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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11/18 17:28:34 |
Name |
madtree |
Subject |
[일반] 김장하는 날 |
할아버지는 추석 때보다도 훨씬 늙었다.
웃옷을 접어 배꼽 언저리까지 걷어올려 옷핀을 꽂아놓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입을 뗀다.
"밤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나서 옷을 내릴라고 하다보면 벌써 옷에 실례를 해버린기야"
바지 위를 덮은 웃옷을 걷어올리는 그 잠깐의 순간...
그 순간도 할아버지에겐 너무 길어진거다.
걸음도 말도 모든것이 굼뜨고 느려졌다.
기저귀를 차고 잔다는, 할아버지의 아무렇지도 않은 그 말이 끝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1982년 동생이 태어나던 해. 나는 외가에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거둬주는 게 출산을 앞둔 엄마에게는 가장 큰 도움이었기에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통영으로 내려왔다.
그 날 밤 나는 밤새 울었다고 한다.
밤새 나를 업고 달래던 할머니는 내 울음소리를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에게 나를 업은 채로 쫒겨났다.
그날 밤 할머니는 결국 나를 달래지 못하고 함께 목놓아 울었다.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겨우 마흔 여덟이었다.
"그렇니까 엄마도 참 미쳤지... 스물세살에 애들 둘이나 낳다니..."
김치를 치대며 옛날 이야기를 한다.
"그때 할머니 나이가 딱 지금 엄마 나이잖아."
시간은 무섭게 지나간다.
"김서방~"
산더미 같이 쌓인 절인 배추 너머로 할머니가 이모부를 부른다.
"니 이거 이래 치대다가 나 죽으면 초상치러 올끼가? 김치 치대러 갈끼가?"
"어머니 가더라도 이거는 다 치대놓고 가이소."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는 할머니와 이모부의 말 뒤로 나는 머리가 쭈뼛 서는 공포를 느낀다.
할머니는 내가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할머니였다.
나는 어렸고, 할머니는 나보다 몇곱절은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만난 할머니는, 나를 업어주던 할머니는,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옷을 사주고, 씻겨주고, 밥을 먹여주던 할머니는 겨우 쉰 남짓한 아주머니 였을 뿐이다.
할머니의 일곱 손주 중에 맏이인 나는 엄마와 삼촌과 이모들처럼 할머니의 젊음을 갉아먹고 이만큼 자란 것이다.
300포기의 배추를 반나마 치댔을까 해가 졌다.
갈무리를 해놓고 이모들을 돌려 보내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방에 누웠다.
할머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뜻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할머니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일어나 할아버지를 거든다.
할머니 어깨는 한줌이 안되게 얇다.
할아버지의 마른 기침이 멎을 줄을 몰랐다.
새벽녘에 할머니는 수면제를, 할아버지는 기침약을 챙겨먹는 소리를 들었다.
잠이 드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을 나는 몰랐다.
덩달아 나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았다.
다시 보아도 남은 배추는 많다.
할머니는 아직도 품을 채 못떠난 새끼들을 위해 300포기의 배추를 심고, 가꾸고, 거두고, 절여놓은 것이다.
다시 마당에 자리를 펴고 김치를 치대기 시작했다.
어제보다도 진도가 빠르다.
바닥을 보일 것 같지 않은 양념통이 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마지막'
이모부가 손질한 배추를 가져다 준다.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올해가 마지막 김장이라고 말을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년부터는 각자 알아서들 하라고 한다.
벌써 몇해전부터 하던 얘긴데 올해는 이상하게 진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또 내년...
얼마나 더 할머니와 김장을 하고, 얼마나 더 할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어주고, 얼마나 더 외가에 갈 수 있을까...
시간은 무섭게 지나가고, 세살이던 내가 일곱살이 되고 일곱살이던 내가 스물여덟이 되고...
마흔여덟, 쉰둘, 일흔셋...
삼년전에 암선고를 받은 할아버지를, 이미 오래전에 허리가 망가져버린 할머니를 두고 나는 김치를 챙겨들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와 동생에게 종종 외가에 전화를 하라고 일러두었다.
"하루종일 전화가 한통도 안오면 그렇게 서운하시대..."
어느날 동생이 말했다.
"외갓집에 전화를 했더니 할머니가 '아이고 우리 뼝아리 전화했나 어제는 큰뼝아리가 전화하더니 오늘은 작은뼝아리가 전화했네' 이래서 내가 '할머니 서른이 다되가는데 무슨 뼝아리예요' 이랬더니 할머니가 '느그는 환갑이 되도 나한테는 뼝아리다' 이러는 거 있지."
껍질을 깨고 나와 스물여덟해를 살았다.
솜털은 찾을 길이 없지만 나는 아직 '뼝아리'다.
아주 아주 큰 '뼝아리'
이게 벌써 삼년 전의 일기군요.
할아버지는 그 해 겨울을 넘기고는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서 돌아가셨고, 그 후로도 우리는 두번의 김장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정말 더는 외가에서 김장을 할 수 없게 됐네요.
할머니가 돌아가신건 아니구요 작년에 김장을 하고는 입원하실 정도로 몸살을 하셔서...
며칠 전 할머니와 전화로 올해 김장은 각자하기로 정했습니다. 왠지 서운하네요.
나보다 키가 크고, 나보다 빨리 걷고, 나보다 무거운 걸 들던 할머니가 점점 작아지고 느려지고 약해지는 걸 보는건 힘든 일입니다.
서른이 넘었지만 무섭네요. 마흔 쯤 되면 이 무서움증이 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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