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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12 03:42
흠..
왜구도 본래는 그 당시 일본 조정? 정부? 뭐 여하튼 통제를 받지 않은, 말 그대로 독립적인 해적 아닌가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마도, 그리고 일본 남부 큐슈쪽을 근거지로 했던 해적들이었던 같은데. 그리고 왜구가 난리치던 시절에도 정작 일본 본국이랑은 계속 통상을 하지 않았나요? 신라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신라본국의 지시에 의한 사략집단은 아니었으리라고 봅니다. 만약 신라본국과 커넥션이 있는 집단이었다면 백제와 친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만.. 아무튼 고려시대에 이어져서도 사략집단의 성격은 아니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먹고 살기 힘들면 흔히들 정부의 통제에서 먼 곳에서 산적, 해적집단들이 생기곤 했으니까요. 상호간에 침략을 했던 해적이 있었다고 해서 일본과 우리나라가 티격태격했다, 라는 지나친 일반화같구요. 본문에서 언급하신 "우리는 일본에 베풀기만 했는데 왜 일본은 우리에게 뒤통수만 치나"라는 인식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하지 않나 싶네요. 일단 이건 왜구와 같은 해적집단의 규모가 아닌 국가단위의 침공이었으니까요. 여몽연합군, 그리고 대마도 정벌 등등은 일본 본국이 아니라 대마도 일대의 해적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따라서 여몽연합군과 신라구 사이의 연결고리는 매우 미약해보입니다. 일개 해적과 정규군은 아예 별개의 문제죠. 여몽연합군이 일본에 상륙해서 저지른 일은 단순한 무력시위로 보기는 어렵겠습니다만...
11/04/12 03:45
신라구 자체는 아시는 분이 꽤 많으실 거 같습니다. 저같이 역사 조금 좋아하는 사람도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한구라고 부르기도 하는 건 처음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
11/04/12 05:13
좋은 사실 하나 배우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티격태격이란 단어는 이제와서 아닌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하나로도 충분히 ..당할만큼 당했죠. 굳이 우리나라가 받은 피해를 축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신라구가 본국에 지시에 의한 사략집단이던, 여몽연합군에 자발적으로 동참했것간에... 식민지배를 받은지 몇 백년이 흐른것도 아니고, 당시에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엄연히 살아계시며, 정식으로 정부차원의 사과한번 하지 않았고, 강제적으로 뺏은 우리 영토를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우리와 일본은 서로 비슷하게 티격태격하였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하여 우리나라를 일방적 피해자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 라는 주장은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각설하고 말해보면, 본문의 역사적 사실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 대한민국이 현 일본에게 피해를 준 것은 눈꼽만치도 없는 관계로 .. 일제강점기에 대한 정부차원의 사과가 있고 적절한 보상책이 피해자분들에게 돌아가지 않는한.. 대한민국에게 일본은 파렴치한 가해자로 생각한다고 한들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 편협한 생각만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도 입맛에 맞게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셨다면..;; 제가 뻘플을 쓴것 같네요.)
11/04/12 05:27
자세한 답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고려 때의 해적도 신라구로 불렸군요. 후삼국으로 끝났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고려사의 해당 기록은 확인했습니다. -_-; 충렬왕이 몽골 딸랑이였던 건 맞는 거 같네요. 밑에 백성들이 어떻든 지도부가 저랬으면 일본에서도 국가적 침략으로 해석할 수 있죠 뭐. 자세한 건 한 숨 자구요 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11/04/12 09:24
사실 제가 제일 어이 없었던 가르침은 한민족은 외세의 침입은 자주 당했지만 한번도 침략한 적은 없다.. 였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11/04/12 10:10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너무 일반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왜구와 신라구에 대해서 말씀 드지자면, 이는 중앙정부와의 연관성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해적이라는게 모든 나라에 다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정부와 별개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부에서 토벌하려고 하죠. 왜구가 그런 해적과 같냐는 것입니다. 위에도 대마도 정벌이 나오지만, 제가 알기로 대마도를 정벌한 후 대마도주와 일본의 간청으로 조선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되돌려 준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까지도 왜구는 일본정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반대로 신라구는 신라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었다고 해도, 백제와 국제적 대립관계와 연관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라구가 왜구처럼 일본정부와 긴밀한 관계였다는 증거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충렬왕의 일본정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적으로 일본이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말까지도 만주지역은 영토적 개념이 희박했습니다. 살기가 어려운 땅이기 때문입니다. 일본도 섬나라이기에, 농업국가인 고려, 조선이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정복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만주보다야 더 살기 좋겠지만, 이동수단과 정보의 전달이 쉽지 않은 일본을 정벌하기 보다는 주인없는 만주땅을 경략하는게 훨씬 좋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선이나 고려나 만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구처럼 여진족의 도적질에 국경을 정비하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일제시대때 일본에 충성한 친일파들이 다 조선을 대표할까요? 충렬왕이 몽고에 의해 왕이 되었다면, 세계를 정복하던 몽고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려던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일본의 대동아전쟁에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올린 친일파들의 전쟁독려문을 근거로 하면, 당연히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한국도 2차세계대전의 주범이라고 주장해도 되는 것일까요? 저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를 침범할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대국을 상대로 지나친 영토욕심은 오히려 화가 될 수 있기에 주인없는 만주의 땅도, 여진족, 만주족과 어울려 생활했을 것이고, 교통과 정보, 중앙집권적 국가통치가 힘든 바다건너 일본도 침략할 매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귀빈으로 대접할 만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조선에 의존을 많이 한 나라입니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조총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국가적인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는 다르게, 조선은 앞선 문물과 힘을 가지고 있었어도 대마도 정벌처럼, 침략을 하는 왜구를 퇴치하는 수준에서 일본에게 왜관이라는 경제특구를 주면서까지 포용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때, 신라구나 충렬왕 등의 단편적이고 편협된 사실 몇가지로, 한국도 주변국가를 침범하던 일본과 다름없는 호전국가였다고 일반화 하기보다는, 역사교과서에서 배웠던, 한국은 주변국가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일반화가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11/04/12 11:15
신라구를 모르는 사람이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 중에서 얼마나 있을까요?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절의 해적들은 거의 다 신라인들이죠.
다만 이것을 '왜구'와 연관시켜서 동급으로 놓는 것은 신라구의 위치를 상당히 '격상'시켜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왜구는 엄연한 지방 다이묘들이 조직한 사략해적이지만 신라구는 아예 중앙 정부에서 토벌을 목표로 했던 조직들입니다. 일본도 왜구 토벌한답시고 몇 번 생색은 냈지만 어디까지나 생색이었죠. 분명 신라구 역시 악명을 떨쳤던 해적들임에는 분명합니다만, 왜구처럼 내륙까지 쳐들어와서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며 해적질을 마치고 돌아가면 지방 다이묘들의 포상을 받았던 이들과 동급으로 놓아야 한다? 무리수입니다.
11/04/12 21:00
신라구를 다룰 때 문제는 설이 다양한데 근거는 부족하다는 거겠죠. 백제 유민설(아예 통일 직후 신라에서는 백잔이라고 불렀다는군요) 신라 사략설, 그냥 유민 설 등등. 근데 그 규모를 보면 뭔가 강력한 배후가 있었던 것 같긴 합니다. 예전에 한 번 다룬 적은 있지만...
아무래도 워낙에 전이라서 기록이 적은 편인 것도 있고 그 후에는 왜구의 역사로 점철된 게 크겠죠. 이른바 원구 -_-; 의 경우 조선의 사정이 어떻든 백성들의 피해가 어떻든 고려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보는 게 맞긴 할 겁니다. 그 때 상황과도 맞죠. 다만 임진왜란 발발 원인에 대해 당시 일본 각층의 관점에서 봐야 되듯 이런 일련의 일들 역시 그렇게 봐야겠죠. 해방 후 식민사관이든 민족사관이든 뭐든 일본에 점령당한 기간이 있으니 일본에 안 좋은 쪽만 지나치게 서술한 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 식민사학자들은 자기 오명을 벗기 위해서 더더욱 그래야 됐을 거구요. 글이 짧아서 말씀하신 바가 다 드러나지 않은 것 같지만, 한국 역시 유리한 쪽으로 왜곡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글로 써 주셨으면 합니다. 보는 바에 따라서 "우리나 일본이나" 수준으로 보이긴 하거든요. 이런 얘기 할 때 중요한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거니까요. 특히 한일관계처럼 감정과 정치적인 관점이 마구 끼어드는 관계사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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