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는 말은 참 아름답습니다. 어렸을 때, 아무 걱정 없이 살았던 때 말이죠. 그 때는 뭐든 될 것 같았고, 지금 같이 삭막했던 때보다 정이 넘치는 사회였던 것 같죠.
과거를 회상하는 데는 약간이라도 미화가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이걸 넘어서 "과거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엿 같냐"는 식으로 가는 것이죠. 지금의 저도 참 괴팍하면서도 소심하지만, 과거에도 충분히 괴팍했고 소심했습니다. (...) 오히려 "이렇게 커서 다행이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죠.
재밌는 건 흑역사로 묻고 싶은 과거는 주로 사춘기 때이고, 정말 아름다웠지 하는 과거는 아주 어릴 때라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 시기 다 그 나이대로 생각하면 그리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걸 역사 차원으로 가 보면 참 재밌는 걸 보게 됩니다.
중국은 물론 이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삼는 것은 바로 요순시대입니다. 그들부터가 "스스로 자리를 양보하고" "유능한 인재에게 일을 맡기지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유교적인 성인이었죠.
이어서 유교계의 현자로 꼽는 게 주나라 주공입니다.
아직 유교는커녕 유학이 정립되지도 않았을 시기, 신화시대의 끄트머리와 역사 시대의 첫 머리를 장식했을 이 시대가 그렇게 이상적인 시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현대에도 "그게 아니다"는 식의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죠. 자... 다른 나라로 가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은 에덴 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살다가 스스로의 죄로 쫓겨납니다.
아래 그림 살짝 혐짤입니다. 요청 있으면 링크로 바꾸겠습니다.
잔혹한 크로노스가 자기 자식들까지 다 잡아먹었고, 정의로운 제우스가 타도한 것으로 시작되는 그리스 신화, 헌데 인간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릅니다. 그리스 신화는 황금 시대, 은의 시대, 청동 시대, 영웅 시대, 철의 시대로 흘러가는데 갈수록 막장이 됩니다. 헌데 가장 좋았던 황금 시대를 다스렸던 것이 크로노스였죠. 제우스는 괜히 계절을 4개로 쪼개고 인간들이 서로 반목하게 하는데, 나중에는 지가 정의로운 줄 알고 인간들을 다 쓸어 버립니다. -_-;
확장팩(?)인 로마 신화에서는 크로노스가 로마 지역으로 쫓겨나서 사투르누스가 돼 그리스보다 더 행복하게 살았고, 그게 자신들 역사의 시작으로 얘기하죠.
르네상스에서는 중세의 신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부하고 인간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그것 역시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과거의 그리스 로마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죠.
민주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왕정이 대부분이었던 시대에 대비해 공화정이었던 그리스와 로마를 띄웠습니다. 이러면서 "로마는 공화정 때는 참 좋았는데 제정이 되면서 죽어갔다"는 식의 얘기도 나오게 됐구요.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인류의 시대 발전을 얘기하면서 원시 공산주의 사회를 처음으로, 그것도 공산주의가 이룩된 이상향으로 삼았습니다.
자, 한국으로 돌아와 보죠.
한국 역사에 있어서 이상향은 바로 단군과 기자, 단군은 한국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 됐다는 것으로, 기자는 한국이 그만큼 문화적으로 발달했다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특히 유교의 영향이 커지면서 "공자가 존경했고" "주나라 왕이 직접 조선으로 와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그 옛날 고조선을 이상향으로 삼은 것이죠.
신화 시대에 가까운 역사의 시작은 이상향으로 묘사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시작 부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 동양에서는 한나라와 당나라를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나라로 얘기하죠. 새로운 얘기 없이 공자 맹자 어쩌고 한다고 과거만 판다는 것이 유교에 대한 비판 중 하나인데, 서양이라고 그리 다를 바 없었다는 겁니다.
이 과거는 정말 과학적으로 밝혀낸 그 때의 과거가 아닌, 당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던 미화된 과거였습니다. 바꿔 말 하면 그 시대 사람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함에 있어 이런 과거로의 회귀를 외쳤다는 것이죠. 동양의 경우 맹자 공자 어쩌고가 익숙하지만, 그 시절이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었고, 그들의 말도 정말 그렇게 아름다웠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명나라 말부터 시작된 고증학이 그런 쪽이었죠. "공자가 정말 그런 말 하기는 했냐?"는 쪽으로요 (...)
서양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렇게 낭만적이기만 한 시대는 아니었고, 그 때의 공화정 역시 지금의 민주주의와는 많은 점에서 참 많이 달랐습니다.
이를 다시 말 하면 "바로 전의 과거는 부정적으로, 그보다 더 예전의 과거는 아름답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때 중세를 암흑기로 묘사하며 자기를 "근대의 시작"이라 하지만, 지금 르네상스 시대는 아예 독립된 시대로 보거나 "중세의 전성기"로 봅니다. 중세 시대의 최대 문제로 찍힌 마녀사냥은 정작 그들이 말 했던 "근대" 때 훨씬 많았죠. 그리스 로마 시대에 비해 완전히 후퇴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중세는 지금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그걸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은 고려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그 옛날 "고조선"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는 조선을 부정적으로 보며 그 이전의 고려, 고구려를 띄우고 있죠. 이게 극단적으로 간 것이 바로...
이거겠죠 -_-;
이런 생각을 간단히 줄이면 이렇습니다.
윤승운 화백 작품은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만 (...)a 너무 적절한 예시라서요.
과거에도 아틀란티스 같은 게 있었듯, 현대에도 초고대문명에 대한 여러 가지 음모론들이 나오는 이유도 이것일 겁니다. 고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로 우리 윗 조상들이 못 해서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요.
"이승에 소별왕은 한명이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람들은 언제나 책임을 뒤집어 씌울 누군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자신의 죄를 대신 뒤집어 써 줄 만한 누군가 말이지. 그러면 적어도 마음은 편해질 지 모르니까 말이야..."
- 신과 함께
정말 보수적인 인물이라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건 아니고, 아무리 진보적이라도 지나친 변화는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헌데 인류 문명의 발전은 언제나 이런 혼란기에 있어 왔죠. 중세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마녀사냥이 정작 인간 중심의 사고로 바뀌려 했던 때 끝 없이 벌어졌던 이유일 겁니다. 아무리 혼란 속에 발전이 있다 해도 사람들은 안정됐던 때로 돌아가려 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설명할 순 있겠습니다만...
그렇기에 역사시대 동안 사람들은 이것이 워포그에 뒤덮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과거로의 회귀인 것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그 과거는 자신들이 멋지게 채색한 과거였구요. 물론 그런 거 없이 그냥 무작정 돌아가자 이런 경우도 꽤 있죠.
이게 거짓이다 가식이다는 식의 말을 정말 많이 하면서도 정통성, 명분이 계속 중요한 이유일 겁니다. 종교가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구요.
(어떤 여자분을 링크하고 싶습니다만 하기는 그렇군요)
현재에도 그런 식의 얘기들이 있습니다. 네. 그 시대는 지금보다 더 열정적인 시대였을 겁니다. 뭔가 나라가 더 살기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었고, 거기에 자신이 일조하고 있으며 자기도 더 잘 살게 될 거라는 기대가 있을 시대였으니까요. 거기다 위대한 지도자께서 나라 발전에 대한 확실한 지침과 명령을 내렸고 그걸 따르면 됐으니까요. 이에 반대하는 이들 역시 절대악인 독재와 맞서 싸운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싸울 때였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은 참 엉망인 시대일 겁니다. 분열하고 떠들기에 바쁘고, 대체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살기는 힘들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시대죠. 과거에 대한 향수까지 합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과거에 대한 향수만으로 되는 건 없다는 것이죠. 위에서 사례로 든 것들은 그렇게 과거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정작 앞으로 나갔던 것들이니까요. 뭐 저야 앞으로도 "그건 미화된 거고 실제는 이러쿵 저러쿵" 이런 식으로 얘기하겠습니다만,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면에서 보는 역사 인식은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가 돼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 그 과거는 큰 문제가 있었기에 지금으로 바뀐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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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면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고대에 대한 향수에 대해서는 다른 이유도 있는 모양입니다.
출처
http://kezs.egloos.com/2003585
빙하기가 끝나면서 식물과 동물들이 번성했던 시기, 인간은 떠돌지 않고도 식량을 쉽게 채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굳이 농업을 하지 않고도 야생 곡물들은 잘 자랐고, 그것을 거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만 했으며, 이들을 먹는 초식동물들 역시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은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됐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들 역시 정교해지고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이랬던 시대를 "낙원"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구가 늘고 기후가 변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됐고, 사람들은 낙원을 떠나 먹고 살 만한 데를 찾아야 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야생 곡물들을 인공적으로 기르게 됩니다. 농사의 시작이죠.
인구의 증가로 더 이상 채집만으로 먹고 살 수 없게 된 시대, 사람들은 더 이상 놀고 먹을 수 없게 됐고, 뼈빠지게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발굴되는 유골을 보면 이전시대는 참 건강하게 살았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 시대부터는 무릎 등의 골격이 심하게 마모돼 나온다고 합니다. 뭐 그렇다고 그 이전 시대가 "절대적 빈곤"이 해소된 시대까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게 해결된 건 근대에 들어서죠.
위 링크로 가 보시면 절구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는 현대에도 쓰일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 나중으로 가면 대~충 대~충 만들어 쓰게 됩니다. 무늬를 넣어 미적인 것을 중시하던 토기들도 기능적인 것으로 바뀌었구요. 여기에 식량이 부족해 지면서 나타난 서로간의 다툼, 신분의 분화 등도 나타나 버렸죠.
이런 시대의 변화가 집단 무의식 속에 녹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