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벌써 24편입니다. 굉장히 많이도 쓴 것 같습니다. 페이지 분량으로 거의 80페이지에 육박하는 군요. 완결은 정말 왠만한 책 한 권의 분량일 것 같습니다.
간만의 소희 분량을 3편이나 할애했네요. 이제 연주가!! 드디어 나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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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왈왈!
소희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조그만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주인을 반겼다.
“사랑아 나야 나. 짖지 마!”
그래도 나름 소희네 집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놀러 다녔는데, 이 작은 요크셔는 아직도 내 얼굴이 낯선 모양이다. 나는 몸을 낮추고 나를 향해 경계의 기색을 비추는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사랑이는 내 손에 코를 대고 몇 번 킁킁대더니 경계를 슬쩍 푸는 것 같았다. 다행히 사랑이의 머리에 내 손이 무사히 닿아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무래도 내 모습은 몰라도 냄새는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소희는 타르트 재료들을 부엌에 나열하다가 데이트 간 두 분이 생각에 심통이 났는지 잔득 볼을 부풀렸다. 소희 부모님은 참 금슬도 좋으신 것 같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주말에 오붓하게 부부데이트라니. 이러다가 오늘 소민이, 아니 사랑이 동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럼 만들어볼까.”
재료와 재료도구를 다 준비한 모양인지 소희가 앞치마를 둘렀다. 소희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근 몇 달만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너 요리하는 거.”
“그러게.”
“중고생일 때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놀러 와서 밥 얻어먹고 그랬는데.”
어쩐지 그때가 살짝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자. 다 됐다. 어때? 맛있지? 당연히 맛있겠지. 누가한 요리인데?’
‘야 아직 먹지도 않았어.’
자신의 요리를 내놓고 그 맛이 어떨지 잔득 기대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던 소희. 소희가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다행 중 다행이다. 만약 요리를 못해서 맛없는 요리를 해줬다면, 맛이 없더라도 맛있다며 먹었어야 했을 텐데 다행이다.
“감상은 그만 젖어계시고, 잠깐 기다리고 있어.”
“응.”
소희가 타르트 만들기를 시작하고, 나는 옛날 그때처럼 소파에 앉아 요리하는 소희를 바라봤다. 역시 소희가 뭔가를 만드는 것을 보는 것은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 성격만 보면 투박하니 그지없어서 덜렁대고, 실수 연발일 것 같지만 꼼꼼하고 능숙한 손길로 뚝딱하면 금세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
버터, 슈가 파우더, 밀가루, 달걀 등 온갖 타르트 재료들이 순서대로 그릇에 부어지고 반죽된다. 그 섬세하고 빠른 손길을 간만에 보니 새삼스레 소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간만에 보니까 더 잘해진 것 같다?”
“그야 뭐. 취미 중 하나니까.”
소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네가 처음부터 요리를 잘했던 건 아니었는데.”
“뭐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내 기억은 소희가 곧잘 요리를 만들어주던 중고생 시절을 넘어 더 오래전으로 넘어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소희네 부모님하고 우리 부모님이 동반으로 어딜 가셨었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은 딱 저녁 한 끼를 소민이와 소희 나 이렇게 셋이 때웠어야 했다.
사실 밥 시켜먹으라고 부모님이 소희와 내게 돈을 좀 쥐어주고 가셨지만, 소희와 나는 그 돈으로 각각 바비인형과 미니카를 사는 데 보태고 싶어서 안 썼다. 생각해보니 나나 소희는 푼돈이라도 얻었지만, 소민이는 고생만 했구나. 갑자기 미안해지는 걸.
피식.
‘대신 내가 라면 끓여줄게!’
뭘 시켜먹는 대신 선택한 게 바로 라면. 아마 지금의 소희라면 면도 직접 만들어서 끓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소희의 라면은 정말 최악이었다.
물도 많이 넣어서 싱겁기 그지없고, 면은 어찌나 퉁퉁 불었는지.
‘으아앙. 맛없어.’
‘으악. 진짜 맛없다.’
오죽하면 소민이가 그걸 먹다가 울었다. 그만큼 맛이 없어서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반창투정하는 소민이와 나에게 소희의 꿀밤이 빛의 속도로 날아왔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기껏 어렵게 끓여줬더니 이것들이. 다 큰 남자애들이 어디서 반창투정이야!’
그 후 며칠 뒤 라면을 소희가 라면을 잘 끓이기 시작하더니, 몇 년이 지나 청소년이 되자 김치볶음밥이라던가, 찌개를 잘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니 지금처럼 빵 같은 것들도 잘 만들게 됐고.
“다 됐다. 후. 이제 굽기만 하면 돼.”
회상에 잠긴 사이 소희는 어느새 완성된 반죽을 타르트틀에 붓고 있었다.
“와 빠른데?”
“뭐 이것만큼은 소민이 덕분에 빨라졌지.”
소희는 타르트틀에 부어진 반죽들을 가정용 오븐에 밀어 넣었다.
“이제 180도 온도에 40분!”
소희는 온도와 시간을 맞추고, 내 옆으로 와 털썩 주저앉았다.
“꽤 오래 걸리네.”
“소민이가 바싹 구운 걸 좋아하거든.”
“그렇구나.”
- 위이잉.
대답과 동시에 전화가 왔는지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진동했다.
소민이? 뜬금없는 소민이 전화다. 괜히 소희 눈치가 보여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형! 지금 우리 집이야?
“어? 어.”
-- 오늘 엄마 아빠도 집에 없을 텐데? 집에 단 둘이겠네?
갑자기 불안해진다. 얘가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러는 걸까.
“그런데?”
-- 젊은 남녀가 한 집에 둘뿐인데. 콱 뽀뽀라도 해버려!
쿨럭.
갑자기 대놓고 너무 대범한 소민이의 말에 당황스럽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왜?”
-- 에휴. 그냥 나오면 형은 남자도 아니다. 진짜.
- 왈왈!
개의 청각은 사람보다 좋다던가. 사랑이가 소민이의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갑자기 앉아있던 자리에서 나에게 다가와 짖기 시작했다.
-- 아 맞다. 맞아. 우리 사랑이가 있었구나. 집에 둘만 있는 건 아니었네. 그래도 어쨌든. 현우형 파이팅!
뚝.
- 끼잉. 낑.
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제 할말만 잔득 늘어놓고 제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랑이는 소민이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낑낑댔다.
“혹시 그거 소민이 전화야?”
“어!? 응. 근데 아무것도 아냐.”
소희가 눈치 챘는지 다가와 물었다. 소파로 돌아가 앉는데 괜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소민이 녀석 때문에 소희 눈을 쳐다보기 힘들다. 삽시간에 어색한 기류가 우리 둘을 타고 흘렀다.
한참동안 정적이 흐르다 소희가 정적을 깨뜨렸다.
“현우야. 있잖아. 혹시 기억나?”
“뭐가?”
어쨌든 소꿉친구인 만큼 소희와 기억날만한 일은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밤에 혼자 있을 때. 우리 만났던 날.”
아 분명하게 기억난다. 소희와 있었던 일 중 그 날은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날 중 하나였다. 소희의 약한 모습을 봤던 유일한, 아니 이제 소민이가 다쳤던 날까지 포함해서 유이한 날이니까.
“응.”
“그렇구나. 그럼 혹시 그 다음에 봤을 때도 기억나?”
더듬더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솔직히 잘 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처음 보고 헤어지고 나서 소희를 언제 또 봤더라. 어렴풋이 날 듯 하다가도 역시 기억이 안 난다.
“그냥 흐릿하네. 처음 봤을 때는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그렇구나.”
다시 고요한 정적.
“야 너는 무슨 기억력이 그렇게 나쁘냐! 나쁜 놈!”
갑자기 어디서 울화가 치민건지 소희가 내 옆구리를 퍽 때렸다. 살짝 친 것 같은데도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왜 때려?”
“그냥!”
“내가 동네북이냐. 그냥 때리게?”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너는 그냥 더 맞아..,”
억울하다. 갑자기 난 왜 맞아야 하는 걸까.
띵!
다행히 때마침 오븐타이머가 소희를 멈추게 했다.
“휴. 다 됐네. 포장해 줄 테니까. 소민이한테 잘 좀 전해줘.”
끄덕.
왜 때렸냐고 따질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차피 긁어 부스럼인걸. 다만 소희에게 타르트를 건네받고 나갈 때, 어째서 소희가 그런 걸까 혼자 속으로 골똘히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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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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