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의 일이다.
전역 후 복학하기까지 날짜도 꽤나 남았고 등록금도 보태볼까 하는 생각에 알바를 찾았다.
파주에 있는 공장에서 박스를 날랐다.
점심때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일이었는데 한달쯤 하고나니 몸이 축나는 것이 느껴졌다.
군대가기 전에는 밤샘알바도 쉽게 했었는데..
다른 일을 구하기로 했다.
마침 자주가던 집앞 피시방에 구인광고가 붙었다.
피시방이야 이전에 두어번 해본 일이고 주간알바였기 때문에 겜하러 가다가 면접을 봤고,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낮 12시에 출근해서 보통 밤 11시까지 일을 하는데,
카운터는 피시방 사모님이 내내 지키고,
난 손님에게 인사하고 피시방 청소하는 것이 일이었다.
알바생은 나혼자 피시방에 컴퓨터는 110대,
오.. 힘든데..
군인느낌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청소 정말 열심히 했다.
출근하면 일단 전 좌석의 마우스,키보드,의자를 닦았다.
본체를 들어서 그 아래까지 닦았다.
커피자판기도 닦고 라면국물 버리는 통은 수시로 비웠다.
여름이라 냄새가 많이 났기에..
다른 사람이 일하는 것을 유심히 본적은 없었지만 이정도까지 하는 알바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사모는 칭찬에 매우 인색했다.
카운터를 지키다 손님이 적어보이면 가게 안을 돌아다니다 추가적인 일을 시켰다.
어느날은 신나서 나를 부르더니 매직블럭을 쥐어주며 키보드 사이사이를 닦는 일을 시켰다.
날 생각해주는척 많이 하면 힘드니 하루에 10개씩만 깨끗하게 닦으라 하더군..
하루는 금연석과 흡연석을 나누는 유리창이 더러워 보였다.
딱 보기에도 피방 문을 연 후로 단 한번도 닦은 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여튼 30분정도를 투자해서 깨끗이 닦았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사모는 아무말 없이 카운터만 지켰다.
뭐 칭찬받으려고 한일도 아니고..
그런데 다음날 사모가 슬쩍 얘기하는데..
"오늘은 유리창 안닦니?"
카운터 한쪽을 보니 윈덱스였나.. 유리창에 뿌리는 그 파란..
새로 사온 모양이었다.
.
.
에에.. 글쓰다 실수로 엔터를 눌렀다.. 덜 썻는데 글쓰기 버튼이 눌러졌네.. 왜 이러지;;
.
.
피시방이 크다보니 손님도 많았다.
가끔 카운터도 보는데 심심해서 이것저것 눌러보다 알게 된 것은,
의외로 성인이하 손님들의 매상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1시간씩 2시간씩 하고가는 애들이 수십명단위가 되니까,
피시방 매출의 절반은 차지하는 것 같았다.
매일 오는 애들중에 초딩 여자애 3인방이 있었다.
항상 컴터는 하나만 키고 셋이 몰려서 메신저니 뭐니 하는 것 같았다.
여튼 공대까지 해서 남투성이 테크를 탄 내게 있어서 상대하기 곤란한 아이들이었는데,
이것들은 날 가지고 노는게 재미있는 듯 했다.
항상 밤 10시 전후로 해서 그때 매장에 있는 모든 손님들에게,
슬러쉬를 한컵씩 돌렸는데,
얘네들은 이것을 노리고 항상 9시 전후에 피시방에 오는 것 같았다.
사모는 고작 셋이 한시간 하고 가는 애들까지 주기는 좀 아까웠는지,
"쟤네들은 주지마"
라고 했고 난 항상 슬러쉬를 돌리다가 꼬마아이 셋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패배자는 나였다.
그날은 왜 그랬을까..
괜한 오기가 생긴 나는 오늘은 절대로 얘들한테 슬러쉬를 뺏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표정에서 드러났을까.. 얘들도 오늘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갑자기 그중 가장 키가컸던 아이가,
"오빠~~"
라고 하더라..
아아.. 오빠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마음한쪽에 존재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느 한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단어를 언제 들어보긴 했었는데.. 언제였더라..
대학교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1학년때도 들을 수가 없었고.. 동아리로 풍물패에 들어간 후 난 과에서 흔히 말하는 아웃사이더였다..
2학년때 여자후배 둘이 들어와서 처음 들었구나.. 한명은 반년 후 한명은 일년 후 동아리를 나갔지..
3학년때 둘이 들어와서 들어봤고 이때 사귀던 애한테 들었었지.. 여튼 군대가서 100일휴가 때 차였고..
중간중간 휴가 나왔을 때 세명한테 더 들었고.. 복학 후 한 5달 사귄 애한테 들었고..
오오.. 니 덕분에 나한테 오빠라고 한 사람이 두자릿수가 되었구나!!
어.. 근데 좋아하는게 표정에 너무 드러난 모양이다..
얘가 한마디 한다.
"오빠라고 부르니까 좋아?"
난 그저 말없이 슬러쉬 컵 세개를 나눠줄 수 밖에 없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