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였을 겁니다. 야구 기록을 하기 시작했던 게.
독강이다 뭐다 하다가 학교 다니기가 너무 짜증나서(물론 지금도 충분히 짜증납니다만)
한 학기를 휴학했던 때의 일이었죠.
제가 그 당시만 해도 휴학 때문에 집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편이라서
심심하면 튀어나가고 심심하면 튀어나가고 했을 때였습니다.
그 와중에 제 친구 중 하나가 야구 기록으로 저를 살살 꼬드기더군요(...)
그 때 처음 기록을 배웠습니다.
대학 2부리그에서 소속 팀의 기록을 담당하고 있던 친구였는데요,
당시 다른 팀은 기록지에 그냥 타격기록 정도만 정리했다면,
그 친구는 그야말로 프로급 기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배우는 저도 다짜고짜 초장부터 프로식으로 배웠죠(...)
그로부터 대략 지금 1년쯤 되었습니다. 여전히 기록은 어렵습니다. 껄껄.
프로경기는 상당히 깔끔합니다. 엄청나게 깔끔하죠. 기록지가 더러울(...) 일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방송경기를 기록하게 된다면 인터넷으로 바로 재방을 볼 수 있으니 의심 가는 건 바로 맞춰볼 수도 있죠.
기록을 수정할 수 있는 기간은 다음날까지니까 시간도 있구요.
헌데 아마야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록을 수정할 수 있는 기록은 좀 되지만,
다시보기 같은 걸 제공하지 않으니 공의 흐름을 놓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요즘 제가 저희 팀의 기록을 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정말 쉽지 않아요.
제가 안 그래도 동체시력이 상당히 약한 편이라서 기록할 때 애로사항이 많아요.
공을 이리저리 던졌는데 누가 던졌는지, 누가 받았는지, 누가 아웃시켰는지를 모조리 짧은 시간에 기록해야 하니 말이죠.
그렇다고 다른 팀이 하는 식으로 하자니 어째 성에 차지를 않고(...)
어렵죠.
공 한 구 한 구의 결과를 기록하고,
각종 통계란 통계는 모조리 내고(비록 표본이 작아서 그리 큰 의미를 갖는 통계는 아니기는 합니다만),
그 경기의 베스트 플레이나 미스플레이를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겨두는 게 제가 팀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애당초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은데다가 공에 대한 공포증이 심하고,
그나마도 늦게 합류한 거라(제가 지금 4학년 2학기니 말이죠) 백업으로 뛰기도 어려운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최소한 지금은,
팀에 있어서 없으면 안 될 존재까지는 아니지만, 없으면 고생깨나 하게 되는 존재 정도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구를 보는 재미가 크게 늘더군요.
필드상에서 저걸 안타로 줘야 할지 실책으로 줘야 할지,
자책점을 줘야 할지 비자책점을 줘야 할지, 아니면 반자책인 건지,
타점을 부과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타점으로 줄지,
공의 흐름을 놓쳤을 때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등등 머리를 쓰는 재미가 늘었습니다.
물론 대개는 기록지를 "읽는" 것도 머리 아프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는 합니다만...
팀에서 안타기록을 부과하는 게 기록자 재량이다 보니 승강이를 벌이게 되고, 이게 또 재밌습니다(...)
오피셜로 사회인 야구단에서 돈 받아 가면서 하면 진짜 얼굴에 철판 깔고 해야겠지만,
이게 또 같은 팀이다 보니 서로 웃어 가면서 항의하기도 하죠.
아, 물론 그렇다고 상대 팀은 실책으로 주고 우리 팀은 안타로 주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전 팀 내에서 안타기록이 미친 듯이 짜기로 악명이 높은 존재라서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더듬거렸을 때 남들이 보기에는 잡기 어려운 볼이었다고 이야기해도 내가 봤을 때는 쉽게 잡을 수 있었다던지,
다른 주자를 충분히 포스 아웃으로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 일단 실책. 실책 후 논의.
팀 내에서 실책파와 안타파가 의견이 갈린다 - 그러면 실책.
물론 이런 걸로 항의도 자주 듣습니다만, 이런 것도 소소한 재미라서요(...)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자주 발생합니다(...)
(제가 대사만 직접 패러디한 겁니다.)
아, 물론 실책의 연속으로 기록자를 피곤하게 하면 얄짤없이 기록이 박해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낄낄.
오늘만 해도 아마야구에서 아주 드물다는 삼중살이 양팀 하나씩 두 개나(!) 나왔거든요.
좀 머리가 아프기는 하지만, 이런 게 기록을 하면서 생긴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기록하고 정리하고 재구성하고 기록 부여하고 그러면서 베스트 플레이 회상하고...
이런 게 기록이 갖는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야구 기록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프로경기를 보고 기록을 배우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쪽이 가장 깔끔해서 의외로 가장 쉽거든요.
혹시 자신이 어디든 야구팀에 소속이 되어 있는데 뛰기는 겁나고 그냥 보고만 있자니 좀 싱거우시다면,
기록을 배워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프로급까지는 아니더라도 타 팀에서 기록하는 것(간략하게 안타 여부 정도만 기록하는 기록지가 있습니다),
그 정도만 배우셔도 즐거움이 많이 늘어날 거라고 자신합니다!
PS. 첨부파일은 KBO 공식 야구 기록지를 제가 좀 바꿔 본 겁니다.
한글 버전으로 바꾸고, 안 맞는 줄도 맞추고(제가 이런 데 좀 강박증이 있습니다)...
A4 전용으로 맞춘 겁니다. 아마 출력하면 제대로 나올 거에요. 제 건 제대로 출력되는지라...
딱 하나 문제라면, 원래 B4를 A4로 맞춘 거라서 글자 크기가 상당히 작다는 것 정도죠.
전 글씨체가 꽤 작아서 익숙하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