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족이 20여년 전 이민하였지만, 제 동생은 지금 홀연단신으로 (석달에 한번씩 사귀는 여자사람들이 바뀌는 꼴을 보자니, 솔직히 외로워 보이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족이 아무도 가까이 없다는건 좀 안됐죠.) 한국에서 어느정도 기반도 잡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 녀석이지만 그래도 걱정스런 마음으로 전화을 넣어 보았습니다. 남자 형제들간의 대화란 것이 참 재미없게 짧죠. 물론 좋게 해석하자면 거의 암호 수준의 함축적 의미가 교류한다지만, 그 특유한 무뚝뚝함이 어디 안가죠.
"별일 없냐?" (속뜻: 임마 방금 뉴스봤는데 연평도 난리났던데 거기 분위기 좀 어떠냐?)
"아.. 별일 없어." (속뜻: 뉴스 봤구나? 괜찮아, 전쟁은 안나.)
한마디 해주려다가 그냥 참았습니다. 안부 전화였으니 성질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할테니. 뭐 제가 동생의 사회적 정치적 불감증을 탓할 자격도 없죠. 제 동생은 미국에서 졸업하자마자, 난 미국 싫어,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 돼 웃기지도 않는 드립까지 쳐가며, 늦은 나이였음에도 영주권 포기,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귀국해서 자진으로 현역까지 풀타임 마친 케이스라, 산너머 마냥 불구경하는 하는듯한 제 모습이 오히려 동생에게는 더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겁니다. 서로 아픈데 건들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이랄까. 그런데 미국에 사는 교포들 중 고국에 가족 친구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작 어이 없는 것은, 여기 계신 주위분들 말씀 들어보자면 한국에 전화들 거셔서 듣는 반응들이 거의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 비단 이번 뿐이 아니라, 매번 비슷한 일이 있을때 마다 그렇습니다.
"별일들 없다는데..?"
이쯤에서 자백을 해야되는데, 저는 스타1 접은지 오래고 스타2 경기들만 좀 보고 아직 못해봤네요. 그런데 떳떳하게도 속칭 열혈 피지알 눈팅회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이슈의 근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신뢰하는 몇 안되는 곳이 여기죠. 물론 피지알도 한쪽의 성향이 좀 치우친 경향이 있긴하지만, 반론의 목소리 중에서도 새겨 들을만한 것도 있고, 욕을 먹을만한 것은 먹어야죠. 암튼 그나마 건설적인 토론이 벌여지는 곳은 분명합니다. (최근 몇년 들어서는 시국이 어수선해서인지 다들 조금 격해지고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자주 보이긴 하지만.) 괜히 피지알 금단현상이 있는게 아니죠. (아.. 어제 내내 접속안되서... 휴..)
일반 뉴스를 접하기 위해 때때로 네이버 라우팅으로 신문사, 방송사 기사들을 서핑하지만 출처를 막론하고 다 믿지는 않습니다. (오마이나 딴지도 거의 오락수준으로 즐기는 경지?) 왜냐면 뉴스의 출처는 고사하고, 그 출처의 출처마저도 다는 믿지 못하겠으니까요. (주어는 없네요.) 이번 도발 사태때도 인터넷으로 뉴스 접하자마자 TV를 고정시킨 채널은 KBS, MBC 가 아닌 CNN, NBC 였죠. 남의 일에 (꼭 남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얼마나 심도 있게 지금 상황을 분석하는지 보시면 조금 놀라실 겁니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정치적 성향 자체가 극과 극을 달리는 곳들이 있지만, 한국 관련 뉴스의 경우에는 굳이 미국이 아니더라도 제 3국으로서의 입장과 시각 자체가, 상황을 보다 더 차분하게 판단케 하는 객관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언론의 객관성이니 뭐니 하는 것은 여기서 언급할 것이 되지 못하나, 적어도 한국의 메이져 언론들보다는 더 신뢰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쓸데없는 썰이 길었네요.
최루탄 까스때문에 중딩 고딩 시절 버스안에서 친구들과 캑캑되던 제 나이가 이제 퇴물이 되가는건지, 왜 저는 자꾸만 점점 우리나라에 매니아만 있고 나머지는 다 지나가는 행인#1 인듯한 느낌을 받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꼬맹이때부터 미국에서 자란 제 와이프는 북한이 왜 쐈냐고 순진한 얼굴로 제게 묻는데, 그냥 나라가 힘이 없어서.. 중얼거리다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지금이 무슨 일제시대냐고 그러더군요. 하긴 나란 작자부터 하는게 없는데 누굴 탓하리오, 애궂게 와이프에게 잠시 심각하게 역정 아닌 역정을 내었더니 그러더군요. "오빠, pgr인가 뭔가 그거 너무 많이 하지마, 왜 그리 모든게 심각해?" .. 허구헌 날 제 컴터 바탕화면 마냥 떠있는 사이트라 안 가르쳐줘도 아는 모양입니다. "난 눈팅만 하는데.." 말하려다 그것도 관두었습니다. 허탈해서요.
데이트도 할겸 사람구경도 할겸 그리고 '좋은' 일도 할겸 촛불 집회 다녀왔더라는 녀석들의 농담이 몇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가 않네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는 개뿔, 오늘 출근해야죠, 저녁에는 소주한잔 하고, 주말에는 여자도 만나야죠. 암요, 뭐가 더 중요한가는 본인몫이죠. 근데 가슴 한켠이 시리네요, 뭔지 모르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스탠드는 달라 서로에게 모진 말을 할지언정 손가락 날아다니도록 키워하시는 모든분들을 존중합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먹고 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더 큰것에 대한 열정'이라는게 보이니까요.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