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지내셨는지요?
지난 글에 이어 자동차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지난글 :
알기쉬운 자동차보험 -1. 제도적 배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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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상책임에 대한 이해(2) - 과실
앞서 배상책임에 대해 이야기를 할때,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입증해서 가해자에게 청구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사실의 입증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결정이 되는데요, 또 하나 중요한건 배상할 금액의 규모를 산정하는 것입니다.
아주 아주 쉽게 말해서, "이 사건이 발생한 데에 피해자는 몇%의 책임이 있는가?" 라는 것이죠. 그래서 피해자는 피해자 나름대로 피해액을 산정하여 가해자에게 청구할 지라도 인과관계, 과실여부를 판정하여 원래 청구금액의 일부만을 배상하도록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더라도, 실제 가해자가 관여된 정도만큼 피해를 배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취지에서 운영이 되고 있지요. 사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정말 조금의 실수, 잘못을 했을 뿐인데 손해액 전체를 덤터기 뒤집어 쓰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의 사고가 여러 명의 가해자로 일어났을 경우에도, 각 가해자들의 과실비율만큼 분담하여 손해액을 배상하는 것도 합리적이고요.
그런데, 이것이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그대로 적용하기가 무리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무단횡단하는 할머니 교통사고 동영상을 기억하시나요?
사실, 이 사고에 대해 운전자가 잘못했네, 할머니가 잘못했네 많은 논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양쪽 다 일정부분 과실이 존재한다는 것이고요, 그것이 누구 잘못이 더 크냐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망사고에 준하는 대형사고에 대해서, 과실을 책정해서 일부분만 배상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기만 한 것일까요?
교통사고라는 특성상 자동차와 사람이 충돌한 사고의 경우 때에 따라서는 사람의 잘못이 90%인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다친 사람 입장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친 상황에서 10%밖에 안되는 금액만 보상받는 다면 그것 역시 가족들에게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또한, 5,60년대 특성상 차량 소유자는 아무래도 부유한 계층이다 보니, 과실을 입증한다고 해도 가해자측에서 항소를 하거나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과실을 낮추는 등의 병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좀 더 알아볼 "자배법"에서는 전편에사 말한 "피해자 입증책임"과 "과실 책임주의"에 대해 거대한 전환을 시행합니다.
2. 자배법에 대한 이해
자배법에 한정해서 특별하게 적용되는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배상책임주체 확대
[[알기쉬운 예시 : 앞으로 여러분은 혹시 친구에게 차키를 빌려주고 운전을 하도록 할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 친구가 자동차사고를 내면 전혀 상관없는 여러분에게도 배상책임이 발생합니다. ]]
민법에서는 배상책임의 주체가 실제 불법행위자 또는 그 고용인입니다. 자동차사고로 한정지어서 말하자면 사고당시 운전자와, (만약 운전자가 고용된 기사일 경우)기사의 고용주가 되겠지요. 만약 운전기사의 고용주가 차주와 다르고, 그 운전기사가 운행중 사고를 냈다면, 차주에게는 아무런 배상책임이 없습니다.
그것을 자배법에서는 "자기를 위해 운행하는 자"로 확대했습니다. 그래서 차주에게도 배상책임 의무를 지웠습니다.
2) (조건부)무과실 책임주의
[[알기쉬운 예시 : 앞으로 여러분이 운전하다 사고를 내어 사람을 다치게 했으면 무조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피해자의 과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 백프롭니다.]]
앞서 말한 여러가지 피해자의 불리한 측면을 반영하여, 자배법에서는 피해자의 과실여부를 따지지 않고 운전자에게 모든 배상책임을 지웁니다. 네, 골목길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와도, 비오는날 누가 검은옷을 입고 지나갔어도, 청각장애인이 경적소리를 못들어도, 사고가 나면 무조건 운전자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제가 앞에 괄호로 "조건부"라고 했지요. 운전자에게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a. 운전자가 운행할때 정말 최선을 다해 사고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으며
b. 발생한 사고가 피해자 혹은 기타 다른사람이 고의/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며
c. 운행한 자동차가 고장났거나 결함이 없는 차라는 것
이 세가지를
모두입증하면 책임이 없습니다. 참고로 여기b.에서 말한 피해자의 고의/과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수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왠만해서는 저지르기 힘든, 정말 말도 안되는,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 겹치는 정도의 과실을 말합니다. 그래서 운전자에게 책임이 면해지는 조건을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비오는날 한밤중에, 고속도로 상에서, 검은 옷을 입은 행인이, 자기 키 높이 정도 되는 펜스를 넘어서,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들어서 사고가 났는데, 그 행인이 술이나 약에 취해있지 않은 맨정신이었으며, 주머니에 유서가 들어있는 경우]] 정도가 아니고서는 운전자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3) 입증책임의 전환
그러면 위의 3가지 조건을 누가 입증을 해야 하느냐? 일반적인 민법에서는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지만, 자동차사고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과실을 입증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배법에서는 이것을 전환하여서
가해자가 자신이 아무런 과실이 없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알기쉬운 예시: 자동차사고로 행인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입으로 아파 죽겠다고 말하면서 계속 입원을 합니다. 그런데 운전자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나이롱환자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자는 피해자의 치료비를 배상해야 됩니다. 그 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운전자가 "사실 저 피해자는 아프지 않다."라는 것을 증명해내야 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누구든지 길가는 행인을 차로 치면 아주 종되는 거에요.
자, 어떻습니까? 애초에 배상책임이라는 것은 상당히 공평한 원리로 적용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동차 사고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는 피해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상당부분의 책임을 운전자에게 지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운전자에게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겠죠? 교통사고라는 것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어떤 경우에는 정말 운전자가 억울한 상황도 있거든요.
그래서 자배법에서는 아주 친절하게 모든 운전자에게 이런 배상책임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 가입을 강제화 시켜버립니다. 바로
자동차보험 가입 의무화 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