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한번 돌아오는 만우절, 재밌는 장난에 벌써부터 입이 근질근질하고 12시 땡! 치자마자 친구들에게 누가 죽었네 누구랑 사귀네 로또를 맞았네 하며 놀래켜주기 바쁜 날이지요. 딱히 오늘 거짓말 처럼 고백할 여자도 없고, 나 니때문에 죽을래 하고 그 누나에게 찡찡대자니 구차하기 짝이없고, 스타 내기에서 이겼는데 안들어주려고 하는 사람때문에 김도 팍 새서, 오랜만에 재미있는 이야기나 풀어보렵니다. 잘 되려나.
옛 말에 라고는 해도 옛날에 있었을지 없었을 지 모르는 속담중에는 '자연빵을 구라로치면 손모가지가 날라가 분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화투판에서 이기기 위해 트릭을 거는 걸 하지 말기로 약속한 판에서 트릭을 걸면 그 손목을 냅다 댕겅-한다는 뜻인데요, 유명 영화의 명 대사이기도 하죠. 제 손모가지가 날라갔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모르는 사람인 '태권도 학과'의 어떤 남자의 뺨싸대기가 시원하게 날아간 적은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자연빵을 구라로 쳤으니까!
때는 고등학교시절, 밴드를 하는 친구들과 음악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재밌을 시절, 밴드에는 홍일점 하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지라 얼굴에 젖살도 빠지기 전인, 얄쌍한 외모보다는 둥그스름한 외모의 친구였는데요. 노래는 그렇게 썩 잘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얼굴이 귀엽고 목소리가 괜찮아서 객원 보컬로 데려다 쓰고는 했습니다. 그 친구한테는 대학생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대학생 남자친구가 이 친구의 속을 얼마나 썩였냐면말이죠, 이 여자애가 그 어린나이에 스트레스로 위궤양에 걸려 위에 구멍이 뽕 나더니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하지 뭡니까.
뭐, 그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 사이에서 이 애를 좋아하네 마네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만 키도 훤칠하고 생기기도 잘 생긴 대학생 오빠- 심지어 태권도 과 라는 그 분은 소위 말하는 엄친아 같이 느껴졌기에 일종의 '포기'상태였죠. 그런데 이 여자애의 문병을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여자애는 세번째 여자친구에 그 남자는 바람핀걸 들키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헤어지든가 이런 식으로 배짱을 퉁기더랍니다. 즉, 동시에 세명'이상'을 만나고 있었던 거죠. 이야 능력도 좋아..으흠 어쨌든.. 자기딴에는 첫 남자였는데 그 상실감이 너무 컸는지, 통통하던 젖살이 싹 사라졌더군요. 그러더니 문병 간 우리보고 복수를 해달라고 합니다. 으잉?
풍자유머나 웹툰에서 간혹 일진 여학생들이 '아는오빠'를 동원해서 겁주는 그런거 있잖습니까? 그 애는 일진도 아니었으면서 자기 주변에서 그런 경우가 '레알'있는걸 보고는 자기도 그 생각을 한겁니다. 너네가 자기 남자친구 겁좀 주라고. 그럼 나한테 잘할거라고.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오글돋다못해 뭐 저런 제정신이 아닌 생각이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때는 당황스럽지만 실제로 있을법한 나이기도 했거든요. 근데 이게 뭐 나보다 어린 애도 아니고 몇 살이 많은 형인데 우리 밴드애들이 다 간다고 뭐가 되겠습니까? 심지어 태권도 학과인데..
아 근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적당히 장단 맞춰주고 빠지려는데, 평소에 그 아이를 흠모하던 놈이 남자친구의 전후사정을 알더니 씩씩대며 꼭 복수해주겠다고 불타오른겁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제일 싸움도 못하는 놈이 그렇게 우왁우왁 해가며 화를 내니.. 우린 오싹했죠. 설마 진짜겠어.. 근데 그 친구랑 여자애는 진짜로 번호를 받아적고 주소를 알려주고 학교 공강시간 같은걸 말해주는겁니다, 홀리 쉣.... 일단 적당히 그 자리를 수습하고 친구놈을 억지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따졌죠. "야 너 미쳤냐!!"
"뭐가! 그럼 너네는 용서가 되냐?!"
"야! 와 무슨 우리가 조폭이냐? 거기다가, 애도 아니고 어른을 무슨 겁을 줘 겁을 아 진짜 ..."
"그걸 덥석 하겠다고 달려드는 넌 뭐냐? 걔 성격 몰라? 해준다고 했으면 진짜 해야 되잖아!"
"하면되지! 아 이 새끼들 쫀거봐 야 됐어 너네한테 손 안벌릴거야 꺼져 꺼져"
"허이구 니가? 야 학교 전체에서 호구하면 너, 너 하면 호구, 너호구가 무슨.."
"야 니가 나 싸우는거 봤냐!!"
"남들보다 20cm는 작은게 얼굴까지 주먹이나 닿으면 다행이다 임...악!"
"내가 니 꼬추 때리는건 아주 쉽거든!"
"아 이 미친새끼 너 죽었어!!!!!!!!"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다가 결국 시간은 흐르고.. 일주일 뒤 우리는 모 유명 대학앞에 찾아갔습니다. 나름 힘 좀 줘 보겠다고 일진 친구에게 부탁해서 오토바이까지 빌렸죠. 솔직히 정말 끼고 싶지 않았는데.. 걔 혼자 보낼수도 없고 그냥 맞기 시작하면 얼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데리고 튈려고 했으니까요. 어쨌거나 우리는 그 형을 찾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쉽게 그 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애가 말해준 건물 앞에서 담배를 뻑뻑 태워대고 있는 모습이 사진이랑 똑같았거든요.
"야 저 형 아냐?"
"사진이랑 똑같은데?"
이렇게 우리가 사진을 힐끗힐끗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는데, 용기만 가상한 친구. 갑자기 하늘에다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야아아아아이이이새애애애애애애끼이이이이이이야야야야야야!" 그리고는 있는 힘껏 달려가더니 온 몸을 날려 그 형을 받아버리더군요. 우리는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었습니다. 머리속에 뜨는 세 글자, X됐다..
퍽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우리는 얼른 몸통박치기를 한 친구들 붙들러 달려갔습니다. 근데 이게 왠걸, 한 술 더뜬 그놈은 넘어진 그 형 위에 올라타더니 툭탁툭탁 주먹을 휘두르더군요. 안마인지 펀치인지 모를 주먹질을 하고 있길래 얼른 들어서 떼어냈습니다. 이미 주변에는 사람이 웅성웅성하며 모여들었고, 그 형은 아 XX 뭐야 라며 일어나더니 야 니들 뭐야 뭐 이런 미XXX하며 구수하게 욕을 써주시더군요. 그때였습니다.
"오빠 얘들 뭐야?"
딱 보는 순간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 저 여자가 또 다른 여자친구일 것이다! 머리가 좀 좋았던 저는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겠거니 싶더군요.
왁왁 씩씩 대는 친구는 뒤로 제껴놓고, 우린 그 여자애에게 받은 사진을 꺼내며 당차게 말했습니다. "제 친구 남자친구 맞으시죠! 어디고교 누구누구! 제 친구 말고도 여자친구가 서너명이 더 있으시다던데 그러시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 흥미로운 대사에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습니다.
"제 친구한테는 첫 남자인데, 바람피우는거 들키고도 그렇게 뻔뻔하실 수 있습니까?"
"야 너 뭐..뭔 소릴 야 쟤들 뭐야 미친애들아냐?"
그 형은 엄청나게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더군요, 주변에서는 소근소근 웅성웅성 뭐야 저거 하며 점점 더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우린 이때다 싶어 더 크게 말했죠.
"이 형이 제 친구인 여고생을 데리고 가지고 놀다 버려서 제 친구는 위궤양으로 입원해 있습니다!!!여러분!!!"
"맞습니다!!"
"심지어 그러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다른 여자친구랑 동시에 만날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통보했답니다!!"
"맞습니다!!"
"야 니네 안닥쳐!!?!"
"오빠 뭔소리야 지금 이거 뭐야? 오빠 뭐냐구! 왠 여고생? 나 말고 다른여자있어?!"
"야야 쟤 태권도과 누구 아냐?"
"체대애네 뭐야 이거 되게웃긴다 뭔 상황이야 크크크크"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저 형의 옆에 선 여자의 날 선 눈빛. 우리는 본능적으로 요 위기를 타파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결정타를 날리기로 했죠.
"마지막으로!!! 저 형때문에 제 친구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애엄마 되게 생겼습니다!!!!!!!!!!!!!!!!!!!"
"?!?!?!?!?!"
순간 벙 찌는 그 형의 얼굴, 커져만 가는 주변의 웅성거림. 그 형은 어버버버 하고 있고, 옆의 여자는 이제 소리를 지르다 못해 그 형을 붙들고 흔듭니다. 아는 선배들도 그 자리에 있었는지 무슨 상황이냐며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시더군요. 우리는 슬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 너..너이새X들 개소리 하지마! 뒤지고싶구나 니들이 진짜!!"
그 형은 순간 급변하는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렬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다가왔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습관이 그 형을 폭력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씩씩대며 손을 뻗어 제 친구를 잡으려고 하는데, 아 이 나쁜놈들이 제가 덩치가 제일 크다고 절 맨 앞에 세우더군요. 결국 저는 그 형에게 한대 시원하게 맞았습니다. 어라? 근데 왠 솜털주먹?
한대, 두대, 왼손, 오른발 이렇게! 넌 좀 맞아야겠어! 이 돼지야! 으으! 난 돼지가 아냐!
하고 맞는데.. 영 아닌겁니다. 제 친구들은 뒤로 쭉 물러섰고, 그 주변 대학생들은 말리려고 붙들고. 사실 태권도 과라서 엄청 겁먹었을 뿐이지 별로 안 아프다는걸 느끼자 좀 속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더군요. 나도 태권도는 10년을 넘게 했는데. 그래서 다른사람들이 그 형을 제게 때어낼때, 얼굴에 시원하게 돌려차기를 먹여버렸습니다. 죽어라!! 근데 이게 키가 크시니까.. 얼굴이 아니라 목에 들어가더라구요..
"케에엑!"
체중도 헤비급 체급이던 시절이었는데, 그걸 정통으로 맞은데다가 주변사람 두 세명이 붙들고 있어서 그 자리서 차렷자세로 맞은거나 다름 없으셨던 형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컥컥 켁 컥컥 켁 기침과 콧물로 비트박스가 빡! 우린 이때다 싶어서 튀자!!! 이러고 각자 가지고 온 오토바이를 타고 부아아앙 달려갔습니다. 한참을 달려서 사는 동네까지 온 뒤에야, 한 숨 돌렸죠.
근데 이제부터가 가관입니다. 나중에 그 여자애가 그 일에 대해서 엄청 통쾌해하면서 말해주길, 알고보니 태권도학과가 아니라 물리학과였고, 운동같은건 해 본적도 없는 사람에, 여자친구가 한 명 다른사람 있었는데 깨지고 학교에서도 완전 X쓰레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기도 이제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자기한테 다시 만나자고 빌때 뻥 차줬답니다. 그때 엄청 웃겼던게, 자기가 진짜 애 아빤줄 알고 그거 설득하러 돈 들고 왔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참 같잖아서 싸대기를 쫘악 ! 하고 올려쳤다고 합니다.
그러게 왜 허세를 부렸으까 그 형님은.
아무튼 이렇게 10대시절의 유쾌통쾌한 복수극 이야기를 써 봤습니다. 만우절을 기념해서요. 이 이야기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본다면 '그땐 그랬지'라며 웃을테고, 어쩌면 인터넷이니 그때 맞은 분도 이걸 봤을수도 있겠네요. 몇 대 더 때릴걸 좀 아쉬웠어요! 그렇지 않은 분들이 보기엔 '소설'로 봐주셔도 되겠지요. 하하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아직도 울컥거려서 찌질거리고 싶은 매일이지만
흘러가겠죠 뭐.
즐거운 만우절 되시고, 너무 심한 장난은 우정에 금가요 여러분.
P.S: 피식 하셨다면 댓글, 추천, 그리고 반년간 찌질대던 글의 여주인공이셨던 그 누나보다 나은 여자좀 만나길 바래주세요. 말 없이 떠나가지는 않을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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