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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4 14:32
이 글 보니까 괴짜가족이라는 만화가 생각나네요. 제가 그런 류의 유머가 별로여서 전 아무리
봐도 재미도 하나도 없는데 주위 친구들은 보면서 숨넘어가게 웃더군요.
11/09/04 16:44
연도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세기말이란 것엔 분명 무시못할 어떤 힘이 있어서, 90년대 후반 당시는 얼마간의 암울함과 약간의 광기가 팽배한 시대였습니다. 밀레니엄 버그, IMF, 불황, 취업난, 자살증가, 비실용학문의 몰락(전 대학의 몰락 나아가 젊은이들의 몰락이라 봅니다. 사실 이 대부분은 이때 시작해 지금껏 쭉 이어지고 있죠)
문화쪽에도 암울하고 감상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죠. 대중문화상품을 보자면 할리우드엔 재난/멸망영화 붐, 일본엔 온통 폭주/광기/피바다 붐... 우리나라엔 고속 인터넷의 급확산과 함께 온갖 마이너 서브컬처들이 지역 한계를 넘어 그룹화할 토대가 형성되었고요, 사람들은 예전의 획일적인 취향을 넘어서 인터넷으로 소개되는 해외의 다양한 모습에 눈을 뜨게 됩니다. (초기의 '엽기 자료' 대부분은 해외산이죠) 그리고 인간은 기이하고 괴상한 것에 본능적인 호기심이 있는 만큼, 더럽고 끔찍한 사진 및 영상을 무료로, 들키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엽기 자료'의 유행은 엄청나게 빠르게 확산됩니다. 디씨, 딴지일보(물론 딴지일보가 표방한 엽기는 뜻이 약간 다르죠. 더럽고 추하다는 뜻이 아니라 주제에 거침없고 표현을 쌈마이하게 한다는 쪽에 가까움), 게임라인(비디오 게임잡지 이름인데, 게임 팬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끈 잡지입니다. 이 잡지의 영향 이거 무시 못합니다.) 등 엽기 유행을 부추긴 매체들의 공도 있었고요. 마이너 코드가 위세를 떨치던 세기말의 공기도 엽기라는 하위 문화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데 일조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역시 하위 문화는 하위 문화인 법. 세상의 온갖 똥과 코딱지, 침과 구토, 고문과 살인 장면을 다들 한번씩 보고 난 다음엔 굳이 그 더러운 걸 계속 보고 싶을 리가 없죠. 거기에 창의성,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엽기의 유행은 그렇게 사라진 겁니다. 모두가 인터넷으로 뭘 해 보려 했던 시기, 모두가 뭔가를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서 유명해 지고 싶던 시기 말초적인 호기심으로 화제를 잠깐 탔던 음지의 하위 문화. 엽기가 잠깐 유행했던 시기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구가 엽기에 흥미를 느끼고 쭉 보기 시작해서 웬만한 전국민이 그걸 길게든 아주 짧게든 지나쳐 '졸업'한 시기라고 봅니다. 물론 그 후에도 엽기는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인터넷 한 귀퉁이에 남아 있습니다. 이젠 안 봐도 뻔히 아는 거니까, 굳이 더러운 꼴 보고 싶지 않아서 무시될 뿐이지요.
11/09/04 17:18
엽기 직전에 '컬트 붐'이 있었고, 컬트 와중에 '엽기'가 양산됐죠. 노란국물이 대표적이고... 고어물? 스너프필름도 있었구요. 그러다가 엽기적인그녀라던가 엽기토끼라던가 엽기란 단어자체가 유행을 타면서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 그냥 좀 특이한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말 엽기적인 것들도 가라앉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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