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를 내버려두고 먼저 침대에 누웠다.
베개와 머리 사이에 오른팔을 욱여넣는 내 특유의 수면자세로 엎드려 있자니
날개 뼈 뒤쪽부터 등짝 어깻죽지를 거쳐 팔꿈치까지
기분 나쁜 게 스멀스멀 오늘 밤도 기어온다.
무섭다. 마히로도 이런 기분일까.
버거움. 압박감.
끝내지 못하고 쌓여버린 일들.
놓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어찌 잡지 못하고 있는 여유들.
분명히 노력도 하는데, 우선순위도 아는데, 자신도 있었는데,
나름 깨달았다고 생각했던게 다 자위자뻑 허세 같고,
하고 있는 거 다 부질 없는 거 같고 안될 거 같고,
이러다 결국엔 적당히 타협 해버릴 것 같아 무섭고,
아니아니, 뭐 그래 이런 것들이야 다 예상했는데.
설마 감정까지 필터링하면서 살아야 할줄은... 젠장 이런 건 아직 안배웠다고요..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그렇게 한 시간을 뒤척뒤척 하다 보니
컴컴한 와중에 오늘 사온 선인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 쟤 이름을 뭐로 하지 하다가 문득 그냥
내 이름을 그대로 붙여보았다.
..선인장씨.
대충 자랐어도 예쁘게 피기를,
물 자주 안 줘도 오래오래 살기를,
자신만의 색깔을 언제나 유지하기를,
창밖 날씨가 어떻든 신경 쓰지 말기를,
그냥저냥이냥 반대편 구경이나 하면서 여유 있기를,
어떻게 자기가 못하는 건 주인 믿고 맡기기를,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웃고살기를..
언젠가 내 친구 조 모군은 자기 방 각 벽이랑 친구를 맺었더랬다.
오른쪽 벽 x랑은 여자 얘기를 하고,
왼쪽 벽 y랑은 학교 얘기를 하고,
천장 z님이랑은 인생 얘기를 했다나.
그때는 웃고 넘겼는데, 지금은 그 기분이 이해된다.
사람은 생각보다 가볍게 위로받나 보다.
6천 원짜리 선인장 덕에 당분간은 푹 잘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