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대 중반의 학생입니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가끔씩 아무일 없이 지낼 때,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문득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하고 느끼며 멍해지곤 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평소 멀게만 느껴지던 앞으로 살아갈, 살아온 날들보다 더 많은 날들도 순식간에 흘러가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곤 하죠.
그런 반면에 어떨 때는 너무 바쁜 일상에 지쳐서, 혹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과연 이 시간들도 언젠가는 지나갈까? 하는 막막한 심정이 되기도 해요.
그럴 때 듣게 되는 노래들이, 세월의 문턱을 그린 노래들입니다. 이미 세월을 견딘 이들이 부르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노래들은, 허무하게 지나는 세월에 대한 쓸쓸하고 무기력한 심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 감성에 푹 빠져있다보면 왠지모를 무상함과 외로움에 눈물이 주룩 나기도 하지요. 마치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그 까마득한 먼 미래의 내가 부르는 노래인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가득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채워지기도 하구요. 하지만 세월이 말없이 흘러가듯 이 또한 지나가겠구나 하며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하고, 지금의 시간이나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나 허망하게 지나가는 것은 매한가지구나, 나중에 지나간 시절이 후회스럽지 않으려면 열심히 살아가야겠구나 하며 열정을 불태울 의지가 조금씩 생겨나기도 합니다. 내가 이미 겪은 시절에 대한 노래들은 "아참, 그럴 때가 있었지, 그런 마음을 가졌을 때가 있었지.. 그런데 지금 나는 왜 이렇게 변해버렸나? 그 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겠다."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이상스럽게 10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요. 내 나이의 십의 자리 숫자가 바뀔 때가 되면 다른 때보다 더 많이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시기를 20세에 한 번 밖에 못 겪어봤지만(10살 때는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보냈지요), 어떤 노래들을 들을 때면 아직 먼 미래인 30세, 40세, 50세 즈음에 느낄 감정들도 마구 공감이 되곤 해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종류의 노래와 노랫말을 나이대 순서대로 소개하고, 여러분은 어떤 것들을 알고 계신지 살짝 공유해보고 싶어요. 저는 음악적인 요소같은 건 잘 모르고.. 공감되는 멜로디와 노랫말 위주로 소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상 링크하는 법을 몰라서요ㅠ 그냥 가수와 제목으로만..)
1. 버즈 - 비망록
버즈의 노래들은 10대 청소년, 2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 갖는 감성들과 코드가 참 잘 맞지요. 여자들이 참 싫어하는(여자들의 노래방 기피곡 다수가 버즈 노래죠) 조금은 유치한 가사들과 쉬운만큼 공감되는 멜로디.
버즈 노래중엔 사랑을 애걸하거나 이별 후의 구차한 모습들을 그린 노래들이 많지만, 그 중 비망록은 이제 갓 스무살이 되는 시기의 심정을 잘 나타낸 노래입니다. 아마 제 나이 또래 남자라면 거의 모르는 분이 없을 겁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초반에 친구들과 노래방엘 가면 꼭 한 명은 부르는 노래였으니까요.
입시에 쩔어 지내던 고등학교 땐, 졸업하면, 스무살이 되면,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꿈처럼 바뀔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는데, 자유로운 생활의 기쁨은 금세 바래고, 성인으로서의 무거운 의무감과 더 불안하고 막막한 미래에 답답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때면 잠시나마 스무살 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새로운 꿈에 대한 희망이 다시 생기는 것 같아 참 좋아요.
--
아름답다고 난 스물의 세상을 꿈꿨지
오늘부터 다 날 어른으로 부르네
어제 오늘은 단 하루가 차이날 뿐인데
마치 꿈인듯 다 변했어
알았던 모든 것은 전부 허구였어
꿈이란 결코 마법처럼 되지 않아
칼과 창 방패에 말을 타고 서부의 총잡이 돼볼까
순례자든 방랑자든 다 밀림의 도시 벗어나볼까
난 또다른 삶의 길 위에서 새로운 방황을 시작해
스무 살의 어린 비망록 난 펼쳐드네
나의 노래로 조금 서툴게
되고 싶은 것 또 하고픈 일들을 알았네
왠지 자꾸만 난 불안해
알았던 모든 것은 전부 허구였어
꿈이란 결코 마법처럼 되지 않아
저 거친 들판에 모래바람 다지는 소떼를 몰거야
투우사든 집시 또는 나 돈키호테도 괜찮을거야
나 세상에 발을 딛고 서는 평범한 일상이 싫은걸
다른 삶의 오직 나만의 길을 가고싶어
나를 꿈꾸며
--
2. 김광석 - 서른 즈음에
이 노래는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겠지요. 고 김광석 씨의 잔잔한 음성과 아르페지오로 반주하는 쓸쓸한 통기타 소리가 노랫말과 함께 가슴속에 스미면- 무기력, 허망함, 먹먹함.. 그런 감정들이 괴롭도록 사무쳐옵니다.
주변의 30대 선배들이 술마실 때 '서른 즈음에' 이야기가 나오면 20대 때 듣는 거랑 지금 듣는거랑 느낌이 참 다르더라, 하는 말씀들을 많이 합니다. 30번째 생일날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 부르면서 눈물흘렸다는 분들도 몇 분 봤구요.. 어느정도 사회 초년생의 티를 벗고 인생의 커다란 한 장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느낄만한 감정들이 가슴속에 큰 공명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3. 안치환 - 마흔 즈음
가창력으로 혹은 그만의 감성으로 높이 평가받는 가수들이 많지만, 저는 대중 가수들 중에선 안치환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 분의 노래 속에는 항상 강력한 메시지가 있고, 뜻이 있어요. 물론 "내가 만일", "사랑하게 되면" 같은 잔잔하고 달콤한 사랑노래들도 참 좋지만, 운동권 노래패 시절부터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담긴 노래들이 주는 분노에 대한 공감과 일종의 카타르시스, 나도 뜻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저는 이 분을 좋아합니다.
멜로디가 감정적인 공감을 깊게 주거나 하진 않지만 인상적이고, 중년의 사회인이 가질만한 고민과 분노 그런 것들이 충분히 느껴지는 가사가 참 와닿습니다. '내가 저 나이쯤 되면 저런 감정을 느낄까?' 혹은 '나는 그 때가 되어도 뜻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 하는 마음도 듭니다.
--
한몸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 머리를 받친 목이 따로 놀고
어디선가 삐그덕 삐그덕 나라고 믿던 내가 아니다
딱 맞아떨어지지가 않는다 언제인지 모르게 삐긋하더니
머리가 가슴을 따라주지 못하고 저도 몰래 손발도 가슴을 배신한다
확고부동한 깃대보다 흔들리는 깃발이 더 살갑고
미래조의 웅변보다 어눌한 말이 더 나를 흔드네
후배 앞에선 말수가 줄고 그가 살아온 날만으로도 고개가 숙여지는 선배들
실천은 더뎌지고 반성은 늘지만 그리 뼈아프지도 않다
모자란 나를 살 뿐인, 이 어슴푸레한 오후
한맘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 늘 가던 길인데 가던 길인데
이 길밖에 없다고 없다고 나에게조차 주장하지 못한다
확고부동한 깃대보다 흔들리는 깃발이 더 살갑고
미래조의 웅변보다 어눌한 말이 더 나를 흔드네
후배 앞에선 말수가 줄고 그가 살아온 날만으로도 고개가 숙여지는 선배들
실천은 더뎌지고 반성은 늘지만 그리 뼈아프지도 않다
모자란 나를 살 뿐인, 이 어슴푸레한 오후
모자란 나를 살 뿐인, 이 어슴푸레한 오후
--
4. WAX - 황혼의 문턱
얼마 전에 "써니"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같은 또래의 대한민국 아주머니들. 어느새 강하고, 억척스럽고, 남편과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자신도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한때는 꿈 많던 어린 소녀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늦게나마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 이 영화를 보면서 황혼의 문턱, 이 노래가 참 많이 떠올랐습니다. 노래가 품은 이야기가 비슷해서이기도 했지만, 처음 이 노래를 접했을 때 느꼈던 감동이 다시금 떠올라서요..
쓸쓸한 노랫말과 인생이 담긴 가사, 여운을 주는 마무리.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노래입니다.
--
축복 받으면서 세상에 태어나
사랑을 받으며 나 자라왔어
교복을 입던 날 친굴 알게됐고
우연히도 사랑이란걸 알게됐어
그렇게 처음 사랑을 하고
그러다 아픈 이별을 하고
맘이 아파 몇날 며칠을 울던 내가
어느새 키큰 어른이 되어
험난한 세상을 겪어보니
산다는게 정말 쉬운게 아니더라
평범한 사람과 사랑하게 됐고
눈물겨웠었던 청혼을 받고
결혼식 하던날 눈물짓고 있는 내 부모님
어느새 많이 늙으셨네
그렇게 나는 결혼을 하고
날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그 녀석이 벌써 학교에 들어갔네
어느덧 세월은 날 붙잡고
황혼의 문턱으로 데려와
옛 추억에 깊은 한숨만 쉬게 하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보니 많이도 변했구나
할 수 있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렇게 나는 결혼을 하고
날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그 녀석이 벌써 학교에 들어갔네
어느덧 세월은 날 붙잡고
황혼의 문턱으로 데려와
옛 추억에 깊은 한숨만 쉬게 하네
어느덧 세월은 날 붙잡고
황혼의 문턱으로 데려와
옛 추억에 깊은 한숨만 쉬게 하네
나 후회는 없어 지금도 행복해
아직도 나에겐 꿈이 있으니까
--
5. 김광석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또 고 김광석의 노래네요. 그만큼 그의 목소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쓸쓸함을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간혹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금슬좋은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지면서, 나도 저렇게 평생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인생을 마무리하려 하는 늙은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조용히 함께한 지난 세월을 읊조리는 할아버지. 이 노래를 들으며 그 장면을 가만히 상상하다보면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
이상입니다. 대부분의 여러분들은 알고 있는 노래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다시 한 번 들어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이 전해져 올 거라 생각해요.
인생의 거대한 한 장이 지나는, 세월의 문턱을 넘어설 때의 쓸쓸한 혹은 희망에 찬 감동을 주는 노래들.
여러분들은 어떤 노래들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