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예감은 어제 저녁부터 이어졌다. 일요일이라고 입에 꾸역꾸역 밀어 넣은 음식만 몇 인분인데 어쩐지 응가가 살랑살랑 나올 듯 말 듯 꼬리를 치는 것이다. 마치 모 가수의 히트곡 가사처럼 사랑보다는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항문에선 멀지만 대장에선 가까운 그런 느낌? 쾌변을 보면 좀 푹 잠들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이 변씨가 어디 좀 변덕스러운가, 부른다고 나오고 민다고 밀리고 하는 놈이믄 상놈이게. 도도하기로는 양반집 규수가 따로 없고 고집이라고는 아주 지랑 잘 어울리는 똥고집이 꾸리꾸리 한것이 원체 내 맘에는 호응을 안해주는 것이다. 갑자기 내 마음을 몰라주던 편의점 아가씨가 생각난데 예끼 XX 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아침 6시, 서울대까지 가려면 2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걸어서 출근 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지만 거를 수는 없었다. 불안한 게 있다면 아직도 나와 밀당을 하는 변양의 행동이었다. 일부러 지하철 라인을 따라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갑자기 확 하고 탈출을 감행한다면 나는 마치 불곰 앞 저글링 마냥 버틸수가 없을 터였다. 내 생각대로라면 아주 글래머러스한 변양이 똬리를 틀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과연 나의 힘과 정신이 합일하여 그녀 앞을 막아선다 한들 2시간에 걸친 도보에 있어서 불미스러운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었다. 집 문을 나서는 순간 뱃 속의 이질감이 싹 하고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오호라! 하며 이틈에 빨리 걸어야 겠다는 생각에 경보에 가깝게 걸음을 옮겼다. 한시간이 좀 넘게 걷다보니 아침밥이 고파졌다. 근처에 보이는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세트를 여유롭게 흡입해 주었다. 차도남마냥 손에 프리미엄 로스팅 맥캐페 를 들고 높디높게 차오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근심이 씻은 듯 사라진 마음과도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세상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먹으면 나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 직장에 타운포탈 스크롤이 열린것도 아닌데 , 나노크기의 응아분해머신이 몸에 장착된것도 아닌데, 왕따시만한 기생충이 입주했을리도 없는데 먹은게 나오지 않을 리 있는가? 분명 그것은 내 안에 있다.
학교에 들어서자 딱 첫 강의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붐비는 시간대였다. 서울대는 언덕길이라서 나는 언덕을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언덕을 오르려 딱 발걸음을 떼는 순간, 기습공격이 아랫배를 땅! 하고 쳤다. 아 이것은! 마치 1950년 6월 25일 새벽 네시 북한의 기습 남침처럼, 융단폭격과도 같은 화력이 항문으로 집중되는 것이었다. 난 등골이 쭈뻣 섬을 느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마에 맺히는 땀을 슬쩍 훔쳐내고 호흡을 골랐다. 바지 뒷자락에서는 '깨스 깨스 깨스'라며 청바지가 곤혹스러움을 나타내었다. 미안하다 마이 진즈. 이런, 미안해야 할 사람이 더 있었다. 내 뒤를 의도치 않게 졸졸 쫒아오던 여학생. 다행히 나는 그녀의 기척을 알았고 현대 서울 시민의 교양수준에 맞추어 소리를 죽이는 고급 스킬인 은잠방구를 시전했다. 그러나 소리없는 냄새가 더욱 강렬하다고 하지 않던가, 난 맘속으로 그녀의 아침 비위에 삼삼한 조의를 표하는 바였다. 역시나! 그녀는 오른쪽 코너를 마치 전성기의 F1 레이서마냥 깔끔하고 빠르게 빠져나갔다.
엉덩이골에서 피어오르는 개스에 입고 온 트렌치 코트 뒷자락이 마치 대 서사시의 영웅처럼 펄럭였지만, 난 그런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공습은 지속되었고 마음속으로 바라반야색즉시공 중얼중얼 거리다가 주기도문을 오 하늘에계신 하다가 도레미파솔파미레도라고 하다가 이윽고 입을 탁 다물게 되는 것이다. 살아야한다. 살아야한다! 언덕길을 오르며 화려한 비트가 뿡 뿌뿌뿡 인간성기사 뿌붕 삐이 삐리리 쉬이 뿡 자진모리 장단 리듬에 맞추어 하나둘셋넷. 깨스의 소리를 최대한 죽였지만, 내 귓가에 희미하게 들리는 뾰뾰뾰뵥 소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난 그저 물리적 고체의 방어에 집중할 뿐이었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에 턱끝까지 내려온 식은땀이 방울져 씻겨내려갔다. 전투는 한창이었다. 내 주변에 사람이 조금 없어진 듯 한 기분이 들었지만 기분탓이려니 했다.
언덕을 두번 넘어서자 고지가 눈 앞에 보였다. 이미 허리는 엉거주춤하고 걸음은 모델워킹마냥 꼬였다. 정신합일 신내림아 내려라 라며 나는 지지않아 나는 지지않아를 수십번 외쳤다. 새상이 네피아색이 되었다가 32비트 컬러가 되었다가 하였다. 살면서 이런 괴로움이 몇 번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더라. 걸음에 맞춰 쿵 하고 아랫배가 울릴때마다 난 그 옛날 스크린도어가 없을 시절의 2호선 출근길 푸시맨마냥 온 몸의 힘을 집중해야만 했다. 나중엔 숨도 쉬기가 힘들어 얕은 숨으로 습습 후후- 습습 후후-
아, 이런 제기랄. 깨쓰가 다 나갔다. 이제 진짜 본대의 공격이었다. 디아블로가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이런 소리가 날까? 우르르르릉 콰쾅 쿵 콰라라랑 하는 벼락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 했다. 난 약 20m가 남은, 그러나 20km처럼 멀어보이는 거리를 향해 이를 악물었다. 건물 정문으로 들어가 최 단시간안에 화장실로 침투한다! 벨트와 자크를 슬쩍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신뒤에 온 힘을 다해 직장에 압력을 가해 일방통행 구간에 역전현상을 만들어 적군을 일보후퇴시켰다. 그러나 후퇴는 곧 더 강한 전진을 동반하는 법. 난 그 찰나의 사이에 미친듯이 빠르고 사뿐한 걸음으로 건물 내부에 침투했다. 화장실의 문에 들어서는 순간 절망적인 압력이 가해졌다. 난 큰 걸음으로 세걸음만에 변기를 마주했다. 아침점호를 위해 전투복으로 환복하던 속도보다 수십배는 빠르게 옷을 해체하자마자 정수리부터 회음부까지 피가 빠르게 도는 듯한, 마치 무협소설의 환골탈태와도 같은 경락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 퍼엉- 장렬한 싸움의 막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쭈그려 앉은 귓가에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고, 형광등의 불빛이 자애로운 부처님의 후광과도 같았다. 따스한 여유가 마음에 깃들고, 난 그제서야 한숨을 푹 쉬었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던 대전쟁이었다. 다행히 나의 옷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않았다. 비데에서 나오는 따뜻한 온수가 나의 전승을 축하하고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듯 하였다. 아아, 살았다. 나는 이기고 만 것이다. 승리의 표시로 오른주먹을 꽉 쥐며, 평화로운 하루를 맞이할 것을 결심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