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의 조상들과 유인원들을 구분할 수 있는 조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언어의 사용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침팬지나 고릴라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준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이 원시 인류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언어라고 하는 것은 화석으로 남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 원시인류들의 과연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 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호모사피엔스들은 분명히 언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네안데르탈인들도 제한적이나마 언어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지만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경우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에렉투스가 우리와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 지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들보다 더 먼저 출현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은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두 번째로 제시되었던 조건은 뇌의 용적입니다. 즉 뇌의 크기에 따라서 유인원과 우리 인류를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한 때 그 기준으로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 된 적이 있었지만 같은 종 내에서도 뇌의 크기에 따른 편차가 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들은 침팬지에 비해서 그다지 큰 뇌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므로 이 조건도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 다른 조건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직립 보행입니다. 즉, 두 다리로 곧게 서서 걸었는 지 여부를 가지고 우리 인류와 유인원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조건은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현재 우리 원시 인류들과 유인원들을 구분짓는 하나의 조건으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릴라나 침팬지는 "knuckle-walking"이라는 형태로 보행을 하는 데 knuckle-walking 이란 손가락 마디의 제일 아랫쪽 부분을 지면에 닿도록 하면서 두 발과 두 팔로 보행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물론 침팬지나 고랄라들도 과시적인 행동을 할 때나 특정한 상황에서는 뒷 다리로 서서 보행할 수 있지만 이는 아주 일시적으로 이루어 지는 동작으로 평상시의 행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두 다리로 서서 걸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 속하는 인류의 종들도 모두 직립 보행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우리 못지않게 아주 잘 걸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들이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가 오래 된 하천의 말라버린 바닥에서 두개골 하나를 발견했다고 칩시다. 현실에서 완전한 형태의 원시 두개골이 발굴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잘해야 파편이 발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논의의 진행을 위해서 완벽한 두개골이 발굴 되었다고 가정해 보지요. 발굴된 두개골만 가지고 그 유골의 주인공이 직립 보행을 했는 지 여부를 알 수 있을까요? 두개골만 가지고는 그러한 것을 알기는 어렵고 전체 골격이 다 발굴이 되어야 알 수 있을까요? 두개골만 가지고도 직립 보행 여부를 어느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한번 보실까요?
위 이미지는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두개골을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본 각도에서 그린 것입니다. 가운데 큰 구멍이 하나 보이시죠? 바로 대후두공(foramen magnum)이라고 부르는 구멍입니다. 이 구멍은 우리 두개골과 척추뼈가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저 대후두공을 통해서 뇌에서부터 척수가 아래로 뻗어 나오는 것입니다. 직립 보행을 하기 위해서는 척추뼈가 두개골의 안쪽 부분으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저 대후두공이 비교적 두개골 안쪽 부분에 형성되어 있다면 해당 두개골의 주인공은 직립 보행을 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참고로 고양이 두개골의 밑면 사진을 한 번 보시죠.
위 사진에서 보면 고양이의 대후두공이 두개골 끝 부분에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고양이는 네 발로 걸어다니므로 척추뼈가 두개골의 뒷 부분에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들부터 원시 인류들의 두개골을 보면 다 대후두공이 두개골 안쪽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모두 직립보행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증거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이번에는 두개골이 아니라 입천장이나 아랫턱 뼈를 발굴했다고 가정해보지요. 그것들에도 우리 인류와 유인원의 차이가 드러나 있을까요? 아래 그림을 보시죠.
위 그림은 침팬지와 우리 현생인류의 입천장입니다. 위쪽이 침팬지의 입천장, 아랫쪽이 우리 현생인류의 입천장입니다. 우선 침팬지는 송곳니가 크고 날카롭습니다. 그리고 앞니 네개와 송곳니들 사이에 틈이 보입니다. 만면 우리 인류의 송곳니는 작고 이와 이 사이에 빈 공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침팬지들의 어금니들은 송곳니 뒤쪽에서 거의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는 반면 우리 현생인류의 어금니들은 뒤로 갈수록 아치형으로 벌어지는 배열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은 유인원들과 유사한 특징들도 가지고 있기에 현생인류에 비해 송곳니도 날카롭고 송곳니와 앞니들 사이에 틈도 있지만 침팬지의 것처럼 두드러지지는 않고 어금니들도 일렬로 배열되기 보다는 약하게 나마 아치형으로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침팬지, 현생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파란트로프스 로부스투스(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의 아랫턱 뼈
이제 여러분들로 두개골뼈나 턱뼈를 가지고 이놈들이 직립보행을 했는지 안했는 지, 원시인류들인지 아니면 유인원들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다음 번에 여러분들이 아프리카에 갔다가 우연히 오래된 화석을 발견했을 때 그놈이 직립보행을 했는지 아닌지, 우리 원시인류인지 아니면 유인원인지 한 번 알아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뭐 틀리면 어떻습니까?...그런 것도 다 재미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