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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0/02 13:23:47
Name aura
Subject [일반] <단편> 카페, 그녀 -23 (부제 : 연애하고 싶으시죠?)
전 편을 안보신 분들은 꼭 1편부터 제 닉넴으로 검색해서 봐주세요.
분량이 조금 많겠지만요...

기다려주신 분들... 있으시겠죠!? 있다고 믿습니다. ㅠㅠ 나름 짧은 연재 주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희 에피는 한 편더 지속되고(다음 편의 반 정도 분량 차지할 예정) 이어서 연주 에피가 나올 거에요.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 - -



##


“그래서 재료는 뭘 사면되는데?”


주말이어서 그런지 마트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렇게 사람이 숨 막힐 정도로 부대끼는 분위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빨리 장을 보고 나가고 싶었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희는 태평하게 마트 코너들을 천천히 거닐었다.


“야! 남자가 좀 좀스럽게 보채지마. 지금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소희가 버럭 했다. 중요한 일이 전혀 식품과 관련 없는 코너를 도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길고 긴 소희의 설교를 마트 안에서 들을 자신이 없어 참았다.


우습게도 소희와 나는 타르트 재료를 사러 와서 그것과는 거의 상관없는 주방용품 코너를 빙빙 돌고 있었다. 이따금씩 걷다가 소희가 ‘아!’하고 탄식을 지를 때면 어느새 새로 나온 프라이팬이나 칼, 모양이 예쁜 도마 따위를 보고 있었다.


주방용품이야 기본기능에 충실하고 내구성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악취미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면은 확실히 소희답다라고 느껴진다. 다른 또래의 여자들이라면 주방용품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을 텐데. 과연 비범했다.


“하. 요새 어떻게 된 게 제대로 나오는 게 없네.”


계속해서 코너를 살피던 소희가 자리에 멈춰서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여자의 쇼핑은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소희는 그렇게 살펴보던 주방용품은 단 하나도 사지 않았다.


“가자. 기본재료는 집에 다 있으니까 밀가루 박력분이랑 강력분만 좀 넉넉하게 사가면 돼.”


곧바로 식료품 코너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소희의 모습을 넋 놓고 쳐다봤다. 나는 도대체 무얼 위해서 30분간 소희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닌 걸까. 옆으로 보이는, 나란히 걸려 있는 프라이팬들이 괜히 얄밉다. 차라리 조그만 과도라도 샀으면 덜 억울할 것을.


“안 와?”
“어? 가!”


속으로 억울함을 삭히며 서있던 나를 소희가 불렀다. 또 무슨 꼬투리가 잡힐까 싶어 바로 소희의 뒤를 따라갔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라면 이제 딱 재료를 사고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래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내는 거야.


주말 동안 장을 보고 있는 무수한 인파들을 뚫고 마침내 나와 소희는 밀가루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이 하얀 것들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십년지기 친구를 만났듯이 기뻤다.


“아무거나 사면 돼지?”
“안 돼!”


대충 눈앞에 보이는 밀가루를 집어 장바구니에 넣으려던 나를 소희가 멈춰 세웠다. 음. 뭐랄까 지금 이 상황은 개밥을 받아먹는 개에게 주인이 절제를 훈련시키는 느낌이었다. 참 형용할 수 없이 착잡한 기분이다.


“왜?”
“이것저것 보고 사야지. 그냥 아무거나 막 사면 안 돼.”


밀가루가 다 같은 하얀 밀가루지. 밀가루하나 사는데 따질 건 또 뭐가 이렇게 많은 걸까. 하지만 역시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불만 한 번 말하고 삼십 분 이상 선 자리에서 설교를 듣는 것은 최악이었으니까.


소희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밀가루를 집어 들고, 꼼꼼히 비교하다가 이내 하나를 선택해 커다란 사이즈의 밀가루 하나를 내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에 담았다. 손에 든 장바구니에 묵직함이 실려 왔다.


“이건 박력분이고, 이건 강력분.”


곧 이어 나머지 하나도 장바구니에 담겨진다. “이제 가자.”
계산대로 향하는 소희를 재빨리 쫓았다. 그런데 잠깐.


장바구니에 담긴 두 개의 밀가루 봉투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다 나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것들, 굳이 커다란 역 마트까지 와서 사지 않았어도 됐다. 그냥 동네 가게에만 가도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허허.”


허탈감에 너털웃음이 나왔다. 소희가 날 여기로 데려온 건 재료를 사기 위함이 아니었구나. 재료 사는 건 부(副)고 주(主)는 주방용품 사는 거였어. 나는 거기에 딸린 짐꾼일 뿐이고.


“안 와?”


저만치에서 소희가 살짝 짜증난 목소리로 외쳤다. 역시 은소희. 이제 이런 방식까지 고안해서 나를 괴롭히는구나. 손에 들린 장바구니와 저 멀리에 있는 소희를 번갈아보며 번뇌한다. 그러나,


“갑니다. 가요!”


넉살 좋은 말투와 함께 소희를 뒤따른다. 남자가 비굴하지 않느냐고? 어쩔 수 없다. 소희의 무서움은 오직 당한 나만이 잘 아니까. 정말 빈정 상해서 소희와 싸운다고 쳐도, 우리 집에 있는 ‘우리’ 엄마마저 소희 편을 드는데 어쩌리. 또 이제 와서 짜증내봐야 얻어먹을 수 있는 타르트마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아무도, 누구도 내게 비굴하다 비난할 수 없다.


그렇게 소희를 따라 줄이 길게 늘어선 계산대 앞에 섰다. 조금 기다리고 나서야 계산할 차례가 돌아왔는데, 나는 계산대 위에 밀가루 봉투 두 개를 투박하게 내려놨다.


삑! 하고 계산하시는 아주머니가 능숙하게 바코드를 찍는다.


“어머. 신혼끼리 뭘 만들어 먹나봐? 새댁이 재주가 좋네?”
“네? 뭐요?”


고객관리를 위해서 일까. 아주머니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바코드를 찍는 짧은 순간에도 소희를 칭찬했다. 문제는 내게 있어서 정말 무서운 말이 앞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스라치며 반문했다.


“어머? 사이가 너무 좋아보여서... 너무 어려서 긴가민가했는데 신혼부부 아니었어요?”


이 아주머니가 하라는 일은 안하시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너무 놀라서 입 밖으로 말도 안 나온다. 그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릴 뿐. 그런 내 옆구리를 소희가 쿡 찔렀다.


“그냥... 친구에요. 계산해주세요.”


계산대에 찍힌 가격을 보고 소희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지갑을 꺼내 카드를 아주머니께 건넸다.


“어머 미안해라. 둘이 너무 잘 어울려서 내가 오해했네.”
“아니에요. 괜찮은 걸요.”


소희가 괜찮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저런 모습이 더욱 무서운 소희다. 아마 저 미소를 본 아주머니는...


“어머! 예쁜 처자가 예의도 바르네. 내가 또래 나이 아들만 있었어도...”


이렇게 된다. 참 별것도 안하고 남을 자기편으로 잘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도 소희 편이 되어버린 것이겠지만.


너스레를 떠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마트를 벗어난다.


“집으로 가서 바로 만들 건데, 넌 어떻게 할 거야?”
“글쎄?”


그냥 이대로 집에 가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고, 병원으로 다시 가서 소민이와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젠장. 생각해보니 이런 저런 일 때문에 팽개쳐둔 과제나 다가오는 시험도 나름 걱정이긴 걱정이다.


“그럼 집에 가서 같이 만들고 소민이한테 좀 타르트 좀 전해주는 건 어때? 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병원은 내일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래?”


솔직히 안 땅긴다. 밀린 과제와 시험을 생각하니 당장 뭐라도 해야 덜 불안할 것 같았다.


“타르트 말고 만들어 놓은 레몬푸딩도 세 개 줄게. 콜?”
“콜!”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소민이를 위해서 좋은 일 한다고 치는 거야. 절대, 절대로 과제나 시험공부를 하기 싫어서 도피하는 게 아니다. 흠흠.


24에 계속..

-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이 제 힘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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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pelin
13/10/02 14:11
수정 아이콘
이번편은 소희편이네요.
우리 연주는 언제 나오는 겁니까ㅠㅠ
그나저나 소희네 집으로 가는건가요? 그런거죠?크크
13/10/02 14:14
수정 아이콘
네 갑니다! 소희집.. 어차피 같은 아파트 단지라는...

연주는 곧 나올겁니다^^
파란토마토
13/10/02 14:19
수정 아이콘
여기 기다리던 사람 한명이요!
잘봤습니다!
13/10/02 14:2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파란토마토님!!^^
미카에르
13/10/02 14:21
수정 아이콘
남주가 부럽습니다 크크 잘 보고 있습니다 aura님!
13/10/02 14:2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미카에르님. 훨씬 예전부터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머리요정
13/10/02 14:24
수정 아이콘
아, 수영씨 언제나오죠.....
13/10/02 14:30
수정 아이콘
크크. 수영이도 인기를 얻어가고 있군요! 다행입니다.
콩지노
13/10/02 14:40
수정 아이콘
호오 소희집에 가는군요 음....흐흐
13/10/02 15:53
수정 아이콘
요새 안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돌아오셨군요!
트릴비
13/10/02 16:13
수정 아이콘
난 남잔데 소희가 좋소 어헣..
아 이게 아니고...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판타지라 슬픕니다만.. 흑흑
13/10/02 16:21
수정 아이콘
트릴비님// 남자라면 소희가 좋은게 당연한겁니다??
천진희
13/10/02 16:27
수정 아이콘
이런 멍청한 주인공 같으니라구!
요리에서 좀 더 다양한 바리에이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집앞에서 살 수 있는 따위로 치부해버리다니!!
역시 주인공에게 소희는 너무 아깝습니다. 쳇쳇쳇ㅠ
13/10/02 17:08
수정 아이콘
하하 아깝죠..저도쓰면서 주인공이 부럽..
마음만은풀업
13/10/02 19:10
수정 아이콘
집에서 같이 요리를 하다니!! 수영아 보고있나
13/10/02 19:50
수정 아이콘
수영이 집에서 자고있데요... 이 댓글 내려주세요..크크
세상의빛
13/10/02 19:14
수정 아이콘
역시 이 작품은 하렘물이네요.
부럽다 현우야 흑흑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13/10/02 19:51
수정 아이콘
하렘물이 마음에 안드시는분도 많이 계시겠죠. 그래도 결말을 보시고나면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singlemind
13/10/02 22:24
수정 아이콘
이거이거 소희가 맘을폼고있네요~? 옆구리를 찔렀을때 소희볼은 빨개졌겠죠 잘봤습니다 현우가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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