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살짝 웃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어쩌면 그저 신기한 걸 살펴보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표정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아, 세수도 안 했는데.”
“뭐 어때요. 세수한다고 딱히 잘생겨지는 것도 아니면서.”
사실이지만, 투덜거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혼자 살 때는 이래저래 귀찮아서 속옷 바람으로 잤지만 그녀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로는 항상 잠옷을 챙겨 입고 있다. 반세기만에 상봉한 이산가족마냥 차마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위아래 눈꺼풀을 손등으로 비비면서 나는 욕실로 향한다.
“보지 마.”
그녀가 욕실까지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버릇처럼 말한다. 내 뒤통수에 대고 그녀가 혀를 내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욕실 문을 닫은 후 속옷을 벗어 집어던지고 샤워기를 튼다. 잠을 깨기 위해 아침에는 찬물로 씻는다.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물을 뒤집어쓰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다.
몸을 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은 후 새 속옷을 꺼내 입는다. 그리고 면도를 한다. 면도 따위, 혼자 살 때는 외출할 일이 없는 다음에야 귀찮아서 며칠씩 미뤄두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무려 셰이빙 폼까지 쓰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이래저래 번거로운 일이다. 흐르는 물에 면도기를 깔끔하게 씻어놓은 후 욕실을 나간다.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나자 비로소 사람 같은 몰골이 된다. 이 정도면 조금은 잘생긴 게 아닐까 하며 나는 거울을 응시한다.
“아무리 거울을 봐도 본판 불변의 법칙이래요.”
그녀가 기척도 없이 다가와 놀리듯 말한다. 나는 짐짓 인상을 써 보인다.
“이정도면 그래도 좀 괜찮지 않나?”
“전혀요.”
단호하다.
“단호하네. 무슨 단호박인 줄......”
한참 철 지난 인터넷 개그를 우물거리며 나는 밥을 부엌으로 간다. 오늘도 아침은 우유와 콘프레이크다. 전설에 따르면 함께 사는 여자가 아침마다 밥을 차려 주는 일이 있기도 하다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우렁각시가 아닌 모양이다. 아쉬운 일이다. 내가 콘프레이크를 뱃속에 밀어 넣는 동안 그녀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소화가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진 터라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금세 식사를 마친다.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후 올라오는 트림을 참는 것은 그녀에 대한 나름의 배려다. 함께 살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무심코 트림을 한 순간, 마치 여고 앞 바바리맨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얼굴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간단한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뒤따라온 그녀가 살짝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오늘은 일 없어요?”
“없어.”
나는 고개를 젓는다.
“요즘 계속 집에서 노는 거 같은데요.”
“프리랜서가 원래 그렇잖아.”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다.
“이러다 일 떨어져 굶어죽는 거 아니에요?”
“뭔 소리야. 아직 저축도 좀 남아 있어. 당분간은 괜찮아.”
“그 저축이 얼마나 남아 있는데요?”
“아니 그게 뭐......”
나는 말을 흐린다. 사실 잔고는 뻔하다. 앞으로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녀가 그런 나를 보고 혀를 찬다.
“어쩐지 마트에서 좋아하는 콘프레이크 말고 제일 싼 걸로 고르더라니.”
“그냥 취향이 바뀐 것뿐이야.”
어설프게 변명하는 나를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포기한다.
“하지만 별 수 없잖아. 일거리라는 게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니까. 이게 무슨 영업을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말이야.”
“뭐 그렇긴 하지만요.”
그녀가 팔짱을 낀다.
“그래도 걱정된다고요. 정 안 되면 알바라도 하는 게 어때요?”
아무렇게나 툭툭 던지는 말투지만, 그게 그녀 나름대로 나를 걱정해 주는 방식이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정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남들처럼 대학 졸업 후 취업이나 했으면 훨씬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나이 서른 가까이 되어 한 달에 이십오 일을 집에서 노는 건 극심한 스트레스다. 나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려다 급히 참는다. 그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허세를 부린다.
“걱정 마. 너 걱정시킬 정도로 형편없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나를 잘 알고 있다.
“허세부리긴요.”
무리도 아니다. 그녀와 함께 지낸 지도 벌써 칠팔 년이나 되었으니까. 그 시간을 생각하자 나는 문득 불안해진다. 그녀가 언제 갑자기 나를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나를 떠날 수밖에 없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아무래도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잡생각만 머리에 가득찬 모양이다. 나는 안에 든 것을 털어내듯 세차게 머리를 흔든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가볍게 말한다.
“굶어죽진 않을 테니 걱정 마. 정 안 되면 네 말대로 알바라도......”
그 때 전화가 울린다. 무의식적으로 번호를 확인했지만 모르는 번호다. 나는 그녀와 시선을 교환한 후 급히 전화를 받는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기 전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나 스스로를 달랜다. 침착하자. 성급해하지 말고.
내 목소리는 차분했다.
“예 안녕하세요. 이해원입니다.”
통화를 하며 나는 그녀에게 눈짓한다. 그녀는 축하한다는 듯 싱긋 웃어 보인다. 만날 약속을 잡은 후 전화를 끊은 나는 튕겨지듯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다.
“일거리 들어왔다. 가자!”
“아주 신이 났네요.”
그녀가 놀리듯 말하지만 나는 괘념치 않는다. 그녀도 나 못지않게 신나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옷장을 열고 양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거설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그 모습이 왠지 보기 좋아 나는 그녀 몰래 웃는다. 바지와 셔츠, 재킷에 넥타이까지 빈틈없이 차려입은 후 나는 책상 위에 놓인 펜을 안주머니에 꽂아 넣는다. 그리고 오랜만에 현관문을 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그녀와 함께.
奇談 - 기이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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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놀리듯 말하지만 나는 괘념치 않는다. 그녀도 나 못지않게 신나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옷장을 열고 양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거설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그 모습이 왠지 보기 좋아 나는 그녀 몰래 웃는다. 바지와 셔츠, 재킷에 넥타이까지 빈틈없이 차려입은 후 나는 책상 위에 놓인 펜을 안주머니에 꽂아 넣는다. 그녀와 함께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자 따사로운 햇살이 눈에 들어온다.
음. 사실 일부러 페이크를 걸어놓은 글이긴 합니다만.......
본인의 경험을 담은 염장글로 보이지만, 또 그렇게 보이길 의도하고 썼지만, 사실은 소설입니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가 내려다보고 있기는 개뿔, 애가 우는 소리에 깨서 눈도 못 뜬 채 일단 분유 타러 갑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