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일지를 보다 놀라운 부분이라 PGR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옮겨 적습니다.
책을 이렇게 옮기는게 괜찮을지 모르지만 문제된다면 알려주십시오.
분량상 중간중간 중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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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나는 곧 자문자답해 보았다.
문, "네가 보기에 저 왜인을 죽여 설욕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가?"
답, "그렇다."
문, "네가 어릴 때부터 '마음 좋은 사람' 되기가 소원이 아니었더냐?"
답,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원수 왜놈을 죽이려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죽임을 당하면 한낱 도적의 시체로 남겨질까 미리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다 거짓이고, 사실은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소원만 가졌던 것이 아닌가."
자문자답 끝에 비로소 죽을 작정을 하고 나니, 가슴 속에서 일렁이던 파도는 어느덧 잔잔해지고 백 가지 계책이 줄지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랫방에 먼저 도착하여 제일착으로 밥상을 받은 사람이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던 입에 새벽밥이라고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삼분의 일도 채 못 먹고 있을 즈음, 나중에 밥상을 받은 나는 네댓 숟갈로 한 그릇 밥을 다 먹어치웠다. 일어서서 주인을 부르니 골격이 준수하고 나이 약 37,8세나 되었음직한 사람이 문 앞에 와서 물었다.
"어느 손님이 불렀소?"
나는 주인을 보고 말했다.
"내가 좀 청했소이다. 다름 아니라 내가 오늘 700여 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서 넘어가야 하는데, 아침을 더 먹고 가야겠으니 밥 일곱상만 더 차려다 주시오."
주인은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보기만 하더니, 내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방 안에서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손님들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사람이 불쌍도 하다. 미친놈이군."
이 말 한마디를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한켠에 드러누워서 방안 사람들의 평판과 분위기를 보면서 왜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방안에서는 두 갈래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유식하게 보이는 청년들은 주인의 말과 같이 나를 미친 사람이라 했고, 식후제일미로 긴 담뱃대를 붙여 물고 앉은 노인들은 이 청년들을 나무라며 말했다.
"여보게, 말을 함부로 말게, 지금인들 이인이 없으란 법 있겠나? 이런 말세에는 마땅이 이인이 나는 법일세."
청년들은 대번에 그 말을 받아 대꾸했다.
"이인이 없을 리 없겠지만, 저 사람 생긴 꼴을 보세요. 무슨 이인이 저렇겠어요?"
그 왜놈은 별로 주의하는 빛도 없이 식사를 마치고 중문 밖에 서서 문기둥을 의지하고 방안을 들여다보며 총각아이가 밥값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크게 호령하며 그 왜놈을 발길로 차서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바로 쫓아 내려가서 놈의 목을 힘껏 밟았다.
나는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간단하게 한마디로 선언하였다.
"누구든지 이 왜놈을 위해 내게 달려드는 자는 모두 죽이고 말리라."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내 발에 채이고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왜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아직 2월 날씨라 마당은 빙판이었는데, 피가 샘솟듯 넘쳐서 마당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아까 왜놈을 위하여 내게 달려들려고 하던 놈이 누구냐?"
"네가 안악 치하포에서 모월 모일에 일본인을 살해한 일이 있느냐?"
"본인이 그날 그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구 한 명을 때려죽인 사실이 있소."
나의 대답을 들은 경무관, 총순, 권임 등은 일제히 얼굴을 들고서 묵묵히 서로를 쳐다보았고, 법정안은 비상히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내 옆 의자에는 와타나베라고 하는 왜놈 순사가 걸터앉아서 나의 심문 과정을 방청인지 감시인지 하고 있다가, 심문 시작부터 법정 안이 조용해지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며 통역으로 그 이유를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
"이놈!"
하고 큰소리로 사력을 다해 호령하였다.
"지금 소위 만국공법이니,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간의 통상화친조약을 체결한 후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하였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살면 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없이 다 죽여 우리 국가의 치욕을 씻으리라!"
통렬히 꾸짖는 서슬에 겁이 났던지 와타나베는 "칙쇼우! 칙쇼우!" 하고 욕을 하며, 대청 뒤쪽으로 도망하여 숨고 말핬다.
"본인은 일개 시골의 천민이지만 신하된 백성의 의리로 국가가 수치를 당하고, 푸른 하늘 밝은 해 아래 내 그림자가 부끄러워서 왜구 한 명을 죽였소. 그러나 나는 아직 우리 동포가 왜인들의 왕을 죽여 복수하였단 말을 듣지 못하였소. 지금 당신들은 몽백을 하고 있는데, 춘추대에 나랏님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도 읽어보지 못하였소? 어찌 한갓 부귀영화와 국록을 도적질하는 더러운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시오?"
나는 며칠 전보다는 기운이 좀 돌아와 있었으므로, 경무청이 들렸다 놓일 정도로 큰소리를 질러 왜놈을 꾸짖고, 일반 관중들을 향하여 고함고함 질러 연설을 하였다.
"이제 왜놈이 국모를 살해하였으니 온 나라 백성에게 크나큰 대치욕이오. 뿐 아니라 왜놈의 독해는 궐내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오. 당신들의 아들들과 딸들이 필경은 왜놈의 손에 다 죽을 터이니 나를 본받아서 왜놈을 보는 대로 만나는 대로 다 죽입시다!"
왜놈 와타나베가 직접 나에게 말했다.
"네가 그러한 충의가 있을진댄 어찌 벼슬을 못하였느냐?"
"나는 벼슬을 못하는 상놈이기 때문에 작은 놈밖에 죽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벼슬하는 양반들은 너희 황제의 목을 베어 원수를 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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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님의 나이 든 모습은 마치 인자한 부처의 상과 같지 않나 싶을 정도인데 그의 20대는 뜨겁다 못해 불타오르고 있다는게 참 놀라웠습니다. 지금 20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는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여러분들 중 백범일지를 아직 안보신 분이 계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