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을 규정할만한, 고유한 특징은 뭘까?"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깬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두 가지 단어가 떠올랐는데 하나는 잠결에 잊어버리고 나머지 한 단어만 또렷이 떠올랐다.
'가식'
나란 사람을 한마디로 규정할만한 그 무엇을 묻는 질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단어를 떠올렸다. 일면 황당한 얘기다. 이 세상에 가식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을 ‘가식’으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마치 ‘외로움’을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약간의 가식이라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렇게 잠결의 헛소리만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이 단어가 너무나 또렷하게 가슴에 박혔다. 그렇게 나는 이른 새벽, 이불 속에서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래 맞다. 나는 가식보이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두 부류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가식이 없어 보이는, 이른바 그늘이 없는 듯 매사에 거침없고 한평생을 구김살이 없이 살아온 듯 투명하게 당당한 사람. 이런 사람 앞에 서면 나는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우면 지는 건데, 이런 사람들 앞에선 난 항상 마음으로 진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의 가식을 뼛속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날카로움을 지닌 사람. 이게 꼭 무슨 대단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 동료의 사소한 농담에 나도 모르게 진심 반, 배려 반으로 손바닥을 치며 웃고 있는 내게, “진심으로 웃는 거 맞아?”라며 퉁을 주는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뜨끔함 같은 것들. 나는 이런 뜨끔함을 주는 사람이 불편하고 때로는 두렵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초능력을 걸 수 있는 주인공이, 초능력이 걸리지 않는 단 한사람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 <초능력자>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좋게 바라봐주는 내 가식을 꿰뚫어보는 몇 안 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좀 뜨끔하면서 괜히 어색해진다.
언젠가 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내겐 ‘착한아이 콤플렉스’, 이른바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바꿔 말해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미움받을 용기'가 내게는 없다. 그래서 어쩌다 누군가와 작은 다툼이 생기더라도 그 불편한 냉전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화해하려 노력한다. 사소한 오해나 실망도 어떻게든 내 쪽에서 빨리 풀고 싶어 하기 일쑤이다. 어쩌면 이 놈의 지긋지긋한 가식은, 이러한 무의식적이고 생래적인 불안과 두려움에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30여년 가까운 오랜 연륜과 깊은 내공으로 다져진 내 가식의 역사의 물꼬를 논하려면 바야흐로 유년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내가 대여섯살쯤 되던 무렵부터 아빠는 내게 “넌 저 아래 주막거리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장난 섞인 농담을 자주 하곤 했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나는 눈치가 빨랐다. 그런 아버지의 장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휘둘릴 만큼 순수하고 녹록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의 장난을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기곤 했다. 그래서 한 번도 심각하게 울음을 터뜨리거나, 뾰로통해진 서운한 얼굴로 아빠를 째려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나는 ‘설마..’라는 일말의 불안감과 두려움마저 지우진 못했다. 그럼에도 어린마음에 그걸 티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더 명랑한 척 행동하곤 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가식이다. 학교에서 계란 후라이 때문에 창피를 당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도 집에 와서 한 번도 엄마에게 도시락 반찬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냥 엄마가 속상할까봐.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마음 아픈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시절에는 나이답지 않게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참 어른스럽고 대견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왠지 모를 안쓰러움과 연민이 교차한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아버지의 말에 차라리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왜 주워왔냐며, 이럴 거면 다시 다리 밑으로 보내달라고 땡깡을 피웠으면 어땠을까. “왜 우리집은 창피하게 도시락 반찬이 매일 똑같냐”며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만 골라하며 생떼를 부렸으면 어땠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내 성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쨌든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생겨난 나만의 가식은 남들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나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렸다. 나는 상처주기보단 받는 쪽이 익숙했고, 손해를 입히기보단 손해 입는 쪽이 편했다. 지인에게 돈을 빌려줘서 못 돌려받는 건 괜찮아도, 얼마를 빌렸건 일단 소액이라도 돈을 빌리게 되면 갚지못해 안절부절인 경우가 많았다. 내 딴에는 내가 마음이 넓고 착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냥 나는 누군가로부터 미움받거나 버림받고 싶지 않았나 보다.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버림받을지도 모를 상황에 놓이는 게 그냥 두렵고 무서웠나보다. 그래서 연애 초기에는 곧잘 ‘일희일비의 제왕’이나 ‘의미부여의 제왕’으로 힘없이 군림하곤 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고, 버림받고 싶지 않은 욕망에 둘러싸여 살아온 나는 내 감정을 솔직히 얘기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진짜배기’를 말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얘기해주는데 더 익숙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극장에서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슬쩍 상대방 눈치를 보니 재미있게 본 거 같길래, 내 본심을 적당히 얼버무리며 그냥 영화가 그럭저럭 볼만했다며 애매하게 말을 하는 내게 “이런 영화가 뭐가 재밌냐”며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하고 싶은 얘기’가 아닌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하면 오히려 그게 정답이 아닌 경우가 참 많았다. 그래서 종종 '이러한 내 삶의 가식을 통해 나는 얼마나 행복해졌나..?'라는 물음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무어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를 때가 많았다.
이러한 깨달음이 내가 글을 쓰는데 있어서 많은 자양분이 되었고 그래서 적어도 글을 쓰는데 있어서만큼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대한 꾸밈없이,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 대신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었다. 설령 내 인생이 가식투성이라도, 적어도 내 글만큼은 가식 없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냥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솔직담백하게 글을 쓰고 싶어도 나도 모르는 스스로에 대한 '미화'가 글 속에 은근히 스며드는 것까지 막긴 어려웠다. 나도 사람인 이상에야 이왕이면 칭찬받고 싶고 이왕이면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 내 수필들이 항상 어떤 어쭙잖은 깨달음과 교훈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가식의 일면, 즉 ‘사랑받고 싶은 욕망’의 투영인지도 모른다.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글 쓰는 이로서 나도 아직 참 멀었구나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내가 많이 외로운가보다 싶은 생각도 든다.
더불어 이러한 ‘내 글의 이중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짚어주는 이들은 평소의 내 모습을 잘아는 친한 친구나 동료지인들이다. 이들의 얘기를 간략히 요약해보면, 내가 오프라인에서 보여주는 평소 행실과 글에서의 드러나는 자아의 온도차가 극명하다는 것. 이 간극을 좋게 얘기하면 ‘미화’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위선 혹은 가식’일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뼈아프지만..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도 한 가지가 있으니 그건 바로 현실의 내 모습에 대한 단정이다. 이들이 진짜배기라고 생각하는 현실 속의 내 모습들, 이른바 오프라인에서의 내 모습은 얼마나 많은 본질을 담고 있을까. 과연 그들이 마주하는 내 모습들은 연기나 가식이 아닌 진짜배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우리가 어떤 사람의 ‘명과 암’을 동시에 발견한 경우, 그 사람의 암(暗)은 ‘본질’로 쉽게 규정하는데 반해 명(明)은 이른바 ‘꾸며낸 것’, ‘미화된 것’으로 여기기 쉽다. 나는 이러한 내 글의 이중성에 대한 일련의 지적들을 마주할 때면 서정주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온라인에서의 나든, 오프라인에서의 나든 둘 다 내가 가진 고유한 모습이고 둘 다 어찌할 수 없이 내가 끌고 가야할 자랑스런 훈장이자 부끄러운 멍에라면,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고 싶지 않다. 나는 겉과 속이 다른,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다른 '가식보이'가 맞다. 하지만 내 힘으로 어떻게 바꿀 수 없는 가식이라면, 이런 나라도 좀 당당하게 이 두 가지 면을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같이 가고 싶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이 가식이라는 존재가 결국 평생 나와 함께 해야 할 일생의 동반자라면 말이다. 어쨌든 난 남들 눈치 보며 가식과 쭈뼛쭈뼛 결별하는 척하기 보단 뜨거운 포옹을 택하고 싶다. 그래서 나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이 가식이란 놈이 조금 더 건강한(?) 가식, 그리고 조금 더 순수한(?) 가식이길 바란다. 30여년 가까이 '가식보이'로서의 험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내게 이 정도의 여유와 응원은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 어차피 이왕 이리 된 거 순수한 가식보이로 평생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오히려 그러다보면 나를 둘러싼 이 지긋지긋한 가식과의 간극도 조금씩은 좁혀지지 않을까? 만약 안되면? 안되면 할 수 없는거지뭐. 써놓고 보니 어느새 또 어쭙잖은 깨달음과 쓸데없는 교훈 조로 급마무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놈의 결론병.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시스타의 <가식걸>이나 듣다 잠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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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게 좋은 것 같아요. 속이 부대낄 만치 노골적인 가식도 에러지만, 너무 솔직하려 애쓰는 것도
'솔직한 척'으로 곡해되기 쉽상이죠. 더불어, 내가 진실되거나 말거나 "궁극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관심이 없다"고 결론짓고 나니, '타인의 눈에 비친 나'에 대한 집착이 좀 가벼워지더군요.
본문의 한 대목처럼, 누군가 동료 농담에 리액션해주는 저한테 "진짜 웃겨서 웃는 거냐" 야지라도 놓는다면,
"xx 그냥 같이 쳐웃어 baby야" 일갈하고 맙니다. 그저 그 순간 다같이 꺄르르 하면 그만인거죠 헐헐.
첫 번째 유형처럼 사는 친구가 한명 있었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학교도 잘 갔으며, 능력도 아주 좋은 친구였습니다.
사회생활도 잘해서 모든 교수님들이 그 친구를 좋아했습니다.
선배들에겐 싹싹하고 노력하며 누구보다 이뻐하는 후배였습니다.
동기들은 노력하고 좋은 성적 받는것에 시기하였지만, 항상 분위기를 주도하고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후배들에겐 존경받는 선배였지만, 어쩔때는 분위기를 잡는 모습에 쉽게 다가가진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저 또한 약 8년간 그 친구를 보면서 굉장하다 느꼈습니다.
화도 잘 안내고 가식처럼 보였었는데 전혀 가식이 아니라 그친구 자체가 그런거구나 하고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근데 이런일들이 모두 무너지는 일들이 생기더군요. 여성 편력이 나름 있었는데, 평소의 이미지로 잘 커버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커버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겨버리고 주변사람들에게 폭로 되었죠.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일이었지만, 그 친구를 신뢰하는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두둔하였고 여자만 버려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중에 가장 괴물같은 느낌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군대있을때 같네요. 저는 가식보다는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맞장구만 치는 거였스빈다. 친구들에게 지적당하기 전에는 스스로도 몰랐습니다. 군대 전역직전에 동기에게 그 소리 듣고, 전역하고 나서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내 속을 몇번 얘기해보니 참 쉽고 개운했습니다. 스스로 알고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고칠수 있을꺼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