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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13 22:11
임시정부 시절 이승만이 미국에 위임통치 청원을 하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이승만은 이완용이나 송병준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으려 하지 않소! 그런데도 우리의 대표로 나설 수 잇단 말이오'
12/03/13 23:33
친일파청산을 제대로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공산주의와 북한때문이죠.
36년간 식민지였다가 미국에 의해 해방된 상황에서 외국에서 귀국한 여러 파벌의 정치인들이 친일파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을 동시에 상대할순 없었죠.
12/03/14 01:40
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는군요..쩝..
뭔소리를 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 애초에 이승만이 자기 권력을 위해서 세력을 모으는데 독립운동가 출신들은 이승만의 일제시에 한행동을 알고 지지한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때문에 이승만은 미군의 백을 믿고 친일파들을 자기 사람으로 모아온건데요. 그리고 반민특위가 어떻게 해체된건데요.. 오히려 친일파들이 반민특위를 해체할려고 국회프락치사건등으로 오히려 간첩으로 몰아간게 이승만이랑 그주위 친일파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친일파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이용한거지 무슨 북한때문에 친일파를 등용했다니.
12/03/14 03:11
이승만은 처음부터 미국이 든든하게 밀어준 케이스가 아니죠.
이승만의 정치적자산은 미국에서 외교활동하면서 쌓은 약간의 인맥과 철저한 반공주의자란 인증을 받은 것 뿐. 해방후 남한에 건너온 미군정부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남한의 공산화를 막는 거였는데 해방직후 남한의 주요 정치지도자들이 이승만보다 대국민인지도나 정치조직이 더 나았지만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은 적었고,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신탁통치)에 대한 불만도 많아서 미국은 밀어줄만한 정치지도자를 못 정하고 있었는데, 친일파와 손잡은 이승만세력이 크게 세를 불리고 적극적인 반공노선을 내세우자 그때부터 이승만을 밀어주기 시작한 거죠. 친일파들은 가진 재산이 많다보니 당연히 공산주의자들을 무척 싫어했던거고. 이렇듯 이승만과 친일파, 미국이 연결될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공산주의자들과 북한이죠.
12/03/14 01:33
왜 저런 이런 것들은 방송에서 다룰 수 없는 건가요..
정말 답답합니다. 이번 방송 파업들이 잘 되어서 국민들이 알아야할 이런 내용들이 전파타는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12/03/14 08:09
독립이 될당시 세계사를 생각해봅시다. 당시 독일,일본등의 주축세력이 몰락하기전 세계는 공산주의냐 자유진영이냐의 대결의 전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서둘러 노르망디에 참전한것도 독일의 패망이후 소련의 동유럽확장을 저지하기 위해서인 측면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동독,서독으로 나뉘었고요. 일본에 핵을 투하한 이유도 소련,중국,영국등의 연합군으로 일본상륙전을 개시해 일본을 분할하게 된다면 공산주의 진영은 한반도전체와 일본북부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을겁니다. 한국현대사를 논하는데 있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대립한 냉전시대를 빼놓고 논할수가 없습니다. 친일만을 잡고 늘어지는건 북한정권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하기위해 한국사회에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문제죠. 오히려 북한역시 수령제를 공고히 하는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처형하고 숙청시키는데 앞장섰습니다
한국역시 독립운동가 내부에서도 공산주의자와 자유진영등이 복잡하게 얽혀 겉으로는 공동의 적인 일본을 상대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알력다툼이 심했습니다. 김좌진 장군역시 같이 독립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한건 역사적인 사실이고요. 김구선생은 성향상 중립노선이었고 강경파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의 일제합병에 대해 찬성하던 미국인 언론가를 독립운동가 두분이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사살한 일이 있었고 이때문에 미국사회에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당시에는 지금의 탈레반같은 테러리스트라는 시선을 받은것도 사실입니다. 세계패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힘을 빌어 독립을 달성하려 했던 이승만역시 이런점에 있어 임시정부내 무장투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때문에 임시정부 주석자리에서 쫒겨냐게 됩니다. 무장항일운동이 일본인 몇명을 죽일수 있을지언정 한국이 세계여론에 소외받고 결국 외교력으로 풀어야 한다는 논리였죠. 예나지금이나 국가간 외교행태는 착한편이 아닌 이익이 되는 쪽에 손을 들어주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이익을 계속해서 결부시키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우리가 피해자라고 정당한 무장투쟁이라고 주장해봤자 국가적인 입장에서 3자는 마냥 좋게만 봐주고 지지해줄수 없는것이었죠. 독립운동내부에서도 김일성같은 공산주의파와 김구선생같은 중립성향의 무장항일파, 이승만같은 비무장 외교주의파의 대립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들 모두 독립운동의 공이 있다고 볼수 있는데 이미 세계흐름에 예견되었던 냉전시대를 얘기하지 않고는 현대의 결과를 설명할수가 없습니다. 일본의 몰락이후 김일성은 소련의 힘을 빌어 한반도를 공산화 시키고자 했고 이승만은 미국의 힘을 빌어 자유주의진영으로 통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김구선생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민족적인 관점에서의 무조건 통일을 이루자고 계속해서 분단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고요. 이미 세계의 흐름은 우리나라 뿐아니라 유럽, 아시아 모두 냉전으로 치닫고 있었기에 중립적인 입장에서 머물로 있을 가능성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의 나라들이 과거 식민지 기간동안 서구의 자본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었기에 이 자본에서 해방되자는 공산주의 투쟁에 동참을 했었고 아시다시피 베트남이나 중국등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공산주의로 통일을 달성하게 되죠. 그 결과는 소련과 공산주의가 붕괴할 90년대까지 열악한 생산과 내부적 사상투쟁으로 수백만이 죽고 힘든삶을 겪게되는 역사적인 진실이었습니다. 킬링필드,문화혁명등 노동자중심의 세상을 만들자는 이상만 가지고 출할한 공산주의가 현실적인 해법으로 남긴 패해는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한반도에는 공산주의로 출발해 세습왕조로 변질된 지구최악의 국가 북한이라는 산 증거가 있습니다. 이승만,김구,김일성에게 주어진것은 이미 독립운동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냉전시대에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가느냐는 이데올로기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한국사회에 친일파냐 마냐의 문제는 냉전이전의 과거사로 봅니다. 냉전을 제껴놓고 일제강점기만을 논한다는건 역사적인 흐름을 무시한 다분히 숨겨진 의도가 있는 공작이라고 밖에는 볼수가 없습니다. 단적으로 우리가 북한의 변질된 공산주의에 속하지 않고 한국식의 문제는 있지만 발전적인 자유진영에 속했다는것은 냉전시대때 세계의 흐름을 일찍 파악하고 공산세력의 남침에 맞서 싸운 이전세대의 공로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말은 백선엽이나 박정희같이 친일을 했더라도 한국을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이바지 했다면 모든걸 용서해주자는 말이 아니라 친일의 과와 한국건국사의 공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일본제국주의 이후 일본의 국가적 성향은 변하지 않고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준비해야 하는건 과거의 친일을 청산하자는 것이 될수도 있지만, 같은 비중으로 국력을 계속 발전시키고 현대한국의 가치를 찾는길이라고 봅니다. 현대 한국이 있기까지의 장본인인 이승만과 박정희를 부정만 해서는 한국은 일제의 연장선인 괴뢰국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북한정권역시 이에 대해 집요하게 한국의 진보정당에 숨어들어 한국사회전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역시 건국과정에서 친일파를 상당수 등용하기도 했으며 현재에 와서 이들을 처단하게 된건 친일문제때문이 아니라 수령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힘을 얻어가는 쪽을 숙청한것입니다. 한마디로 남과북 어디에도 진정한 의미의 친일청산을 한쪽은 없고 냉전시대에 각자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각자의 국가를 발전시켜온것이고 그 와중에 국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친일파를 이용하기도 제거하기도 한것이죠. 그 결과는 현재의 남북의 모습에서 결론지어졌다고 할수있습니다. 가슴속에 이상은 가질수 있되 머리로는 현실을 맞딱뜨리고 생존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구선생이 이상적인 성향을 가지고 추앙받을지언정 시대흐름속에서 현실해법을 찾지 못했던것 역시 인정을 해야합니다. 안타까운일지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얽메여 현실을 부정만해서는 또다시 조선시대 말의 쇄락으로 갈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의 좌우충돌은 발전적이라기보다는 조선시대 소모적 당파싸움을 보는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한국건국사의 새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이전에는 친일적인 성향의 인물들을 변호해주고 안좋게만 봤지만 점점 한국의 생존을 위해서 이상주의에 머무를수만 없다는 결론이 나더군요. 하지만 친일인명사전등 역사를 바로보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 알고있으면 충분한 일이지 연좌제같은 굴레를 씌워 현재를 부정하고 한국사회 전체를 부정하는것은 잘못된것이라 생각합니다.
12/03/14 09:56
긴글로써 설득력을 가진 논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군요. 글재주도 없고, 또 지금 잠시 들린 참이라 많은 말은 못남깁니다. 1. 친일은 과거사가 아니고 여전히 현재에도 지속되는 문제이기 때문. 즉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주요원인이기에 결코 '과거'라는 이름으로 넘길수가 없는 문제다. 2. 공과 사를 같이보자고 하셨는데, 친일파에게 지속적으로 재기되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애초에 공만 인정하고 사는 인정 자체를 하지 않거나, 혹은 합리화시키거나 감추려하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친일파나 그 후손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했다더라 이런 이야기 들어본적이 없네요. 공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분명히 드러나 있을 뿐더러, 오히려 사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기에 그런 겁니다. 3. 저 동영상이 말하고자 하는바도 바로 그거죠. 현정부 비롯해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를 아예 말살하겠다는 거잖아요. 장기적 관점에서. 또한 교육으로. 심지어 건국이념도 부정한다는데 말 다했죠. 4. 연좌제의 굴레를 씌워서는 안된다는 건 맞는 말씀인데, 개인적으로 정말 피속에 뭐가 흐르나 싶을 정도로 그 후손이 그나물에 그밥의 행동을 보여주는 케이스를 뉴스로 많이 접했던거 같습니다. 이완용 후손이 국가상대로 부동산 소송한다거나 하는거 말이죠. 이또한 바로 진심어린 반성과, 과거사에 대한 바로잡음, 청산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충분히 설득력있지만 글 전체에서 느껴지는 논지가 왠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저 동영상을 비롯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애초에 현재를 부정한 적도 없고, 한국사회를 부정한 적도 없기 때문이죠. 친일파 청산을 확실히 하고 가는 것이 한국사회를 부정하는 것과 전혀 동의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구요. 오히려 제대로 공을 인정해주기 위해선 사 역시도 확실히 인정해야 하는게 맞지요. 친일은 선조가 한게 맞습니다. 근데 지금 교과서에서 그거 삭제하고, 교과서 바꾸고 하는게 100년전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까? 아니지요. 현재 이시간에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우리 동시대 인들입니다. 그때문에 친일청산이 현실이지 과거사가 아닌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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