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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17 12:09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크게 이슈가 된 '나꼼수 비키니', '해적기지', '강용석 아나운서' 모두 별로 뉴스가치가 없는 발언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xx녀', 'xx남' 동영상이 돌아다니는것도 그렇고, 인터넷을 통해 개개인의 발언권이 강해진 이후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기준을 세워놓고 이에 조금만 빗나가도 지나치게 맹공을 퍼붓는 문화가 형성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작 그 개개인은 익명성안에 숨어 완전무결한 척 할 수 있으니까요.
12/03/17 12:22
논의와 관련이 있는 듯 하여 밀의 <<자유론>>을 인용, 편집해봅니다.
이제 <자치>나 <인민의 자기 자신에 대한 권력 행사>라는 등의 말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자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스스로를 지배하기보다는, 각자가 자기 이외 나머지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정치체제가 되고 있다. 이제 정치 영역에서 <다수의 횡포>는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큰 해악 가운데 하나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다른 권력의 횡포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횡포도 주로 공권력 행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다수는 스스로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정치적 탄압을 가하는 권력자들과는 달리, 웬만해서는 극형을 내린다거나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않는 대신,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기 대문이다. 그러므로 정치 권력자들의 횡포를 방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의견이나 감정이 부리는 횡포, 그리고 통설과 다른 생각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가 법률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윽박지르며 그 통설을 행동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그러한 한계를 명확히 하여 부당한 간섭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정치적 독재를 방지하는 것 못지않게 긴요하다. 서로 다른 두 사회가 같은 답을 낸 적이 거의 없다. 한 시대나 사회가 내린 결정이 때로 다른 시대나 다른 사회의 사람에게는 놀라워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결정을 내린 특정시대, 특정 국가의 사람을은, 다른 사람들도 오래 전부터 늘 자신들과 똑같은 생각을 해왔다고 믿으며 이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확립한 규칙이 자명하며 누가 봐도 옳다고 여긴다. 이러한 착각은 관습이 빚어내는 가공할만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관습은 문자 그대로 제2의 자연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을 지속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관습은 사람들이 만들고 지켜온 행동 규칙의 타당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관습은 이성적인 토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에 이런 속성이 더 강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가 이성보다는 감정의 문제이며, 따라서 이성은 필요하지 않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어떤 행동에 대한 견해가 이성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특정 개인의 선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성의 뒷받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성이란 것이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다수적 선호에 대한 호소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여전히 군중심리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경우, 다수의 그런 선호가 도덕과 기호, 또는 예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세우는 데 강력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 오늘날에는 정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진데다, 무엇보다도 사적 권위와 공적 권위가 분리된 까닭에,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법이 지나치게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주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한 도덕적 억압의 기제는 훨씬 강력해졌다. 특히 사회적인 문제보다 오히려 개인 각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억압이 더 심해졌다. 그리하여, 세계 곳곳에서는 여론, 심지어는 법의 힘을 통해 개인에 대한 통제를 과도하게 확대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의 힘을 강화시키는 반면 개인의 힘은 축소시켜 나가는 이런 부정적인 변화는 저절로 사라질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점점 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우연하게 인간의 본성이 되어버린 최선의 감정과 최악의 감정 가운데 일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과 성향을 하나의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인간의 도덕적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비추어볼 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말 것이다.
12/03/17 17:17
인용하신 부분은 대단한 통찰력의 글이긴 하지만 본문과는 핀트가 어긋나 보입니다.
자유론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인용된 부분만 봐서는..공권력의 개인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가 다수 또는 주류의 형태로서 그 방식과 영역에 있어서 점차 다양 또는 교묘해지고 집요해지고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것 같네요. 슬라이더님의 글에서는..표현의 자유가 발현되는 상황에 따른 다양한 보장 정도와 표현의 자유 내에서 이에 대립하는 다양한 논의의 보장 및 이러한 세밀화 과정을 통한 정치 및 여론 형성 풍토의 개선을 논의하자는 말씀같습니다. 즉 표현의 자유는 법적 영역과 관련되며 형사적(저는 민사적인 소송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제재로서 표현 자체를 억압할 수 있는가의 논의로서, 이에 대한 보장도 중요하지만.. 위와 같이 자유롭게 표현된 부분에 대하여 각자의 사상적 정치적 관점에 따라 이를 비판할 토론의 장을 보장해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취지이며, 이에 공감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표현을 해 놓고 이에 대한 다른 이들의 표현(비판)을 애초 '자신의 표현에 대한 억압'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죠. ps. 생각해 보니 표현의 자유는 검열제 등의 제도를 포함한 법적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인사조치 등의 '실질적인 불이익'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며 실질적인 불이익이 더 심각한 문제일 것 같습니다.
12/03/17 12:58
4번의 경우는 예로 든 비키니, 해적 두가지 다 합리적이고 건전한 비판이 담보될 때 가능한 이야기지 실상 많은 비판들은 그 말은 그르니 하지 말았어야 했고 앞으로는 없어야 할 말로 치부하거나 취소를 요구, 나아가서 그런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는 식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함을 함의한 비판들도 많기때문에 '표현의자유'를 말하게 됨은 아닐까요. 사실 수 많은 비판들을 가려서 대응한다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을겁니다.
최재천씨 말 처럼 '대한민국은 거짓말 할 자유도 욕 할 자유도 있다'처럼 자유가 담보되고 그 말에 책임(법적, 도덕적)을 지는것이 옳지 않나 생각 합니다. 비판이 아닌 입을 막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언급되는 것이겠지요.
12/03/17 14:53
우와 엄청나네요. 구밀복검님이 인용/편집해주신 자유론의 발췌부분을 읽어봤는데, 천재의 통찰력이란 실로 대단하군요.인터넷의 포효를 염두에 두고 2003년에 쓴 현대인의 글이라고 해도 쉬이 믿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사고의 흐름 자체에 제동을 거는 강한 공격이다.
12/03/17 15:31
미국의 표현의 자유는 이정도까지는 허용을 하는군요..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69567 좀 심하긴 해도 처벌을 할수도 없고 광고를 내릴수도 없다는데, 우리는 간접적으로 비꼬와도 처벌을 받죠... 뭐 미국하고 우리나라는 좀 다르긴 하지만...
12/03/17 16:32
위키백과에서 허슬러사건을 가져와보았습니다.
래리 플린트는 스트립 바를 시작으로 허슬러라는 도색잡지로 큰 성공을 거두고 이를 적대시한 기독교 단체에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유명한 복음전도사이자 기독교 원리주의자의 리더인 제리 폴웰 목사를 자신의 잡지 허슬러를 통해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내용은 종교에 대한 험담과 욕설, 그리고 점점 수위를 높해 폴웰이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남자들끼리의 난교 파티에 참가하는 것, 워렌 버거 대법원장이 폴웰에게 구강 성교를 해달라고 애원하는 등 매우 심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1983년 11월 판에서 폴웰 목사가 술에 취해 파리가 들끓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어머니와 첫경험을 한 내용을 인터뷰하는 것을 패러디로 게재하였다. 그리고 맨 아래 광고 패러디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써놓았다. 폴웰 목사는 이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이 사건은 미국의 주요 언론사가 표현의 자유를 위해 허슬러를 지지하였다. "공중의 이해와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하기 위해 수정헌법 제1조와 제14조는 공무원과 공적 인물이 자신을 풍자하는 만화 광고를 이유로 고의의 불법 행위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이는 공인의 경우 명예훼손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2/03/17 20:35
터넷 악성 댓글(악플)도 표현의 자유 대상에 포함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한 악플도 보호받아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美 씨넷 등 주요 외신은 미국 연방법원이 최근 트위터와 블로그를 이용해 종교지도자를 사이버스토킹 한 혐의로 한 인터넷 이용자를 기소한 사건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들어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재판장인 로저스 타이터스는 지난 15일 “수정헌법 제1조는 주제나 표현 방법이 거북하고 전통적인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인 태도, 품위에 벗어난 행위라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도록 돼 있다”고 판결했다. 윌리엄 로런스 캐시디는 지난 2007년 이후 메릴랜드의 불교지도자 앨리스 제올리를 사이버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그동안 8천건이 넘는 트윗과 블로그 포스트 등을 이용해 제올리를 사이버 스토킹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2월 캐시디를 스토킹과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법(VAWA) 위반혐의로 기소하고 구금했다. 이에 캐시디는 법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1조를 들어 기소 자체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타이터스 재판장은 “제올리는 지난 2000년 책을 출판하는 등 공인”이라며 “캐시디의 사이버 스토킹이 ‘실제위협’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 한국에선 뭔가 불쾌하고, 거북한 표현도 제재 대상이나 사과 요구 대상이 되고 있죠.
12/03/18 02:17
cafri 님//
구밀복검님이 인용/편집하신 밀의 글은 본문의 주장에 대해 반대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장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는 두번째 단락을 살펴본다면, cafri님이 인용문의 논지를 "..공권력의 개인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가 다수 또는 주류의 형태로서 그 방식과 영역에 있어서 점차 다양 또는 교묘해지고 집요해지고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해석하신 것은 발췌된 밀의 글을 명백히 오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권력의 횡포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횡포도 주로 공권력 행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다수는 스스로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인용문에서의 주체는 '다수의 횡포'이지 '공권력'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밀은 이미 다수의 횡포가/ 공권력 행사를 통해 주로 이루어져왔음을 이미 가볍게 지적하고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다수'에 대한 경계를 인용문 끝까지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세번때 단락에서는 다수의 '관습'이란 것이 얼마나 굳게 닫혀 있는 성질의 것인지 설명하고 그것이 지속적인 '왜곡'을 낳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보통사람의 경우, 다수의 그런 선호가 도덕과 기호, 또는 예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세우는 데 강력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오늘날에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법이 지나치게 관여할 수 없게 되었지만 되려 사회의 주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한 도덕적 억압의 기제는 훨씬 강력해졌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며 이는 특히 개인 각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억압으로 강렬하게 드러난다고 서술합니다. 이러한 '우연성'으로 비롯된 것이 되려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행동지침을 정언명령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획기적인 도덕혁신이 없는 한- 이러한 사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러한 분석이 수백년을 뛰어넘어 2012년 오늘날의 사회에 대해서도 '다수'라는 것에 대해 상당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기에, cafri님의 해석대로 이 글을 "..공권력의 개인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가 다수 또는 주류의 형태로서 그 방식과 영역에 있어서 점차 다양 또는 교묘해지고 집요해지고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 는 논지로 읽는 것은 오독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밀의 인용문은 "사회적 발언에 대한 고소로 인하여 [물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형사처벌의 논의도 유의미하지만] 사회/정치/문화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 영역을 축소/소멸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떤 발언이 사회/정치/문화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는 시민들 간에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는 본문의 핵심주장에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개인의 발언이 그 사회의 '정체성/성격/관습-어떠한 용어를 쓰든-'에 적절한가를 다수가 논의해보아야 한다는 본문의 주장에 대해 밀의 '다수의 횡포-관습의 속성에 대한 분석과 그러한 다수의 억압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것에 대한 경고/예측-에 대한 논의'는 명확히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심지어 본문 글이 논의의 영역을 '사법적 처리'와 '사회/문화/정치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판단'의 두 구도로 나눈 것에 대해, 밀 역시 -개인의 사적영역에 대해서 미치는 영향력의 변화를- '법'과 '다수'로 역시 나눠서 설명하고 있기도 하구요. 그렇기 때문에 '구밀복검님의 인용/편집이 본문의 글과 핀트가 어긋난다'는 cafri님의 말씀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12/03/18 15:37
제가 인용문의 논지를 잘못 간추린 것은 맞네요(처음 리플 달 때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인용문 자체에서 밝히듯이 주테마가 '정치영역에서의 다수의 횡포' 이고.. (이것이 때로 '공권력의 형태'로도 나타난다는 것일 뿐..) OutOfControl님이 말씀하신 내용중에 인용문이 '본문에서 말하는 구도 내지 영역구별'이라는 테마에 대비하여 법과 다수로 나누어 설명한다는 것 역시 인용문을 오독한 것으로 보이며, 인용문은 다수의 횡포의 발현 형태가 때에 따라 공권력, 관습, 여론, 혹은 법으로 발현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역시 거장이 쓴 명문은 전체 내용을 시간을 두고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듯합니다). 밀이 공권력이 작동하는 영역과 시민사회의 영역을 구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은 본문쓰신 분과도 의견이 다릅니다. 밀의 인용문에서 공권력과 시민사회의 영역은 다수의 횡포가 발현되는 형태일 뿐이지 그 구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인용문이 본문과 핀트가 어긋난다는 한 이유는.. 본문 쓰신 분이 이미 직접 자신의 생각을 밝혀서 더 이상 쓸 내용은 없습니다만.. 본문의 주요 골자는 '개인의 견해 표명을 법적으로 제압하는 것'과 '개인의 견해 표명에 대해 반대되는 사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구별해야 하고 후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아니며 오히려 토의와 논의의 장으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용문에서는 다수의 횡포가 개인의 견해 표명에 대해 각종 형태로 억압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과는 다른 취지이지요.. 즉 어떤 개인의 의사표명에 (다수가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되지만) 의사표명자 아닌 다른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펼칠 토론의 장도 역시 중요하고 표현의 자유가 발현되는 국면을 논의하자는 본문 글에, 다수가 침묵을 강요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인용을 함으로써 본문의 내용을 펼치는 데에 있어서 당연히 전제로 깔아놓은 부분을 다시 들고 나온 듯 해서 핀트가 어긋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12/03/18 12:15
근본적으로 하나 이외의 둘 이상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서로의 존재가 자유를 제한하는 존재가 됩니다. 댓글에 인용된 밀의 이야기 끝 단락에는 공동체가 도덕과 같은 집단의식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이 더 심해질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오늘날 pgr을 포함한 인터넷 여론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나타나기때문에 밀이 현재를 예측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집단의식으로 인한 다수의 횡포는 고대시대부터 항상 있어 왔습니다. 중세 마녀사냥같은 것을 보면 더 심했고요. 우리나라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오늘날은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최소한 신체적으로는 개인을 보호해주니 예전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pgr을 이용하는 분들이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다수의 횡포로 인한 입막음을 걱정하시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막으려고 시도하지만 막을 수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pgr의 글쓰기 규정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라면 말이죠.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좀 더 중요시하는 서양국가들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자유를 지향하는 입장이고요.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표현의 자유내에서 각기 서로 다른 자유들이 서로서로 침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유안에서 자유를 가장 억압하는 것이 다수의 횡포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해결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범위안에서 또 제도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범위를 축소시키는 결과니까요. 밀은 이러한 판단을 다수가 아닌 논리적 이성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점은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한계가 뚜렷히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생각하는 논리라는 것 자체도 헛점이 많기 때문에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물질적 제재를 당하지 않는 선에서 그냥 나두는 것이 제일 낫다고 생각합니다. 혼돈의 상태에서 알아서 해결되도록 나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은 이런 상태에서 서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 인것 같습니다. 반면에 법적인 제재가 들어가는 범위로 가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꿔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논리가 좀 더 엄격하게 작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한 사람의 독단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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