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귀신.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저마다 다르다. 길가에 서 있는 사람을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귀신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기사가 태운 손님이 자유로를 달리던 도중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머리가 긴 여성이 눈처럼 하얀 소복을 입고 있었다는 쌍팔년도 설정도 있고, 검은 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였다는 최신 버전도 있다. 하여튼 그 여러 가지 설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 귀신은 적어도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십 년이 넘도록 택시기사 생활을 하며 강도를 세 차례, 폭행을 일곱 차례나 당하고 기타 잡범들은 그야말로 무수히 만나본 나로서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그런 귀신보다 오히려 사람이 훨씬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나의 자유로 귀신 이야기이다.
어두컴컴한 밤에 나는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누런 가로등 불빛과 그 사이사이에 깃든 어두운 그림자가 연달아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로는 텅 비어 있어 간혹 가다 한두 대 정도가 보일 뿐이었다.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이후로 나는 어지간하면 야간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예외였다. 오전에 집을 나선 후 오후 서너 시까지는 손님이 그야말로 한 사람도 없었다. 오늘은 공치는 날인가보다 싶던 차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손님이 정신없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에 손님을 내려주면 문이 닫히기도 전에 다른 손님이 나타나고, 그 손님을 내려주면 또다시 다른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댔다. 미터기가 정신없이 올라가는 소리에 취해 열심히 액셀을 밟다 보니 어느덧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늦은 시각인데도 집에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드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지못해 미터기를 운행종료로 돌린 후 집으로 향했다.
얼추 계산해도 그날 한나절 동안 올린 매상이 평소의 이틀 치를 훌쩍 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린이날이 이틀 후였다.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꼭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다며 지난달부터 노래를 불러 댔다. 그런데 때마침 이렇게 운수 좋은 날이라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나를 굽어 살피시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설렁탕. 아내의 생일은 어린이날과 같은 5월 5일이었다. 생일에 뭘 먹고 싶으냐는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다 아내가 기껏 내놓은 답이 설렁탕이었다. 아내가 평소에 설렁탕을 즐겨 먹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일에까지 설렁탕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나의 말에 아내는 고개를 도리질하더니 설렁탕이 꼭 먹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그리고 비싼) 설렁탕집의 상호를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재촉했다. 일산까지 5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머리 위로 지나갔다.
뭐라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좀 전에 5km 남은 표지판을 이미 지나친 것 같은데 착각이었던가? 밤늦게까지 일한 탓에 정신을 잠시 놓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전방에 다른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속도가 점차 높아지며 길가의 가로수가 홱홱 뒤로 지나갔다. 아내와 딸이 있는 집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곧 다음 교통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산 5km
이번에는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달려왔는데 아까와 같은 표지판이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허리춤 어디선가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부러 큰 소리로 투덜거리며 그 감정을 쫓아냈다.
“도로공사 놈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표지판 바꾸려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그러면서도 속도를 한층 더 높인 것은 도저히 없앨 수 없는 나의 불안함 때문이었을까. 삼 분쯤 더 달리자 멀리서 초록색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나는 감속했다.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일산 5km
그뿐만이 아니었다. 표지판 아래 길 가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두운 주황빛 조명 아래서도 똑똑히 보였다. 마치 장례식장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검은 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치 택시를 잡는 것처럼, 나를 향해 무심히 손을 흔들었다.
“......여기 자동차전용도로야, 미친놈아.”
내 목구멍으로 빠져나온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예전에 택시 회사 다닐 때 동료 기사들이 수군거리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유로 귀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택시를 잡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던가? 없었던가? 나는 다시 액셀을 밟았다. 엔진이 거친 소리를 냈다. 나는 남자 곁을 스치고 지나가며 전방을 주시했다. 결코 옆을 돌아보지 않고.
한참 더 가자 다시 표지판이 보였다.
일산 5km
미칠 것 같았다. 주변에는 다른 차가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선 가로등만이 불빛을 내려쬐고 있는 자유로에 있는 차는 오직 나의 택시뿐이었다. 그리고 표지판 아래에는 여전히 그 남자가 서 있었다. 표지판 가까이 다가가자 택시 조명등이 남자의 몸을 비췄다. 검은 색 양복에 흰 셔츠를 입었고 넥타이 역시 검은색이었다. 얼굴은 평범했지만 어쩐지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왼손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서류가방을 들었고 반대쪽 손은 택시를 잡으려는 듯 앞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나는 목을 움츠리고 옆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이번에도 남자를 지나쳤다.
일산 5km
이번에도 푸른 표지판은 여지없이 냉정하게 그곳에 서 있었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기 전부터 그 남자가 그곳에 있을 것이란 사실을 나는 확신했다. 나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표지판 아래서 차가 급정거하며 몸이 왈칵 앞으로 쏠렸다가 다시 좌석으로 돌아왔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뒷문 쪽에 서 있었다. 위치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최대한 평범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말했다.
“타세요.”
딸깍. 뒷문이 열리고 남자가 상체를 굽혀 택시에 올라탔다. 나는 몸을 돌리지 않은 채 앞만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입 안이 바짝 말라 있어서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어디 가십니까?”
“일산요.”
남자의 목소리는 의외일 정도로 평범했다. 나는 조금이나마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말은 내 안도감을 여지없이 박살내 버렸다.
“XX아파트 가시죠.”
나의 집. 나와 가족이 사는 곳. 내가 돌아가고 있는 곳의 주소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지 않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을 치켜떠 룸미러를 흘깃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은 평범했고 어떤 특별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치열하게 고민했다. 지금 당장 택시에서 뛰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 배운 주기도문이라도 외울 것인가. 그러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의 범위는 너무나 좁았다. 내 몸은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오른손이 뻗어나가 기어봉을 잡았고 오른발이 브레이크에서 액셀로 옮겨갔다.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달리는 동안 남자는 묵묵하니 아무 말도 없었다. 차를 운전하며 나는 룸미러로 뒷좌석을 훔쳐보았다. 그러다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통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등허리에 소름이 쫙 돋으며 손발이 멎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교통 표지판이 저 앞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 표지판을 확인했다.
일산 5km
빌어먹을. 아까와 다른 점은 그 아래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 택시는 속절없이 표지판 아래를 지나갔다. 타이어가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소리만이 차 안의 적막감을 조금이나마 치워 주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룸미러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뭘 보는 건가? 나는 남자의 시선이 앞으로 향해 있지 않은 것을 재차 확인한 후 손을 뻗었다. 그리고 룸미러 각도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그 옆에는 웬 여자가 앉아 있었다.
분명 한 사람만 태웠는데. 내가 직접 봤는데. 대체 저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택시에 언제 탄 건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표지판이 나타났다. 일산까지 5km. 갑작스레 왈칵 눈물이 터졌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딸이 보고 싶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생각나는 것은 오직 가족뿐이었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야 하는데. 설렁탕 먹으러 가야 하는데.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운전대에 바짝 매달렸다. 시야가 흐려져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들어 눈앞을 훔쳤다. 자유로에, 그 드넓은 도로 위에 다른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오직 나만이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정체 모를 존재를 뒷자리에 태우고서.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차가 크게 출렁였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파열음이 나며 차가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여전히 나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급브레이크 때문에 차가 한 바퀴 반이나 돌더니 간신히 멈추었다. 나는 와들와들 떨면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평범하고, 이유 모를 애잔함을 띤 얼굴이었다.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말했다.
“집으로 가고 싶으시죠?”
다시 울음이 터졌다.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꺽꺽 울었다. 그러면서 무슨 말인가를 마구잡이로 주워섬겼다.
“살려주세요. 집에 보내주세요. 제발 보내주세요. 제발요. 저는 아내가 있어요. 딸도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전 아무 죄도 없어요. 제발 부탁합니다. 살려주세요. 가족들을 보게 해 주세요. 집에 가고 싶어요......”
나 스스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나의 말은 지리멸렬했다. 그러나 남자는 나를 막지 않고 끝까지 기다렸다. 그러다 내 말이 그치고 나서야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한심함을 드러내는 한숨이 아니었다. 오히려 딱함이나 안타까움이 담긴 그런 한숨이었다. 그 한숨소리를 듣자 나는 왠지 모르게 조금 위안을 얻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선생님. 지금 가족 분들이 와 계십니다.”
“뭐라고요?”
나는 화급히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눈빛은 깊었고 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거짓을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어디 있나요? 어디 있어요?”
“지금 이곳에 와 계십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여전히 내 어깨에 못 박힌 듯 붙어 있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주변을 한 번 살펴보세요. 뭐가 모이십니까?”
뭐가 보이냐니. 나는 그의 말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유로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달리고 있던 자유로가 아니었다. 주위에는 온통 차들로 가득했다. 잘 살펴보니 멀쩡한 차들은 하나도 없었다. 어딘가 부서지고 망가진 차들이었다. 그런 차들이 사방에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언젠가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기억에 있었다.
“......폐차장?”
남자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슬쩍 저어 보였다. 내 시선은 그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아. 탄식이 절로 났다. 왜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가. 내 차의 앞 유리는 없었다. 옆 유리창은 마치 벌집처럼 박살이 나 있었다. 좌석은 피투성이였다. 보닛은 엉망으로 구겨져 불쑥 솟아올라 있었고 뒷문 하나는 아예 사라져 있었다. 나는 완전히 박살난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나의 귀를 파고들었다.
“사고가 난 것 기억하십니까?”
사고? 사고. 사고. 그래. 기억난다.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집으로 가고 있었다. 한시라도 바삐 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과속했다. 늦은 밤 자유로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온종일 운전하느라 피로에 지친 눈이 절로 감겼다. 차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순간 나는 눈을 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옆을 달리던 트레일러 아래로 내 차가 파고들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굉음과 함께.......
나는 물었다.
“전 죽은 건가요?”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은 없었다. 그저 그 사실을 지금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이상할 뿐이었다. 나는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의 상의와 하의를 내려다보았다. 온통 피투성이였다. 나의 몸은 나의 택시와 다름없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우스꽝스럽게도 나는 내 몸보다 택시가 부서진 것이 더 마음 아팠다. 이 택시 한 대에 의지하여 나와 아내와 딸이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이 택시로 아이의 장난감을 사 줄 수 있었고 아내의 설렁탕을 사 줄 수 있었다. 이 택시로 나의 가족이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택시였는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이 와 있다고요?”
남자가 말없이 차 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조수석 문이 열리고 마흔 남짓 된 그녀가 허리를 굽혀 상체를 안으로 들이밀었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나를 배웅해 주고 퇴근할 때면 나를 맞이해 주는 얼굴이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항상 보고 싶던 그 얼굴이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조수석에 앉더니 밖의 딸아이를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문을 닫자 침묵이 차올랐다. 분명 두 사람이 반가워야 할 터인데, 숨이 턱 막혀 오는 것만 같은 기분에 나는 그저 망연히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뭐가?"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온통 뒤범벅되어 있었다. 마치 나처럼.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장난감이랑 설렁탕, 못 사줘서."
그녀는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 손을 포개어 잡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감촉과 온기가 손에 느껴졌다. 어딘가에서 구슬픈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하염없이 아내의 손등을 쓰다듬을 따름이었다. 그러다 나는 푸념처럼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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