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큰 명절, 설날입니다. 저도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와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각자 가족과 친지분들과 소소하지만 따스한 이야기를 나누듯, 그냥 가벼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서요.
기분좋은 명절 저녁이잖아요?
1. 보드
1월 말에는 제 생애 두 번째로 보드를 타러 갔어요. 강원도 횡성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학회가 열렸는데 연구실 홍보 겸 참석하러 갔습니다.
사실 절반 정도 놀러 간거죠; 학회 준비보다 여행 계획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연구실 형 4명과 함께 놀러갔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중 나이 제일 많은 형 여자친구분이 여자분 4분을 섭외했어요.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학부에서 엠티간 듯한 기분 내면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사실 굉장히 쑥맥이라(ㅡ_ㅡ;) 여성분들 동수가 스키장같은데 같이 놀러가는 것이 되게 어색하고 걱정되었는데
여성분들이 워낙 말도 많고 재미있는 분들이 많으셔서,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참 깔끔하게 잘 놀다온것 같아요.
보드라는 것이 원래 고가스포츠처럼 생각되는데, 이제는 생각보다 많이 저렴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 알펜시아 리조트의 야간권이 할인받아서 15000원(!) 이고, 데크와 보드복도 3만원 안쪽으로 전부 대여가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숙소도 아주 깔끔하고 괜찮은 숙소가 4인 숙박에 8만원이었습니다.
보드는,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야 턴을 간신히 하는 수준이지만, 스스로도 그 때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속도로 배워 나가면서, 이리 저리 넘어지기도 하면서, 리프트 한번 탈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는 때.
눈밭에 앉아서, 앞에 펼쳐진 하얗고 탁 트인 눈밭을 보며 발에 데크를 조이는 그 기분은, 참 언제 느껴도 즐거운 기분입니다.
3일간 보드를 탔는데, 셋째 날에는 부상당하시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시는 여성분 두 분이 계셔서,
나머지 분들은 보드 타시고, 그 동안 저는 여성분 두분 모시고 형 차 빌려서 팔자에 잘 없는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관령 양떼목장을 계획하고 갔는데, 구제역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강원도 사람이라서 당황하지 않고 이리저리 알아봐서 근처에 송어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송어회도 먹고 구경도 하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자 5명중에 공교롭게도 저만 솔로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여행에서 더 이상의 인연이 만들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기분좋은 추억이 남겨져서, 좋았던 여행이었습니다.
2. 동생 자랑
대학을 졸업한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꿈이 크고, 원대하고, 참 사람 좋고 성격 좋아 거침이 없고 도전정신이 강한 그런 아이입니다.
제 3세계 힘들어하는 고아와 과부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방학 때에는 직접 우간다에 홀홀단신으로(;;) 들어가서
NGO 활동을 하고 돌아오는 당찬 여동생입니다.
졸업하자 마자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으면 좋겠다만, 동생이 원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 외국의 대학원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그것을 마음껏 지원해 줄 수 있는 가정형편이 안 되기에, 1년동안 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돈도 벌고, 입학을 준비해서
최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아내더랍니다;
설 명절인데, 동생은 지금 곁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진행한 해외 단기선교에 참가해서, 1주일간 외국에 나가 있습니다.
비행기삯, 참가비, 그리고 우간다에 있는 자기 또래의 한 여학생을 후원하겠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지원해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상황.
동생이 글을 또 잘 써요. 고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써온 글들을 한 데 모아 제본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지인들에게 책을 팔아서 금새 150만원의 수익금을 만들어, 차고 넘치게 훌쩍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빠랍시고 도와주지도 못하고, 도무지 뭘 해주는 것도 없는데,
큰 눈망울 초롱초롱하면서 오빠가 자기 인생에 있어서 큰 도전과 교훈이 된다고 (빈말이라도) 말해주는 여동생.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녀석들은 많아도, 오빠인 제 눈에도 안차고, 자기 눈에도 아직까지는 맘에 드는 사람은 없나봅니다. 크크;
3. 지 자랑.
엊그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인산인해의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차표를 끊고 기다리고 있는데, 연구실 형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어디냐?"
"아, 형. 저 집에 가는데... 터미널이에요."
"축하한다."
말을 듣는 순간, 아하! 하고 입이 활짝 벌려지면서, 다물 줄을 몰랐습니다. 너무도 기뻤습니다.
1월에 제출했던 논문이, SCI급 학회에 accept 되었다는 답이 온 겁니다.
석사 3학기에 정말 고생 고생 하면서 써냈던 논문. '기필코 내고 말겠다' 라고 큰목소리로 연구실에서 호언장담했는데
기술논문을, 그것도 영어로 쓴다는 것이, 수학도 영어도 약한 저에게는 정말 쉬운 것이 아니더군요.
사실 저는 학부때에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직접 제작하는 일을 주로 했었고, 프로그래밍도, 그래픽스 지식도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야 그것들을 하나 하나 배워나가면서, 그 신비한 매력들을 알아 나가게 되었죠.
논문이라는 것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논문을 쓰면서 제가 했던 호언장담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책임한 발언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경험도 전무하고 지식도 부족한 저는 정말 많은 부분들을 선배들에게 묻고, 도움받고,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또한, 직접 부딪혀서 난관들을 찾아내고, 해결해 나가는 것은 또한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더군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지식을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닌,
거창하게 말하면 내가 인류의 지식의 상아탑에 돌가루 하나라도 얹어놓는 듯한 그 느낌.
참 의미있는 소득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즐거운 소식을 안고 설날에 찾아뵙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습니다.
4. 석 선장님.
방금 TV 뉴스를 보면서, 삼호 쥬얼리호의 석 선장님 의식이 되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식도 기쁘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조금은 아련한 기억들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석 선장님이 누워 계신 아주대학교병원 ICU(Intensive care unit, 일명 중환자실)이 제 첫사랑이 근무하는 곳입니다.
그때는 어찌도 그렇게 연애라는 것을 모르고, 무지하고 미련했던지.
그런데 게다가 그 힘들다는 간호사의 남자친구였습니다. 3교대를 뛰는 간호사의 남자친구로 계신 분 있으신가요?
고된 업무와, 간호사를 무시하는 환자들과,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간호사 사회 그 사이에서 스트레스받는 간호사들을
잘 다독이고,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고,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주어야 하는 것이 간호사의 남자친구어야 할 것인데,
...저는 너무 어리고, 철이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불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굉장히 많이 상처주고,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도 하지 말자' 라는 독한 말을 쏘아놓고 헤어졌지만,
작년 겨울, 3년이라는 시간만에 다시 만난 서로는 그래도 웃으면서 저의 잘못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그렇게, 홀가분한 인연으로 서로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도, 저에게도 좋은 사람이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만큼이나 편안한 설날 밤입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들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평안하세요.
Th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