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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05 01:17
의심병만 없었어도 선조의 평가는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죠. 하다 못해 후계자만 제대로 세웠어도... (왜 그리 광해군을 미워했는지... 이것도 의심병의 연장선상일려나요...)
11/04/05 01:28
의심병하니까 삼국지의 유표가 정말 대단한거 같습니다. -_-; 유비가 술자리에서 그 쥐랄쥐랄을 하고 채모의 습격을 받고 도망을 쳤었죠. 채모가 그래서 유표에게 유비가 지었다면서 시를 보여주고 유표는 그에 격분하여 유비를 죽이러 갔으나...
몇걸음 걷지도 않은 채 유비가 시를 짓지 않음을 알고 그 시를 그어버렸죠. 보통 사람이라면 술자리에서 야망을 드러내고, 또 시를 지어서 화나게 만들었다면 바로 죽였을 겁니다. 하지만 유표는 금새 알아차리고 없던 일로 무마시켜버리죠 ;_;
11/04/05 01:47
요즘 저도 잘 읽고 있는데, 선조가 그런 능력이 있더라도 어차피 의심병이 너무 커서 인재가 어느 정도 이상 크는 것은 허용을 하지 않을테니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밑에 사람을 부리려면 적당한 권한을 주고 방임을 하는 것도 필요한 법인데, 전쟁이 없다고 해서 융성기를 가져왔을 거란 생각은 안 드네요.
11/04/05 01:51
여전했을 것입니다.
선조의 인재활용능력의 최악은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이가 죽자마자 동인의 편을 들어 서인을 제거했다가 동인 측의 정여립이 반란을 일으키자 곧바로 서인의 정철에게 숙청을 부탁 그래서 서인의 정철이 동인의 상당수 인물들을 숙청시켰죠. 그러다가 이후 세자건저 문제로 정철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자 이번엔 동인의 힘을 빌러 서인을 숙청시켰죠. 그런데 당시 동인과 서인이 숙청을 번갈아 하게 될 때 솔직히 숙청을 할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정여립의 반란 때 숙청당한 동인들은 대다수 정철의 감정이 들어간 케이스이고 세자건저 문제 때는 진짜 선조의 말도 안 되는 컴플렉스의 발로였습니다. 이후 비슷한 케이스의 숙종을 보시면 선조가 과연 뛰어난 인물이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숙종 역시 엄청난 숙청을 감행했습니다. 숙청은 연산군 못지 않게 했지요. 하지만 숙종은 그 스스로가 숙청을 했습니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았어요. 그가 스스로 집권당을 세우고 집권당을 무너뜨리고를 반복했습니다. 선조처럼 상대 당의 힘을 빌러 숙청을 감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했기 때문에 노론은 자신의 영수인 송시열이 숙종에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숙종 말기에 숙종을 지지했습니다. 즉 신권이 왕권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게 바탕이 되었기에 영, 정조시기의 황금시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죠.
11/04/05 02:04
일단 제 글 보며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제 생각은 아직은 모르겠다입니다.
임란과 그 후는 묶어서 생각해야 되죠. 그럼 그 이전이 중요한데 정여립의 난으로 기축옥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조의 수완은 정말 놀랍죠. 어차피 신하를 얼마나 죽이든 정책이 훌륭했는가가 중요한데... 선조가 붕당을 이용해서 왕권강화를 한 후 그걸로 뭘 할 것인가! 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 버리죠. 일단 그 전의 정책들을 보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은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하지만 영창대군을 왕에 앉히려고 한 걸 보면 누가 되든 또 문제가 생겼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폐단이 생겼을 겁니다. 따라서 후대에도 왕권이 안정되진 않았을 듯 하네요. [m]
11/04/05 06:54
아유님한테 제대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참고로 당시는 동서분당이 시작된지 고작 10여년밖에 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즉 두 세력이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었던 시기라고 보기엔 너무 빠르다는 겁니다. -> 이 말은 즉 서로를 그렇게 욕했지만 그 정도로 학살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정철이 정여립의 반란 때 무자비하게 동인을 숙청하는 것 역시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여기서는 고작 10년밖에 안 된 상태에서 정철이 동인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정여립이 반란을 일으키자 곧바로 서인의 정철에게 숙청을 부탁 그래서 서인의 정철이 동인의 상당수 인물들을 숙청시켰죠. 그러다가 이후 세자건저 문제로 정철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자 이번엔 동인의 힘을 빌러 서인을 숙청시켰죠. -> 여기서는 그 학살이 선조의 의지로 나옵니다. 선조가 만약 뛰어난 군주였다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을 방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여기선 방조. 즉 선조가 그저 정철에게 끌려간 걸로 나오죠. 분명 같은 학문을 했던 사람들이 불과 10여년만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관계로 가버린 것은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임금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래서 분당된 지 10년밖에 안 된 그들이 서로를 죽이는 걸 "방조"했다는 겁니까 스스로 그들을 "학살"한 겁니까? 무슨 글 하나를 쓴 것도 아니고 댓글에서 이렇게 말이 다르죠? 차라리 직접 그걸 주도해서 그게 나쁘다고 하던지, 지들끼리 서로 죽이는 걸 방조해서 나쁘다고 하던지 하나만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10년밖에 안 됐다면서요? 정철이 겨우 10년만에 살인마가 돼서 임금 따위 무시하고 그 짓을 저지른 겁니까? 방조한 게 잘못입니까 주도한 게 잘못입니까 대체 어느 쪽이예요? 대체 기축옥사 후 크게 몰락한 동인이 무슨 힘이 있어서 정철을 파직하고 죽이려고 합니까? 방조한 거면 정철의 서인이 실권을 잡았을텐데 동인이 무슨 수로 반격을 해요? 방조한 거면 10년만에 이미 사림들은 왕까지 무시하고 서로를 죽이는 상황까지 간 거 아닙니까? 주도한 거면 대체 선조는 지가 벌인 일을 수습 못 할 정도로 거대한 사화를 일으키게 된 거죠? 주도한 거 맞나요? 이런 상황에서 동인은 선조가 주도한 걸 감히 무시하고 서인을 죽이라고 합니까? 임의대로, 입맛대로의 차이도 없습니다. 긍정적, 부정적의 차이인가요? 결국 둘 다 똑같이 한 걸 한 쪽은 긍정적으로, 다른 한 쪽은 부정적으로 본 것밖에 안 되죠. 근거가 없습니다. 그저 주장이 근거처럼 쓰일 뿐이예요. 어차피 이 댓글 안 볼 거라 확신하지만 혹시 보면 님이 발전할 수 있을 테니 확실히 말 합니다. 님은 역사에 대해 전문성이 없습니다. 과거를 단지 선악으로 볼 수 없고, 사림들을 단지 좋은 놈 나쁜 놈으로 볼 수 없다는 건 님을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님은 자기가 옳다고 그렇게 주장하면서 밀리면 도망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나타나고를 반복하니까요. 이건 님이 그렇게 욕 하는 이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20대 초반인 걸 생각하면 더 하죠. 그 때 사림들은 최소한 젊을 때는 진짜 아니다 싶은 건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 벌을 달게 받았으니까요. 지식 부분에서는 수능 친 지 얼마 안 됐을텐데도 기초적인 지식도 모르는 게 많죠. 교수님의 권위를 빌지만 오히려 그 교수님에 대한 모욕이 될 정도로 님 자신의 해석을 많이 집어 넣습니다. ... 공부하세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부디 공부 더 하고 다음에는 달라진 모습으로 보길 바랍니다. 님은 아직 역사나 정치 분야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냥 역사를 좋아하면 모르겠지만 논문을 쓰니 전문성이 있니 하는 걸 생각하면 그저 허세에 불과합니다. 저도 아는 게 부족해서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하고, 제 생각을 쓰면 제 생각이라고 합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게 제일 문제인 겁니다.
11/04/05 09:46
예 알겠습니다. 공부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의견은 남기고 갑니다. 이건 아는척 모르는척이 아닌 제 의견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선조가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뛰어났다 이건 말이 안된다는 겁니다. 선조가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왕권강화 된 상태에서 다른 일을 했을 것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정철을 세자건저 문제로 숙청시킬 이유는 없었겠죠. 정철이 동인을 상당수 숙청시켰다지만 아직 조정엔 동인이 어느정도 남아있었잖아요. 결국 그 동인들의 역할로 인해 정철이 숙청당하는 계기가 되었구요. 서인은 이후에 인조반정 때 까지는 등장도 못합니다. 그가 뛰어난 임금이었다면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끝냈어야 할 문제였습니다. 세자건저문제는 선조의 취향문제였습니다. 신성군이 마음에 드는데 정철이 광해군을 미니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그게 취향이잖아요. 그가 뛰어난 군주였다면 신성군을 세자로 밀어부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질 않고 정철 혼자서 광해군 밀었다가 같이 동조하기로 했던 동인대신들은 그대로 입 다물고 그래서 선조가 정철을 내친 거잖아요. 이거야 말로 개인적 감정의 발로가 아니고 뭐가 되겠습니까? 선조는 학자로서는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으나 군주로서는 낙제점입니다. 군주는 학자의 풍모를 내세울게 아니라 군주의 모습을 내세워야 합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 제왕학 따윈 하지 않았을게 분명하니 이러한 문제를 가져왔다고 보는데 그게 조선을 임진왜란으로 내몰았다고 봅니다.
11/04/05 09:56
숙종과 선조를 비교하는 글이 나와서 한 마디 적는데, 숙종과 선조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뒷받침해주는 배경이 넘사벽 급으로 다릅니다. 숙종은 태어났을 때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단 한 번도 그가 왕이 될것이라는 사실을 의심받은 적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런 존재는 조선 역사에서 몇 없어요. 있어봐야 문종이나, 단종이나, 연산군인데, 이 분들은 단명하거나, 너무 일찍 왕이 돼서 살해당했거나, 그 자신의 똘기 때문에 끌어내려졌죠.
덕분에 숙종은 조선왕조의 여러 왕들 중 태종 이방원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왕권을 보유하게 됩니다. 신하 중 어느 누구도 숙종의 정통성에 태클을 걸 수 없었거든요. 심지어는 그 대단한 송시열조차(송시열은 그가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 왕이라고 알려졌던 효종 조차도 사석에서는 저 XX 오랑캐 물을 먹어서 그런가 하는 짓이 좀 그래 이런 식으로 까던 양반이고, 실제로 그렇게 충성을 바치지도 않았습니다) 숙종에게 대들다가 제주도로 귀양가고, 또 다시 불려올라오다가 왕을 만나지도 못하고 길 가에서 사약을 받고 죽습니다. 숙종의 이른바 환국정치라 불리는 상호 학살을 통한 정국운영은 이같은 숙종의 절대적인 왕권이 뒷받침이 없었다면 가능할 수 없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런데 선조에게는 그게 없죠. 오히려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정통성이 없는 왕 중에 하나였습니다. 뭐 대자면 서얼 출신인 영조가 있긴 한데, 방통으로 즉위한 첫째 왕인 선조에 비해 영조는 엄연히 전 왕의 동생이자 전전 왕의 아들이었지요. 그 때문에라도 명종과의 익선관 에피소드는 선조가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해 만든 조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숙종 때의 환국과 비슷한 사건이 선조대에 일어나고 이 사건을 통해 선조는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합니다. 즉 선조는 숙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통성을 가지고도 숙종과 비슷할 정도의 왕권을 누렸던 왕이었던 거죠. 적어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이는 전적으로 선조의 정치적인 감각, 즉 그의 능력에서 기인한 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조는 천재적인 정치감각을 가지고 잇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중 신하들에게 너 님 능력 없으니 왕위를 광해군에게 넘겨주라는 이야기까지 듣지만, 결국 전쟁이 끝난 후에는 재조지은을 강조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파병요청을 결정한 자신의 공을 은근 슬쩍 강조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나죠. 전쟁 중에 여러가지 병신짓을 한 건 분명하고, 또 의심병이 좀 심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 자신의 정치적 감각(이걸 능력이라고 표현하자면 할 수도 있는거죠) 자체는 출중한 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죠. 요새 댓글을 몇개 달다보니 좀 선조 빠처럼 보여질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흑흑.
11/04/05 15:18
전좀 다르게 봅니다 그는 애초에 콤플렉스에싸인 소인배 왕이아니었나 싶습니다. 선조초기 동인을 정철을통해 대량숙청을 하게됩니다. 이것만 보면 왕권강화를위해 그당시 세력이 막강했던 동인을 숙청한듯보입니다. 정철을 통한것은 대량숙청이 필요하긴하나 혹여나 있을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위함이 아닌가싶습니다. 이를통해 정철의 세력이 막강해지자 정철을 숙청할 필요성을 느끼게됩니다 그래서 그는 건저문제로 정처를 숙청하는데 문제는 왕세자 책봉문제가지고 정철을 숙청한대있다는겁니다 이는 왕세자 지위에 상당히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행동이죠 만약 그가 진짜로 왕권강화에 관심이있었다면 건저문제가 제기되기이전에 이미 세자를 책봉해놓았거나 혹은 총애했다는 신성군을 왕세자로 책봉했을겁니다 그렇지 않은것을 보면 그는 세자에게서조차 왕위의를 위협받을수있다고 생각했을뿐아니라 그의목적은 왕권강화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게 목적이었기에 세자책봉문제를가지고 정철을 처낸것이라고봅니다. 그뒤의 통신사보고 채택에서도 건저문제를 들고나온 서인보다 동인의 손을 들어주죠 이순신과 권율장군님 승진또한 유성룡의 추천이있었는데 유성룡은 동인사람이죠. 그의 행동은 임란때 두드러집니다. 개전 초기 도성의 함락이 예상되자 그는 곧바로 짐싸들고 평양으로 도망칩니다. 그에대해 민심이 어지러워지자 급하게 세자를 책봉 분조해서 그를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명으로 망명하려는 소인배적인 움직임을 보이죠 그뿐만이아닙니다 각지 장수와 의병장의 활약으로 상황이 점차 호전되자마자 바로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나자 이번에는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하려는 의중을 내비치죠 영창대군을 앉히길 원한것은 광해군에대한 시기심이라든과 불안함 적통에대한 콤플렉스등의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된거같습니다 어쨋거나 이움직임또한 왕권강화와는 거리가 먼움직임이죠. 결국 이때문에 왕의 지위가 불안해진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죽이기에 이릅니다. 이를 계기로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왕권은 하늘나라로 가셨죠.
숙종과 다른점은 숙종의경우 경종이 상당히 병약했음에도 그를 왕세자의 지위자체에 해가될만한 일들을 하지않았다는겁니다. 왕세자책봉또한 빨랐고 그가 병약해서 문제가 자꾸 터지자 결국 자신의 생전에 청정까지 시키는등의 확고한 후계자임을 인식시키죠
11/04/05 22:14
본문과 리플에서 정말 많이 배워갑니다. 여기 글쓰신분들 반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갖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싶네요....(뻘플인가;;)
아..그리고 본문에 관련되서 제 의견 한마디....왜란이 없었어도 선조의 그릇은 원래 그정도라고 생각하기때문에, 별 업적은 남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뭐 능력은 그렇다쳐도 타고난 성격은 어쩔수없었을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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