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선글라스가 사고 싶었다.
가끔 이러는 때가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필요하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물건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할 때가 있었다.
대개의 경우 그런 물건들은 결국 내 손안에 들어와 있었고, 그 한 달은 꽤나 배고프게 지내야 했다.
온라인 상의 사진만으론 부족했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오늘. 백화점에 가기에 아주 적합한 오늘.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은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저 게을렀기 때문이었다. 봐두었던 몇 개의 선글라스들을 써보았다. 다행히도 확연히 마음에 드는 모델이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 백화점에서는 사지 않는다. 내일 평소 알던 안경점에 문의를 해 볼 것이다.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아직은 바람이 차다. 코트의 깃을 펴 목을 덮었다. 무의식적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을 마시자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해야할 많은 할 일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일수도 있었다. 문득 왜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사냐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오늘은 술을 참아보기로 했다. 집에 가려면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만 한다. 첫 번째 버스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 파트너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은 조금 귀찮았다. 하지만 잠시 뒤 나는 시간을 낭비하기로 마음을 먹고만다. 파트너에겐 첫 번째 목적지를 말해놓고 근처의 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좀 보았다. 흥미롭게 다가오는 책이 몇 권있었다.
'그래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놈은 아니야. 가끔 이렇게 책도 사러오고, 나름 사색이란 것도 하고 있잖아.'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떠올라 드는 약간의 자괴감을 스스로를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참 책을 읽고 있을 때 파트너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급한 사정이 생겨 약속을 취소해야할 것 같다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상관없었다. 환승시간이 지난 탓에 버스비 900원을 더 내야하는 사실 빼놓고는 그다지 불쾌하게 다가오는 일은 아니었다.
책을 조금 더 보고 온김에 음반쪽도 구경했다. 새로보는 뮤지션의 시디를 청음해봤는데 굉장히 맘에 들었다. 읽고싶은 책에다 맘에드는 뮤지션까지 생기다니, 꽤나 얻는 것이 많은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좋게 마지막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넓은 차도를 보고 일본과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일본에서 생활하는 친구의 집에서 나눈 대화로 이어졌다. 친구는 나에게 그런 파트너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번엔 파트너와 처음 관계를 맺었던 날로 이어진다.
'가장 최근에 했던 적이 언제야?'
차에 나란히 앉아 내가 했던 질문이었다. 아슬아슬하던 분위기가 한 쪽으로 기울게된 시발점이기도 했다. 생각은 또 꼬리를 물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스터디 그룹 멤버들에 관한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술자리 역시 정말 즐거웠다고 했었다. 그녀가 즐거웠다면, 나 역시 큰 불만은 없었다. 다만 그러한 자리에 내가 없었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사실 우리 스터디 사람들이 그렇게 막 노는 사람들은 아닌데, 술 게임같은걸 할 때는 정말 잘 노는 사람들이거든. 그래서 되게 재미있어.'
'했던 술게임중에 재미있었던게 뭔데?'
'아 저번엔 진실게임을 했었는데 누가 질문을 센 걸로 하자 했더니 너도나도 다 좋아하는거야. 진짜 그런 질문도 하고.'
'아 정말? 뭐 어떤 질문 했는데?'
'음, 예를 들면 '너 최근에 언제 했어?' 이런 질문도 했었어.'
생각의 꼬리가 끊어졌다.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제 머리 속에만 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분은 좋지 않았다. 아직도 그녀라는 존재에 영향을 받는 나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버스가 도착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