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워져오는 해운대의 밤하늘위로 달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한여름이 지나가버린 해변의 모습은 참으로 고즈넉했다. 사람들은 이미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였다. 나는 그 고요함과 적막함이 선사하는 바다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나는 그 음침한 고독을 좋아한다. 고로 나는 섬이다. 온전히 나라는 존재만이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섬. 바다에 떠 있는 섬만 섬이 아니고 혼자 떠 있는 것 모두 섬이다.
나는 오랫동안 고독을 즐겨왔다. 아니 즐겨왔다고 믿어왔었다.
“친구 따윈 필요 없어.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가는 것.”
아직 철부지에 불과했던 중학생 시절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나는 친구가 없었다. 내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단 한 명도. 그래서 나는 늘 고독했다. 누가 내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가장 서러웠던 적은 언젠가요? 또 뭐가 그리도 서러웠나요?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무래도 중학생 때 가장 서러웠던 것 같아요. 그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건넬 친구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뭐가 그리도 서러웠냐고요? 음,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내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은 데 추한 내 모습을 마음 편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그럴 땐 정말 씁쓸하기도 하고 무진장 서럽더라고요.”
그래도 나는 외롭지 않다고 내게 혼잣말을 했다.
“괜찮아. 나라는 존재만으로 충분히 완전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바보 같았던 거짓말에 불과했다. 아직 어렸던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 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무서워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했다.
“여러분들은 혹시 고슴도치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아세요? 제가 딱 하나 알고 있는 방법이 있는 데 알려드릴까요? 그건 바로 고슴도치가 아무리 나를 향해 가시를 쏘아도 그저 말없이 꼭 안아주는 것. 왠지 그럴듯하지 않나요?”
고등학교 시절 나는 독이 묻어있는 찔리면 즉사할 정도의 가시를 내게 다가오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뿌리고 다녔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나를 추방해버렸다. 이 세계와의 단절 그리고 유폐. 그러자 내게 고독이 찾아왔다. 여름 끝자락의 어느 늦은 밤에도 끊임없이 촤아아 소리치며 밀려오는 바닷물처럼. 그런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아무리 가시를 쏘고, 밀쳐내도 언제나 썰물처럼 다가왔다. 지치지도 않고 한사코 내게 닿으려 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때를 회상하면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허나 분명한 것은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온갖 세월을 이겨내며 조금씩 마모되듯이 나라는 존재도 그들로 인해 은근 슬쩍 변해갔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나는 항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고자 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간절히 원할 때, 기꺼이 작은 조각배 하나를 만들어 육지에 사는 그들에게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더 이상 난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스물다섯이 된 내 곁에는 친구들이 제법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간추리고 또 간추리면 정말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지도 모른지만 말이다. 나는 요즘 친구들을 매일같이 보고자 애써 노력한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려는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잊혀 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닳아 없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내 에너지소모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친구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들과 만나서 얘기하고 맛있는 것들을 먹고 마시면 그 순간만큼은 최고의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와 동시에 최악의 스트레스도 받는다. 왜일까? 나름의 고민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아, 사람의 본성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구나.”
나는 친구라는 존재들을 통해 대인기피증을 많이 해소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착각이었다. 많이 해소는 했지만 아직도 나는 사람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을 만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이 부단히도 내게 와 닿으려 했던 그 몸부림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본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용어 중에 하나가 ‘나는 □□□다’라고 정의내리는 문장이다. 이번 학기에 나는 전성욱 교수님의 문예비평론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는데 첫 시간에 들었던 비평의 대한 말씀이 문뜩 내 뇌리에 스친다. 비평이란 올바른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어떤 작품에 대해서 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말 제대론 된 비평이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단정 짓지 않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즉, 비평은 정답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 친구란 어떤 의미인가? 내게 있어 친구는 □□□다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존재이다. 중학생 때는 없어도 그만인 존재, 고등학생 때는 있어도 괜찮은 존재. 그렇다면 대학과 군대를 거치며 도달한 스물다섯의 나에게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내게 말한다.
“태양이 있으면 달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따로 떼놓고는 도무지 성립할 수 없는 관계가 바로 친구라는 존재가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순간 새벽이 가까워져오는 해운대 앞바다의 싸늘한 밤공기를 맞으며 생각한다.
“내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자. 이제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자. 있는 그대로를 믿자. 그게 정답이 아닐까?”
이런 사색에 잠겨있는 동안 내 옆에 있던 친구 녀석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너무 늦었어.”
“음, 그래야겠다.”
나는 그날 밤 심야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들었다. 그 노래제목처럼 내 친구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체 오래도록 머물러주기를 바라며 나는 이 글을 9월의 첫째 날에 써본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내가 가장 어둡고 침울했던 터널을 힘겹게 지나던 그때 묵묵히 내 옆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며 걸어주었던 K, P, S군에게 바친다.
추신.
제가 이번에 학교에서 수필을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한 편씩 수필을 써야만 합니다. 이번 주 수필 주제는 '거짓말'입니다. 고작 15매 분량 밖에 되지 않는 수필 한 편을 쓰기 위해 거의 일주일 동안 전전긍긍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힘겹게 쓴 작품을 피지알 유저분들께 피드백을 받아보면 어떨까 해서 용기내어서 글을 올려봅니다. 부디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는 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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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주제는 되지 않지만, 피드백을 원하신다고 해서 굳이 비판적인 시선으로 글을 봤는데요, 우선 '거짓말'이란 주제와 본문의 글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년기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었지만 여전히 친구들을 만날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한다. 나의 본성이 외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글이 진행되다가, '친구란 무엇일까. 더이상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자. 내 친구들이 여전히 아름다운채 머물러줬으면 좋겠다' 라고 글이 매듭지어지는데, 여기서 거짓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주제라고 하기에는 '거짓말'이 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낮아 보입니다. 글 전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시려면 최소한 '본성' 부분은 떨어져 나가는게 옳지 않나 싶습니다. 혹은 그 '본성'이 결국 '착각'이었다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강조되어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