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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09 01:57
제목에 대해서 답변하면..
차별은.. 그냥 자기중심적 본능에서 유래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이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특히 집단안에서의) 생존경쟁을 위해 조금이라도 자기세계를 보호하고, 더 나은 위치를 만들며, 희소한 자원을 더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속하는 집단이 우월하다는 정신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 차별이라는 어찌보면 합리적인(?) 기재를 사용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11/12/09 02:16
인종 차별은 단순히 다름에 대한 경계는 아닌거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밤길에 흑인이랑 길을 가는게 백인이랑 가는 것 보다 더 무섭죠.(물론 이건 사회적인 요소도 있긴 합니다 소득차이 등) 그리고 우리나라만 해서 백인들을 선호하는 풍토가 어느정도 있고.. 처음엔 다름에 대한 차별이었을지라도, 지금의 인종차별은 과거로부터 누적되어온 서구 중심의 문화적 학습의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만 밤이라서 제 머리가 안 돌아가네요 ㅠㅠ 담에 꼭 또 읽어보겠습니다
11/12/09 02:18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인종' 차별이 자연발생적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어요. 인종이라는 구분도 모호하지만, 어쨌든 애초에 인종 구분이 생겨날 만큼 인간의 외형적인 모습이 달라진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고, 그런 모습이 달라지게 된 과정도 지리적인 격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요. (물론 인종간의 외형적인 차이에 대해서 성선택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 어쨌든 과거에는 지금처럼 교류도 거의 없었던 만큼, '다른 인종' 에 대한 차별을 위한 통계적인 경향성을 만들어낼 만한 토대가 거의 없지 않나 싶어요. '다른 인종'과의 교류가 빈번했다면, 통계적이고 경험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그런 판단이 대물림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네요. 인종 대신에 소규모의 '집단'으로 한정한다면 차별을 위한 경향성을 만들어낼 만한 토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보통 내집단 -외집단 논리라고 하죠.) 이걸 인종차별의 자연발생적 토대로 연결시키는 건 비약이라고 봐요.
11/12/09 02:22
그런데 정리하신 전제들로는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는게,
인종차별의 자연발생적 토대를 주장하시는 분들도 '인위적인 과정'에 의한 차별의 재생산, 확대를 부정하시진 않을 것 같거든요. 인과관계를 인종차별의 자연발생적 토대 -> 차별 로 단순화하지만 않는다면, 인종차별의 자연발생적 토대 + 인위적인 과정 -> 차별 로 볼 수도 있고, 이것도 딱히 양립불가능한 논리는 아니에요.
11/12/09 02:31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차별이 탄생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인위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뭔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무슨 코멘트를 달아야할지.. 피지알에서 저도 종종 글이나 댓글 쓰면서 느끼는 건데 너무 공격받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글이 너무 재미없고 당연한 소리만 하게 되더라구요. 어쩔때는 약간의 도발도 필요..흠흠..
차별의 인위적인 발생과 자연적인 발생의 차이가 뭔지 애매하네요. 본문의 차별이 발생하는 과정은 자연적이라기 보단 너무 인위적입니다. 예를 들어 야오밍과 최홍만의 차이, 그 자체가 인위적이죠. 혹시 일부러 자연발생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기 위해 인위적 차이에 대한 예를 드셨다면 글 전체적인 논조가 이상해지는 거 같아요. 자연발생적인 차별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쓰면서 드시는 예는 죄다 인위적인 차별이니까요. 또 메시 예를 드셨지만 메시야 말로 미디어가 만든 영웅이잖아요. 인위적인 차이의 가장 큰 예이기도 하죠. 본문의 논조를 따라 정리를 하자면 정말 본질적인 차이가 차별과 적대감으로 이어지는 예가 있는가,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가, 그게 인위적인 차별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은 대부분 인위적일 수 밖에 없는가.. 로 이어지는게 자연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11/12/09 03:25
인간은 나와 다른 사람에게 차이를 느끼고 그에 따라 반응하기보다, 내가 속한 집단과 아닌 집단을 나누고 그에 따라 차이를 '만들고' 반응합니다. 이것을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이렇게 그룹화하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은 내집단과 외집단을 달리 인식하며 태도를 달리하게 됩니다. 그룹화 또는 구별짓기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마 친족과 씨족에서 출발한 집단에서 자연선택으로 형성된 심리겠죠.
이와 관련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비슷한 가정환경과 조건을 가진 십대 초반의 남학생들을 선정해 캠프에 데려가서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두 그룹의 숙소를 달리 하여 각각 캠핑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름을 짓고 옷과 모자에 그룹을 상징하는 표식까지 만들어 달았죠. 일주일쯤 지나 두 그룹을 만나게 했는데 그들은 보자마자 서로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며 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캠핑 기간동안 서로는 싸우고 경쟁하며 서로의 차이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고요. 상대 그룹의 구성원들을 차별적 용어(뚱보, 검둥이, 사기꾼, 더러운 놈, 빨갱이)로 지칭을 하기도 하고요. 나중엔 서로의 숙소를 습격하기도 하고 상대의 깃발을 빼앗아 오기도 하는 등 과열된 양상으로 치닫습니다. 결국 지도교사가 나서서 합심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공동의 문제를 제시하여 함께 헤쳐나가게 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고 나서야 서로 화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금방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화해하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섞여서 친구처럼 지내게 됐죠. 또 다른 실험에서는 두 그룹을 기독교인과 무슬림을 함께 넣어서 구성했는데 두 그룹은 역시 대립을 하게 됐죠. 재밌는 사실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더라도 자신의 그룹에 속한 무슬림 아이보다 상대 그룹에 속한 기독교인 아이를 더 적대시하고 위협을 가했다는거죠(나중에 칼로 위협까지 했다고 합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구성원들을 한 그룹에 모아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같은 상대 팀 사람보다 견해가 다른 우리 팀의 구성원을 위해 행동했습니다. 범주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존 범주화는 무시될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이와 같은 실험을 통하여 사람들은 개개인간의 차이를 느끼고 적대시하기보다 상대와 나를 범주화 하고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차이는 적극적인 차별로 이어지고요. 차이를 만든 순간부터 상대 그룹의 개개인들은 다 몰개성적이고, 멍청하고, 편협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존재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치, 종교, 민족, 인종이 다른 사람들간의 차별과 갈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한 그 순간부터 이미 저쪽 집단은 나와 다른 사람으로 규정되고 차별도 당연시 되는겁니다. 인간은 집단을 나눠놓기만 하면 차별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결론내면 비관적인 결과만 기대해야 될거 같지만 위의 실험의 결말처럼 쉽게 그런 구분을 없앨 수도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외집단을 타자화 하고 차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외집단이 내집단과 다를게 없다는 걸 교육하여 인식의 변화를 꾀한다면 갈등과 차별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 흑인에 대한 차별은 흑인이 원숭이와 다름 없는 지능과 도덕관념을 지녔다는 생각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행해졌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을 때 차별이 줄어들게 되었죠. 1. "우리는 병들고 굶주린 인디언 몇 명을 발견했다. 인디언들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고 먹을 것을 달라고 애결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우리는 그들 모두를 죽여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2. "케이코는 우리와 같은 종은 아니었지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습니다." 1번은 19세기초 미국 오리건 주의 한 정착민이 쓴 기록입니다. 2번은 2003년 오리건에서 있었던 범고래 케이코의 장례식 추도문입니다. 두 글을 비교해보고 보고 그래도 인류에게 희망을 걸 수 있길 바랍니다. 참고서적: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Us and Them: Understanding Your Tribal Mind) -데이비드 베레비(David Berreby)
11/12/09 03:52
예.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의문스러운 바는, 바로 그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는 기준>이 어째서 바로 <인종, 국적, 민족, 성, 계급, 종교> 등등에 국한되냐는 것입니다.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문자 그대로 무한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결국,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 차별 그 자체는 없을 수 없다. 차별이 지구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기란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2. 그러나 차별의 대상이 몇 가지로 한정된 것을 볼 때, 차별이란 결코 자연발생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만약 차별이 발생하기 위해 인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면, 특정한 차별, 곧 특정한 방식의 범주화/집단화가 불멸한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11/12/09 04:06
위의 실험을 보면 그 기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무작위로 나눈 그룹에서도 서로 차별을 하는게 인간인데 말이죠. 인종, 국적, 민족, 성, 계급 등에 대한 차별이 가장 빈번히 벌어지고 사회적으로도 의미있게 연구되는 부분이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지, 지금도 사소한 것까지 외집단 내집단의 범주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피지알과 스갤간의 구분짓기나 스1팬과 스2팬 간의 다툼이라든지 축구팀의 팬들간의 싸움이라든지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나요? 서로 힘이 팽팽하면 차별이 두드러지게 일어나지 않으나, 여기서 어느 한쪽의 기득권이 커지면 작아진 상대쪽편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 상황이 나타나는 거고요. 아니면 팽팽한 상황이라도 한쪽 편의 사람이 다른 쪽 그룹에 들어가면 그 사람에 대한 차별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겠죠. 내집단과 외집단의 범주화는 분야를 막론하고 빈번히 이루어지는데 소수냐 다수냐, 기득권이냐 아니냐에 따라 차별이 한쪽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거죠.
11/12/09 04:47
그런 정도의 일상적인 차별과, 정치/사회 전반의 차원에서 실제적인 권리의 제약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요.
실제로 그런 피지알/스갤의 구분 짓기가 사회적인 이슈로 될 리도 없을 테고.. 그런 일상적으로 산재하는, 이슈화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어떻게 사회 전체 차원의 명시적인 차별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법 해보이는군요.
11/12/09 05:00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규모가 작고 서로의 힘이 팽팽하기 때문에 때문에 두드러지지 않는 것 뿐이죠. 임의의 집단이 종교, 계급, 민족의 규모로 커지게 된다면 얼마든지 권리의 제약으로까지 이어지는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거죠. 반대로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아무리 공고한 차별도 없어질 수도 있는 거고요.
만약 기술이 발달하여 세계가 지금보다 더 교류가 활발해지고 국가의 경계가 희미해지면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져서 결국 그에 대한 차별도 없어질겁니다. 정착민의 기록에서 보듯이 그 때는 인디언을 보면 죽이는게 당연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게 얼마나 야만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흑인들에 대한 차별도 마찬가지고요. 차별이 없어지긴 어려워도 차별의 범주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11/12/09 05:14
그 집단이 종교, 계급, 민족의 규모로 커지는, 바로 그게 전혀 자연발생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규모가 증대되진 않지요.
11/12/09 03:30
어이구. 학습과 담쌓고 산지 오래라 글 읽기가 어려웠네요.
제 생각은, 1. 사회적, 문화적 학습 2. 개인적 경험 즉 많은 미디어와 책, 주위 환경등 인간이 자라오면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해 그것이 형성된 것이겠죠. 막연함, 혹은 친근함, 혹은 적대감 모든 것이요. 즉 야오밍과 최홍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규정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그것을 당연히 그렇다고 인식"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인식하는 그 인식은, 바로 태어나면서 가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살아오면서 축적된 모든 문화적인 기준으로 발생된 것이겠죠. 선천적이 아니고 후천적이죠. 즉 백인이 더 친숙하고, 동남아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그 인식이 생겨난 사람은 종특 때문이 아니고, 즉 피때문이 아니고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실 이정도까지는 막연한 적대감일 수가 있는데, 이것이 실제적인 거부감으로 생기는 것은, 개인적 경험이 주요하겠죠. 실질적으로 본인이 그런 판단을 하게 만든 개인적 경험이 있거나, 혹은 간접적이라 할지라도 좀더 개인적이라고 할만한 어떤 일화를 듣는다거나 이런 것을 통해 "어떤 머머는 어떻다" 라는 일종의 명제를 확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말인데요. 2번은 모르겠습니다만, 1번의 경우. 물론 문화, 사회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건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 여부라는 부분이 있지만, 결국 이것도 순수하게 인위적이라기 보다는 자연적인 요소도 매우 큽니다. 우리가 흔히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우리와 피가 같지만 자라온 환경이 다르죠. 그래서 생각하는 것도 좀 다른 부분이 있잖아요. 혹은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2세가 받아들이는 흑인과 순수 토종 한국땅에서 자란 한국인이 생각하는 흑인은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지요. 가령 저는 한번도 흑인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으며, 단지 영화를 통해서만 봐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혹은 버스에서 가끔 흑인을 보면, 왠지 좀 경계하게(?) 되더군요.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든데요. 그냥 우와 역시 덩치가 크구나. 저사람들은 근육이 한국인이랑 차원이 다르겠지? 정말 많이 먹겠다. 뭐 이런 생각 정도? 또한 제가 가정해볼때 밤에 주택가에서 우연하게 걷고 있다가 흑인을 마주친다면 우리나라 젊은 남자와 마주쳤을 때보다 왠지 더 경계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흘끔거리면 흑인차별한다고 생각할지 몰라" 라고 의식하기 때문에 더더욱 보는 것을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여튼저튼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겠죠. 즉 이런 것들은 "내가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 + "간접 정보, 메스미디어 기억으로 인한 판단" 두개가 결합된 것이겠죠. 단순화 시킨다면, 제가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겁니다. 그런데 이걸 인위적인 요소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문화적 가치관 형성은 필수불가결적인 부분이 분명 있지 않을까요. 1번의 경우는 즉, 인위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어서 정자 상태일때 선택한 것이 아니듯, 사회적 가치관 형성 부분은 분명 인위적인 부분 이외에 자연적이라고 할만한 부분이 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인위적으로 수정이 가능하지요. 사람의 가치관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순수 자연적이란 것은 아니고... 인위+자연성이 섞인 복합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저번에 저도 봤던 "한국인의 인종차별은 종특?" 이건 종특이 아니란 거죠. 쩝. 그리고 그런 사회문화가 점차 바뀌면, 이런 1번의 형성과정 역시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인데 1번에 의해 생겨난 가치관은 곧잘 바뀔 수 있으나, 2번에 의해 생겨난 가치관은 상당히 바뀌기 힘이 듭니다. 가령 한국전쟁에서 참전해서 북한군에게 전우를 잃었던 할아버님이 계시다면 그분에게 반공은 절대 바뀌기 힘들 가치관이라 생각합니다. 즉 인종 관련도 마찬가지죠. 이런 것은 종교, 연애, 지역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으로 인해 생성된 모든 선입관은 변경되기 힘이 든다 생각합니다. 어른일수록 이것은 더욱더 그렇다 생각하구요. 이런 가치관이 바뀌려면 반대급부의 경험이 생겨나야 할 것인데, 한번 선입관이 형성되면 그것을 적대하거나 배척하기 쉽상이니 수정될 기회가 매우 줄어들겠죠.
11/12/09 22:03
차별이 꼭 적대감과 관련된 건 아닐 것 같네요... 제가 보는 만화책에서 나온 말인데 사랑도 차별이다라는 말이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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