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죄송합니다. 휴 정말 늦었네요. 늦은 만큼 오늘은 평소보다 분량이 쬐끔 더 많습니다!
흥미진진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구요. 이제 본격적인 전개가 열립니다. 다음편으로 연주 에피까지 나오고 수영이가 나온답니다!
우리 수영이 너무 못나와서 안타까웠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많이 나올 거랍니다.
또 인물에 대한 예고도 있네요.^^
그럼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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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너 아까 표정 보기 좋더라? 그렇게 예쁜 여자 친구를 숨겨 뒀을 줄이야!”
“여자 친구 아니라니까.”
주찬이가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나에게 키득거렸다. 녀석의 웃음에 나는 뾰로통 대답할 뿐이었다.
젠장. 어쩐지 아침부터 느낌이 쏴하더라니. 아니 정확히는 어제 밤부터였다. 지금생각해보면 그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어?’
갑작스럽고 황당했던 종전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소희가 난데없이 과실에 등장한 것이다.
‘아 여기 맞네. 진짜 길 찾느라 힘들었다. 이현우!’
내게 반말을 하는 이 언니 누나가 과연 누구인가? 신입생들의 물음표 가득한 시선이 빗발쳤다. 하지만 나는 달리 설명할 여유도 없이 당황해서 입만 뻥긋거렸다. 진짜로 놀란 쪽은 나였기 때문이다. 미리 연락도 없이 갑자기 나타다다니.
어제 소희의 내일 뭐하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그냥 넘기는 게 아니었는데.
“하긴 네 여자 친구하기에는 아까워 보이더라.”
수돗물을 잠그며 놀려대는 주찬이의 말에 상념에서 깬다.
“왜?”
“왜긴 왜냐. 딱 봐도 예쁜데다가 쿠키 같은 것도 만들 줄 알지, 사교적이고 밝은 성격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 그러니까...”
주찬이의 말에 나는 그야말로 복장이 터진다. 이래서 소희가 사람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 꽤 예전부터 그랬다. 모르는 사람과 있을 때 소희가 나타나곤 하면, 항상 사람들의 패턴은 똑같았다.
여자 친구? 아니. 하긴 네 여자 친구로는 아깝지. 왜? 예쁘지. 성격 좋지. 요리 잘하지. 다 잘하잖아! 괜히 멀리서 좋은 여자 찾지 말고 가까운 데 있는 좋은 여자를 잡으라고!
“행여나 쟤 만날 생각해보라는 말은 하지 말아줄래?”
“어? 혹시 이거 관심법?”
역시나 주찬이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주찬이는 재밌는 듯이 킥킥거리며 내 어깨를 툭 치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망할 놈. 물기도 다 안 닦았잖아. 복수심이 샘솟아 재빨리 주찬이를 쫓아 녀석의 등짝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아 유치해!”
“시작은 네가 먼저 했다?”
식겁하는 주찬이를 향해 브이 자를 날렸다.
“근데 꽤 괜찮은 분 같은데 왜 이렇게 정색 하냐?”
주찬이의 물음에 한숨부터 푹 쉬어졌다. 네가 진짜 소희 성격을 몰라서 그래. 제일 친한 친구에게 소꿉친구 뒷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한다고 해도 믿지도 않을 것이다. 나만 이상한 놈이 되지. 이럴 땐 그냥 넘어가는 게 최고다.
“그냥.”
“이상한 놈.”
망할. 뭘 말했어도 결론은 내가 이상한 놈인 것 같다.
“와 진짜 맛있어요. 언니! 이거 어떻게 만든 거예요?”
“별로 안 어려워. 효신이도 조금만 하면 될 걸?”
“정말요?”
주찬이와 과실 근처에 다다르자 복도에서부터 잔뜩 들뜬 효신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벌써 무한소희교의 신앙 깊은 신자가 된 것 같다. 뒤이어 들려오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소희님의 은총. 왠지 효신이의 지금 표정은 안 봐도 알 것 같다.
매번 소희가 불쑥 나타날 때마다 나로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에 복장이 터질 것 같지만, 소희의 사교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누굴 만나도 잠시면 오랜 친우였던 것 같이 친해져버린다.
“저기 저도 될까요? 언니.”
심지어 연주마저.
“그럼! 연주 너도 물론이지. 나도 처음에는 엄청 못 했었는걸? 거기에 어떤 바보가 내 첫 요리를 먹고 엄청 투덜거렸었지.”
설마 어떤 바보가 나?
“현우 오빠요?”
은성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은성이가 감이 좋네. 맞아.”
순간 욱하고 가슴 속에서 억울한 뭔가가 튀어나온다. 라면도 요리로 쳐주는 거냐고. 그것도 팅팅 불어서 우동인지 라면인지 분간도 안가는 그걸.
“저. 근데 언니랑 현우 선배는 어떤 사이에요?”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연주가 조심스럽게 소희에게 물었다. 아주 잠시. 몇 초의 정적이 흐른다. 내가 막 그 정적을 깨러 과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주찬이가 날 붙잡았다. 놀란 눈으로 녀석을 돌아보자 주찬이는 점지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다 댔다.
“쉿.”
아니 왜 대체 이걸 밖에서 숨어서 들어야 하냐고. 그러니까 나와 소희는 그냥 소꿉친구일 뿐이라니까.
“소꿉친구야. 그리고...”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다급해진 나는 내 팔을 붙잡고 있던 주찬이를 뿌리치고 과실로 들어섰다.
“애들아!”
그리고 다시 정적. 순식간에 집중된 이목이 굉장히 따갑다.
“하하하. 공부해야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애꿎은 뒷머리만 벅벅 긁는다.
“뭐에요. 오빠! 한창 소희 언니랑 재밌는 얘기하고 있었는데!”
은성이가 산통이 깨진 것이 심기불편하다는 듯이 내게 핀잔을 늘어놓았다. 은성이부터 시작된 여론은 연주, 효신이, 다민이에게까지 번진다. 허허. 허탈하다. 이래서 후배는 잘 해줘봐야 소용이 없는 거라고 하는 걸까. 나랑 그래도 1년 넘게 알던 녀석이 안지 몇 시간도 안 된 소희와 더 친해보인다니.
“괜찮아. 얘기는 다음에 더 하면 되지. 난 이만 가봐야겠다.”
“에? 벌써요?”
“언니 가지 마요!”
이 정도면 이제 무섭다. 이거 소희를 국과수에 보내야하는 건 아닐까. 소희 몸에서 마약이라도 나오는지 여자애들이 단체로 소희를 붙잡고 있었다.
“공부 더 할거야?”
“아. 응.”
“그럼 정류장까지만 데려다줘.”
그래. 일찍 가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실에 남은 사람들과 소희는 작별 인사를 하고, 소희와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늘 근데 무슨 일로 갑자기 이렇게 불쑥 나타난 거야? 놀랐잖아.”
“그냥. 한 번쯤은 이래보고 싶었어. 너 학교 다니는 데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괴롭히고 싶었던 건 아니고? 하지만 참자. 나는 돌아가서 다시 공부할 몸인데 여기서 잠깐의 화를 못 참고 따지면 길고 긴 설교를 들어야 할 테니.
“쿠키는 언제 만든 거야?”
“그냥. 오늘 슬이 만나러 온 김에 슬이 선물 겸 너도 줄 겸해서 챙겨 온 거야.”
소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이라면 확실히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소희와 친한 친구였지. 슬이를 만나러 온 김에 내가 공부한다는 소리를 듣고 겸사겸사 들른 것 같다.
“근데 현우야.”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소희가 갑자기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연주라는 애 말이야.”
“응?”
“걔 맞지?”
뭐가 맞는다는 걸까?
“너 연주를 알고 있었어?”
“알았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냥 대충? 들었지.”
들었다고? 이상하다. 나는 소희한테 전혀 연주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소희에게 반문했다.
“잘 못 안 거 아냐? 나 너한테 연주 이름을 얘기한 적도 없는데?”
“아냐. 음. 그러니까 연주라는 애. 네 전 여자 친구였던 유혜성이라는 애 절친 아냐?”
멈칫.
소희와 함께 나란히 걷던 발걸음이 그대로 길 한가운데 멈춰 서버린다. 설마 소희한테서 혜성이 이름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긴 헤어지고 나서 소희에게 몇 번이나 힘들다고 토로했으니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맞나보네.”
“네가 근데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예전에 네가 통화할 때 얼핏 지연주라는 소리를 들었거든. 지연주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러네.”
수긍하며 멈췄던 걸음을 다시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유혜성이라. 간만에 듣는 그 이름이 무척 낯설면서도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다 왔네! 그럼 가서 마저 공부하고 와. 난 먼저 갈게.”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정류장에 도착했는지 소희가 소리쳤다.
“아 그래. 조심히 들어가.”
“응. 그래도 오늘 꽤 재밌었어. 애들 되게 괜찮아 보이더라.”
“응.”
“또 어쩐지 남편 직장에 찾아와 내조하는 느낌도 들기도 하고. 그럼 간다!”
“응?”
아차 싶은 사이에 소희는 저만치 멀어져 때마침 도착한 버스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지금 소희가 무슨 말을 하고 간 거지? 딴 생각에 빠져 있었던 터라 정확히 듣질 못했다. 단지,
오싹.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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