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차도녀 포스가 납니다.
금방 저에 대해서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자매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회사이야기랑 친구이야기 뭐 대충 그런잡담을 합니다. 약간 투명인간이 된거 같기도합니다.
굳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깨트리지 않고 얌전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타이밍을 기다립니다.
'아침에 출근할때 집에서 나오는데 뒤에서 '바보야' 부르는기라.
그래서 막 쳐다봤는데 다시 '바보야' 그러는거다. 그래서 난 둘째오빠야가 와서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모르겠다.'
'미쳤나? 아직도 금마 생각하나? 치아라. 그리고 너무 재지마라 노산한다'
'노산이라니! 내가 왜 노산을 하는데? 빨리 남자 잡아서 시집갈꺼다 내 노산안한디!'
'안그래도 아버님이 접때 부산왔었을때 너 서른살 되기전까지 잘부탁한다고 신신 당부를 하고 가셨는데...
내 보니깐 너는 노산할 거 같다.'
'아이다! 노산 안한다니깐!!!'
...음 가만히 들어줄려고 했는데 노산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산 그러니깐 애 늦게 낳는 여자들 뭐 그런 이야기 맞죠?
'아, 저는 서른살되기전까지 성미씨가 숙이 보살펴주신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본인의지로 그런걸줄 알았는데 숙이 아버님이 따로 부탁을 하셔서 하는건가 보네요?'
'아, 접때 재네 아버님이 집에 오셨을때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근데 여까지 내려 오는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아 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기차타고 오면 더 빨리 오긴 하는데
기차역까지 가는 시간도 좀 있고 버스타고 오는게 훨씬 편해서요!'
'나도 이렇게 멀리서 내 보러 오는 남자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이게 좀 괜찮은 남자가 와야 기분이 좋고 뭔가 그럴듯하지.
저같은 사람이 오면 기분 좋을거 같지는 않은데요?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지 않나?'
이건 좀 자폭멘트 같습니다.
'사실 회사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근데 둘이서 길이 엇갈려서 다시 연산동에서 만난거에요.
예전에 한 7~8년쯤 숙이가 저 보러 충주에서 올라온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강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녀석이 저희동네 부천으로 놀러온거에요.
그때 제가 한 2시간은 돌아갔죠. 정말 옛날이나 지금이나 저희는 발전된게 없네요 하하.'
'맞나? 언제 그랬나?'
'예전에 수능 끝나고 명은이랑 같이 오빠네 동네로 놀러갔었는데 둘이 갈린적 있었다'
룸메는 또 무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 거립니다.
9.
그래도 아까보다 조금 분위기가 부드러워진거 같습니다.
이제 술이랑 안주가 나왔습니다.
룸메님이 다시 말을 건넵니다.
'술 잘해요?'
'술 먹어도 되냐구요? 아 혹시 숙이가 저 술먹으면 안되는 몸이라고 미리 말해놨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술 잘 드시냐구요?'
'아 미안해요. 잘못들었네요. 네! 자주는 안마시는데 마실땐 잘 마십니다. 술 좋아해요!'
룸메님이 주전자에 담긴 2통1반을 따라 줍니다. 시원하고 달달하니 좋네요.
그리고 정구지찌짐이를 시식하더니 한 마디 하네요.
'아, 맛에 임펙트가 없다.'
맛에 임펙트가없다.
어디가서 써먹어야 겠네요.
또 한참 자매님 룸메님 둘이서 떠듭니다.
'아, 영화본다 했나? 내 그러고보니 캐리비안의 해적을 봤는데!
거기서 너무너무 이쁜 인어가 나오는거야. 진짜 눈돌아갈정도로 이쁜 인어가 샤악 하고 나오는데!
그 이쁜 인어가 사람을 살짝 홀려놓더니 확!!!!!!! 하고 그냥 잡아먹는다! 진짜 놀랬디!
그리고 또 죠니뎁 멋있어서 그거보는 재미로 보고 3D로 보면 좋을거 같다!'
'인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진짜진짜 이쁜 인어가 남자를 그냥 확 잡아먹는다. 완전 무섭다! 3d로 보면 괜찮을거 같다.'
'맞나? 3D로 볼까 그러면...내일 7시에 서면에서 연극도 봐야되는데!'
슬쩍 한마디 꺼내봅니다.
'제가 아까부터 봤는데요. 저기 역에서 여기 술집까지 들어와서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숙이가 계속 쉴세없이 성미씨한테 징징징 대는거 같거든요.
가끔 투닥 투닥 거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깐 딱 판단이 서네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숙이 재 때문이네요. 정말 데리고 사는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뭘요, 하루이틀도 아닌데 그냥 그런갑다 생각하고 삽니다.'
'아니요. 저도 가끔식 징징대는거 받아줘서 아는데
그거 매일매일 얼굴보고 데리고 살면서 받아주시는거 잖아요. 진짜 대단한 일이에요. 존경합니다!
전 오기전에 딱 사위보는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왔거든요?
근데 지금 보니깐 강아지 한마리 키우는 주인님 딱 그런 수준이네요'
'할퀴고 때린다구요? 이야 못됐네
그리고 정말 이쁘시다고 말씀 많이 들었거든요.
가끔 이야기하면 허구언날 '우리 룸메랑~' '우리 룸메가~'
이런이야기 지겹도록 듣거든요!!'
'보니깐 별것 없지요?'
'아니 뭐 솔직하게 말하면 하하...'
둘의 대화를 가만 가만 듣고 있던 자매님이 빽! 소리를 지릅니다.
'아부 좀 하지마라!!! 성미한테 관심있나? 남자친구 있다 건들지 말라고!'
'이 정도로 아부는 무슨! 이 정도로 아부 축에도 못끼지.
남친있는 여자한테 한번 고백했다가 까인 전과가 있긴해도 내 그렇게 경우없는 사람은 아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술이나 마셔라!'
으흠 분위기 좋나?
10.
2통1반 주전자가 이제 반넘게 비운거 같네요.
'저희가 원래 이렇게 자주 연락하고 얼굴보고 그런 사이가 아닌데요.
요 근래 저녀석이 하도 징징대는 횟수가 많아져서 이렇게 찾아오게 됐거든요.
지지난주에는 아침에 울면서 전화하면서 죽고싶다고 막 징징댔다니깐요.'
'지지난주에? 아침에요? 울면서요? 뭔데 또 질질 짰지.'
'넵, 그러게 말입니다. 오죽 했으면 제가 여기까지 내려왔을까요.
뭐 지난주에 문자로 장난친것도 있고 요즘 좀 우울해하는거 같아서 놀러온거에요'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라, 오빠 얼른 술 한잔 받아'
'니 지금 술주면서 이야기 못하게 막는거 보니 내한테 뭐 찔리는거 있는갑제?'
'완전 예리하시네. 짱이에요. 그게 뭐냐면요...'
'술 마시라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그 소리 할려고 여까지 내려왔나!'
'알았다 알았다. 흥분하기는...'
역시 싸움은 관전자가 있어야 재미가 두배가 되는거 같습니다.
다시 룸메님에게 말을 건네 봅니다.
'근데 아까 둘째 오빠야 어쩌구 하던데 제가 모르는 오빠들이 많나보죠?'
'글쎄요. 재는 오빠야들이 하도 많아서 저도 잘 모르겠네요.'
'둘째오빠면 셋째오빠도 있고 넷째 오빠도 있는건가?
야 거기 자매님 나는 그럼 몇순윈데? 내가 첫째 오빠야?'
'음 모른다. 내 남자 관계 다 알지 않나! 오빠는 0순위다! 0순위!'
'와, 감동받아서 눈물나 돌아가시겠네 거짓말안하고 진짜 0순위?'
룸메님이 한마디 끼웁니다.
'0순위가 한명이 아닐지도 모르죠. 왜 꼭 한명일거라고 생각함?'
'아, 맞다 그럴수도 있구나. 역시 얼굴 보길 잘했다. 이런 대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저놈이 맨날 저보고 특별하니 뭐니 하면서 절 묶어둘려고 하는데 한번 와서 실체를 벗겨보고 싶었거든요.
완전 고맙네요 진짜. 아 그리고 최근에 저랑 잠깐 메신져에 대화하신날 집에가서 재 보고 어장관리 한다고 한 소리 해주셨다면서요?'
그리고 저 놈이 정색하면서 아니라고 해서 둘이 한판 하셨던데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쫌 후련했어요.'
'뭐 싸운거 까진 아닌데 언제 그랬는지도 기억도 안나고...'
'짝사랑 오래하니깐 폐인되겠더라구요. 못해먹겠어요 정말!
오늘 여기서 끝장을 봐야 제가 다른 여자를 찾든지! 아님 다른 이현숙을 만들던지!
그게 아니면 게이남자를 찾든지 그럴 수 있을거 같아서요.'
뜬금없이 좀 끈적끈적한 나갔습니다. 이런 말 들으면 좀 불편할까요?
자매님이 딱 여기서 말을 끊습니다.
'맞다! 내 게이남자 빨리 소개시켜줘!'
'봐요? 이런다니깐요? 제정신 아닌거 같아요. 이태원으로 와라.
밤 11시 넘어서 거기 이태원 파출소 건너편 앞에 우리나라 게이,레즈,트렌스젠더 90%가 거기 다 모여있댄다.'
'내가 거길 어떻게 가냐! 빨리 게이남자 만들어서 소개시켜줘!'
'니가 가서 만들어야지 내가 어떻게 만들어서 해주냐 나보고 게이되라고? 확 그냥!'
뻘소리를 듣고있던 룸메가 한마디 끼웁니다.
'그냥 니가 가서 '안녕? 나 레즌데 내랑 친구할래? 하면서 레즈친구 만들어라'
'안된다. 레즈친구는 어렵다. 그런거 말고 게이친구...'
어우 증말...
'제가 게이는 만나본적이 없는데 바이는 만나본적이 있거든요. 혹시 바이가 뭔지아세요?'
치즈계란말이를 씹던 룸메가 대답합니다. '그거 양쪽다..'
'네, 아시네요. 뭐 만날려고해서 만난건아니고 어쩌다가 술 한두번 같이 먹은적있었는데요.
갑자기 남자도 좋고 여자도 좋다고 고백을하는데 아 순간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전 평소에 엄청 오픈마인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런 사람이 닥치니깐 제가 막 어려워하는거에요.
들었냐? 니가 게이게이 타령해도 진짜 만나면 지금처럼 막 못한다니깐!'
'아 뭐야, 그럼 그 사람 소개시켜줘!!!'
'몰라 이제 연락 못한다. 원래 친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남자바이다.
뭐 사실 그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 바이였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놀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여자 둘이서 노산이 어쩌구 저쩌구를 하더니...
남자는 한술 더 떠서 게이가 어쩌구 바이가 어쩌구를 합니다.
둘끼리는 알고 지내지만 한쪽은 처음만나는 사인데 뭔가 좀 정상적인 대화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부산까지 쳐내려와서 게이드립을 치다니 이 망할놈의 인터넷을 어서 끊던지 해야지.
11.
이제 슬슬 안주도 다 떨어지고 술도 다 비워 갑니다.
'아 얼마전에 제가 성미씨한테 전화 바꿔달라고 막 해서 저녀석이 안바꿔준다고 막 뭐라 하다가...
저희 둘 사이에 휘말리신적 있잖아요. 그게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었는데...
저놈이 질투가나네 안되네 막 하면서 그러길래 제가 좀 재미있기도 하고 약간 오기가 생겨서 놀려본거거든요.
그래서 저 바꿔주시고 아무말도 안하시고 끊으신다음에 둘이서 또 그걸로 한판하셨는데...그때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