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라타입니다.
오랫만에 우주이야기로 돌아왔네요.
그 중 예전 우주왕복선 이야기 중 두 대의 우주왕복선 대참사에 대해 코멘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첫번째로 컬럼비아호 참사를 포스팅 하려합니다.
https://pgr21.co.kr/pb/pb.php?id=freedom&no=40659&divpage=7&sn=on&ss=on&sc=on&keyword=우주왕복선
예전글 - (NASA가 만든 우주왕복선에 대한 사진과 설명)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인류 사상 첫번째 우주왕복선의 이륙..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은 1981년 4월 12일, 실제 우주유영에 투입된 사상 최초의 우주왕복선입니다.
최초비행일 : 1981년 4월 12일
최후비행일 : 2003년 1월 16일 (폭발참사)
수행임무수 : 28회
탑승인원수 : 160명
지구주회수 : 4,800회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의 대참사 _ Space Shuttle Columbia disaster]
STS-107 임무 기장
(기장에는 처음으로 우주에 가는 이스라엘인 이란 라몬을 위해 이스라엘 국기가 같이 들어갑니다.)
1. [개 요]
-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2003년 2월 1일 임무를 마치고 텍사스 주 상공으로 복귀하려
대기권에 진입하자마자 공중폭발되어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한 사고
2. [임 무]
- STS-107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중 113번째 비행)
= 임무는 2003년 1월 16일에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되어 16일 동안 국제 과학 연구의 다수를 실시했습니다.
대체로 미세중력 아래서의 과학실험 등 실제 그리 중요하지 않은 미션이기도 했습니다.
3. [승무원]
- 기장 : 릭 허스밴드
= 1957년 7월 12일생, 당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공군 대령으로 텍사스 주 출신이며, 1994년 12월에 우주비행사로 선발됩니다.
1999년에 STS-96으로 첫비행에 성공하고 이번 임무에 선장으로 발탁됩니다.
- 파일럿 : 윌리엄 맥쿨
= 1961년 9월 23일생, 당시 컴퓨터 전공의 미국 해군 중령으로 캘리포니아 주 출신이며, 1996년 우주비행사 후보로서 선발되고,
우주왕복선 승무원의 자격을 2년 후에 얻었습니다.
- 페이로드 커맨더 : 마이클 앤더슨
= 1959년 12월 25일생, 당시 미국 공군 중령으로 뉴욕 주 출신이며, 1994년 12월에 우주비행사 후보로서 선발되고,
존슨 우주 센터에서 훈련을 개시해 1년 후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됩니다.
-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 이란 라몬
= 1954년 6월 20일생,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신으로 이스라엘 공군 대령입니다.
1981년에 F-16의 파일럿으로서 이라크의 원자로를 폭격하는 바빌론 작전에 참가하고,
1997년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되어 첫 이스라엘인 우주비행사가 되었습니다.
- 미션 스페셜리스트 : 칼파나 촐라
= 1961년 7월 1일생, 인도 출신으로 1994년 12월에 우주비행사 후보로서 선발됩니다.
1995년 3월 존슨 우주 센터에서 훈련을 개시해, 1년 후에 미션 스페셜리스트로서 선정되고,
STS-87로 로봇 팔 오퍼레이터로서 첫비행에 성공하고 이번 임무에 투입됩니다.
인도계 미국인으로써는 최초로 선정된 우주인입니다.
- 미션 스페셜리스트 : 로렐 클라크
= 1961년 3월 10일생, 당시 미국 공군 중령이었고 아이오와 주 출신으로 1996년 4월 우주비행사 후보로서 선발됩니다.
2년 후에 존슨 우주 센터의 훈련을 수료해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되어 이번 임무에 투입됩니다.
칼파나와 함께 이번 임무에서의 두 명의 여성우주인 중 한 명이죠.
- 미션 스페셜리스트 : 데이비드 맥도웰 브라운
= 1956년 4월 16일생, 당시 미 공군 대령으로 버지니아 주 출신이니다.
1996년 4월에 우주비행사 후보로서 선발되어 동년 8월에 존슨 우주 센터에서 훈련을 개시하여,
2년간의 훈련을 수료하고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되게 됩니다.
7명의 영웅..
우주왕복선내 승무원들의 벙커형 침대
위에 설명과 같이, 칼파나 촐라(인도계 여성 미국인)를 제외하곤, 모두 각국의 군인출신입니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챌린저호 우주왕복선 폭발(1986년 1월) 당시 잃었던 미군 비행사들의 희생으로 인해
더이상 우주왕복선을 이용하여 국방에 필요한 위성을 발사하지 않음을 선언한 상태까지 갔기에,
이번 미군 국군의 희생 또한 NASA의 우주계획에 엄청난 차질을 가져옵니다.
4. [사고의 직접적 원인]
STS-107 임무를 위해 이륙하는 컬럼비아호
미션의 출발은 순조로웠습니다.
끔찍한 사고는 복귀할 때 일어납니다.
먼저 보통 외부 연료탱크는 탱크속 액체수소와 산소가 가득 차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얼음을 방지하기 위해 절연체 블럭으로 뒤덮혀 있습니다.
이러한 얼음들이 외부탱크와의 분리 시, 우주왕복선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컬럼비아가 이륙 후 약 82초가 지났을 무렵,
외부 연료탱크가 분리될 때 수트 가방크기 정도의 절연체블럭이 떨어져 나와 컬럼비아의 왼쪽 날개 탄소 - 탄소 (RCC) 패널에
부딪히고 분리가 되면서, 그 패널의 일부분이 그 충격으로 같이 떨어져 나가 버립니다.
이게 그 절연체 블럭..
이런 식으로 우주왕복선과 외부탱크가 삼각대 형식으로 고정되어 있고, 이 부근에 절연체를 붙이죠.
근데 이 삼각대가 외부에 드러나 있으므로 막대한 공기저항을 가지므로, 그 하중을 버텨낼 정도로 강해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곳에서 외부탱크의 절연체가 분리되면서 사고가 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사는 사고 후 이 곳의 설계를 완전히 다시하여 이 삼각대를 없애버립니다.
(이어서) 그러나 나사는 이 전에도 컬럼비아호가 이러한 절연체로 인한 문제가 몇 번 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발사에서 이 절연체가 컬럼비아호에 충격을 준 것을 알았음에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이러한 안일한 대처가 불러일으킨 참사는 그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 손실과 우수한 인적자원의 유실로써,
후에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탈의 일반화"라는 고정적인 명칭이 붙게 됩니다..
사고 후 절연체에 의해 손상이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 위 사진과 같이 구멍이 뚫립니다.
5. [컬럼비아호의 지구로의 복귀 및 공중분해 과정 _ 시간별 정리]
<미 동부표준시를 기준>
예정된 컬럼비아호의 랜딩 시간은 2003년 2월 1일 오전 9시 16분이었습니다. (09:16 a.m, 1 Feb 2003)
- 02:30
= 컬럼비아호의 무사 복귀를 위한 비행 제어팀은 새벽 2시 30분부터 긴장하며 임무에 돌입했습니다.
이 팀은 컬럼비아호의 복귀에 관한 어떠한 문제나 사건을 제기하지 않았고,
특히 우주왕복선 좌측부분 손상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특별한 우려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미션 때와 마찬가지로 복귀를 위한 체크리스트에 돌입했고, 케네디 센터 현장 기상 상황도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08:00
= 한편 미션 컨트롤 센터 복귀항공편 감독 르로이 케인(LeRoy Cain)은 당시 모든 기상 관측 및 예측 비행 규칙에 의해 설정된 지침 및
모든 시스템이 정상이었다고 판단하면서 복귀에 대한 결정을 내릴 준비를 합니다.
이 사람..
- 08:10
= 복귀가 승인되고 컬럼비아는 궤도에 재 진입을 할 준비를 합니다.
- 08:15:30
= 허스밴드 기장과 맥쿨 파일럿은 궤도 조정을 위한 두 조종엔진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인도양 상공 282km 위에서 초속 7.7km(/s)의 속도로 다시 지구의 대기권에 진입을 시도합니다.
이 속도가 현재 우주정거장이 지구의 중력 영향을 받지않고 떠 있을 수 있는 속도이기도 합니다.
초당 7.7km씩 이동하고 있는 지금 우주정거장과 도킹을 마칠 지점을 분석하여 다시한 번 주엔진을 점화해 궤도 반대방향으로
추진을 해 역분사를 하면서 속도를 감속하고 궤도를 지구 대기권과 가깝게 하강하게 됩니다.
하강은 대략 미국과 정반대 장소에서 이루어지며,
재돌입 과정은 거의 대부분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지며 만약을 위해 수동으로도 가능하기는 합니다.
이 때 기체는 120km정도의 고도에서 약 초당 8km의 속도로 대기권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약 15초 이후에는 지상과 맞닥드리게 될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제 수직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 그림에서 보는 것같이 하강할 때의 감속을 위해 바다부분을 최대한 공기저항을 받게끔 유도하기 위해
약 40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하며 수평하게 S자 선회를 하면서 내려옵니다.
하지만 이 하강속도는 분당 3km정도로 일반 여객기에 비해서는 20배 정도 빨리 하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제어할 수 없고 컴퓨터에 의해서만 제어가 가능한 것이죠.
대기권을 통과한 다음에는 일반 비행기처럼 활공을 하면서 이제서야 조종사들이 조종대를 잡고 자세 제어를 하며
착륙지점에서의 조종을 담당하게 됩니다.
- 08:44:09
= 궤도를 벗어나 대기권 재 돌입을 시도하고 약 29분이 지난 시점.
컬럼비아호는 태평양 상공 약 120km정도에서 본격적으로 대기권에 재 돌입하게 됩니다.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발생하는 열은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약 6분동안 최고 화씨 2500도(섭씨 1370도)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 08:48:39
= 진입하는 과정에서의 좌측 가장자리 센서가 기존 컬럼비아호의 대기권 재돌입 과정에서의 센서와 높은 수준의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이는 비행데이터 레코더 보조시스템에는 기록이 되나, 지상에 있는 팀이나 승무원에게 전달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 컬럼비아호 조종석의 콕핏 비디오로 촬영된 영상. 외부에 대기 마찰로 인한 엄청난 화염이 보입니다.
사고 후 발견된 이 비디오 안에는 13분 동안의 일상적인 지구 재 돌입 절차와 승무원들간의 일상적인 농담이 들어있습니다.
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죠.
- 08:50:53
= 컬럼비아호는 앞으로 있을 최대 10분 동안의 최고온도에 돌입할 준비를 합니다. (속도 : 마하 24.1, 고도 : 74km)
이 과정에서 충격이 가해진 곳이 이 열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전체가 공중분해되고 마는 것입니다.
- 08:52:00
= 대기권에서 발생되는 마찰에 의한 열과 초음속으로 비행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열이 더해져 발생되는 고온의 가스가
컬럼비아호 전면 좌측 틈새로부터 날개 내부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 직후 고온 가스에 의해 우주왕복선 내부 리얼 타임 텔레메트리 및 데이터 리코더 데이터 배선의 가열이 시작되었습니다.
- 08:52:16
= 1번째의 센서 고장이 발생합니다. (데이터 리코더 좌익 상부 압력 센서)
그 후 4분간 164개의 센서가 대부분 고장(대부분은 처음 2분 동안에 고장)되고,
마지막으로 확인된 센서 고장은 8:56:24 에 있었습니다.
- 08:54:24
= 미션 컨트롤 센터 복귀팀은 좌익 저항 증가를 감지해 대응을 합니다.
MMACS(복귀팀 중 일부) 장교는 르로이 감독에게 센서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었음을 보고하고,
이게 내부의 요인 때문인지 외부 요인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입니다.
- 08:54:25
= 이 시각 컬럼비아호는 네바다 주 상공 캘리포니아를 건너고 있고, 속도는 마하 22.5, 고도는 69.3 km 지점입니다.
이 때 지상에 있던 구경꾼은 이 시점에서 밝은 플래시를 보았고 향후 4분동안 유사한 이벤트를 계속 관찰합니다.
그리고 이 때쯤, 온도는 거의 섭씨 1650도에 육박하게 됩니다.
- 08:57:00
= 위 사진은 8시 57분 당시 미 커틀랜드 공군 기지에서 레이저 광학 망원경을 사용하여 촬영한 사진인데,
왼쪽 날개 부분에서 파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08:58:00
= 컬럼비아호는 이 동안 네바다에서 유타, 유타에서 애리조나를 지나면서 애리조나 상공에서 기수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틀어
뉴멕시코 상공으로 진입하여 앨버커키 북쪽으로 진입.
이 때 일반적으로 마찰온도가 약간 하강하여 섭씨 약 1500도 정도로 내려오게 됩니다.
- 08:58:20
= 그리고 딱 이 시간에 뉴 멕시코에서 텍사스로 상공으로 진입을 하게 되는데,
이 때쯤 아마 실질적인 우주왕복선 분해가 시작되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왜냐면, 지상에서 목격된 첫번째 파편이 이 부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 08:59:15
= 이 시각 MMACS팀의 보고에 따르면 압력판독 결과 왼쪽 메인 랜딩 기어의 타이어가 모두 타서 분실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르로이 감독관은 컬럼비아 승무원들에게로 전송을 지시했으나, 승무원들이 확인 하였는지는 알 지 못했습니다.
- 08:59:32
= 얼마 뒤, 승무원들에게서 "Roger, uh, bu –.." 라고 답변이 왔으나, 중간 부분에서 통신이 두절되었고,
이 수신이 이 승무원들과 주고받은 마지막 통신이 되었습니다.
- 08:59:37
= 바로 이 때, 우주왕복선을 제어하기 위한 마스터 유압식 압력이 완전히 손실됨을 파악했으며,
이 때의 우주왕복선은 피치, 롤, 요 모두 제어가 안되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아마도 비행사들은 심각한 문제에 도달했음을 알게되었을 것이라 복귀팀은 판단합니다.
비행에 필요한 전반적인 컨트롤이 아예 안되었단 얘기..
- 09:00:18
= 달라스 부근의 지상 구경꾼 및 목격자에 의해 비행체의 형상이 붕괴되고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이 촬영되어집니다.
복귀팀은 이 시각까지는 승무원들의 조종석 압력에는 이상이 없었으므로, 승무원들의 의식은 온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09:00:57
= 이 시점에 승무원들의 조종석에도 작은 압력차가 생김을 확인하고,
이 시점까지 만약 승무원들이 살았다면 이 시점 이후로는 모두 죽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 09:05:00
= 이 때, 텍사스 북부, 특히 타일러지역 사람들은 아주 큰 폭발굉음을 들으며, 하늘에 연기가 자욱한 것을 보게됩니다.
- 09:12:39
= 공중분해되어 폭파되었음을 보고받은 르로이 케인 감독은 즉시 비행체 파편 수거 목적과 승무원 구조팀의 파견을 명령합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관제실에서 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며, 비상절차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모든 비행데이터를 반드시 잘 보존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당시 기상청 레이더에 의해 감지된 컬럼비아호 화염과 파편
그야말로 산산조각입니다..
여기까지가 컬럼비아호의 긴박했던 폭발 경위입니다.
6. [컬럼비아호 사고 잔해의 회수]
공중분해된 컬럼비아호의 잔해. 사용하지 않는 격납고에서 재조립 중.. 그러나 파편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합계로 83,743개, 중량은 38,460 kg 으로, 귀환시의 컬럼비아 호의 중량 101,010 kg 의 약 38%입니다.
- 2003년 2월 1일, 잔해의 회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사고 발생 후, 부시 대통령은 즉시 텍사스 주 동부를 연방 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미합중국 연방 긴급사태 관리청(FEMA)과
환경보호국(EPA)의 팀을 파견해 파편을 수색하게하고, 현지의 경찰관들, 자원봉사자들, 현지의 주민들 등도 수색에 참가합니다.
- 2000개 이상의 파편들은 서쪽 루지애나와 아칸소의 남서부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잔해들 중에는 우주왕복선의 중요한 장비 뿐만 아니라, 사람의 팔, 다리, 몸통, 그리고 심장도 발견되었습니다.
- 사고 후 수개월동안 NASA는 파편이 있을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에 재 돌입 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독극물로 인한 일반인들의 건강을 염려해서입니다.
- 수거된 잔해들 중 이번 미션에서 실험했던 것도 나왔는데,
알루미늄 용기안에 배양된 1mm 정도의 작은 미생물이 발견되었고, 이 미생물은 2003년 4월 28일에 다시 살아나서
무중력 효과와 미생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 안타깝게도 잔해 검색 파일럿 줄스 F. 마이어 주니어와 파편 검색 항공 전문가 찰스가 이 검색 중에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합니다.
- 일부 텍사스 주민들은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일부 파편을 수거해 이베이에 10,000불에 판매를 합니다.
이베이는 발견 즉시 삭제를 했지만, 이행동에 의한 파장으로 컬럼비아 파편 관련 물품들의 가격은 점점 상승하게 됩니다.
약 3일간 수백개의 파편들이 거래가 되었으리라 짐작하며,
아직 발견 되지 않은 파편들은 4만여개나 된다고 합니다.
- 발견된 잔해 중 가장 큰 것들은 앞쪽 랜딩기어 파편과 조종석 창문 프레임이라고 합니다.
- 사고 며칠 후, 컬럼비아의 소니 사제 비디오 카메라로부터 우주비행사들이 공중 분해 직전에 선내에서 촬영했다고 추정되는
녹화 테이프가 발견되었습니다.
또, 2008년에는 데이터 복구 회사가 회수된 하드 디스크 내의 실험 데이터를 복구하는 것에 성공,
선내에서 기록되었던 무중력 상태에 있어서의 제논의 점성에 관한 연구논문이 출판되기도 합니다.
- 마지막으로 2011년 7월 29일에 Nacogdoches 당국은 파편 4피트(1.2 미터) 직경의 조각이 호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7. [컬럼비아 사고조사위원회 설립/보고서 결론]
대참사 후 컬럼비아 사고조사위원회가 설립되어 사고 분석에 면밀히 착수하여 장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냅니다.
위에 다 나와 있다싶이,
사고의 원인은 아주 간단한 단 하나의 사건(외부탱크의 본체충격)이지만,
이 참사가 낳은 엄청난 사회적 여파와 금전적 손실, NASA의 차기 계획 조정 등 많은 숙제를 안겨주게 됩니다.
또한 이 사고로 인해 승무원들의 안전에 관한 조항이 대폭 강화되고,
승무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시 되도록 우주탐사 계획의 새로운 주도가 생깁니다.
그리고 승무원 생존통합팀을 만들어 승무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사고에 초점을 맞추고,
사고의 포괄적인 분석을 수행 하고, 미래의 모든 인간의 우주 비행 승무원의 생존 향상을 위한 권장 사항을 개발하게 됩니다.
여하튼 이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1) 승무원 스스로 아무것도 준비할 시간이 없었음.
(2) 일부 승무원들은 안전 장갑도 안전 핼멧도 착용하지 않았음.
(3) 이제부터 승무원들의 지구 재돌입시 충분한 시간을 주도록 할 것.
(4) 승무원들의 안전벨트(멜빵식 안전띠)는 이번 사고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
추후 나머지 우주왕복선에는 모두 강력하게 업그레이드 할 것.
(5) 미래 있을 우주 비행 승무원들의 생존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메뉴얼에만 의지하지 말 것.
8. [사고 후 우주 비행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
컬럼비아호의 손실에 따라 우주 비행이 취소/금지되어 당장 국제우주정거장 운영에도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우주정거장의 추가 건설도 지연될 뿐만 아니라,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으로 물자를 나르려니,
너무 작아서 물자들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돌아올 때 쓰레기조차 처리가 안되는 지경이었습니다.
그 후 2년 뒤 디스커버리호가 다시 가동될 때까지 거의 우주 프로그램은 정지상태였습니다.
현재 떠있는 인공위성이나 우주왕복선 보강하는게 거의 전부였지요.
컬럼비아 사고로부터 1년 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2010년 정도에 종료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컬럼비아 사고를 추모하며 “이제 새로운 우주선으로 새로운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고 공표하죠.
화성 유인탐사에 나서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보다 더 효율적인 탐사를 위해 더욱 로봇기술을 개발하여 아예 사람이 가서 할 일을 로봇이 가서 다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 시작이 지금 화성에 가있는 '큐리오시티'일지도 모르죠.
9. [각국의 반응]
- 미국 : 컬럼비아호의 사고는 미국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부시 대통령은 사고 직후의 긴급 TV 연설로 "오늘은 비극의 날이지만, 앞으로도 우주 개발은 계속된다"고 말했습니다.
- 이스라엘 : 사상 첫 우주비행사 이란 라몬의 죽음은 온 나라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 인도 : 이스라엘과 같이 온 나라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 이라크 : 이라크 내에서는 "천벌이다" 라는 등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사망한 이란 라몬이 이라크의 원자력 발전소 공격 임무에 참가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에 의해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늦어진다, 혹은 반대로 앞당겨진다' 라고 하는 억측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 일본 : NHK는 일본인 우주비행사를 소재로 한 NHK 연속 TV 소설 『まんてん』에서 '명복을 기원합니다'라는 텔롭을 삽입했습니다.
10. [끝 맺 음]
우주왕복선의 발사 비용은 천문학적입니다.
미국이니까 가능한 비용일 수 밖에 없습니다만, 너무 지출이 심해서 제대로된 실험비행은 꿈도 못꾸죠.
하나의 비행기가 설계되고 사람이 안전하게 탈 때까지의 실험비행이 수 천번의 시뮬레이션과 직접 비행이 필요한데,
비용적인 문제로 지금까지의 우주왕복선 비행은 모두 실험비행일 수 밖에 없는 셈입니다.
우주비행사들은 자기들의 목숨을 바쳐 우주비행에 참가하게 되고,
온전히 복귀하고 나서야 우주에서의 경이로운 경험으로써 그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지금은 컬럼비아호만 다뤘지만,
앞으로 또 다룰 챌린저호에도 무려 7명의 비행사가 참변을 당합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발견을 한낱 마우스질 클릭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네요.
2011년 7월.
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의 끝을 애틀랜티스의 마지막 임무인 STS-135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이 아틀란티스호가 인류의 마지막 우주왕복선 임무를 무사히 마쳤죠.
앞으로 미국이 다시 나서지 않는 이상, 생전 우주왕복선의 이륙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우주왕복선이라는 인류의 엄청난 도전의식의 시작(1981년)과 끝(2011년)을 함께 했습니다.
비록 아직까지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유치원때부터 이 점박이 비행기는 너무나도 친숙해져 버렸네요.
아마 이 컬럼비아호 참사 이후로 우주왕복선의 운명은 확실히 결정되어졌다고 봐야합니다.
미국의 경제침체와 더불어 더이상의 우주계획에 들어갈 예산의 부족,
미국의 치솟는 국방비를 충당하기도 바쁜 실정에 NASA의 응석을 들어 줄리 만무하죠.
다만, 지금까지의 미국의 우주개발 의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여지며,
그 대부분의 결과를 거의 전 세계와 공유하고 있는 것도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밤이네요...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장장 5시간정도 공부하면서 작성했네요.
저 역시 또 다시 정말 많이 배우게되네요.
써놓고 보니, 한글로 된 이 사건 관련글 중 최고라고 자부...하고싶어요..^.^
다음 글은 아마 챌린저호 참사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아라타 印
PS. 사실적인 내용들은 위키백과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거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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