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집으로 곧장 향했던, 학교 밖에선 친구라고는 없는 그런 놈이었다. 덩치도 산만한 녀석이 학교만 끝나면 친구들이랑 뛰어놀 생각은 않고 집으로 곧장 직행해서 책을 읽었고, 컴퓨터가 생긴 후부터는 더더욱 집에만 틀어박혔다. 책과 인터넷에서 본 것 만으로도 선생님이나 주위 어른들에겐 꽤 잘난척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주위 어른들에게 나는 '애어른'으로 통했다. 그러나 학교가 끝나면 나가서 뛰어놀기 바빴던 급우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고, 급우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어느반 누구와 누가 사귄대더라'라던가 '전교1짱이 누구라더라'등등 그당시 나에겐 정말로 수준낮은 것들이 전부였기 때문에 어느순간부터 나는 혼자서 급우들과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학교가 끝나면 그들과의 관계도 거기서 끝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쌓아왔던 급우들과의 마음의 벽은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훨씬 높아졌다. 남들 다 다니던 학원조차 다니지 않았던 나였기에 급우들과 소통은 거의 전무했고, 교실에서 내 위치는 그저 '매일 뒷자리에 앉는, 조용하고 고지식하고 뚱뚱한 아이'였다. 그동안 정말 학교에서 나와 자주 말을 섞는 친구들이라고는 나와 처지가 비슷했던 친구 없는 녀석들 뿐이었고 그들과의 관계조차 교문 밖에서는 없었다.나 자신은 느끼지 못했지만 아마 그당시 급우들은 날 왕따시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왕따시킨다라기보다 나 스스로 왕따가 되었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이겠지.
그러던 나는 중학교 3학년 무렵이 되어서야 극적으로 급우들과 마음의 벽을 허물었는데, 그 계기는 바로 '게임'이었다. 공통 관심사가 생기자 난 자연스레 그들과 섞일 수 있었고, 비록 로템, 루나나 헌터스 또는 RPG게임의 사냥터 안에서였지만 하루종일 그들과 교류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학원도 다니지 않아 시간도 엄청나게 많았던 나는 곧 급우들 사이에서 게임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녀석이 되었다. 나에겐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급우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그들 사이에 섞일수 있는것-을 순식간에 이룬 나는 곧 말그대로 '미친 듯이'게임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당시 나에겐 그것뿐만이 급우들과 교류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는 곧 성적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중학교 2년 내내 평균 90점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점수가 80점대 초반으로 떨어지자, 장남에게 기대가 크셨던 부모님의 꾸지람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꾸지람으로 시작했으나 한달, 두달, 세달이 지나도록 게임에만 정신이 팔린 큰아들을 부모님께선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으셨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나와 부모님간의 대립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아들을 향해 매일 잔소리를 쏟아내시는 어머니, 또 힘든 하루일을 달래시려 술 한잔 하시고 들어오신 아버지는 아들이 또 컴퓨터 앞에 앉아있자 화를 참지 못하시고 그대로 몽둥이 찜질을 하시는 일이 다반사였고, 나는 나대로 부모님에 대한 원망만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갑자기 가게가 쉬는 날 나를 데리고 성묘를 가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당신의 아들을 진지하게 타이르기 시작하셨다. 물론 나는 매일 그랬던 것처럼 건성으로 대답했고.
- 나하고 네 엄마는 너하나만 보고 살아. 제발 그노무 컴퓨터 좀 그만 해라 좀.
- 네. 알았어요.
- 맨날 혼날때만 알았다 알았다 하지 말고, 이제부턴 제발 공부 좀 해. 응?
- 알았어요.
- 너 맨날 말하는데, 아빠는 너 이 아빠 맘에 드는 대학 못가면 그때는 너가 벌어서 다녀야 된다. 이말 꼭 명심해.
또 그소리야.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 이 아빠는 성공을 못했어도, 너는 꼭 좋은대학 나와서 성공해야 된다. 반드시. 알았어?
- ...출발선이 다르잖아요.
- 뭐?
- 출발선이 다르잖아요, 다른 애들과 나는. 부잣집 애들은 시작할때 벌써 저만치 멀리 가 있는데 그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 너, 너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수가 있냐?
- 왜요,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 .........
그날 이후로 아버지와의 대화는 며칠간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연히 찾아온 기회 덕분에 난 유학을 선택할 수 있었고, 덕분에 게임중독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신 후 지금의 음식점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몇천만 원의 빚이 남아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렸을 적, 난 아버지가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참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었는데. 어째서 아버지가 저런 꼴이 되셨을까.
아버지께서는 서울로 올라온 후 집안에서 반대하는 연애결혼을 하신 후,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시계조립부터 시작해 빚을 좀 내서 조그마한 시계공장을 내셨다. 그 후로는 사업 규모를 좀 키워서 납품관련 사업도 하셨고, 그리하여 반지하 전세집에서 시작해 대방동에 중형 빌라 한채까지 장만하셨었다. 물론 사업이 실패하신 후 그 모든건 다 사라졌고,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신 아버지는 음식점 계약 역시 삼촌의 명의로 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특하게도 학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혼자서 공부 잘 하던 큰아들이 갑자기 게임 중독에 빠졌으니 그 상심이 얼마나 크셨을까. 맨손으로 열심히 일궈온 사업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거기에 아들까지 엇나가니 이 세상 모든것들 중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도 드셨을 테지. 정말이지 그 상실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잠깐..
내가 그때 아버지께 무슨 말을 한 거지?
내가 그동안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내가 아버지 마음속에 무슨 상처를 남긴 거냐고?
그당시에 난 너무도 어렸다. 책과 인터넷으로 했던 간접경험만으로 이 세상을 모두 알고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고, 큰아들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그저 날 이해해주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내 스스로 내가 왜 게임에 중독되었고 급우들과 교류할 수 없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정말 바보같은 놈이었다. 또 그걸 타향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고 나서야 깨달은 나 역시 정말 어리고 바보같은 놈이다. 게다가 아직도 그때 그 말에 대해 부모님께 사과하지 못한 지금의 자신 역시 정말이지 어리고 멍청하고 자기밖에 생각할줄 모르는 이기적인 불효자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뵈면 꼭 이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런 멍청하고 이기적이고 막돼먹은 불효자식 뒷바라지 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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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휴강도 두달정도 밖에 안남았네요. 10여개월 정도 뵈지 못한 부모님 생각이 문득 들어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ps)두서없고 재미도 없는 쓸데없이 길기만 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