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은 이를 10월 인민항쟁이라 부르며 칭송합니다. 한민당은 "박헌영 일파의 모략 선동에 기인한 것"이라 했구요. 이 정도는 예상 범위일 겁니다.
"10·1 사건’이 경찰에 대한 반감, 군정 내 친일파의 존재, 일부 한국인 관리의 부패, 파괴분자들의 선동 탓에 일어났다."
"10·1사건’이 미군정의 정책파탄에 따른 한국 민중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사태를 살육과 파괴로 몰고 간 책임은 ‘신전술’로 과격한 투쟁 노선으로 기울어 잘못된 정책을 채택한 조선공산당에 있다."
여운형, 김규식이 이끄는 좌우합작 세력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또한 공산당을 향해 "이런 행동은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며 비판했죠.
한편 정백과 이영, 좌익계열 9개 정당의 대표는 "박헌영의 공산당이 벌인 모험주의"라고 비난했고,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인 최능진은 "이 사건이 조선공산당에 의해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이러한 사태를 제공한 1차적 원인과 원흉은 우리 경찰에게도 1차적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당대에도 이런 평이 엇갈리고, 극우와 극좌는 예상한 태도를 보이지만, 좌파는 박헌영의 행동을, 우파 최능진은 경찰의 태도를 먼저 물었습니다. 좌우 합작은 양 쪽의 죄를 다 물었구요.
해방 후의 상황은 이처럼 어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아니, 아마 이게 시작일 뿐일 겁니다. 더 큰 비극은 다음 해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4월 3일, [오늘]이 얼마 안 남았군요.
이 사건을 뭐라 칭해야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폭동이라 칭하는 게 제일 알맞겠지만 그 느낌이 너무 부정적이죠. 이 앞에 "미군정과 경찰의 무능과 부패 등에 의한" 등의 수식을 붙이기는 너무 길구요. 항쟁이라 하기에는 너무 긍정적입니다. 질서를 지켰다고 하지만 경찰 사망자 수에서 보듯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거든요. 다만 그 주체를 좌익이 아닌 "민중"이라 한다면 수긍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서 전 이 사건을 그저 "사건"이라 칭하려 합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 지방은 좌익이 강했습니다. 반면 친일 지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은 보수색이 강했고, 여기서 한민당이 나왔죠. 이런 경향이 바뀌게 되는 과정이 곧 한국사를 관통하는 것이겠습니다만...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어쨌든 이를 주도한 것이 공산당이었기에 이 사건은 부각되지 못 했습니다. 좌우 어느 쪽이든 치부만을 드러낸 사건이니까요. 참 웃긴 얘기지만, 규모로 본다면 4.3 사건에 밀리죠.
박헌영은 10월 1일 대구로 내려가서 메이데이 기념 행사에 참가합니다. 하지만 시위가 폭동으로 변하자 그는 평화적인 시위와 파업을 주장했지만 말릴 수 없었죠. 진압하기 위한 경찰이 나타나자 박헌영은 도주합니다.
애초에 공산당 측에서 노린 것은 파업까지였습니다. 이 점에서 그들을 어느 정도 변호할 수 있겠습니다만, 제대로 이를 주도하지도, 평화적인 시위로 바꾸지도 못 한 채 그들은 우왕좌왕했으며, 결국 도망가 버렸습니다. 위아래가 따로 놀았고, 박상희의 구미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아래 간부들은 멋대로 폭력 시위를 지휘했습니다. 조공은 이를 제어하지도 못 했습니다. 자기들은 평화적으로 하려 했다고 해 봐야 간부급들은 정치적인 구호를 내세우고 아래에서는 선동했으며, 진압을 시작하자 위는 도망가 버렸습니다.
박헌영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느낌을 여러 군데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9월 28일에는 반 박헌영 세력이 주도하는 공산당 전당 대회가 일어날 예정이었습니다. 이를 잠재운 것이 9월 총파업이었죠. 10월 1일에나 파업할 예정이었던 출판 노조가 9월 25일이라는 이른 때에 당의 명령에 응하겠다면서 먼저 파업해 버린 것도 이상하구요. 사건 후 좌우합작이나 좌파 세력의 비난에서 볼 수 있듯 이런 극좌적인 행동은 곧 좌파 전체의 입지를 약화 시켰습니다.
미군정과 극우 세력은 물론이고, 박헌영도 당시 국민들을 제대로 알지 못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불만은 좌우 어디를 지지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바란 건 미제 타도와 공산주의 지지가 아니라 생존권을 위한 투쟁에 불과했죠. 공산당은 99%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요구해야 될 것과 선동으로 국민들의 불씨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공산당 지지로 이어지지도 않았죠. 그들 자신도 감당 못 한 불은 제주도까지도 번졌고, 그는 이를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생각해 김일성에게 남침을 종용합니다. 수십만의 남로당이 같이 들고 일어날 거라는 거였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박헌영은 그렇게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의 피"를 바랬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중략)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 한겨레 2009. 04. 30 김종구 논설 위원
"어느 날 한 20대가 면회를 신청했다. 그는 내게 다짜고짜 ‘당신이 여기서 자살하면 이명박 정권 붕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자살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청년이 찾아와 “당신이 십자가를 져달라”, “열사가 돼 달라”는 말로 내 죽음을 요구했다" - 인터넷 논객 박대성 인터뷰. 닉네임 "미네르바" 데일리안
일제와 독재라는 절대악을 상대로 할 때, 열사는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의 죽음, 어린 피, 영웅의 피까지... 역사는 가끔 그들의 피를 원합니다. 문제는 이 피가 정치적으로도 너무 쉽게 쓰인다는 것이죠.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 온 "공산당이 싫어요"의 이승복처럼 말입니다.
독립운동가 시절에도 그랬고, 해방 후에도 그는 투사로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일제나 미군정이나 그를 박해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정치가로서 활동하는 좌우합작 운동에서는 달랐습니다.
"김일성 동지는 여운형을 잘 모른다. 여운형은 대중선동을 좋아하는 야심가이고 철저한 친미주의자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다. 여운형이 좌우합작운동을 끄집어내면서 3대 원칙을 제시했는데, 첫 번째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운다고 하지 않았느냐. 또 그는 출신 자체가 양반지주 출신이다" -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인물의 등용이) 종파적이오. 원칙도 없고 인물 본위도 철저치 못했기 때문에 종파적으로 나타났소." - 조봉암, 조선공산당을 떠나며 박헌영에게
해방 이후, 여운형과 박헌영의 관계는 여운형이 세운 단체에 박헌영이 참가해 그 단체를 장악하고, 여운형이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박헌영에게 있어 여운형은 수정분자였지만, 그 명망과 일제도 미군정도 쉽게 건드리지 못 하는 방패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자기 사람만 우대하는 모습이 크게 드러납니다. 마침내 여운형과 결별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남한에 있을 수 없었고, 거대한 사건 하나를 던져둔 채 관에 드러누워 북으로 갔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웅 김일성 장군 만세! 만세! 만세!" - 1948년 9월 9일 박헌영
"멀지 않은 장래에 그야말로 내란적인 항쟁의 피를 흘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 안재홍
북한에서 그가 주장한 것은 무력을 통한 남조선의 해방, 다시 말 하면 동족상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김일성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들고 일어날 것 같았던 남한의 민중은 피난을 택했으며, 조선의 모스크바 대구는 낙동강 전선의 중심이 되어 강력한 반공 지역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는 좋은 투사였습니다. 일제 때나 해방 후에나 세상은 그를 투사의 길로 몰았죠.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좋게 볼 수는 없습니다. 단지 미군정과 극우에 의해 그가 탄압당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볼 수 없다는 말이죠. 남한에서나 북한에서나 그는 공산당 정부 수립을 원했을 겁니다. 남한에서 그게 좌절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력 통일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이건 김일성에게 밀리는 자신의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빠와 까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걸 투사에 대입시켜 보죠. 투사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강력한, 절대악이 되어야만 할 적입니다.
이승만부터 박정희, 전두환,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투사가 되었습니다. 네, 지긋지긋하죠. 덕분에 그들은 빨갱이라는 말을 반대파에게 쉽게 뒤집어씌울 수 있었습니다. 북한도 참 적절할 때마다 사건을 터뜨려 줬습니다. 적대적 공생 관계죠. 그들에겐 북한이라는 절대악이 필요했고, 북한에게는 남조선과 미제라는 절대악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한군은 독립군을 계승했고 한국군은 일본군, 만주군에 있던 친일파 출신들이 구성했죠. 자 여러분, 독립군하고 친일파군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야 돼요?" - 모 강사
"만약 6.25라는 통일 내전에 외국군인 미국이 사흘 만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전쟁피해가 일어났으며 지금까지 분단되는 비극이 지속될까?" - 강정구
헌데 문제는 이게 단지 레드 컴플렉스가 아니라는 겁니다. 북한은 지금 실존하는 적입니다. 굶어죽기 직전인데 왜 그렇게 신경쓸까요? 아무리 약해졌어도, 한국을 친다는 명분으로 100만 대군을 가진 국가가 바로 위에 있는 겁니다. 서울의 위치도 참 좋아서 실제 전쟁 일어나면 서울이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을 위치에 있구요. 이런 걸 싫어하고 꺼리는 건 당연한 겁니다. 전쟁 일어날 가능성은 한 없이 낮긴 하죠?
반대로 따져 보죠. 이명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MB가 뭘 하든 무조건 까고, 모두 MB 탓이라고 하는 걸 비꼰 말이죠. 새누리당을 까는 이유 중에 친일파니 독재니 이런 말은 왜 있을까요? 친일파가 한국에 수백수천만명 있다고 해서 식민지 시절로 돌아갈까요? 박근혜가 당선된다 해서 유신 체제로 돌아갈까요?
한국은 반정부 컴플렉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군을 싫어하고, 경찰을 싫어하죠. 미국도 참 싫어하구요. 레드 컴플렉스가 단지 허상이라면, 그걸 반대로 돌려보죠. 이런 반정부, 반미가 단지 허상일까요? 아닙니다. 독재 정권과 지독한 군대 문화, 치안보단 반정부 인사 탄압이 더 기억에 남았던 역사들 때문에 이런 걸 만들어낸 거죠.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레드 컴플렉스가 생기는 건 허상이 아니라 경험에 따른 편견입니다. 독재 등에 치이면서 정부 말에 편견이 생긴 것처럼요. 네, 거기에 좌파적인 모든 걸 도매금으로 넘기는 거나 이런 걸 이용해 먹는 건 당연히 비판해야죠.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죠?
위에서 좌우에 대한 얘기를 실컷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미군정과 극우세력에 있었습니다. 그 뒤도 마찬가집니다. 이승만 정부의 잘못이 얼마나 크든, 6.25는 근본적으로 먼저 침공해 온 북한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반정부 기류는 독재 정권에 문제가 있구요. 물론 지금도 남은 그 세력은 그걸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독재자의 딸을 이용해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헌데, 그렇다고 정확히 반대로 똑같은 행동을 보이면 될까요?
왜 6.25가 남침이라는 것도 쉽게 말 하지 못 하는 걸까요? 왜 북한이 남한 사람을 죽였는데 그 책임을 남한으로 돌리는 걸까요? 같은 민족과 통일을 말 하면서 왜 "같은 민족을 죽이지 마라"는 말 한 마디도 못 하는 걸까요? 이전에 말 했듯이 전 딱히 그들이 종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지령 받을 거라거나 그런 생각은 없어요. 그래서 더 싫은 겁니다.
북한과 남한이 동급일 경우는 있었겠죠. 북한이 더 앞서는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이 남한을 먼저 쳤다는 것, 그 후에도 계속 대남도발을 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현재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언제나 최악은 북한입니다. 새누리당은 그 현존하는 최악을 이용해 먹는 것일 뿐입니다. 헌데 새누리당이라는 차악은 비판하면서 최악인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 통일을 위해서? 그래서 비판 하나 못 할까요? 새누리당이야 자기 뿌리니까 비판을 제대로 못 하고 옹호하는 거겠죠. 그럼 북한을 비판을 못 하고 옹호하는 이유는 뭘까요?
마찬가지예요. 반정부 컴플렉스. 독재가 무너졌지만 절대악은 정부, 일단 정부가 가는 길에는 무조건 반대로 간다. 근데 그래서 무리수는 새누리당보다 더 해요. 독도 문제 하나에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어도는, 아니 서해 5도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 없는 NLL 문제에서는 오히려 정부를 깝니다.
빨갱이로 심심하면 몰리는 김대중 정부도 NLL은 절대 사수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의 시대에 딱히 국방이 약해진 것도 없어요. 오히려 개성 공단으로 북한의 병력을 뒤로 물렸죠. 노무현 정부야 굳이 말할 필요 없겠구요. 다른 것도 필요 없어요. 북한의 확실한 잘못에 대한 정당한 비판, 안보라는 것을 아예 무시하지 않는 것,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헌데 그런 것조차도 없죠.
"말해 봐! 내가 (정부의) 스파이냐?" - 문익환, 이 말을 반복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음
그리고, 정말 싫은 것은 그들이 하는 방식 역시 그리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투사 출신이라는 명함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게 민주적인지 아닌지죠. 단지 정책이나 능력만으로 보자면 새누리당을 까는 이유가 크게 줍니다. 최소한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까는 이유는 아예 없어져야죠. 헌데 그게 아니잖아요. 도덕성 문제를 떠나서, 그런 새누리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그들의 정책이고 능력입니다.
그 시절도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반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정책이 조금 더 비기득권에 다가간다고 그들이 99%가 되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그냥 반대 진영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 이들입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북한을 까 왔습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한 때 진보라면 무조건 옳은 것처럼 인식됐었습니다. 최근 계속된 네티즌의 우경화는 단지 그들이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독재가 끝난 후 운동권 내에서 진보 내에서 많은 실망을 겪고 무조건 반정부만 외치는 것에 대한 반감이예요. 지금 반 새누리를 외치며 야권 연대를 한 것은 새누리의 반대에 있는 무언가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새누리와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죠. 같은 편이라 생각했기에 비슷한 모습을 보일수록 더 화가 나는 것이고, 당연히 깔 것을 못 까는 모습이 계속되면서 더욱 화가 나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이승만에 지쳐서 여운형 같은 사람을 기대했는데 알고보니 박헌영이더라... 애초에 기대를 버린 사람보다 그래도 믿어보려 했던 사람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어느 쪽이 화가 더 많이 나는지는 쉽지 않나요? 분명 한국에 해악을 끼친 건 전자가 훨씬 더 할 건데 말입니다.
새누리당이 내거는 레드 컴플렉스에 대항하기 위한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반정부, 반미 컴플렉스, 대체 다를 게 뭘지 궁금한 패권주의, 이 두 개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제게 있어 그들은 새누리보다 아래일 겁니다. 사실 그들이 내거는 말을 생각하면 쉬운 것 아닐까요? 반전을 주장하기에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고 대남도발을 하는 것을 비판하고, 독재를 반대하기에 독재를 하는 북한을 비판하고, 같은 민족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되기에 그러지 않는 북한의 잘못을 비판하면 되는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이기에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없애면 되는 거구요.
최악의 시기죠. 일제시대는 일본이라는 절대악이 있었고 나중에도 독재 정권 등의 절대악이 존재하는데 저 시기에는 좋은 놈이 나쁜 놈이고, 나쁜 놈이 좋은 놈이 되기도 하니까요.
독립운동 했었던 사람들끼리 다툼이 시작되고, 이념에서 갈리고, 이게 나중에 큰 참사들로 이어지기도 하고...
남로당 및 해방이후의 좌우대립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어볼만한 소설을 하나 추천드릴려고 하는데 이병주씨의 '남로당'
입니다.
저자와 동향이었던 경남 진주태생의 주인공 박갑동씨가 해방후 남로당에 입당하고 당내 서열 3위까지 올라가면서 활동
하고 지식인으로 고뇌하는 장면들과 6.25동란중에 북한군을 따라 월북할때까지의 과정을 소설 50%, 다큐 50%형식으로
재미있게 구성한 소설입니다.
그리고 박갑동씨가 직접 저술한 1권짜리 소설도 있었는데 제목이 잘 생각나진 않네요.
주인공이 월북한 후에 북한에서 활동하던 중, 김일성이 패전의 책임과 관련한 권력투쟁시기에 전쟁의 책임을 남로당에게
뒤집어 씌우고 박헌영등 남로당파들을 숙청할때 구사일생을 살아남아 정치범수용소에서 생활하다 남파공작원으로 월남,
자수하기 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담은 소설입니다.
그 후의 혼란 상황에 대해서 뭐가 옳았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남한처럼 혼란이 계속되는 경우, 북한처럼 쉽게 통합하는 경우... 하지만 남한에서 4.19 후의 혼란상황을 한 번에 휘어잡은 박정희 역시 김일성처럼 독재의 길로 갔죠.
그렇다고 너무 혼란만 계속 되면 비극으로만 이어지고... 한 쪽에 힘에 의해 혼란이 진정되면 또 피해자가 생기고...
얼벼네요.
어쨌든, 지금은 그런 시대가 지났죠. 사람들이 보는 건 과정과 결과, 수단과 목적 둘 다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