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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05 01:18
여기 묻어가도 되나요? 얼마전에 다이어리에 썼던 글인데 자꾸 꿈얘기가 나오니 저도 괜히 옮겨보고 싶네요.
어제는 달이 몇십년만에 가장 크게 보이는, 소위 '슈퍼문'이 떴다고 한다. 나는 하늘 가득 얇고 넓게 깔린 구름을 뚫고 밝게 빛나고 있는 -하지만 사실 여느때와 비교하여 그다지 커보이지는 않는- 달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여느 때와 같은 소원을 빌었다. 그러는 중에 황사를 너무 들이마신 탓일까, 그날밤에는 목이 따끔거리기도 하고, 또 호흡이 곤란해지기도 하여 밤새 깨어났다 다시 잠들다를 반복하며 고생을 했었더랬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눈앞이 새하얗게 빛나며 귀에서는 굉음에 가까운 이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짜증과 약간의 공포가 섞인 그 순간, 문득 어디선가 보았던 '자각몽' -마음대로 꿈을 조종할 수 있다는- 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고, 그동안 무력했던 수백개의 달들과는 달리 이번의 달은 과연 '슈퍼문' 이라 이런식으로라도 네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하는 기대로, 나는 필사적으로 하얀 빛 속에 네 모습을 그려 보았다. 하지만 미술 시간을 몰래 만화책이나 보며 허비하던 벌을 이제야 받는 것일까, 러프하게 그어지는듯한 몇개의 선들은 도무지 네 형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나는 다시 숨이막혀오며 굉음과 빛속에 다시금 정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꿈에서도 너를 만날 수 없었다. 이제와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이날 니쿄님과 예의 '누나'의 관계에 대한 소원도 덧으로 잠깐 빌었었답니다. 스마트폰으로 니쿄님 글을 보며 집에 가는 길이었거든요. 슈퍼맨은 프라임이니 뭐니 하며 우주도 창조한다던데, 슈퍼문은 왜이렇게 무력한 걸까요. 똑같이 태양의 힘으로 빛나는 주제에.
11/04/05 01:46
네번째 문단이 공감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물음표를 던지고 싶게 만드네요- 누구나 한번쯤은 '누군가를 매우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하여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나의 그런 모습을 사랑하는지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절대 그 순간 본인이 그것을 구분할 수가 없다는 거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비로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깨달을 수 있을까요? 사실 저도 그게 참 궁금합니다.. 결론은 nickyo님 글이 참 반갑네요 :)
11/04/05 06:56
니쿄님의 찌질한^^;; 글을 읽다보면, 늘 이삼년 전쯤의 제가 떠올라요. 겨우 반 년 만나고 헤어진 사람을 첫사랑이랍시고 일년 반 가까이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던 제 모습. 못난 모습. 그래서 니쿄님의 글을 볼땐 항상 저의 치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죠. 그럼 사실 안봐야하는 건데, 저는 족족 클릭해서 다 읽고 있었지요.
그냥 뭐랄까, 그때의 제 심정이랑 많이 비슷한데, 그보다 더 많이 부러워요. 저는 그 긴긴 시간동안 울기만 했거든요. 아침에 눈뜨면 울고 밥먹으면서 울고 노래들으면서 울고 잠들면서 울고 그렇게 빠짐없이 울었던 한 달, 사흘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하더니 울음은 곧 멎더군요.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매일을 울었어요 꼬박 일 년을. 매일매일 생각하고 원망도 해보고 그리워도 하고 행복을 빌기도 하고. 그땐 이런 아픔들이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어요. 눈을 뜨면 모든 걸 망각한 내가 되어있길, 아니면 한 삼사년쯤 흘러가 있길, 아니면 차라리 내가 사라져있길. 그런데 지금의 나는 생각합니다. 그때의 아팠던 나를 더 촘촘히 꿰어서 뭘로든 남겨둘 걸하고요. 이거이거, 정말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간혹 정말 견딜수 없을때 썼던-다시는 절대로 읽고 싶지 않은- 편지나 일기 나부랭이들 말고, 정말 이런 '글' 같은거요. 나중에 들여다봤을 때 그때 내가 이랬구나. 하고 헛헛한 웃음 한 번 짓게 할 수 있는 이런 글들. 참 그땐 왜 이런 글 쓸 생각을 못했을까 몰라요. 그런데 니쿄님은 실연 직후에 이미 이것을 실행하고 계시니 저보다는 훨씬 부러운 상황인 겁니다.^^ 이미 오래전에, 아무렇지 않아져버린 제가 씁쓸합니다. 까맣게 잊어버린 그때의 마음을 다른 이의 글이나 매체로 환기시키는 게 새삼스럽고, 씁쓸합니다. 어느 날은 한밤에 기억나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이 사람의 전화번호를 일년이 넘도록 기억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저 술먹고 전화하지 말지, 저는 다른척하더니 댁도 똑같으시네.하고 말았죠. 그때의 숨막혔던 사랑과 기억과 추억은 거짓말처럼 흩어져버렸어요. 일년전만 해도 그사람은 나의 태양이었고 우주였는데. 심지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조차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때의 나를 생각할 뿐이에요. 그때의 환한 내 모습을 생각하고, 가슴 아팠던 감정을 주워담지요. '그'는 없고 '그'를 통해 경험했던 '나'만 고스란히 남아버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사랑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사랑한 것 같아요. 왜, 연애하거나 짝사랑을 하거나 실연을 해도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스토리와 플롯을 생산해내잖아요. 그럼 거기에 또 사정없이 마음이 베이죠. 사랑했던 사람의 눈빛하나 말투하나 몸짓하나는 일종의 각본이 되구요. 나는 대단한 사랑을 하고 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싶으니까요. 뒤이어 생각해보면 그런데에다 감정을 소모하며 참 많이 마음 아파했던 것 같아요. 상사병 걸린 사람마냥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다가 갑자기 받은 고백, 짧은 연애, 긴 이별.. 이거 대충 엮으면 단편 인터넷 소설은 나오잖아요 하하. 전 그때 같은 감정이 나오질 않아서 도리어 걱정이어요. 책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서. 지나가버린 마음은 돌아오지 않아요. 감정도 언제나 순간이지요. 나중에는 이런 뜨거운 감정, 억지로라도 떠올리고 싶은 날이 올겁니다. 지금의 저처럼요.^^
11/04/05 10:44
니쿄님 글 모아서 수필집 하나 내도 뭇 남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을 듯 해요.
남자들의 고민: 난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는걸까 / 여자들의 고민: 저 남자가 날 정말로 사랑하는걸까.. 먼저 확신을 보여주는 사람이 결론을 내주는 거 아닐까 싶어요. 다만 확신 역시 믿음일 뿐..
11/04/05 22:42
좀 뒤늦은 댓글이지만 ^^;;
그간 니쿄님 글 보면서 그래도 참 부럽다-고 생각했던 1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남자치고는 감수성 많고 눈물 많고 생각 많던 제가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하면서부터는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만큼 현실적이 되어가고 있었거든요. 상대방이 얼굴은 예쁜지, 몸매가 어떤지, 성격은 좋은지, 직업은 뭔지, 부모님은 뭐하시는지, 맞벌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성친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종교가 뭔지, 정치관은 어떤지, 술을 좋아하는지, 내 사투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리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따위의 것들만 생각하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니쿄님의 글을 볼때면 꼭 지나버린 옛사랑과 연락이 닿은 것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습죠. 니쿄님이 지금의 감정들을 어떻게 갈무리하시고,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실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감수성 가득한 글들을 많이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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