모니를 장악한자는 개인일 수도 있으며, 또는 특정 집단일 수도 있다. 이는 축구가 팀 스포츠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괄목할만한 집단적 성과가 지엽적인 것을 무시할 경우 전적으로 특정한 개인의 역량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각각의 개인 단위로 분할 될 수 없는 조직적인 작업의 결과물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때때로 난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엄격히 구분짓지 않고, 초점을 맞출만한 부분을 따라가는 와중에 다각적인 관점에서 사태를 해석하는 것이 보다 소모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서술 방식이 방법적인 엄밀성과 서술의 통일성을 희생시킨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주제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증진 시키는 데 있어, 실질적인 의미값을 가지는 것은 아닌 원칙적인 사항들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엄격하게 고수하려 드는 것보다는, 때때로 가십거리를 언급한다든가, 파격적인 서술을 가한다든가, 논쟁거리를 던진다든가 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러 무질서한 서술을 하려는 것은 아니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야 하겠지만,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접근 방식들에 대해 미리 제한을 가해 차단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5.
그렇다면 시작점은 어느 지점이 적당한지가 문제가 될 것인데, 본문에서는 50년대의 매직 마자르로 유명한 헝가리에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이는, 당대의 전모를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할 정도로 경기 영상이 남아 있는 경우가 50년대의 헝가리부터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 시대의 경기들도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월드컵 결승 정도로 국한 되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바가 부족하다.
게다가 사실 헝가리 시기 이전의 선수들과 이후의 선수들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지도에서 차이가 난다. 가령, 푸스카스는 일반에게도 잘 알려진 선수이고, 히데쿠티, 콕시스, 보직 등은 축구 감상을 취미로 삼는 이들은 한 번 쯤은 접해본 이름일 것이다. 그에 반해, 헝가리와 불과 시기적으로 몇 년 차이 나지 않는 1950년 월드컵 결승전의 양팀 멤버를 아는 이는 그리 많이 않을 것이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50년대부터 시작되어 <유럽축구>를 만들어나가는 기반 중의 하나로 기능했던 유러피언 컵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결코 생략하고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언급해둘 부분이라면, 용어에 관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개념의 엄밀함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영어권에서 쓰이는 정식 용어를 가능한 한 쓰되, 이것이 한국에서 널리 통용되는 용어에 대응이 되며, 개념의 오용 위험이 드문 경우에서는 대체로 한국어로 쓸 것이다. 가령, 센터 미드필더를 중미라고 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영어나 한국어에 대응되는 용어가 없다면,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여타 국가들의 용어들 역시 차용할 것이다.
일련의 전술적인 움직임을 언급함에 있어 축구계에 적절한 용어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농구의 용어 역시 차용할 생각이며,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론장에서 통용되기에 무리가 없을 경우, 자유로이 사용할 것이다. 이 경우에 용어 선택의 제1 기준은 개념의 명료화이다. 여기서 명료함이란, 단순히 잘 정의된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용어의 차용을 통해서 개념을 보다 접근성 있게 독자에게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의 명료함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