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량은 EF소나타(중고), 가족은 부모님, 저, 한 살 터울 동생으로 4명
2. 동생은 춘천에서 일하고 있고, 회의를 위해 저녁 9시 반쯤 서울로 올라왔음
동생이 올라와서 미아삼거리에 있는 대박집에서 막걸리를 반주로 밥을 먹고 나서 00:30 분경 다 같이 동생 소유인 차를 타고(물론 동생은 운전 때문에 술을 못 마시고) 집으로 가는 언덕배기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경사가 가장 심한 XX교회 앞을 지나던 무렵, 40대 초반으로 판단되는 한 남자가 횡단보도(보행자신호 없는)를 지나가기에 서행으로 천천히 가고 있는데 이분이 갑자기 우리 차를 보더니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우리 차를 향해 무려.. 노홍철의 "가는 거야" 자세를 취하는 겁니다.
마침 술도 한잔 걸쳤겠다.. 이 과정을 우리 가족에 대한 시비로 판단하고 창문을 열고 부모님께서 뒷좌석에 계시는 것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준의 대응을 했습니다.
→ "아저씨 도로 한복판에서 뭐해요? 빨리빨리 지나갑시다 아놔"
근데 이 취객이 그걸 듣더니 "미X놈 XX하네" + 심한 육두문자를 시전하시더군요.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진행 도중에 차를 세우라고 하고는 내려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차는, 비록 차선은 없었지만 도로 가운데 정차된 거죠.
일단은 저만 내려서 싸우기 시작했으나 상대방이 계속 욕을 하는 통에 아버지도 내려서 합세(?)했습니다.
참고로 저희 가족은..아버지는 30년째 헬스클럽에 다니시기에(지병이 당뇨시라서 운동을 안할 수 없는) 50대로 보이지 않는 몸, 저는 FC PGR 회원님들은 아시겠지만 거부할 수 없는 덩치, 동생도 저 못지 않은 덩치로 셋이 내리면 충분히 위압감을 주죠.
본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더니 급기야 동생이 차에서 내리는데........아아......사이드브레이크를 덜 올린고 내린겁니다.
셋이 모여 호로관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여포랑 싸우듯 고무래 정(丁)자로 취객을 포위하고 싸우는 와중에 뒤에서 "어어?? 차 밀려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알고보니 저희 차 뒤에서 기다리던 택시 기사님이 덜 올린 사이드 때문에 밀리는 차를 보곤 소리를 지른거죠.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동생은 차 뒤로 뛰어가서 지 힘으로 차 막아보겠다고 잡다가 밀려서 뒤로 한바퀴 구르고..저는 아까 열린 조수석 창문으로 오토 손잡이를 P로 확 올려버렸습니다. 사이드를 댕겨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에잉..
그 와중에 뒤에 있던 택시가 바퀴를 돌려서 저희 차를 막고 있었습니다. 천우신조였지요.
술취한 아저씨는 잡는 사람이 없으니 슬슬 도망가더군요. 아버지하고 저는 그 남자를 다시 붙잡고 싸우고..동생은 차를 옆으로 다시 붙이고..택시(일단 택시도 관여되어 있으니)도 옆으로 차 붙이고..차 보고 있고..
결국 아버지께서 제가 취객을 칠거라 판단하셨는지 우선 상대를 보냈습니다.
남은 건 동생하고 택시기사님과의 2차전.
택시(포르테였던 걸로 생각되네요) 왼쪽 앞바퀴 윗부분 휀다를 보니 가로로 길쭉하게 파여 있었습니다. 흰 차에 흰 페인트로 덧칠되어 있고요. 순간적으로 '우리차가 그런 건 아닌 듯!'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동생도 이를 알았는지 기사님과의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접촉은 택시 왼쪽 앞바퀴 휠과 저희 차량 오른쪽 뒷바퀴 타이어였거든요.
기사님은 회사 택시라 일단 일이 있었으니 그냥 가기는 버겁다는 입장..동생은 일단 제가 그런 건 아니지 않느냐는 입장..으로 나뉘어 설전중에 동생이 "기사님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휀다를 먹은 건 아니잖아요"라며 기사님 손에 살포시 3만원을 쥐어주더군요. 기사님도 돈을 받고는 화색이 돌더니 "그래도 제가 아저씨(제 동생. 나이가 30줄이니 아저씨 맞죠) 생명의 은인입니다" 라며 가시더군요.
생명의 은인은 맞죠. 만약 제가 P로 레버 변경을 못 했다면 언덕배기라서 차는 밀리고, 동생은 깔리고, 차는 아래쪽에 있는 가게에 꽂히고, 무엇보다 차 안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자칫 크게 다쳤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삼천만원으로 막을 거 삼만원에 막았다고 자위하며 다시 집으로 갔고..
아버지는 분노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다음날 출근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 3시까지 한XX 맞고를 치고 주무시더군요(이건 분명 아버지의 꼼수로 판단된다능;;).
별다를 일 없는 서울의 한 가족이 겪은 별다른 해프닝이었습니다.
후기..동생은 구른 것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 몸 좀 아프겠다 했는데 정작 아침엔 멀쩡했고 바지만 조금 찢어지는 정도에 그쳤으며, 저는 그날 밤 소리지른 것 때문에 목이 좀 따가운 정도에 그쳤네요. 아버지는 아침식사 내내 하품을 하시고..
분명 취객도 잘못, 우리도 잘못이었는데..무언가 찜찜한 하루 저녁이었습니다.
잘못의 경중이 어떻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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