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선거 ..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실 거주지와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달라 부재가 투표 신청을 해야하는데.... 그냥 귀찮았던거죠 ㅜㅜ 반성합니다.
무튼 아침 6시에 투표가 시작되니 새벽 5시까지 출근해달라는 얘길 듣고 그제서야 '내가 왜 휴일날 이걸 한다고 했지?'
어제 제가 맡았던 일은 선거인 명부에 서명 또는 지장을 받는 일이었구요, 선거알바를 하며 느꼈던 점들을 몇자 써보려 합니다.
1. 선거는 아침 6시에 시작한다!
... 선거는 아침 6시에 시작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느낀건... 정말 6시에 시작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50대, 60대 어르신들이 5시 20분부터 줄 서기 시작합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새벽6시에 투표소에 가본적이 없는 저로선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편할 때 할 수 있는 투표인데 어르신들은 뭔가 급하셨나봅니다.
문득 지난 지방선거때의 제가 떠오르더군요. 고향집에 있었는데 오후 12시 기상 '아 맞다 오늘 휴일 아니고 선거날이었지?' 오후 2시... '아직 네시간이나 남았네 나중에 해야지' 오후 4시 '집 바로 앞이니까 슬슬 씻고 나가볼까?' 오후 5시30분 '씻는건 귀찮아서 포기... 지금 모자쓰고 나가면 할 수 있을거야' 오후 6시 '벌써 결과는 나왔을거고 내가 한표 낸다고 뭐가 달라졌겠어?'
이런 아구창을 날려버릴 자식같으니... 하라는 투표는 안하고!
2. 20대... 어디갔니?
현장에서 느낀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은 정말 처참했습니다. 간혹 82,83년생이 오면 '우와 어린 사람이다' 했다가 '아! 이사람들 30대였지? 내가 늙은건가ㅜ'.
보통 20대로 투표하는 사람들 보면 온가족이 같이 투표하러 온 경우가 많았었고, 간혹 93년생인데 생일이 4월 이전인 사람들도 종종 있었구요. 한창 대학다니고, 사회초년생일 86~92년생라인이 생각보다 너무 안온다고 느꼈습니다.
한편 연인끼리 와서 남자친구가 여자친구한테 투표하는법 알려주는건 참 보기 좋더군요. 남자분은 다른 선거구에서 이미 투표한 듯 보였습니다. 저도 언젠간 ... 선거날 여자친구 집 앞에서 만나서 투표하고 놀러가는 그 날이 오기는 개뿔 ㅜㅜ
종종 헤드폰에 후드티 모자를 비스듬히 걸치고 힙합 쏘울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투표하러 들어오는 20대분들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요.
3. 대한민국 누구나! 1인 1표!
사회시간에 배웠던 '보통선거, 평등선거'라는 원칙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시간에는 누구에게나 투표권이 있고, 모든사람의 투표는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말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었는데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보니 사회 깊숙히 뿌리내린 계층 격차나 불평등에 익숙해져왔었나봅니다.
외제차를 타고 고급 양복을 입고 오신 사장님도 한표
배수관 수리를 하다가 흙탕물에 더러워진 작업복을 입고 잠깐 짬을 내서 오신 동네 아저씨도 한표
휠체어를 타고, 우산들 손이 없어 비맞으며 힘든 길을 오셨을 장애인분도 한표
1920년생, 지팡이를 짚고 쌔끈 쌔끈 힘든 숨을 몰아쉬며 선거장의 낮은 문턱을 너무도 높게 느끼셨을 할머니도 한표.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선거에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투표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그 말이 가슴 깊히 새겨지는듯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토록 힘들게 지켜내는 자신의 권리, 그 한 표를 이제껏 저는 너무 가볍게 생각해왔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군요. 그깟 부재자투표 신청방법 알아보는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 지난 5년간 제가 아무렇지 않게 포기해버린 저의 주권이 너무 아깝고 또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4. 8000원에 지켜낸 나의 주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저와 당신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저와 당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제가 선거사무원으로 일한 투표소와 저희 집이 좀 멀어서 원래는 투표를 안하려고(ㅜㅜ) 했었는데 앞서 말씀드렸듯 더이상의 투표 포기는 남부끄러워서 용납이 안되더군요. 마침 3월달에 지금 사는 곳으로 전입신고를 했더니 선거구도 바뀌고 투표소도 바로 집앞에! 잠깐 점심식사겸 교대할 타이밍에 택시를 타고(편도 4000원 거리입니다) 냉큼 가서 투표를 했습니다. 첫 표를 하러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의 설렘과 빨간 도장을 꾹 누를 때의 감동, 그리고 투표장을 나오면서 실감했던 '그래,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라는 느낌.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5. 결론은.... 알죠?
네.. 합시다. 혹시 안하신 분이 계시다면 다음엔 꼭 합시다. 제가 당당히 이런말 할 처지는 못되나ㅜㅜ 그래도 제발 합시다.
비록 저의 첫 투표는 처참한 패배였으나... 그래도 저는 권리행사를 했다는 정신승리를 챙겼습니다.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 "어차피 뽑아봐야 그놈이 그놈이야" "나 하나 투표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깟 정치 관심없다" 하시는 분들... 너무 어려워 하지 마세요. 그냥 가서 쿡 찍고 나오시면 되요. 실제 투표소에 가보면 누가 출마한지도 모르고 당명이 바뀌었는지 어쨌는지는 상관없이 1번 옆에 빈칸을 손으로 가리키시며 "여기다 찍으면 되나?" 라고 묻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답니다.
어제 선거 알바를 하며 일당 8만원을 받았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좋았던건... 은 아니고 무튼 좋았던건 멀게만 느껴졌던 민주주의가 바로 제 삶의 일부임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 하라고 하면 하게될진 잘 모르겠지만(13시간 동안 앉아있는건 힘들어요ㅜㅜ)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냅다 발로 차지 마시고 투표소 알바도 한번쯤 해보시는것도 추천합니다. 투표사무원은 주로 공무원들인것 같고 동사무소에 연줄 있으시거나 적극 알아보시면 될것 같구요, 참관인은 투표권이 있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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