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극에 첫 막에서 총이 나왔으면 그 장의 마지막 막에서 쏘아져야 한다. 대략 이런 격언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쏘아진 총은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많은 인물이 다치거나 죽을 것이고, 총을 쏜 인물, 총에 겨눠진 인물, 총을 쏘는 걸 본 인물은 큰 심리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런 풍부한 변화를 이야기꾼이 놓친다면 자격 상실이다.
예측할 수 있는 정보는 지루함을 안길 뿐이다. 웹툰 <폭풍의 전학생>은 나에게 그런 의미에서 지루했다. 주인공의 캐릭터는 시즌1에서 전혀 변하지 않는다. 능력은? 어쩌다가 따르는 운. 성격은? 찌질. 말빨은? 잘 통하지도 않는 궤변. 사건 해결은? 어이없는 운으로. 3화면 주인공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고, 그게 지금 분량까지 변하지 않는다. 지루하다. 영화 <디워>나에게 지루할 뻔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마케팅 덕분에 내 심리적 시야는 '전투씬'을 보는데 한정되어 있었고 덕분에 나는 지루함을 면할 수 있었다. 같이 영화관을 나오는 친구들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지만.
'이야기'가 예측할 수 있는 정보만을 담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캐릭터들을 너무 아껴서. 누군가가 죽거나, 동료가 아프거나 하는 것은 캐릭터를 아프게 하고 흔들어버린다. 그래서 차마 캐릭터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런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해서. 흔히 말하는 '양산형 소설'들이 바로 이런 사례들이다. 위대한 작품의 클리셰만을 x을 건드려 자위하듯이 발작적으로 소비한다. 그 이상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잘 정리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양산형 소설만이 있는가? 양산형인 삶도 있다. 예를 들어, "공부의 왕도"시리즈. 수험생들은 입맛을 다실 것이고 중고등학생 학부모들은 부러움을 느낄 것이다. 언젠가 동기가 공부의 왕도에 출현했었다. 누군가가 노트북 무선인터넷으로, MT자리에서 그것을 틀었다. 그 동기가 "결심을 하고서 주먹을 쥐는 장면"에서 모두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 동기의 삶이 양산형 삶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그 이외의 그 동기의 재치스러운 면이나 어른스러운 부분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특별한 의지" "개천에서 용난다" "갈아먹는 밥" "성공" "기적같은 합격" "성적상승" "스마트한 공부" "인내심" "부모님의 기대" "철들다" "합격수기" "SKY"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동건홍 국숭세단" ....... 지루한 삶들의 반복. 대학에 와서도 그것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X대 나왔어요?" "과는 무슨 과요?" "xxx라고 합니다." "학점은?" "영어는?" "군대는 언제 가누." "xx랑 yy사귀어?" "잉여잉여". 새로웠지만 이제는 지루하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가 있다. 입시 때 가장 심했고 지금도 이따금씩 쓸 때가 있다.
그대로 이야기를 쓰다보면,
미칠듯이 지루함이 밀려온다.
글을 다 쓰고 나면,
그대로 쓰레기를 배설한 것 같아
그 날 하루가 우울해진다.
또 한 해가 흐른다. 다사다난. 찌질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차여서 침대 맡에서 울고 또 울었을 때,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여름 밤, 새터 때, OT에서 사람들을 만나던 일, 클럽에서 일들, 첫 수업, 부산으로 간 여행, 친구에게 한 마디 듣고 그대로 도망가 울었던 일....... 그런 일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은 당신이 떠오른다.
내 품에 머물렀던 그 온기,
그 눈웃음,
얼굴을 맞대어 잠들던 기억,
혀, 입술, 입김, 다리, 몸, 쇄골
떠오른다.
좋은 시간들을 계속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루한 것보다는, 당신이 쏜 총에 맞는 걸 택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