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한국에선 학교생활 내내 여자사람 친구라고는 없던 나에게 처음 웃으며 다가와주었던 그녀. 제비뽑기로 뽑혀 몇개월 동안 옆자리에 같이 앉았던 것이 전부였지만, 또 게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사실 전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몸무게가 세자릿수를 돌파했던 초고도 비만이었습니다-나였지만 그녀는 나와 같이 게임도 하고 심심하면 문자도 주고받고 이야기도 꽤 나누고..제 기억으로는 꽤 친하게 지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내가 유학을 가게 되면서 그녀와 나의 인연은 거기서 마무리 되는 듯 했죠.
그러던 그녀와 다시 만난 건 올해 초, 겨울방학차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였습니다. 유학을 간 뒤로 매번 한국에 올 때마다 혼자 방에서 컴퓨터를 하거나 혹은 부모님 일을 돕는게 전부였었는데, 그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중학교 때 친구녀석들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년전 가입만 하고 방치해두다시피 한 미니홈피 서비스를 가지고 파도타기 몇번을 하니 반가운 녀석들의 얼굴이 나오더라구요.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는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으며 또 파도타기를 하던 중 미니홈피 창에 그녀의 이름이 보였습니다. 설마, 하며 클릭해보니 정말 그녀였다. 그렇게 그녀와 메신저로 연락이 닿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지금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읽는순간-물론 오랜만에 소식을 들은 동창 녀석이 며칠전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이야 기때문이었지만-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4년이란 시간동안 많이 변해버린 나를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또 그녀는 얼마나 변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을거야. 변해버린 건 나뿐일지도 모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준비를 하고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그동안 돌아다녀 보지 않아서 깨닫지 못했지만 4년이란 시간동안 주변에는 꽤 많은 변화가 있었더군요. 달동네에 그대로 시멘트를 씌웠을 뿐이었던 곳엔 웬 재개발 바람이 불어 한창 산비탈에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고 지하철 4개노선 환승이 가능했던 학교 앞 지하철 역사는 크게 신축되어 이마트와 영화관 등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기를 10여분, 그녀가 뒤에서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작달막한 키에 모 만화 캐릭터를 꼭 닮은 귀여운 얼굴. 그녀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죠. 그것보다 더 의외였던 것은, 이만치나 변해버린 제 모습이 무색하게도 절 알아보고도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저를 대하던 그녀의 모습이었습니다. 솔직히 변한 제 모습에 조금은 놀랄 줄 알았는데-사실 절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좀 실망감이 들더군요. 하지만 4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스스럼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그런 실망감 따위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친구 병문안을 가고, 거리를 걷다 친구 한명을 더 불러내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놀고 난 뒤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그 뒤, 그녀를 다시 볼수 있었던 기회는 동창생들 반모임에서 한번, 또 친구녀석 군대간다고 같이 밥먹는 자리에서 또 한번. 두번 뿐이었습니다. 사실은, 개인적으로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만 까이고 말았더랬죠. 아마도 그녀의 눈에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똑같이 비쳤었나 봅니다. 저는 아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그녀를 좋아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짜피 좋아했다고 해봤자 한국에 있는 시간이 일년에 두달여 정도밖에 안되니 고백한다는건 말도 안되는거고.. 혼자서 이런생각까지 하는걸 보면 제가 그녀를 좋아한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런 주위상황따위 가리는게 과연 사랑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제가 그녀를 정말로 좋아한것 같지는 않고... 하긴 뭐, 이제와서 그녀를 좋아한다고 해 봤자 딱히 별 도리도 없으니 어짜피 떠나간 기차일 뿐, 한없이 덧없는 망상일 뿐일테죠.
밤에 잘려고 침대에 누우면 저도 모르게 mp3로 어느새 노래방에서 그녀와 둘이 불렀던 듀엣곡을 무한 반복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ps)저는 도대체 언제쯤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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