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올해 잠실에서 야구 할 일은 없지만 어제 직관 다녀온 후 몇 가지 팁(?)과 신기했던 경험, 이런저런 잡설을 풀려고 합니다. 고로 뭔가 대단한 내용은 아닙니다. (풉) 오늘 마침 야구도 쉬길래 그냥 생각나서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여담으로, 두산팬인 저는 1년에 3, 4번 정도 직관을 가는데 직관 승률은 겨우 20~30% 정도입니다. 한국시리즈 직관은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만, 여튼 어제의 패배는 저 때문일지도... 두산팬 여러분 죄송합니다. (다시는 큰 경기에는 가지 않으리)
1.
그 구하기 힘들다는 한국시리즈표는, 마침 제 절친 하나가 MBC SPORTS+(이하 엠스플)에 근무하고 있는 관계로, 그 놈도 두산팬인지라 엊그제 전화로 '볼래?' 하길래 닥치고 간다고 했습니다. 인생 살면서 내 눈 앞에서 두산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기회다! 노경은VS윤성환이면 할 만 해! 뭐 이런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망했어요)
아시다시피 이런 빅경기 때에는 일단 해당 구단으로 표가 왕창 빠지고, 극히 일부가 스포츠 채널에 배정된다고 합니다. 다만 앞서 말씀 드렸듯, 방송국 쪽으로 배정되는 표는 일부입니다. 엠스플 다니는 그 친구 왈, 회사 특성상 사내에 야구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사회인 야구팀도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도 표를 쉽게 못 구한다고 하더군요. 밖에서 보기엔 뭔가 어둠의 경로(?)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극소수 고위 직급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과 똑같이 클릭질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 친구 녀석은 어떻게 구했는지 물어보니 높으신 분들께서 갑자기 중요한 미팅이 줄줄이 생겼고, 뭔래 서열상 그 녀석까지 내려오는 건 아닌데(무려 차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얻게 되었답니다.
인생 살면서 종종 변호사, 판검사, 의사, 회계사, 그냥 돈 많은 놈 등등... 뭐 이런 류의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그런 분들 사귈 팔자는 아닌 듯 하고, 대신 스포츠 채널 다니는 놈, 자동차 공업사 사장, 부동산 하는 후배, 아이폰 수리점 사장 친구로 만족하렵니다. (쓰고 보니 매우 요긴하다?)
2.
마침 제 거래처 담당자도 두산팬이신지라, '저 오늘 직관가니까 마감을 좀 늦춥시다!'라고 전화를 한 후(미쳤구나) 회사일은 대충 4시반에 마무리하고, 잠실야구장역에 5시 40분 즈음 도착했습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서 일단 좌판에서 2천원짜리 우비 하나를 사고, 자꾸 제 주위를 맴돌며 '10, 15, 20... 10, 15, 20...'을 중얼거리시는 암표상 아저씨의 프로페셔널한 속삭임를 애써 외면한 채, 친구 녀석 후배 2명과 합류하여 딱 6시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정가 5만원, 암표 15만원짜리 블루지정석 1루 209블록 19열이었습니다. (사진 참조)
근데 어제 오전 비가 내린 관계로 제 시간에 시작 못했습니다. 그 동안 제 일행들은 맥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는데, 30분 후 개그맨 김준호씨가 시구자로 등장할 때 즈음에는 이미 인당 2~3캔씩 까는 바람에 정작 야구는 시작도 안 했는데 맥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혼자 화장실 간 김에 캔맥주 8캔을 사왔는데, 문제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일행들 역시 너도나도 맥주를 사오는 바람에 맥주가 무려 24캔... 나올 때 확인해 보니 그래도 4캔 밖에 안 남기고 다 마셨습니다. 당연히 배불러 죽을 뻔 했죠.
어제의 교훈 : 야구장에서 화장실 갈 때는 (여자들처럼) 꼭 친구랑 같이 갑시다.
3.
우리와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배우 이채영씨가 앉아계셨습니다. 우리 자리 왼쪽이었죠. 인증샷을 찍을까 하다가 양해도 없이 핸드폰 들이대는 건 예의가 아닌 듯 하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볼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몰카를 찍는 건 무슨 범죄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았습니다. 근데 역시나 여배우답게 얼굴이 작았고, 실물이 훨씬... 사, 사랑... 아닙니다.
4.
관람하시다가 피치못할 약속 때문에 경기 중반 이후 자리를 떠나는 분들이 주변에 계셨는데, 잠시 후 그 자리에 싱글벙글한 표정의 다른 사람들이 앉더군요. 알고보니 그 분들이 나가면서 입구에서 표를 못 구한 분들에게 그냥 주시고 가신 듯 했습니다. 큰 경기의 경우 이미 경기는 중반을 지났음에도, 먼저 퇴장하시는 분들의 표를 노리고 입구에서 대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앞으로 직관할 때 먼저 가게 되면 꼭 선행을 배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반값에 팔자)
5.
우리 자리는 블루석 맨 뒷자리인지라 의자가 없고 철기둥 뒤로 통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가 열성적으로 응원하시는 분들의 명당이더군요. 대략 10여 명의 남녀가 팀별로 응원을 하는데, 대부분 그 자리에서 준플부터 응원하셨다고 하더군요; 술 한 잔 건네면서 말을 걸어봤는데 이미 목소리가 쉬어 있었습니다. 신기했던 건, 저도 어지간히 야구 많이 보는 편이지만 응원가에 추임새(자체 삽입 피처링?)까지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선수들 응원가가 나오면 원곡 중간중간에 뭔가가 추가되더군요. 이건 두산팬분들이라면 짐작하실 수 있을 텐데, 가령...
( ) 부분이 추임새
손시헌 : 두산 손~시헌~ 오오 오오오오~ (날려버려 손시헌) 두산 손~시헌~ 오오 오오오오~
양의지 : 두산의 안방마님 양의지~ (안타안타) 두산의 안방마님 양의지~ 안타를 날려줘요~ (예~) 홈런을 날려줘요~ (예~)
김현수 : 홈! 런! 김현수!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나 김현수! (날려라아~~~) X2
최준석 : 날려라 준! (예!) 날려라 석! (예!) 날려라 최준석~ 홈런!
예외없이 전 선수 응원가에 뭔가 들어갑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네요.
6.
자리가 높은 곳에 있어서 화장실에 가려면 아래도 내려갔다가 나가야 되는데 중간중간 화장실 가는 도중 투수들이 던지는 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집에서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더군요. 공이 투수의 손에서 포수 미트까지 날아가는 걸 측면에서 보니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본 공 중, 개인적으로 가장 위력있고 미트 소리가 크게 났던 건 오승환이 아니라 안지만이었습니다.
투수가 던지는 공 뿐만 아니라 땅볼 타구 역시 TV로 보는 것보다 상당히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여담으로, 예전에 '버디홀리'님께서 주관하셨던 피지알 캐치볼 모임에 나가서 펑고를 몇 번 받아봤는데, 그 날 이후로 알까기 하는 선수들에게 최소한 욕은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본 프로들의 타구는 (당연히) 레벨이 다르더군요. 앞으로도 에러 했다고 욕하지 말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려고 합니다. (3차전 손시헌... 잊지 않겠다)
7.
https://pgr21.co.kr/?b=10&n=179080
경기 도중 엠스플 다니는 친구에게 유게에 있는 '홍상삼 인생짤'을 보여주면서 너희 회사 카메라맨들 약 빨고 찍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녀석도 처음 본다면서 엄청 웃더군요. 누군지 알아볼 눈치던데,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건...
8.
아시다시피 어제 엄청나게 재미난 경기였습니다. 다만, 두산이 지는 바람에 장돈건의 한국시리즈 MVP 수상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고, 올시즌 후 FA 계약 때 총액에서 약 1억원 정도를 손해 보지 않을까 싶군요. 풉. 그리고 삼성은 역시 강팀이었습니다. 바카닉의 안타가 터지는 순간, 그리고 곧바로 돌부처가 몸을 푸는 순간 이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어제 경기 총평을 하자면, 준플부터 지금껏 짜내고 짜내서 올라온 두산도 무섭지만 '삼성도 짜내면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벤덴헐크가 계투로 나오는 순간,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어라? 진짜?' 했거든요. 그리고 내일은 선발로 나온다니... 이래서 뒤가 없는 팀은 무서운 겁니다.
9.
가을작가 정재훈이 등장하는 순간, 1루측에서는 이미 이상기류가 감지되었습니다. 입으로는 정재훈 화이팅을 외치고 있지만 주변 팬분들의 반응은... 술렁술렁~ 술렁술렁~ (카이지 버전) 개인적으로는 좀 더 드라마틱한 작품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타-번트-안타는 정작가의 위용을 감안했을 때 너무 빈약한 스토리가 아닐까 싶군요.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시다)
그리고 정작가가 2점 주고 나서 홍상삼이 등장했을 때,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그냥 제 착각이려니 하겠습니다.
10.
돌부처의 깔끔한 마무리로 경기가 끝나고, 근처에서 술을 한 잔 더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맥주로 배가 가득한 데다가 다음날(=오늘) 일이 밀려 있는 관계로 도중에 귀가했습니다. 친구 녀석이 '6차전 표도 구해볼까?' 하길래 솔깃했지만 대구까지 가는 건 좀... 그리고 과거에 여친님(현 와이프님)과 전국일주를 하다가 마침 일정이 맞아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기아VS두산 전을 본 이후, 왠만하면 다른 팀 나와바리에서는 응원을 자제해야 겠다는 교훈(...광주팬분들 무서워요)을 얻은 관계로 나머지는 집에서 편안하게 볼 생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친구들을 포함한 주변 지인들에게 만약 두산이 한국시리즈 우승하면 신혼여행 때 사 온(사실상 밀수) '발렌타인 30년산'을 까겠다는 소리를 했는데 용캐 그걸 기억하는 지인들로부터 전화와 카톡이 오고 있습니다. 이걸 까게 될지, LG 우승주와 롤렉스처럼 묵혀둘지는 곧 밝혀지겠죠. 두산팬 여러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